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어디일까?

by 이림

"어, 여기 내 고향이다."

책을 보던 아이가 말했다. 아이가 보던 책 제목은 '상상력을 키워주는 우주백과'였다. 우주에 빠져 있는 요즘이었기에, 또 무슨 신박한 생각을 한 것인지 궁금했다.

"우주가 니 고향이야?"

심드렁하게 물으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가 펼쳐둔 페이지는 '해왕성'.

"엄마, 나 유치원 때 해왕성반이었잖아. 그러니까 여기가 내 고향이야."

"아들, 고향은 태어나서 자란 곳을 말하는 거야."

"알아, 엄마. 나 여기서 지냈던 거 기억나."

그러니까 기억이 난다고 고향이 아니라니까, 등의 설명을 하려다 관뒀다. 별로 흥미없는 순간에 '설명충'에 빙의돼 입을 열었다가 "알았어, 알았어"를 들으며 그만뒀던 것도 벌써 여러 번. 다음 기회를 노리며 일단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굳이 따지자면 저 아이의 고향은 남편집. 그곳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은 아이 인생의 두 번째 집에서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나의 고향은 어디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본적으로 등재된 곳은 아버지의 고향일 뿐, 나는 그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 내 고향은 어디라고 해야 하지 생각하는데 문득 한 풍경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1~2학년쯤부터 수년간 살았던 집. 기억 곳곳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 모습 대부분이 이 집에서 지낼 때의 순간들이었다. 고향은 '태어난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곳을 고향이라는 정겨운 단어를 써서 불러야 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내 머릿속 고향의 정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정서적으로 조금의 교감이라도 있는 곳에 '고향'이라 이름 붙이고 싶어졌다. 기억의 시작들이 모여있는 곳, 최초의 기억들이 온갖 감정으로 다가오는 곳을 기억의 고향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내 '기억의 고향'은, 어둡고 축축했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지도 황소가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지도 않는,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내 고향은 어둡고 복잡한 어느 골목이었다. 골목 가운데쯤 있던 그 집에 여러 기억들이 뒤범벅되어 떠오른다. 현관문을 열면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고, 그 계단 옆 좁은 통로 같은 곳을 지나면 가족이 살던 집 입구가 나왔다. 화장실은 계단 아래 공간에 있어 신발을 신고 그곳까지 가야했다. 쪼그려 앉아 볼일을 봤는데 밑에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라는 소리가 들릴까봐 늘 무서웠다. 춥고 어둡고 무섭기도 했기에 최선을 다해 빨리 볼일을 보려 노력했다. 집 역시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두웠다. 불을 켜지 않으면 한낮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싫은 건 쥐와 벌레였다. 계단 옆 좁은 통로를 쥐들도 이용했다. 밤에 불을 끄면 벽지 위를 기어다니는 '사각사각' 거리는 바퀴벌레 발자국 소리가 들리곤 했다.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켜놓고 술을 마시는 소리를 들으며 불안하게 눈을 감았다. 두려움, 불안, 어둠. 그것이 내 고향에 대한 느낌이다. 향수같은 건 전혀 느껴본 적 없는 곳.


누군가는 어린 시절이 그립다고 하던데, 나는 단 한 번도 그 시절이 그리웠던 적이 없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시점, 내 어깨에 짐이 적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아련히 떠올리긴 하지만, 그 때로 되돌아가 그 시간들을 살아내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곳에서의 모든 기억은 흑백에 가깝다. 흑백의 기억은 표정조차 품고 있지 않다. 무표정과 피곤함과 묵직함이 가득한 집. 언젠부터인지 곁에 뒀던 비밀노트도 떠오른다. 매일같이 가난에 대해 썼다. 내 가난을 원망하고, 나에게 가난을 준 아버지를 원망하고, 성인이 될 날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웅크렸던 내 어린 시절.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에서 읽은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은 나고 자란 원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났다고 생각해도, 보이지 않는 물질이 몇십 년 전부터 몸에 밴 냄새처럼 주변으로 뭉게뭉게 퍼져 나간다."


이런 '원점'을 가지고 있는 나는, 절망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었다. 가난을 숨기고 절망을 모른 체 했다. 웃었고 밝았고, 나를 꾸며내려 애를 쓰며 자라났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잔뜩 꾸며낸 나와 원래의 내가 뒤섞인 모습으로 어른 흉내를 내게 됐다. 이 나이에도 사춘기 아이처럼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 할 줄은 몰랐다. 이런 나를 바라보며, 의아했다. 앞으로 어쩌려고 그러니 고민하다가, 문득 다짐하게 됐다. 꾸미려 애썼던 것들을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보자고. 지금 남아있는 이 기억마저 사라지기 전에 더 들여다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늘 나에게만 화살을 돌리던 나였다. 내가 더 참았으면, 내가 더 잘했으면, 내가 더 다정했으면. 수많은 후회의 밤들이 지나가고 돌이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면, 지나온 시간들을 지금부터라도 다시 한 번 품어보자고 생각해봤다. 사랑에 빠진 상대에게 단점이 보이면 "그런 너이지만, 사랑해" 하듯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는 그만 두고, 이런 나라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생각하게 됐다.


습하고 퀘퀘하고 어두운 내 고향. 그 고향에서 한 발 멀어져, 해왕성이 고향이라는 아이도 낳았다. 이 아이와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집은, 내 기억의 고향집보다는 밝고 깨끗하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아마도 이 집이 최초의 기억이 남아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책임감이 커진다. 떼어내려 하면 할수록 더 피부에 달라붙어 버리는, 끈끈이같은 그 퀘퀘한 가난의 집요함만은 아이가 모르고 살기를 욕심내게 된다.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아무리 뒤돌아본다해도, 절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앞으로만, 그렇게 앞으로만 나아갈 수밖에 없다. 아이의 고향은, 부디 밝고 다정하고 따뜻한 곳으로 기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