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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an 12. 2021

(15) 남편의 생일이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아예 잊을 수 있을까?

아이 생일, 그 후로 이어지는 남편 생일과 시어머니, 시아버지 생신 등. 함께 살 때에도 연말-연초가 되면 늘 마음이 조급했었다. 크리스마스, 신정 등도 어떻게 보낼 지 신경써야 했지만 틈틈이 있는 생일들이 늘 마음을 부산스럽게 만들었었다. 20여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신이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 차차 무감해져 '날짜가 익숙한데 무슨 날이었나?' 하며 지나가게 되는 날이 올까. 10여 년 동안 '특별한 날'이었던 남편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이제는 무감각해지려 최선을 다해야 하는 날짜가 되었다. 떠오르는 기억들을 누르고 온갖 복잡한 감정을 모른 체 하며 버텨야 하는 날이 되었다. 


사실 1월의 시작부터 나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소장이나 보낸 주제에 내가 먼저 생일을 축하할 수는 없는 일. 그럼 아이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지. "아빠 생일인데 문자라도 보낼까" 하면 아이는 분명 파티에 대해 이야기를 할 테고, 그 파티에 나는 갈 생각이 없으니 '당신의 생일파티를 위해 아이를 데려가시오' 라고 남편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하나. 아예 모른 척 있어야 하나. 그렇지만 이 아이는 아빠의 생일에 대해 알고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생각하려는 이놈의 성격 탓에,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려 애쓰며 새해를 보내고 있었다. 끊어내려 애쓸수록 온갖 기억들이 떠올랐다. 생일에 싸웠던 일, 어설픈 생일상, 파티 등등. 내 기억력이 이렇게 좋았나 싶을 만큼 솔솔 피어오르는 기억들. 그 기억에 짓눌려 압사될 것만 같은, 그런 새해였다. 


시동생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생일 당일 오후였다. 아이를 데려가 저녁이라도 함께 먹고 싶은데 그래도 될 지를 조심스레 물어왔다. 남편이 직접 연락이 오지 않은 것에 안심했다. 흔쾌히 데려가도 된다고 이야기하고는 아이 손에 들려보낼 '초코케이크'까지 직접 샀다. 가장 적당한 가격과 크기의 케이크가 눈에 띄어 고르려는데 케이크 위를 뒤덮은 하트 장식들이 눈에 거슬렸다. 내가 샀다는 것을 뻔히 알텐데 하트장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 4000원을 더 써야 했다. 이게 뭐라고. 그깟 장식에까지 신경 써야 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괜한 희망이나 기대를 품을 수 있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려 한껏 날을 세우다 보니 별 쓸 데 없는 부분까지 예민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 축하해' 흔하디 흔한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생일 내내 나는 남편에게 직접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빠 생일 파티 하러 갔다와" 라고 말하면서도 미리 걱정했었다. 이 아이가 함께 가자고 고집을 부리면 어쩌지. 하지만 아이는 아주 당연한 듯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뭐 할 건데?"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아이도 알게 된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가 한 자리에 마주 하는 일이 더이상 없음을 아이도 느낀 것 같았다. 애써 밝게 대답했다. "집에서 푹~ 쉬고 있을 거야. 엄마가 요즘 좀 피곤해서." 

굳이 안해도 될 '피곤하다'는 말까지 하며, 혹시나 아이가 같이 가자고 할 상황에 대비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무엇이라 말을 하는 것이 정답일까. 정답같은 게 있기는 한 것일까. 


그럼에도 남편의 생일을 보내며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남편의 행복을 바라고 있음을. '우리' '함께' 잘 지낼 수는 없지만, '너만의' 생일을 행복하게 보내길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나쁜 기억도 감정도 흘려 보내고 나니, 이제는 그저 남편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따로 살아서 각자 행복함을, 아이가 자라면서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부디,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남편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다. 





연말에는 분명, 새해만 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다며 새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었다. 벅차게 기다리던 새해가 시작되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불안감이 커진다. 

4월의 복직. 그 후의 방학들에 나는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친정도 없는 내가 혼자 아이를 잘 케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새해 시작과 동시에 나를 덮쳐왔다. 미리 걱정해봤자 답도 없다며 눈을 감았는데, 막상 2021년을 눈으로 보고 나니 그 압박감이 상당했다. 남편과 시댁의 손길마저 내처버린 이 상황에서, 나는 별 무리 없이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자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도록 애써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나 힘드니까, 내가 방법이 없으니까, 혹시, 혹시 하며 지인들에게 손을 내밀었었는데 그런 뻔뻔함으로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겁고 버거운 존재로 남지는 않아야겠다 마음을 다잡게 된다. 이혼은 내 일이며, 친정의 부재도 내 일이다. 아이 양육도 마찬가지. 오롯이 홀로 서기를 다짐해 본다. 새해니까. 

새삼스럽게, 참 추운 날들이다.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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