탈모가 나빴다

by 이림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래, 탈모였다. 분명 탈모가 시작이었다. 지난 몇 달간, 정수리의 두피가 훤하게 눈에 들어오면서 이 모든 문제는 시작되었다.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곤 했었다.

"여기 머리 빠진 거 티 나지? 휑하지?"

대부분은 잠시 정수리를 바라보다 눈을 돌렸다.

"잘 모르겠는데..."

대놓고 티 난다고 말할 수 있는 '매정한' 사람이 내 곁엔 없었다. 상대가 잘 모른다고 할 때마다 약간은 위로를 받았다.

'아, 내 눈에만 이렇게 보이는 건가. 남들은 모르나?'

그런 고민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아이와 스티커 사진을 찍게 됐다. 스티커 사진 부스 속 카메라는 화면 위쪽에 설치되어 있었기에 위에서 내리찍은 형태로 사진이 찍혔다. 덕분에 정수리가 아주 잘 보였다. 내 정수리는 까만 숲 속, 조그만 살색 섬 같은 모습이었다. 눈을 돌리고 싶어도 자꾸 눈길이 갔다. 남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니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어떻게든 이 속도를 늦추고 싶었다.


탈모 클리닉을 찾아가기엔, 왠지 두려웠다. 대충 찾아본 비용도 생각보다 어마무시했다. 넓고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표류를 시작했다. 탈모방지를 검색어로 온갖 정보들을 급하게 습득했고, 일단 샴푸를 바꿨다. 여성 탈모 어쩌고가 적힌 샴푸들은 엄청나게 많았고, 후기들을 보면서 대충 하나를 골라 잡았다. 그리고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몇 달간, 빠지지도 않는 살을 신경 쓰느라 굶는 것에만 신경을 써 왔기에 삶은 계란을 넘어서는, 엄청난 영양가를 갖춘 것을 이 몸에 투여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그렇게 찾은 것이 단백질이었다. 보잘것없는 과학지식을 총동원해 봤을 때, 머리카락 역시 단백질이었으므로 탈모방지 약을 처방받기 전에 일단 단백질이라도 먹어보는 게 낫겠다는 '합리적' 결론을 얻었다. 단백질 파우더를 사야겠다 생각했다.


결론을 내리고도 몇 주간 결제를 하지 못했다. 빠듯한 살림에 불확실한 결론으로 돈을 쓰기엔 망설여졌다. 단백질을 먹는다는 사람들은 인터넷의 세계에 넘치고 넘쳤지만, 단백질을 먹고 머리카락을 되찾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먹으면 '왠지'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섣불리 지갑을 여는 건 망설이는 상태로 또 시간이 흘렀다.

단백질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은 합리적 구매인가 아닌가.

이 구매를 미루는 건 게으름인가 절약인가.

가벼운 지갑은, 결제를 미루는 좋은 핑계가 됐다. 탈모방지 샴푸로 열심히 머리를 감으며 단백질을 살까 말까를 또 고민하고 있을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지난달에 응모해 둔 공모전. 공모전 발표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음이 떠올랐다. 거품을 많이 내서 머리를 감는 게 좋다길래, 거품을 잔뜩 내서 손가락 끝으로 살살 두피를 눌러주며 고민했다. 풍성하게 일어나는 거품처럼, 상상은 풍성하게 피어올랐다. 붙잡을 새도 없이 마구마구 피어오르는 상상의 힘에 감탄했다.

공모전 1등 상금은 500만 원. 500만 원을 받으면 뭘 할까. 일단 자동차 할부를 다 갚고, 아들한테 선물을 하나 주고, 삼촌숙모댁에 소고기 한 근 보내드려야지, 오빠한테도 뭔가를 보내야겠다. 입꼬리가 씰룩씰룩. 어우, 시상식에 오라 그러면 뭘 입고 가야 하지. 어머, 사진도 찍을 텐데 이 정수리를 어쩌나. 일단 발표가 나면 두피 클리닉 진단부터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쏴아-

샤워기로 머리카락에 잔뜩 피어난 거품을 씻을 때쯤엔 상상도 날개를 서서히 접어갔다. 아니야, 1등은 좀 오버인 것 같아. 2등 300만 원? 3등 100만 원? 아니야. 진정해. 샤워기의 물줄기에 씻겨나가는 거품처럼, 마음속 상상 액수도 쪼그라들었다. 정신 차려. 무슨 헛꿈을 꾸는 거야. 진정하고 머리를 말렸다.


위잉-

바람이 너무 뜨겁거나 세서, 소중한 내 머리카락이 빠져나갈까 봐 조심하며 살살 말렸다. 아직 남은 머리카락들이 드라이기 바람에 훨훨 날렸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그 순간, 또 훨훨 상상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떨어지면 상처 받으니까 기대는 하지 말자. 아.... 그래도 가끔 잘 쓴다고 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잖아. 그치? 그럼.... 참가상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몇 달간 붙잡고 있었던 게 글밖에 없는데, 60명이나 준다는 그 참가상은 받을 수 있을 거야. 60명 안에만 들면 온라인몰 5만 포인트를 지급한다고 되어 있었지? 얼마나 열심히 썼는데, 교정도 그렇게 꼼꼼히 봤는데. 그래! 60명 안에는 들 거야!

드라이기를 끌 때쯤엔, 확신이 생겼다. 60명 안에는 내 자리가 있을 것 같았다.


한 번 작동하기 시작한 희망 회로는, 마음껏 불타올랐다. 멈춰버리기엔, 힘이 부족했다. 1,2,3등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버거운 순위 같았지만, 60명 중 한 자리는 엄청나게 가깝게 느껴졌다. 5만 포인트. 그걸로 뭘 하지. 아! 단백질! 약속이나 한 듯 단백질 파우더 3통은 49900원이었다. 5만 원에 맞춘 듯한 그 금액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이건 운명이구나. 내게 생길 예정인 5만 포인트. 그 금액과 짜 맞춘듯한 단백질 가격. 어차피 곧 들어올 포인트이므로, 이왕 본 김에 결제를 해버려야지 생각했다. 5만 포인트는 곧 들어올 테니까. 이건 선지급일 뿐, 낭비도 과소비도 아니었다. 합리적인 소비의 신이 내게 강림하신 그 순간, 겸허히 운명을 받아들이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단백질은 정말 효과 있는 보조제였다. 뼈와 근육과 살을 만든다는 단백질을, 매일 저녁 대신 챙겨 먹기 시작하자 몸이 달라졌다. 그저 평소와 같은 음식에 단백질을 더했을 뿐이었지만, 무럭무럭 살이 찌기 시작했다. 5일쯤 지나자 2kg이 불었다. 2kg을 빼는데 또 엄청난 힘이 들 것이지만, 운명을 거부할 순 없었다. 내게 운명처럼 주어진 단백질이므로, 잊지 않고 챙겨 먹었다. 심지어 맛도 좋았다. 머리카락은 고작 일주일 정도의 섭취로는 변화가 없었지만, 60명 안에만 들면 모든 것이 어떻게든 '잘' 해결될 것 같았다. 희망은 그런 것이니까. 마땅한 근거는 없지만, 막연하게 잘 될 것이라 믿어버리는 것이니까. 희망의 품에 포옥 안겼다.


그리고 공모전 발표날. 겸허하게 목록을 훑었다.

'에이, 설마.'

내 이름은 없었다. 1,2,3등 안에 없었을 땐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첫 술에 배부르랴. 욕심이 너무 컸지, 생각했다. 하지만 60명 명단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그토록 강한 확신을 내게 속삭였던 운명. 그 흐름상 내 이름은 있어야 마땅했지만, 없었다.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2~3번쯤 목록을 훑고 컴퓨터를 껐다. 피슈슉. 희망 거품이 꺼지는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내 돈 5만 원, 아니 49900원은 어쩌나. 머리카락은 날 기미도 안 보이는데, 불어나버린 이 체중은 어쩌나. 오빠와 통화를 하며 툴툴댔다.

"나는 이제, 그 회사 제품 안 먹어. 걔들은 돈을 주기로 하고 안주는 나쁜 놈들이야.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야."

어느새 그 회사는, 내 돈 49900원을 떼먹은 빚쟁이가 되어 있었다. 진심을 담아 마구 욕했다. 위로 한 마디가 절실했다. 하지만 오빠는 오빠였다.

"야, 니 글이 고작 그거밖에 안 되는 거지. 그걸 받아들여야지."

젠장. 49900원은 사용했고, 살이 쪘고, 머리카락은 나지 않았고, 스스로의 수준을 인정하기까지 해야 했다.


잔인했다. 희망 거품이 꺼진 뒤 밀어닥친 후폭풍은, 꽤나 길고 강했다. 무려 투고를 목표로 글을 쓰고 있었고, 그 글들을 앞에서부터 다시 살피던 중이었다. 모든 글이 한심해 보였다. 고작 이런 걸로 책을 낼 생각을 하다니. 미친 거였을까. 이런 한심한 글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들 앞에 펼쳐 보였구나. 글 수정을 위해 프린트를 하려던 생각도 바뀌었다. 지구와 하나 되는 기분이었다. 빠져버린 머리카락, 비어버린 내 정수리. 내 글들을 출력하기 위해 종이를 사용하는 건, 大지구의 정수리 머리카락을 뽑아버리는 짓 같았다. '나무 아까운 책'이라는, 남의 책에 달린 악평을 어디선가 봤었는데, 내 글은 프린트조차 하지 않는 것이 지구를 위해 옳을 것 같았다. 지구에게 소중할 나무를 지켜주고, 내 머리카락도 더는 빠지지 않도록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대로도 충분했다. 이런저런 글들을 쓰면서 참 행복했었다. 내 어린 시절, 내 부모님에 대해 글로 옮기며 낄낄대다 오열하다 하는 그런 날들이 분에 넘치게 행복하다 여겨지던 날들이었다. 그 와중에 괜히, 공모전 따위에 참여해서 생채기를 내고 있는 상황. 굳이 투고를 해서, 또 상처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현실적 고민이 밀려들었다. 나 지금 충분히 좋은데? 투고는 무슨. 그냥 이렇게 지내자. 상처 받지 말자. 굳이 투고를 해서 숱한 거절을 맛보는 그 과정이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여기까지도 좋았어. 그냥 이대로 멈추자.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을 흘려보냈다. 글을 수정하려 계획해둔 시간에 글 수정을 멈추자, 계획주의자의 생활이 버벅대기 시작했다. 뭘 쓰려고 해도 글이 이어지질 않았다. 쓰다 말고 저장, 쓰다 말고 저장. 발행까지 도달하지 못한 글들이 브런치 안 '작가의 서랍'에 쌓여갔다. 내가 결심한 건, 분명 포기와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결심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고, 이런저런 좋은 책들을 보며 '이 지구를 위해 프린트도 하지 않는 나'를 칭찬했다. 그럼에도, 계속, 에잇, 메일 보내는 데는 종이도 안 들잖아,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상처 받기는 싫지만, 원고를 보내 보고는 싶은 이상한 마음들이 쓸데없이 나를 들쑤셨다. 하루는 이대로도 좋아 오홍홍, 하다가, 하루는 무언가를 해볼까 투지에 불탔다가. 그렇게 바닥을 기어 다녔다. '공모전의 여왕' 브런치 진샤 작가님의 명언은 이즈음 내게 몹시도 와닿았다.

'다음 공모전을 찾아 떠납시다. 공모전은 되는 게 비정상.'

수차례 상도 받으신 분의 말씀이니 그대로 받아 삼키는 게 옳았다. 휙 하고 던져주신 음료쿠폰도 감사히 받아 삼켰다.


며칠 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만든 건 출판사에 보낼 투고용 PPT였다. 회사를 다닐 때도 '내용이 중요하지. 굳이 PPT를 왜 만들어' 핑계 대며 한글 파일로만 대충 갈겨 기획안을 던지던 나였다. 그럼에도, 원고 전문을 포함한 메일을 누군가 열어보게 된다면, 그 와중에 내용 몇 줄이라도 읽게 만들려면 PPT가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왜 굳이 PPT를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는. 어쨌든 그렇게 PPT를 만들며, 완전히 빠져 들었다. '제가 쓴 건 이런 내용입니다'를 남들에게 알려야 했는데, 오랜만에 집중해서 PPT를 만드는 과정에서 완전히 기분전환이 되어버렸다. 신이 났다. 쓸데없는 희망이니 포기니, 섣불리 결론 내려던 많은 마음들이 그저 사라졌다. 그렇게 들여다보려고 할 때는 보이지도 않던 내 마음이, 다른 곳에 집중하자 오히려 차분해졌다. 순식간에 뚝딱 PPT도 완성을 해 버렸을 땐, '에라, 몰라!' 하는 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 김에 왁- 메일들을 보냈다. 부끄러움은 내 몫이겠으나, 굳이 욕을 하려고 나에게 회신까지 하는 부지런한 출판사 직원이 있을 리는 없었다. 무응답들을 모른 체하며, 주르륵 1차 투고를 마쳤다.


우습게도, 마음이 홀가분했다. 되면 좋고, 안되면 또 다른 곳에 보내보지 뭐. 그러다 너무 상처를 받아서 보내기 싫어지면, 또 며칠 쉬지 뭐. 그렇게 생각하니 '투고'라는 이 과정이 가볍게 느껴졌다. 지난 며칠, 나는 혼자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가 땅굴 안에서 뱅뱅 굴러다니는 상태였다. 이런 건 해서 뭐해, 휴직도 얼마 안 남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말고 놀아, 머리 빠진 거 봐, 재밌다고 계속 글을 쓰다간 대머리가 될지도 몰라, 이게 은근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 아닐까. 괜히 도전해서 상처 받지 말고, 그냥 굴러다녀. 스스로를 방치했다.

문제는 그냥 굴러다니는 것도, 나 같은 사람에겐 엄청나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굴러다니면서도 끊임없이 뭘 하지, 뭘 할까, 뭐든 해야 하지 않나, 스스로를 볶아대고 있었다. 나는 집중해서 뭔가를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구나, 하는 사실을 39년 만에 처음으로 알게 됐다. 언제부터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는 그런 상태였다. PPT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다니. 변태 같았지만,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냥 계획대로 쭉쭉하면 되는 일들이었다. 나름은 다 써버렸으니, 투고 gogo 하면 되었을 일. 쭉쭉 하다 결과가 좋으면 감사할 일이고, 안 좋으면 또 그저 살아가면 될 일들. 그럼에도 마음을 보호하려는 '과잉보호'는, 이다지도 극진히 모든 계획들을 엎으며 나를 막아서고 있었다. 마음을 잘 단도리하는 것이 우선인 상황이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깊게 상처를 받아본 사람은 안다. 상처가 생활을 집어삼켜버릴 수 있음을.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보다는, 상처 받지 않으려 미리 보호막을 치는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작은 공격도 막아내려는 방어 태세. 이 상태가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질 기회조차 막아서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잉보호 안에서 내 마음은 보호되고 있는 것일까, 서서히 시들고 가고 있는 것일까.

마음 하나 단단히 먹는 것도 참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내 마음도 내 맘대로 안되는데,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겠다는 머리카락은 무슨 수로 막나. 역시, 모든 문제의 시작은 탈모였다. 탈모가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