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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Feb 04. 2021

(16) 아빠 얼굴을 그리라는 숙제

개학이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개학. 그 개학이 드디어 왔다.... 개학은 기쁘지만, 기뻐야 마땅하지만, 온라인 개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개학은 월요일. 금요일부터 미친 듯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줌 사용법에 대한 동영상 링크, 노트북 대여에 대한 알람, 줌 사용이 불가능한 아이들을 위한 과제 안내 등등. 징징- 핸드폰이 말을 하는 듯했다. "학부모님들! 개학을 준비하세요!" 괜히 마음이 분주해졌다.


월요일 오전 8시 45분. 담임선생님이 올려둔 게시글에 있는 링크를 눌러 줌에 접속했다. 이제 막 9살이 된 아이들이 각자의 방에 앉아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26명 어린이들이 가득 찬 화면은, 서글펐다.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이상했다. 초등학교 1학년, 배움의 시작을 화상수업으로 맞이한 이 아이들은 어쩌면 평생 화상수업과 등교 수업을 병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핸드폰 배터리 없어."

"선생님, 목소리가 안 들려요."

"배고파."

9세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집중하는 일 같은 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음소거시키고 출석을 부르셨다. 이번엔 아이들이 대답해도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음소거가 해제되자 또 여기저기서 온갖 소리들이 들려왔다. 강아지도 짖고, 아기도 울고. 그 소리들을 뚫고 선생님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힘주어 부르셨다. 이름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으면, 작은 화면들 사이에서 아이를 찾아야 했다. 

"ㅇㅇㅇ, 아까 보였는데, ㅇㅇ 어디 갔지?"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아이들이 저마다의 컴퓨터를 가리키며 "여기 있어요" 외쳤다. 막상 이름이 불린 아이는 화면 속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엉망이네. 이건 엉망 수업이야."

아들이 마이크 앞에서 말했다. 짐짓 무서운 표정으로 "선생님 말씀 잘 들어. 니가 소리 내면 선생님 말씀이 안 들리잖아"라고 하면서도 아이의 말에 깊게 동의했다. 이 아이들은 엉망인 이 세상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화상 수업 중엔 아이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어야지 생각했다. 마이크, 스피커 볼륨 등 해결을 도와야 할 문제들이 많았기에 5초 대기조가 되어 수업을 참관했다. 첫 화상수업. 주제는 '아빠 얼굴 그리기'였다. 그냥 가족 얼굴을 그리라고 하면 좋았을 텐데, 하필 콕 집어 아빠 얼굴이었다. 26명 중에 아빠가 집에 없는 아이가 우리 아이밖에 없는 걸까. 정말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굳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아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리라고 했다. 

"아빠 보고 싶다." 

아이가 마이크 앞에서 갑자기 말을 했다. 수업 주제 때문에 잔뜩 신경 쓰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깜짝 놀라버렸다. 잠시 얼어있던 찰나 "아빠집, 안 간 지 얼마나 됐지?" 하며 나를 향해 물었다. 자연스럽게 대답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 순간 벌떡 일어나 마이크 볼륨을 확인했다. 그리고 화면 속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 반응을 살폈다. 아무도 못 들은 것일까, 들었어도 티를 내지 않는 것일까, 혹은 들었어도 별 생각이 없을 수도 있지 않나. 어쨌든 수업은 별 일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아빠가 요즘 바빠서 잘 못 봤지"하며 이도 저도 아닌 대답을 애써 크게 말했다. 경직되어 버린 스스로가 한심했다. 받아들여야지, 뭘 숨겨, 내가 당당해져야 해 라고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다짐했으면서도, 수업 중 아이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흔들려 버리고 말았다. 아이의 주변엔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게 숨기라고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무언가를 숨기려 하면 할수록 그 부분이 곪아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차마 숨기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가르쳐야 옳은 걸까. 아니, 무엇이 가장 아이에게 좋은 걸까.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주말, 시동생과 동서가 나와 아이가 살고 있는 집에 놀러 왔다. 시동생들이 처음 이 집을 찾은 것은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남편은 동행하지 않았다. 시동생들이 아이를 보러 집으로 오겠다고 했을 때 나는 펄쩍 뛰며 2박 3일쯤 거절했었다. 그들의 얼굴을 봐온 것이 몇 년이든, 그들은 남편의 가족이었고 남편과 가족이 아니길 선택한 나는 당연히 그들과도 멀어져야 한다 생각했었다. 계속 도망가려는 나에게 시동생이 말했다. "형과 형수가 어떤 사이이든, 아이가 우리 조카인 건 변할 수가 없다"고, "삼촌과의 사이가 멀어지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거절만 하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온다는 그들을 더 이상 막지 않았다. 그들은 와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와 놀아주고 산타처럼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주고 갔다. 남편이 없는, 남편 가족들과의 크리스마스이브는 여러 모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이는 기뻐했다. 나는 쓸쓸하지 않은 분위기에 반쯤은 기뻤고, 반쯤은 어색했다. 


그날 이후, 동서 또한 한 번 놀러 오겠다는 의견을 전해왔고 딱히 거절하지 않았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길래 정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배달앱만 열어두고 있었는데 양손 가득 음식을 든 채 그들이 입장했다. 회부터 술, 과자까지, 모든 것을 사 와버려 내 집에서 내가 손님이 된 듯한 기분마저 느꼈다.

"만날 애 챙기시느라 힘드신데, 그냥 드시기만 하세요."

그들의 마음이, 진심으로 전달돼 왔다. 어색할까 하는 염려도 잠시였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혹은 지인처럼 서로 안부를 묻고 옛날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아이가 나를 부르면 그들 부부 중 한 명이 먼저 움직였다. 한껏 업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이런 화목함을 누릴 수 있는 원가정을 깨버린 것은 나인 걸까. 그럼에도 남편과 다시 함께 하고 싶지는 않은데.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아이의 목소리에 언제든 달려가는 엄마는 아니었기에, 그들의 모습을 보며 반성도 했다. 널뛰는 기분 같은 건 꼭꼭 씹어 삼켜 내 선에서 끝내야 할 문제임에도, 그러지 못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9살이 원래 이렇게 똑똑해요?"

동서가 물었다.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줄줄줄 아이 칭찬을 했다. 삼촌과 숙모인 그들은, 정말 기쁜 얼굴로 내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아이 자랑을 줄줄줄 해 버렸다. 혼자서 줄넘기 연습도 하고요, 혼자서 책도 읽고요, 토성의 위성 이름도 다 외우고요, 태양이랑 지구 크기도 알고요 등등. 아무와도 함께 하지 못했던 '내 새끼 자랑 타임'을 맘껏 누렸다. 아이가 그린 그림도 보여주고, 아이가 쓴 일기장도 보여줬다. 남편이 없으니, 아이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쭉 지켜본 아이의 성장에 환호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게 가족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 아이의 여러 모습에 대해, 나만큼이나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게 가족 공동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새삼, 가족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다. 동서와 나는 가족일까? 남편과 묶여 있는 가족이라는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소송까지 시작한 나. 남편과 남이 되어 버리면, 시동생도 동서도 가족은 아니다. 곧 남이 될 이들은 내 아이의 성장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쏟고, 내 생활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을 기울인다. 법률상 가족이 아니게 되어 버리면, 이 모든 마음들이 싹둑 사라지는 것일까? 가족으로서의 마음이 남아 있는 이 관계는 가족인 것일까 아닌 것일까. 앞에 앉아 있는 동서에게 문득 물어봤다. "우리는 앞으로 가족인 걸까요 아닌 걸까요?"

"꼭 '뭐는 뭐다' 정해놓고 그대로 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여러 개념들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우문현답이었다. 살면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많은 개념들. 앞으로 많은 개념들이 우리에게 생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송 중인 남편의 동생과 부인이지만, 함께 보낸 세월 역시 짧지 않았다. 법적인 개념과 무관하게 시간 속에 쌓인 관계를 내 임의로 잘라버릴 수는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엮여있는 관계들 역시 섣불리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자녀양육교육에서 들었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아이 중심의 새로운 가족' 

아이의 아버지, 아이의 삼촌과 숙모, 아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등등. 나와는 모두 남이 된다 하더라도, 그 모든 관계들이 새롭게 새롭게 나름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 데에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나 역시 너무 물러나 있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 모든 관계들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차분히 차분히 중심을 지키고 아이를 이끌어야 하는 것이 내 역할인 것 같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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