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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Feb 04. 2021

(17) 이제, 시작인건가

작정하고 길게 쓴 글입니다. 넋두리를 푸는 글이니 패스하시면 됩니다 

변론기일이 잡혔다. 소장은 여전히 전달되지 않았다. 3차례의 일반송달(우체부님의 방문)은 폐문부재로 실패, 2차례의 특별송달(법원 소속 인력의 방문) 역시 폐문부재로 실패했다. 이후 재판부에 공시송달을 신청했고, 허락이 떨어졌다. 법원 게시판에 공고문을 붙이고 피고에게 소장을 송달한 것으로 간주한 후, 다음 절차를 진행하는 것을 공시송달이라 한다고.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서 변론기일이 잡혔다. 변호사를 선임한 지 4개월 여가 지났다. 그럼에도 이제야 본격 절차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변론기일 D-4.

앞글에서 썼던, 시동생과 동서님의 방문이 있었다. 그들이 돌아간 후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술자리에 함께 하고 싶었다고, 아들도 나도 보고싶다고 말했다. 새로운 개념의 가족이란 어떤 모습일까 따위를 생각하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현실은 제자리걸음인데, 혼자 너무 멀리 와 있었음을 자각했다. 지금은, 아직은,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임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남편의 연락은, 묶여져 있는 밧줄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용을 써서, 정말 용을 써서, 멀리 멀리 헤엄쳐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밧줄 하나가 내 발목에 묶여 있는 그런 상황. 오랜 수영 끝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여기가 어디지', '와, 새로운 느낌이다' 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확 하고 발목에 가해지는 힘이 느껴진다. 어라- 하고 고개를 돌려보면 발목에 묶여 있는 밧줄이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섬 끝에서 밧줄 한쪽을 잡고 있는 남편이 보인다. 버둥버둥 발버둥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면, 또 확- 발목이 잡아당겨지는 느낌. 

제발, 나를 보지 말고 행복하게 새 삶을 살아가.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 그냥 그 밧줄만 놔줘.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이 한 가지다. 


왜 이렇게 남편을 피하게 되는 것일까 깊게 생각해봤다. 여러 날을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 나는 그가 싫은 것이 아니라(싫은 감정조차 품고 있지 않으려 애쓴다) 그와 함께 있었던 그 시간의 내가 너무나 싫은 것 같다. 그 시간들 속에 서서히 지쳐갔던 그 감정들이 생생히 떠올라 그와 엮이는 것을 최선을 다해 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눈치보고 허락받아야 했던 그 시간들. 그의 기분을 살피고,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 용을 썼던 그 시간들 속의 내가 너무나 한심하다. 이렇게 살 바에야 죽어버리자 했지만 죽지도 못하던 그 당시의 내가, 안쓰럽고 한심하고 원망스럽다. 남편을 생각하면, 나는 왜 그 시간을 그저 참기만 했을까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을 하게 되면 나라는 인간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어졌다. 나이는 들었고 가진 것은 없는 채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현실의 내가,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를 향해 날을 세우는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무뎌지게 만드느라 죽을 힘을 다했고, 나를 망가뜨리는 원망을 삼키려 용을 썼고, 다 놓아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을 품지 않은 채 밤을 맞이 할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강해졌다면, 예전과 달리 맞서 싸우는 것으로 이 상황을 이겨내 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남편은 지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할테고, 쉽게 지치는 나는 또 무기력해 질 그 상황이 눈에 그려졌다. 아무리 바뀌겠다 이야기를 해도, 그 시간 속의 내가 내 안에 아직도 웅크리고 있기에 나는 남편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믿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저 남편에게 휘말리고 싶지 않다. 지치고 싶지도 않다. 대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대화 속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싫다. 비겁한걸까.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않으려는 내가. 

왜 극복해야 하는 거지? 극복을 기대했다가 또 절망하면? 나는 절망이 두렵다.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만큼 나를 끌고갈 지도 모를 그 절망이 너무나 두렵다. 

그래서 매일, 내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려 애를 쓴다. 매일 반성한다.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매일 고민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매일 다짐한다. 다시는 그런 멍청이로 살지 않겠다고. 그러니 결론은, 자기 보호다. 나는 나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타인의 이해조차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나를 보호하고 싶을 뿐이다. 




변론기일 D-2.

밤 9시. 삼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늦은 시각 전화는 불길하다. 역시나, 잔뜩 화가 나신 목소리로 내일 시부모님이 찾아오시겠다는 전화를 받으셨다고 알려주셨다. "결혼을 했으면 다 품어 안고 살아야지, 이게 무슨 일이고" 소리를 지르시다 전화를 끊으셨다. 한참 후엔 "니 인생 니가 사는 건데,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니 앞으로 문자를 주고 받자"는 문자가 왔다. 내가 가정의 모습에 대한 여러 가지를 고민하듯, 삼촌 역시 고민하심이 잘 느껴졌다. 내 속상함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 때문에 주변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이혼을 택했든, 이혼은 내가 쏘아올린 공이었으므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였다. 

"왜 어른들끼리 그러세요, 제가 갈게요" 했더니, "애는 어쩌고. 괜히 질질 짜지 말고 집에나 있어라" 하시니 할 말이 없었다. 



변론기일 D-1.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삼촌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변론기일에 대해 남편은 모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관심이 없는 것 같으니 나중에 알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삼촌의 전화를 받고 생각이 달라졌다. 소장을 확인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역시나. 변론기일을 이틀 앞두고 법원으로 직접 찾아와 공시송달을 취소하고 소장을 받아갔음이 확인됐다. 소장을 확인한 후, 시부모님들이 나서신 것 같았다. 한 번의 변론기일로 어떤 결론이 날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제야 진짜로 소송이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후 다시 연락이 온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상대방이 변호사를 선임했음을 알려줬다. 변론기일이 고작 하루 남은 시점에 선임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럼에도 변론이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해서 더 놀랐다. 한참 후로 밀리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일단 예정대로 진행된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변론기일에 법원에 가려던 마음을 버렸다. 혹시나 그곳에서 남편을 만날까봐 무서워서, 쫄보처럼 집에 있기로 마음을 굳혔다. 


삼촌은 시부모님을 만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으셨다. 다만 대략적인 분위기만 전해 주셨다. 어머님은 거듭 사과를 하셨고, 아버님은 이런 며느리는 본인도 싫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역시, 아버님은 아버님이셨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저를 싫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방적인 감정이면 제가 죄송할 뻔 했어요. 뭐 그런 생각들을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내가 뭘 잘못 한건데! 하며 동동거렸을 텐데. 그저 웃음이 났다. 집 나가는 며느리는 저라도 싫겠어요, 하며 웃었다. 

그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그럼에도, 내 마음을 돌리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부부교육 참여를 권하셨다. 2박3일로 진행되는 부부교육이 있으니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교육에 참여하라고 하셨다. 무슨 말을 해아 할 지 정말 떠오르지 않았다. 부부교육에 참여하라는 것은, 변론기일을 하루 남겨 두고 소송을 취하하라는 의미일까 아닐까. 취하하지 않는 이 순간을 후회하는 때가 올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밤을 버텼다. 



변론기일 D-day. 

법원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으므로 다른 날과 똑같은 하루였다. 오전은 어찌저찌 아이의 온라인 수업을 도왔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조용한 집에서 '별 일 없지', '다음에 또 변론기일이 잡히겠지' 하며 마음을 편히 하려 애썼다. 실패했다.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 냉장고 정리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난리를 쳤음에도 도무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무엇을 불안해하는 거지 나에게 물어봤다. 아무것도 불안해 할 것은 없다고 스스로 대답하면서도 손끝이 달달 떨렸다. 그래, 이 불안감을 글로 한 번 풀어볼까 하며 브런치를 열었다. 어떻게 쓸까 하는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가 울렸다. 예정되었던 변론 시각에서 고작 12분이 지나 있는 시점. 변호사님이었다. 역시나 '속행'. 다음 변론기일을 잡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오지 않았다고. 남편의 변호사는 "피고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나의 변호사님은 "원고는 이혼을 원한다"고 피력했다. 서로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다음 변론기일에는 무언가 달라질까. 

"얼마나 더 걸릴까요" 변호사님께 물었다. 

"천천히 생각하세요. 오래 걸릴 겁니다" 라고 말씀해 주셨다. 


오래. 참, 아련한 단어였다. 소송이란 것은 정말 굉장한 것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한 발 나아갔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할 것 같았다. 아직 제자리인가 싶은 마음은 내려 두고, 한 발 디뎠음에 의미를 두려 애를 썼다. 적어도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니라며 나를 다독였다. 한 발 한 발, 그 발걸음을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일단은. 버틸 힘을 비축해야 한다. 그런 다짐을 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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