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등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by 이림

"어머, 이건 찍어야 해."

마트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동차 밑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너도 춥구나, 그 밑은 좀 따뜻하니?

한참을 가만히 서서 고양이를 바라보는데 고양이가 눈을 마주쳐 왔다. 섣불리 움직이면 괜히 녀석을 놀라게 할 수 있으므로, 쪼그려 앉아 깜박깜박 눈맞춤을 했다. 문득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딩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천천히 다가서는데, "아가씨"하고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망설였다. 저것은 나를 부르는 것일까 아닐까 고민했다.

"어머, 저 말인가요?"하고 뒤돌아 봤는데 내가 아니라 '진짜' 아가씨를 부르는 소리였으면 어쩌나. 주제 파악 못하는 아줌마로 보일 것 같았다. 이럴 땐 가던 길을 가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다시 한 발짝 고양이에게로 다가가는데, 또 한 번 "아가씨"하고 부른다. 골목에 다른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지 갈등하다 애매하게 돌아봤다. '아가씨라고 부르셔서 제가 돌아본 것은 아니고요, 문득 갑자기 뒤를 보고 싶었어요' 하는 느낌으로 고개만 살짝 돌렸다.


인상 좋은 아저씨가 서 계셨다. 아저씨가 나를 보고 계셨기에 대답도 했다. "네?" 할 수 있는 최대한 정성을 다해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답했다. 아가씨라 불러준, 고마우신 분은 "저기, 카드를 떨어뜨리신 것 같아서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 눈길을 따라 나도 바닥을 봤다. 길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내 카드가 보였다. 지갑도 들기 귀찮아서 휴대폰과 카드만 패딩 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섰던 기억이 났다.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추락해버린 내 카드의 비명을, 친절한 아저씨가 들은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카드를 주웠다. 그새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멀어져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봤다. 저분은 왠지 늘 착하고 친절하고 상냥하고 '스윗!'하신 분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저분이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아가씨라는 호칭에는 두 번만에 돌아봤지만, 아줌마라고 불렀다면? 카드를 잃어버린다 해도, 심지어 열 번을 목놓아 부른다 해도 절대 안 돌아봐야지 하고 결심했다. 우스웠다. 아가씨라 불러주면 감사함을 느끼는 아줌마이면서, 아줌마라 부르면 안 돌아봐야지 하고 결심하는 이 마음이란. 아가씨라기엔 염치없고 아줌마도 싫은 이 애매한 마음이 우스웠다. 청년도 아니고 장년도 아닌 이 애매한 나이가, 이런 애매한 마음을 만드는구나 하며 괜히 나이 탓을 해봤다.


그리고 궁금했다. 나는 저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글에서는 '아저씨', '아저씨' 하고 적고 있지만, 그분께 대놓고 "감사합니다. 아저씨" 하기는 왠지 어려웠다. 잔뜩 감사함을 담아 "감사합니다. 총각님" 할 수도 없지 않나. 아저씨를 호칭으로 쓰기엔 늘 무언가 불편했다. 목에 탁 걸렸다. 내 언어체계에 있는 아저씨와 아줌마라는 호칭은, 상대에 대한 존중감이 부족한 단어였다. 나보다 좀 더 나이가 있으신 분을 부를 때 아무 거리낌 없이 소리 내기엔 왠지 불편한 단어. 높임의 느낌을 전혀 품고 있지 않아 입 밖으로 내기엔 부담스러웠다.


마트에 가서도 늘 애매했다. 일하고 계신 직원분을 부르고 싶을 때 항상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총각, 아가씨는 더 나이를 채워야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호칭일 것 같고, 아저씨 아줌마 등은 상대를 함부로 부르는 것만 같아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늘 “저... 저기요”, “여, 여기요” 하고 말을 했다. 상대가 봐주기를 기다리면서, 여기(here)와 저기(there) 그 중간 어디쯤에 서서, 이 곳에 있는 저를 좀 봐주세요 하는 느낌으로 상대를 부르곤 했다. 어떤 호칭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직도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애매한 나이와 애매한 호칭에 대한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울을 보는 것이었다. 패딩을 벗지도 않고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이 옷차림의 무엇이 "아가씨"라는 호칭을 만든 것일까 이유를 고민했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서 '아! 이러면 아가씨로 보이나 보다!' 알고 싶었다. 그리곤 깨달았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려버린 이 상황을. 난생처음, 코로나 시국의 장점을 발견했다.


그 아저씨도 어쩌면, 호칭의 애매함 사이에서 고민하다 '아줌마라 부르면 기분 나쁠 테니 아가씨라 하자' 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다 생각을 해도 기분은 좋았다. 아가씨라니! '라랄라' 하며 집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음에 익명의 누군가를 부를 일이 있으면 오늘의 그 아저씨처럼 적절한 호칭과 높임말을 쓰는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길에서 나를 만난 누군가가 집으로 돌아가 '라랄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나이 들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