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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Mar 15. 2021

(18) 아이는 누가 키우는 게 맞을까

고백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제목만 써뒀던 이 글을 버려두고 있었음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직면하고 있는 문제였지만,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내 새끼 키우는 걸 힘들어하는 어미라는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우아하게 '내 새끼는 잘 키우고 싶어요' 말하고, 그 문장 뒤에 나를 숨기고 싶었다. 이혼에 관한 글도 일절 쓰지 않았다. 이 문제를 움켜쥐고 있으면서, 다른 이야기들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딱히 이슈랄 것이 없는 생활 중에도 떠오르는 생각들은 많았지만, 쓰지 않고 외면했다. 똑바로 보고 싶지 않았다. 소송 중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생활하고 싶었다. 과거의 일인 양, 다 지난 일인 양 흉내 내고 싶었다. '괜찮아', '나 잘 지내'하면 될 줄 알았다.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몇 달째 껴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쓰지 않았고 두 번째 변론기일이 지나고 나서야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 역시 이혼의 과정이니까. 나는 그 마음을 써 보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나의 정리를 위해서라도, 이 과정을 궁금해하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써야 했다. 아이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못할, 이기적인 엄마의 이야기.  






육아휴직을 내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돈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면,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육아휴직 급여는 90만 원, 대출을 끼고 살고 있는 주제였기에 이 돈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겨진 부조로 생활비를 충당하자 계산했고, 버티고 버티면 7개월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에 7개월만 휴직을 냈었다. 

별거 중 회사를 가는 날엔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야 했다. 코로나 시국, 남편까지 배제하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아이를 맡겨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남편과 마주했던 시간들, 여전히 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휴직을 내고 아이 양육을 전담했다. 집-회사-집-회사 허덕대던 생활에서 집-집-집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남편을 보지 않아도 되는 매일이 너무나 행복했다. 눈치 볼 사람이 없는 집이란, 이토록 편한 공간이었구나 새삼스레 깨달으며 매일을 즐겼다. 그동안의 생활에서 스트레스 1-2-3순위쯤은 남편이 차지했고, 4-5위쯤에 직장이 있었다. 육아휴직으로 이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스트레스 0에 가까운 생활이 이어졌다. 분명,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도 익숙해지니 일상이 되어 버렸다. 매일 '와, 좋다' 하며 살았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그런 하루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스트레스 0' 생활에 익숙해지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배부름의 끝판왕 같은 문장이지만, 실제로 그랬다. 평화에 익숙해졌다. 싸움이 없는 매일, 평탄한 하루들이 쌓이니 그것이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평화롭다니 만세!' 하던 내가 '아, 오늘도 역시 평화롭군'하고 있었다. 그즈음 아이의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학교에 가는 오전 시간을 오롯이 즐기던 나는 당황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땐, 유치원 전체가 쉬는 일주일만 어떻게든 버티면 유치원 종일반에 보낼 수 있었다. 나 역시 회사에 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육아휴직 중, 아이도 초등학생이었다. 육아휴직 중인 엄마가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낼 수는 없었다. 아이와 내가 단 둘이 보내는 첫 방학, 나는 버거움을 느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이 힘들었다. 아이와 나만 있는 집, 매일 이런 일상이 이어졌으니 당연히 아이는 내 곁을 쫓아다녔다. 지치지 않고 말을 했고, 내 반응을 기대했다. 나를 좇는 아이의 눈, 나의 반응을 기대하는 행동들. 엄마라면 당연히 응해줄 수 있어야 했지만, 그게 참 버거웠다. 새삼 느꼈다. 내 성격을. 친구가 내게 말했듯, "혼자 사는 게 맞는 사람"이었다. 하루를 혼자 보내도 별 어려움이 없는 편이었고 누군가의 곁을 찾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내 새끼에게도 딱 그 정도의 거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만큼만 나를 바라보길 원했다. 다른 지인들에게 대했던 그대로, 내 아이에게도 거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TV나 패드 등을 주며 너도 어느 정도는 '혼자' 시간을 보내라 권했다. 이때 깨달았다. 이혼과 아버지의 장례 등으로 겪는 여러 감정들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여겼는데, 나는 '그냥' 혼자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내 품으로, 이 공간으로 아이를 데려온 건 나였다. 아이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별거에 앞서 남편이 "다 같이 이사하는 걸로 하고, 아빠는 바빠져서 잘 못 온다고 하자" 하길래 그대로 받아들인 상황. 나와 단 둘이 사는 이 상황으로 아이를 끌고 와놓고, 아이를 버거워하는 엄마라니. 소름 끼칠 만큼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도 썼다. 그럼에도, 정말로, 잘 되지 않았다. 내 곁을 파고드는 아이에게 내 곁의 100%를 다 내어주지 못했다. 아이에게 짜증내고 화내는 빈도가 잦아졌다. 스스로를 욱 하고 화내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욱 하는 날 것의 감정 그대로를 아이에게 쏘아대고 있었다. 굶으면 굶었지 이대로는 안된다 생각했다. 결국 방학 내내 아이를 학원들에 보냈다. 학원에 보낸 시간만큼 나오는 학원비. 혼자 있는 시간을 돈 주고 산 기분이었다. 






아이와 있는 것이 버거울 때면 솔직히 남편을 생각했다.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었다. '마음을 고쳐 먹어봐'라고 내게 말하는 당신은, 그 말만 내뱉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텐데 나는 내 시간이 모자라다 불평했다. 혼자 있을 남편의 시간들이 샘이 났다. 내가 뛰쳐나와놓고는, 내가 등을 돌리고는, 남편의 여유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뭐 어쩌자는 건가, 나란 인간은. 당신이랑 도저히 못 살겠어 해 놓고, 당신은 혼자 있어서 좋겠다 라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원하는 걸 어떻게 다 가질 수 있을까. 아니, 잘못된 질문이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이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면 대체 어쩌자는 걸까.


늘 단 둘. 왁자하게 부를 친정 식구도 없으니 늘 단 둘이 있는 아이와 나. 아이에게 나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줄 수 있을까. 아니 절대,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도, 아이는 외로워 보였다. 아이와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욕심으로 아이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육아와 어울리는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엄마에게서 태어난 너의 팔자다, 하고 넘겨버리면 되는 문제일까. 하루에도 여러 번, 불쑥, 의문이 든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아이에게 적어도 부끄럽고 싶지는 않다고 다짐하는 매일들이, 아이에게 독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애를 써서 달라질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나는 아이를 잘 품어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다른 사람들의 고민, 다른 사람들의 삶 같은 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매일 같이 혼자 성벽을 높게 쌓고 그 안에서 생각만 한다. 


남편의 집에는 식구가 많다. 적어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고, 형제도 많다. 남편집에 갈 때마다 "엄마는 '혼자' 뭐 할 건데?"라고 묻는 아이. 이 집에는 엄마와 단 둘이지만, 저 집에 가면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아이도 안다. 다녀오면 늘 신이 나 있다. 내가 줄 수 없는 것이기에, 어머님이 아이 스케줄을 물을 때면 언제든 응했다. 아이는 양쪽 집을 오가며 무엇을 느낄까. 나의 혼자있음이 아이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십 번, 아니 수천번쯤은 생각했다. 보내는 것이 옳을까. 내 욕심이 아이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자답하고 혼자 아팠다. 내가 살면서 보아온 저 집의 문제들. 나도 문제가 있지만, 저쪽도 문제는 있었다. 어느 쪽이 아이에게 좋을까 생각하다, 문제가 없는 집이 있기는 한 걸까 생각도 했다. 정반대 의심도 들었다. 나 지금 아이를 보내버리려 아이의 외로움을 핑계 삼는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이런 나지만, 아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보내버리고 싶은 것은, 정말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됐다. 양쪽 집 중 어느 것이 아이에게 좋을까, 하는 이 고민 역시 너무 앞서 나간 것임을. 저 집 누구도 아이만을 원하는 사람이 없음을 혼자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그들은 아이를 키울 엄마까지 원하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있어야지' 하면서 아이와 나를 함께 원했다. 나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과 저 가족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서로에게 원하는 남편과 나. 아이는 누가 키우는 게 맞을까. 정답은 안다. '화목한 가정'을 이뤄 엄마 아빠가 함께 키우는 게 맞다. 그럼 그 정답대로 살 수 없을 때는? 나머지 답은 모두 틀린 것일까. 최고의 상황이 불가능할 때, 어떤 차선책이 가장 이로울까. 여전히 모르겠다. 나만 참으면 되는 걸까 생각하면, '더 이상 못 참겠다' 했던 그 순간들이 또 떠오른다. 아이를 보고도 참지 못했던 그 순간들의 생채기가 여전히 내게 있는데, 이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또 반복한다. 무엇이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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