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말 "글이나 써"

브런치 작가님들과 브런치를 먹었다

by 이림

글만 쓰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우아하게. 아침에 눈을 떠 커피를 한 잔 내려 햇볕 잘 드는 창가를 지그시 바라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삶. 이런저런 소음들이 차단된 공간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만 연락하며, 내면 깊숙히 들어가 글을 쓰고, 아아, 스스로의 뛰어난 창의력과 필력에 감탄하며 하루를 마치고. 돈이니 생활이니 그런 건 모르겠고, 글만 쓰는 사람. 있을까?

글을 쓰며 살아가는 이들은 있을 것 같다. 두 다리를 현실에 붙인 채, 밥벌이 도구 중 하나로 글을 택한 이들. 상상도 하기 어려운 스트레스가 있을 것 같다. 불안정한 수입에 대한 두려움, 돈을 지불하는 상대에게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 할 것 같다는 압박, 마감에 대한 쫓김 등등.

상상 속 작가는 '글만 쓰고 사는 사람'에 가까우나, 현실 속 작가는 '글을 쓰며 살아가는 이들'이리라. 상상은 상상일 뿐. 상상과 현실엔 언제나 괴리가 있다.


이런 괴리를, 글을 쓰는 순간에도 느끼곤 했었다. 내 글 안에서 활자로 표현된 나와, 글 밖 현실세계에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 나는, 조금 다른 존재로 느껴진다. 글 안에서 묘사되는 나는 실제보다 조금 더 포장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 글 속의 모든 일들은 '실제 일어난 일'이지만, 그 일을 겪을 때의 상황을 언어로 옮기다 보면 이상하게 괴리감이 느껴진다. 포장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실제의 나는, 조금 더 못났고 찌질하고 소심한데, 문맥 속의 나는 조금 더 여린 척을 하며 우수에 젖어 있고 센 척하는 느낌이다. 형용사와 동사를 아무리 고쳐봐도, 완전히 사진을 찍은 듯 현실을 그려낼 순 없었다. 글 안의 나와 글 밖의 나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삶을 담아내는 글들. 그것을 꾸준히 지켜보는 '브런치 활동'을 하며, 다른 작가님의 글에서도 이런 괴리감을 종종 느끼게 됐었다. 글 안의 작가님은 냉정하고 냉랭하며 무서울 것 같은데, 댓글을 달아주는 작가님은 동일인물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다정다감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글 안에서는 너무나 따뜻하고 섬세하고 여릴 것 같은데, 댓글에서는 에너지가 넘쳤다. 브런치 6개월 차. 애정하는 작가님들이 생겼고, 그 분들 글을 자주 만날수록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글 밖의 '사람'은 어떨까. 만나고 싶어졌다. 글 안과 글 밖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 괴리감을, 풀어보고 싶었다. 괴리든 거리든 없애버리고, 그냥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시작은 카톡이었다. 이런저런 계기로 카톡을 트게 되자, 브런치 속 작가님들이 내 생활로 불쑥 들어왔다. 업로드 되는 글을 보며 '이런 생활을 하는구나' 짐작하며 댓글로 소통하던 날들. 카톡이 연결되자, 글 밖 일상에서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제 대화는 카톡으로 하고, 다른 분들도 보시는 브런치 댓글 공간에는 '정제해서' 댓글을 쓰게 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그 중간 어디쯤에서 머물고 있는 관계. 내겐 그런 작가님이 두 분 계셨다.

"언제 한 번 꼭 만나요."

여러 번 이런 대화를 나눴다. 시간도 장소도 정할 수 없는 약속. 실제로 만난 적이 없었고, 실생활 거리 또한 꽤나 멀었기에, 날짜도 장소도 쉽사리 정하기 어려웠다. 공허한 약속이 메아리쳤다. 꼭 보고 싶은데, 대체 어떻게 만나야 할지, 혹시 오프라인 만남은 부담 되지 않을지, 눈치만 보며 시간이 흘렀다.


결국 우리를 만나게 한 건 '충동'이었다. 육아휴직이 고작 100일 남은 것을 깨달은 어느 날, 이 꿈같은 세월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해야할 일들을 떠올려봤었다. 복직 후엔 못할 것만 같은 일들. 1순위는 '만남'이었다. 방학이 다가오고 있기에 그전에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우선순위는 더욱 당겨졌고, 어느날 툭 미친 척 물었다.

"목요일에 바쁘세요?"

아이의 하교와 학원 등원이 바로 연결되는 유일한 날. 그날을 D-day로 잡고 일정을 확인해 볼 요량이었다. 약간이라도 부정적인 느낌이 들면, 발 빠르게 도망가려 마음을 먹고 있었다. 바쁘다고 하면, 붙잡지도 말고 상처도 받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다음 주는 일이 있고 이번 주는 안됨요?"

엇. 바로 이번주는 좀 심하다 싶었다.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당장 이번주', '장소는?', '메뉴는?' 등으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진짜진샤 '미친' 추진력이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내 동선을 고려해, 장소는 서울역 식당으로 정해졌다. '초밥 먹으러 일본 갔다왔어' 하는 느낌으로, (브)런치를 먹으러 서울역으로 갔다. 그렇게 글을 쓰는 사람들을, 현실 세계에서 만났다.


만나기도 전에 발견한 첫 번째 공통점. 셋 다 지독한 길치였다. 식당을 예약했지만, 찾지를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 현실세계 식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온라인에서 현실세계로 넘어오는 차원의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그 입구를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한 명은 서울역에서, 한 명은 지하철에서, 한 명은 기차에서, 카톡을 나누며 누가 1등 길치일지를 이야기하며 웃어댔다. 촉수를 뻗으며 길도 잘 찾으실 줄 알았던 작가님. 헤매시긴 하셨지만, 그래도 1등으로 도착해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셨다.

"무슨 색깔 옷 입으셨어요?"

쌍팔년도에나 들을 수 있는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만났다.






글만 쓰며 살 수는 없는, 현실 속 사람들. 글 밖의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2시간 30분 정도였다.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했고,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눈에 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지만, 반가움 설렘 그 모든 감정에 앞서 글썽 눈물이 차올랐다. 굉장히 오래도록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사람을, 아주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그런 기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었을 뿐인데, 10여 년 세월을 거슬러 버린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서로 '소개'를 할 필요도 없었다. 각자의 삶을 글로 풀어내고 있었고 그 글들을 이미 읽은 사이였기에, 신상 정보에 관한 그 어떤 질문도 필요가 없었다. 신기했다. 얼굴은 처음 봤는데,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대충은 알고 있는 이 느낌.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이한 편안함을 느꼈다.


육아와 삶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많이 나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짠 듯이' 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글을 쓸 때의 어려움, 지금까지의 글 과정, 공부, 브런치 이야기 등을 술술 나눴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끄덕끄덕", "나도요", "뭔지 알 것 같아요" 이런 공감대가 절로 만들어졌다.


"누구랑 이런 이야기를 하겠어!"


정말, 정답이었다. '글'에 관한 고민으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우리 모두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일상을 살며 간혹 글을 쓰는 나에겐, 글을 주제로 막힘없이 대화를 하는 이 경험 자체가 너무나 생경했다. 짜릿했다. 생활의 한 부분이지만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그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애써 말하지 않아도 이미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사람이 눈 앞에 있다는 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끊이지 않는 대화 속에서, 문득 시계를 봤을 땐 이미 2시간 20분이 흘러있었다. 일어서야 할 시각이었다.


상상과 현실. 글 안과 글 밖. 온라인과 오프라인.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이 모든 시공간을 휘젓고 '내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기차를 타자마자 쓰러져 잠들었고, 몽롱하게 눈을 떴을 땐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동네 풍경이 눈앞에 지나가고 있었다. 상상-글 안-온라인의 세계와 현실-글 밖-오프라인 세계 그 중간 어딘가에서, 나는 이동하고 있었다.

글을 자꾸 쓰다보면, 지금의 이 느낌에 대해 좀 더 적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이 작가님들을 자꾸 만나다 보면, 이 모든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그냥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글벗을 만난 날. 글벗이 전해준 한마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글이나 써."

그래. 고민이 무슨 소용이랴. 일단 써야겠다는 마음을 오랜만에 다잡아본다. 쓸데없는 글이나 쓰고 있지만, 쓰다보면 내 글도, 우리 사이도, 지금보다 더 멋진 무언가가 되어 있으리라. 그래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