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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May 28. 2021

(21) 과일이라도 대접해야 했었나

두 번째 가사조사를 받았다

아이는 토요일이면 '당연한 듯' 시댁으로 가려 한다. 한 달 전쯤부터였던 것 같다. 작년 말 생일선물로 사준 핸드폰에 아이가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여기저기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주말 약속을 아빠와 직접 잡기 시작했고, 주말이면 가고 싶다는 의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역시 원인은 나였다. 내가 사준 핸드폰. '아빠'라는 존재가 아이에게 '빈 자리'로 남기를 원하지는 않았기에, 문자든 통화든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뒀었다. 핸드폰을 사준 것이 문제였을까, 간섭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을까. 문제는 없는 것일까.

아이가 아빠와 친밀해지는 것은 분명 원하는 일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친밀함이 내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기분을 느낀다. 둘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오직 나. 아빠도 아이를 원하고, 아이도 아빠를 원한다. 아이도 아빠도 엄마까지 셋이 함께이길 원하는데, 나만 그것을 거부한 채 버티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집에서 나와 단 둘이 지내는 아이. 나는 아이에게 무한의 자유를 허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패드도, TV도 정해진 시간에만 보기를 원했고, 아이가 '더'를 요구해도 조금씩만 허락했다. 하루 분량의 학습지와 일기쓰기 등도 웬만하면 시키려 애를 썼었다. 내 욕심이었을까. 아이는 나와 지내는 이 집은 '공부와 생활을 하는 규칙이 있는 곳', 아빠가 있는 저 집은 '놀이를 하는 자유로운 곳'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 시댁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삼촌과 아빠가 아이를 반기지만, 이곳에는 '잔소리쟁이' 엄마만 있을 뿐이다. 저곳에서는 신나게 놀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해야할 일들을 해놓고 놀아야 하는 차이가 생겨버린 것이다. 내가 아빠처럼 놀아주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함께 게임을 하며 놀아주는 아빠와는 달리, 나는 간혹 게임을 함께 하며 그마저도 진심으로 빠져들어 즐기지 못하는 게 사실이니까. 놀이와 선물공세에 아이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서운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이의 감정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 앞에서 아빠에 대한 나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다.


“아빠를 무시하면 안돼.”

주말, 시댁에 다녀온 아이가 이런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무시라니.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물어봤다. 아이는 "엄마는 인사도 안하잖아"하고 말을 했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러 1층에 오면, 나는 남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아이에게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돌아서서 올라와 버리곤 했었다. 마주치는 것이 불편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것이므로 이 상황을 애써 참고 있다는 티를 온몸으로 냈었다. 받아들이는 남편의 기분 나쁨은 상상됐지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그 순간순간들에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알았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었다. 아이는 그 상황을, 엄마가 아빠를 '무시'해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가 남편을 피하게 된 이유를 아이 앞에서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었다.

"무시하는 건 아니고, 그냥 좀, 불편한 거야."

단어를 고르고 골라 말을 했지만, 아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불편해도 그렇게 인사도 안하면, 기분이 나쁠 거야."

구구절절 다 옳은 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했지만,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그냥, 좀, 억울한 기분은 들었다. 어쩌다보니, 이 가정에서 나는 악역을 맡게 된 것 같다. 잔소리쟁이에 무시쟁이가 되어 버렸다. 모두 내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판단이므로,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일까. 좀 더 자라면 이 상태를 이해해 줄까. 어쩌면, 아이가 나를 이해하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가사조사도, 별 다른 일없이 마무리 되었다. 가사조사관은 남편에게 "만약 이혼을 하시게 된다면, 양육권과 친권을 포기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를 물었고, 남편은 "이혼 판결이 내려질 것이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가사조사관이 "조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방향성'은 중요하기에, 어느 정도는 생각을 해 주셔야 합니다" 말했고, 남편은 "이 가정이 깨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하고 말했다.


이번엔 내게 물었다.

"만약 양육권을 남편분이 가지시게 되면, 양육비를 지급하실 의사는 있으신가요?"

아이를, 남편이, 데리고 간다...? 그들이 이 아이를 키워낸다?

나는 상상해본 적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내 환경보다 그들의 환경이 아이에게 더 좋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도 했었다. 내 욕심들만 모두 챙길 수는 없으니까. 나에겐 '보조 양육자'가 없으니까. 내가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하게 되면, 학원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도우미를 구해야지 생각은 하지만, '가족'과는 다를 거니까. 든든한 가족관계가 있는 그 환경이 아이에게 더 좋다면, 그렇게 판결이 난다면, 고집을 부리지는 않으리라 상상한 적은 있었다.

"법적으로 정해진 양육비를 모두 지급할 의사가 있지만, 양육권은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고집을 부리며 대답했다. 그 모든 환경적 요인을 생각한다 하더라도, 아이 양육을 온전히 남편에게 맡기기엔 불안했다. 잔소리쟁이에, 무시쟁이에, 고집쟁이가 되더라도, 보조 양육자가 없는 주제라 하더라도, 내 새끼를 내가 길러내고 싶기는 했다.


첫 번째 가사조사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12시30분에 마무리 되었고, 두 번째 가사조사는 오후 2시에 시작해 5시 30분에 마무리 되었다. 2시간 30분, 3시간 30분.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8여 년의 결혼생활을 속속들이 파헤치기엔 부족한 것도 같은 시간이었다.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심지어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힘든 시간들이었다.

다만, 1차 조사 때와는 마음이 조금 달랐다. 1차 조사 때는 말 그대로 '멘붕'. 당연히 분리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앞으로의 조사가 '함께' 진행된다는 것을 안 그 순간부터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1차 조사 후, 한 달여의 기간동안 생각이라는 것을 했었다.

'이 조사가 힘들다고 피해버리면, 정말 이혼 기각 같은 게 나올 지도 몰라.'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2차 조사는 간혹 울기는 했지만 심하게 울먹이지는 않는 상태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3차 조사는 또 한 달 여 후로 잡혔다. 이제는, 3차 조사에서 꼭 하고 싶은 말들을 메모하며 지낸다. 2차 조사 때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매일같이 떠오른다. 여전히 아무 것도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은 하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해야 억울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1,2,3차 조사 모두 평일 낮으로 시간이 잡혔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아이가 어린 사람들은, 이 조사에 대체 어떻게 참여하는 것인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의아해진다.






가사조사 4일 후. 저녁을 먹던 아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애 아빠겠거니 생각했다. 핸드폰을 확인한 아이가 "아빠가 패드 가지러 지금 집으로 오고 있대"하고 말을 했다.

"뭐?"

머릿속이 멍해졌다. 뭔소리야? 지금? 어딜 와?

아이가 즐겨하는 게임에서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고, 하필 아이가 내용을 확인한 당일이 이벤트 마감날이라고 했다.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 아이는 학원 차 안에서 아빠에게 부탁을 했단다. 이벤트에 참여하면 너무 갖고 싶었던 캐릭터를 주는데 혼자하기엔 어렵다고. 아빠가 대신 좀 해 줄 수 없냐고. 아빠에게 부탁을 한 아이도, 아이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은 아빠도, 딱히 잘못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문제였다. "아빠를 부를 거면 미리 말을 해" 말한 적도 없었고, 게임을 떠올렸을 때 엄마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문외한이었다. 아이를 다그치기에도 애매했다. 아이가 뭐라고 하든, 어른들의 문제는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니까. 설마, 나한테 연락도 없이 집으로 올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핸드폰을 봤지만 아무 연락도 없었다.


'딩-동.'

설마 설마 하고 있었지만, 20여 분이 지나고 벨이 울렸다.

"아빠다."

아이는 달려가 문을 열었고, 나는 어찌할 바 모르는 채 허둥대다가 패드를 꺼내 아이 방 안에 던지듯 내려 두고 다른 방으로 몸을 숨겼다. 별 생각없이, 반사작용처럼 나온 행동이었다. 남편이 뒤에서 무슨 말인가 했지만 잘 들리지는 않았고, 남편도 방으로 뒤따라 들어오진 않았다.

'112를 불러버릴까?'

'누구 부를 사람이 없나?'

어느 연락처도 적당해 보이진 않았다. 아이와 아빠가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인데, 무슨 긴급한 상황이라고 누구를 부를 건가. 불편한 건 나뿐이었다. 역시나, 내가 문제였을 뿐이다. 아이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그간 아빠에게 보여주지 못한 클레이 작품들을 보여주고, 그림들을 보여주며 재잘댔다. 밝고 밝은 부자간의 대화가 캄캄한 방까지 들려왔다.

"아빠가 바빠서, 얼른 가야해."

짐짓 크게 말하는 듯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사조사관이 떠올랐다. 하얀 방. 의자. 모니터 뒤에 앉아있던 가사조사관.

'그 사람이라도 여기 있으면 좋겠다.' 간절히 생각했다.


남편의 목소리를 집중해 듣고 싶지 않았다. 방 안으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목소리를 막으려, 애써서 냉장고를 떠올렸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 중 터득한 비법(?)같은 것이었다. 남편의 목소리에서 멀어지고 싶을 때나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을 참아야 할 때 애써 다른 생각을 하려 노력했었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본 결과 냉장고가 가장 효과가 좋았다. 타고난 주부였던 것인지, 순식간에 집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왜인지 냉장고였다. 감정적으로 동요가 없는 대상들이 그 속엔 그득했다. 생각을 시작했다. 냉장고, 냉장고, 그 안에 뭐가 들었더라. 젤 윗층 김치칸. 아 김치가 얼마 남지 않았지. 수박도 있네. 수박은 나중에 간식으로 줘야겠다. 아, 오렌지 한 알. 그건 내일 아침에 까 주고 좀 더 사와야겠다.


또... 또... 또 뭐가 있었더라. 아, 햄. 언제 사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비닐에 쌓인 햄이 냉장고에 있었다. 유통기한이 이틀인가 삼일인가 지났던 햄. 오늘 밤엔 그걸 구워서 맥주나 꿀꺽 마셔야지 생각했다. 먹어야 할 기한이 지나버린 음식과 따뜻해야 할 시기가 끝나버린 이 관계가 묘하게 어울렸다. 꿀꺽 먹어버리면 똥으로 나오겠지. 관계의 찌꺼기도 배설이 되어버리면 좋을텐데. 좋은 것만 마음에 남고, 온갖 자질구레한 감정들은 배설되어 버리면 참 좋을 것 같았다. 화장실 레버를 내리고, 물에 휩쓸려 내려가고. 그렇게 깨끗하게 새 물이 채워져 버리면 살기가 얼마나 편할까.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는 동안, 시간은 흘렀다. 20여 분 후 남편은 떠났다. '얘기좀 해' 하며 들어올까봐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간다는 소리가 들렸지만, 방에서 나가 보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남편을 떠올렸다. 분명 돌려주러 올텐데, 먼저 연락을 해서 문앞에 두고 가라고 말을 해볼까. 괜히 말을 꺼냈다가 또 길게 길게 말이 이어지면 어쩌지. 고민만 하며 하루를 다 흘려보냈다. 저녁 7시쯤, 또 아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이가 "아빠 지금 출발했대"하고 말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핸드폰도 울렸다. 남편이었다. 전화를 받았다. "패드를 주러 가려는데" 말을 하길래, "문앞에 두고 가" 말을 했다. "일단 도착해서 연락할게"하고는 전화가 끊겼다.

좀 지나 '도착'이라는 카톡이 왔다. 다급하게 답을 보냈다.

'아이를 차로 내려보낼까, 아님 문앞에 두고 갈래?'

'문 앞에서 아이한테 주고 갈게.'

'애가 게임 같이 하고 싶어 하는데, 데리고 내려갈게'

'문 앞에서 주고 갈게. 애 보고 싶어서.'

이 집은 내 공간. 문 안에 남편을 들이기가 싫어 고집을 부렸다.


이 문에 남편을 들이고 싶지 않은 내 마음과는 무관하게, 아빠가 문 앞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현관문을 열어도 될 지를 내게 물었다. 열지 말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해 열라고 말을 했고, 또 방으로 몸을 숨겼다. 내가 이상한가. 저 사람은 왜 저 문에 들어오는 게 저렇게 자연스러울까.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들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이곳은 내 공간인데, 왜 침범이라 인식하지 않는 것일까. 10분 여만에 남편은 떠났다. 그리고 곧 카톡이 왔다. '당신 좀 너무해. 날 무슨 벌레보듯 대하는...'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내용. 내가 너무한가. 손님 방문처럼 과일이라도 깎아 대접해야 했을까. 답을 보내지는 않았다. 너무하게 행동하려 작정하고 시작한 게 이혼소송이니까. 너무하려 애쓰는 사람에게 너무하다고 말을 하니, 할 말이 없었다.

남편이 떠나고 아이는 방으로 들어와 내게 말을 했다.

"이제 나와도 돼. 아빠 갔어."

아이에게 이 모습은 어떻게 비춰질까. 이런 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을 저 사람은 알까. 경찰이라도 불러서 싸우고 싶지만, 아이를 생각해 참고 있다는 걸 저 사람은 알까. 나는 어떻게 했어야 '정답에 가까운' 행동을 한 것일까. 이 나이가 되어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에, 갈수록 지쳐가는 기분이다.


아침을 기다렸다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요? 접근금지 같은 거라도..”

접근금지 신청은 ‘피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신체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신청하는 것이 접근금지라는 설명이었다. 신체적, 금전적 피해는 내게 없었다. 그저 나약하고 나약한 마음이 거덜났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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