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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Mar 30. 2021

(19) 두 번째 변론기일이 지나갔다

모든 소송이 다 이런 걸까. 이혼소송의 시간표는 느리고느리고느리고느리고느려서 정말! 느려서! 성질 급한 사람은 이 끝을 보려다 숨이 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부러 절차를 길게길게 늘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게 만드는 걸까. 쉽게 이혼 따위 못하게 하려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혼하려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부득이하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부러 절차를 길게 만든 걸까, 부득이하게 길어지는 걸까. 답은 알 수 없으나, 뫼비우스의 띠 위에 올라서 있는 기분이다. 끝도 없는 그 포물선을 뱅뱅뱅뱅 돌 고 있다. 여기가 시작점인지 저기가 끝점인지 알 수도 없고, 얼마나 흘러왔나 얼마나 남았나 보이지도 않는다. 차근차근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멈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역시 기분 탓인가. 알 수가 없다. 

지리멸렬. 아주 오래전 읽었던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서 본 글귀. '지리멸렬한 삶'이 싫어서 자살을 택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입으로 소리 내 봤었다. 지리멸렬. 지리멸렬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해 봤었는데, 이젠 그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체감 중이다. 이혼소송은 정말, 지리멸렬하다. 


이 지리멸렬한 과정에도 장점은 있다. '왜 이 과정을 버티며 이혼을 하려고 하나'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게 된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수백 번은 자문한다. 나는 왜 이혼을 하려고 하나. 이대로 살면 안 되는 것일까. 소송 따위 취하하고 평온한 척 살면 안 되는 걸까. 대답은 금방 튀어나온다. "안돼. 그럴 수 없어"

별거 기간 내내 남편을 밀어내지 못했던 것은, 법적으로 맺어져 있는 관계 때문이었다. "내가 그래도 니 남편이야"하는 말이 가진 힘은 꽤나 절대적이어서, 문을 열어주게 됐었고 신경을 써야 했었고 결국 남편 앞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었다. 나의 모든 거절을 무력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이 법적 관계였기에, 나는 그 관계를 끊어 내고 싶었다. 그런 빌미를, 여지를 남겨 두고 싶지 않다. 이런 자문을 하고 나면 버틸 힘이 생긴다. 나는, 버텨서 끝을 보고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미래를 걱정해봤자 결국 한숨만 나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한숨만 쉬며 하루하루를 버티기는 어려운 것이기에, 매일 글로 도망을 친다. 어떡하지, 하는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고 문장들 속으로 숨어버린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면 9시. 출근하듯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아이의 하교 시각은 12시~1시. 마침 직장의 점심시간이므로 그때쯤엔 일어나 정리를 하고, 아이를 데리러 간다. 놀다 학습지를 하다 시간을 보내고 아이가 학원에 가는 시간엔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복직한 것 같다, 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정해진 루틴을 살아간다. 나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붙잡고 있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글이라도 붙잡고 그저 쓰고 있다. 목차를 세워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계획주의자에게 정해진 계획을 지켜내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기에, 머리를 비우고, 목차에 따라, 화면을 채워간다. 뭘 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이 글이 뭔 도움이 될지 불쑥 의문들이 고개를 들어도 그저 쓴다. 하루를 넘긴다.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통계도 라이킷도 어느 순간부터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내 감정의 배설일까, 글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생산과정일까. 그마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변론기일을 앞두고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답변서가 궁금했다. 두 번째 변론기일 전에는 제출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무 연락이 없었기에 상황이 궁금했다. 처음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는 자주 변호사님과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변호사님은 바쁘시기에 직접 통화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변호사 사무실의 대리님과 자주 통화를 하게 된다. 벌써 7개월째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 꽤나 친밀한 사이 같은 감정마저 '혼자' 느낀다. 그 대리님께서 친히 "변호사님 의견도 그렇고, 정신건강을 위해서 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네, 그럼 제 정신건강을 위해 안 보겠습니다"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꼭! 보고 싶습니다!" 외쳤고, 읽었고, 한 3일 치쯤의 정신건강을 잃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하는 2장짜리 자술서와 피고의 변호사가 작성한 답변서. 처음 읽었을 땐 피식 웃었다. 다시 찬찬히 읽으면서는 눈물이 났고, 3번쯤 읽었을 땐 한숨이 나왔다. "원고(나)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기를 원한다는 첫 문장만 보고도 심장이 두근댔다. 내 소송을 기각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에 그 문장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았다. 나약한 정신력 같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녀와 이 일로 크나큰 충격에 빠지신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원고와 함께 가정을 지키고자 한다"

이 문장이 가장 신경을 긁었다. 나는? 이 문장 어디에도 '내'가 없었다. 

"가정불화의 와중에서 서로 격한 감정 중 오고 간 모욕적인 언사는 그것이 경미한 것이라면 이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투는 과정에서 마음에도 없는 심한 말을 했고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며 자책하고 있다", "감정이 격해진 피고가 실언을 했다", 

"상습적으로 폭언을 행사한 것이 아니었기에 원고가 피고와의 혼인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가혹하다 여겨질 정도는 아니었다", 

"원고가 마음을 돌려 가정으로 돌아와 아내와 어머니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여 달라"


이 글을 쓰며 다시 읽어봐도, 확신이 든다. 남편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왜 힘들다고 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의 그 모든 시간들은 '과장'된 것으로 정리됐고, 그럼에도 피고 본인은 반성하고 있으니, 아이와 부모님을 위해 가정을 지키게 해 달라. 그것이 답변서의 요지였다. 나는? 내 감정은? 반성과 노력. 그 불확실한 단어들에 내 미래를 걸어야 하는 건지 정말 의문이 들었다.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던 나는, 오랜만에 접한 남편의 화법에 끙끙 앓으며 밤을 보냈다. 내 의견을 말할 수 없어 답답했다.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지만 말할 데가 없었다. 그건 변호사님이 해주시겠지. 이혼 소송이 내게 가르쳐주고 있는 건, 생각을 끊어내는 일의 중요성이다. 길게 생각해봤자 답이 없다.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느니, 눈앞에 닥친 하루만 생각하려 애쓴다. 시간은 간다. 


두 번째 변론기일은, 첫 번째 변론기일에서 정확히 5주 뒤로 잡혔다. 변호사 선임 이후로 7개월이 흘렀지만, 고작 두 번째 재판이다. 7개월 육아휴직을 내며 7개월 안에 끝나면 좋겠다 바랐지만, 역시 꿈은 꿈일 뿐이었다. 변론기일에서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했다. 이제 다음 단계, '가정조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법원에서 지정한 가정조사관이 두 사람을 만나고 양육환경을 둘러보고 하는 등의 일들이 진행된다고. 이 상태로 복직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직을 하면 당연히 눈치가 보일 것이고, 그 눈치를 보면서 연차를 내고 가정조사를 받으며 아이의 등하교 스케줄을 모두 혼자 소화하는 건 복잡해 보였다. 그리고 좀 더 솔직히, 소송 중에는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 소송 후에 어쩌든 그것은 다음 문제고, 원하는 것이 다른 원고와 피고는 재판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에, 재판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양육비는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에라이, 하는 마음으로 육아휴직을 5개월 더 연장했다. 당분간 양육비는 들어올 테고, 아껴서 살면 어떻게든 굴러가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가 요즘 부쩍 남편에게 연락을 자주 한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물어볼 게 많아서'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저 그리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아이의 마음이기에 "아빠한테 전화할게"하면, 이유도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아이와 아빠의 관계이므로, 내가 관여할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불편하지만 말리지는 않으려 노력하고, 통화 중에는 옆에서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으려 애를 쓴다. 그 통화 중에 아이가 "이번 주말에 가도 돼?"하고 직접 물었고, 남편이 그러라고 말을 했다. 보통은 남편과 내가 스케줄을 조정해 왔기에,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낸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주말에 다녀왔다. 밤 10시쯤, 건물 앞이라는 남편의 카톡에 아이를 데리러 내려갔다. 남편과 인사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더니, 아이는 남편을 향해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상황에는 참 적절한 인사였으나, 관계에서는 참 이질적인 말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부자지간이 '안녕히 가세요' 하는 인사를 나누는 건 왠지 어색했다. 이 어색한 상황이, 이 가정의 상황이겠지. '어서 오세요'도 아니고 '또 오세요'도 아니고 '다녀오세요'도 아니고. 참 적절하게 어색한 인사였다. 


아이는 2학년. 학기초 방문 상담이 잡혔다. 날짜가 잡히면서 내내 고민했지만, 교실문 앞까지 가서도 결정을 내리지를 못했다. 이혼 소송 중이라고 말을 해야 하나, 아예 숨겨야 하나. 말을 하자니 '색안경'을 끼고 아이를 볼까 두려웠고, 숨기려 하니 '가족'과 관련된 과제 등에서 무심코 "아빠는?"하고 물을 것이 걱정됐다. 상담을 하면서도 고민하다, 다행히 선생님이 아주 좋은 분으로 보였기에 용기를 내 말을 했다. 아이와 관련된 사람에게 내 입으로 직접 털어놓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 저.... 고민하다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가 별거 중이어서요. 아빠 얼굴 그리기 같은 걸 시키면 아이가 좀 당황하더라고요." 소송은 숨기고, 나름은 단어를 고르고 골라 말을 했다. 

"어머님, 요즘엔 그런 집들 많아요. 엄마 아빠랑 다 같이 사는 집이 99%를 차지하고 그런 건 아니거든요. 이런저런 상황들이 있고, 조부모님이랑 사는 애들도 있고, 아빠랑만 사는 애들도 있고. 절대 특별한 게 아니에요."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선생님 앞에서, 진심으로 울 뻔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외치며 안을 뻔했다. 선생님이 진지하게 "아, 그러시군요" 할 줄 알았던 나는 정말로 안도했다. 내가 편견에 갇혀 있는 것일까. 이혼가정이라는 상황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일까. 여전히 답을 내리기는 어려운 것 같다. 






가정조사 날짜는, 두 번째 변론기일에서 한 달 후로 잡혔다.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절차가 진행되는 듯하다. 첫 재판에서 한 달 후 두 번째 재판이 진행됐고, 그로부터 한 달 후로 가정조사 날짜가 잡혔다. 가정조사관이 전화를 걸어와 '상의 후에' 날짜를 잡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통보하는 방식으로 날짜가 잡혔다. 평일 오후 2시. 육아휴직이 아니라면 절대 참석이 불가능한 시각이었다. 의아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참석하는 거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아이가 집에 있을 시각이었다. 아이를 어딘가에 맡기고라도 참석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다가 날짜 변경 신청을 했다. 아이가 학교에 있을 오전 시각으로 변경해 달라 요청했다. 변호사 사무실에 요청을 했고, 상대측 변호사에게 전달하겠다는 답변까지는 들었지만 2주가 흘러도 아직 답은 없다. 그러려니. 휴직 연장을 한 건,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첫 번째 가정조사는, 배정된 가정조사관을 법원 조사실에서 만나는 형태로 진행된다고 했다. 무려 피고와 원고가 함께 참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놀랐다. 만나기 싫은 내 마음 같은 건, 법 절차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항의해 봤지만 '폭행이 없는 경우'에는, 둘을 한 자리에 불러 각자의 이야기를 함께 듣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놈의 폭행. 접근금지 같은 것을 신청하고 싶을 때도 들었던 그 이야기였다. 폭행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다니.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나름들의 이유로 법적 절차를 신청할 테지만, 그 기준이 폭행의 유무라는 것은 여러 모로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가야겠지 생각했다. 부모님에 대한 글을 쓰면서 가정조사 날짜를 통보받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는, 하고 쓰고 있으면서도 '하, 한 방에서 만나야 해' 하는 한숨이 푹푹 나오는 날들. 부모님에 대한 묵혀둔 감정을 풀어내고 잠을 못 자는 것인지, 가정조사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유를 따져 뭐하겠나.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겠지, 생각하려 애쓴다. 


나는 두렵다. 무엇이? 한 공간에서 남편과, 함께 지나온 시간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그 지루하고 피곤할 시간이 두렵다. 그리고, 함께 가자고 말할 사람이 없는 입장이기에 조사실에서 나온 이후의 시간도 두렵다. 조사실을 벗어났을 때 '얘기 좀 하자'고 나를 붙잡으면,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1.소리지른다 2.크게소리지른다 3.달아난다 4.달아나면서 소리지른다 5.화장실로숨는다 6.조사실로다시들어간다.....? 

참 대단한 계획이라 웃음이 난다. 어떻게든 되겠지. 지리멸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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