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긴~~~ 투고 후기
이런 적은 없었다. 워킹맘 생활 9년차. 아이의 준비물을 단 한 번도 빠뜨린 적 없다는 걸 나름 뿌듯하게 여기며 살고 있었다. 어린이집을 다닐 무렵, 챙겨 보내야 할 건 더 많았었다. 당장 다음날 물감, 유아용 앞치마, 토시 등을 준비하라고 했고, 그런 알림이 오는 날엔 일을 하다가도 뛰쳐나가 준비물을 마련했다. 아이의 바깥(?) 생활이 별 무리없이 돌아가야 내 회사 생활도 안전했으므로, 마감을 쳐내듯 사명감을 갖고 아이의 준비물을 챙겨왔었다.
월요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선 그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현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채, 신발만 겨우 벗고 스르르 문 앞 바닥에 쪼그리고 누워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를 썼다.
'이젠 어쩌지?', '이렇게 되기를 바란 거 아니었어?'
그러다 문득, 바닥에 있는 낯선 물체에 시선이 갔다.
'어라, 애는 학교에 갔는데 실내화는 왜 여기 있지?'
2~3초간 멍하게 실내화를 바라봤다. 박박 문질러 깨끗하게 빨아둔 실내화. 어젯밤, 가방에 챙겨넣었던 기억이 났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방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다녔던 기억이 났다. 정신없던 내 몸이, 실내화를 챙겨 가방 옆 바닥에 고이 내려놔두곤 돌아섰던 것이리라.
그래. 일요일 밤. 그때부터 제 정신은 아니었다.
아니지, 일단 실내화를 갖다줘야 했다. 끙차. 서둘러 몸을 일으켜 학교 앞으로 달려갔다. 8시 50분까지 등교였기에 시간은 아직 남아있었다. 코로나19로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상황. 아이들을 비집고 수위아저씨께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제 정신이 아니라해도 제 정신으로 보이기 위해 애를 쓰며 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실내화를 집에 두고 갔네요. 제가 갖다주고 와도 될까요?"
아저씨는 학년과 반, 이름을 물으시고는 본인이 가져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나처럼 제 정신이 아닌 학부모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아주 익숙하게 대처하셨기에 그대로 맡기고 "죄송합니다" 외치고 돌아섰다.
일부러 빙빙 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귀소본능이 있다는 건, 제 정신이 남아있다는 증거니까. '진정해', '생각이란 걸 좀 해보란 말이야'하며 집으로 왔다. 사실, 밤새 이상태였다. 어쩌지, 어쩌지 끙끙 앓으며 밤을 꼴딱 보냈다.
5월 22일 1차 투고를 시작했었다. 아버지의 첫 기일은 6월 22일. 딱 한 달 해보고 안되면, 그때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지켜보자 생각했었다. 목차를 만들고 글을 쓰는 과정부터, 물어볼 데는 없었다. 그저 '책 만들기'에 관한 책을 읽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진행했다. 그냥 글이 쓰고 싶었을 뿐이었다. 무작정 이런 저런 글을 쓰다보니 주제들이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었고, 처음부터 방향을 잡고 순서대로 내 안에 있는 기억들을 몽땅 다 털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목차였다. 2월 16일에 첫 글을 시작해 5월 11일에 초고를 완성했다. 원고지 773매. 조금 부족한가 싶었지만, 어차피 출판사 의견대로 수정을 하다보면 분량이 조정될 것 같았기에 일단은 마무리하고 전체적으로 수정하며 10여 일을 보냈다. 그리고 5월 22일 첫 메일을 썼다. 프로계획러답게 일정에 맞춰 진행했지만, 수정하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은 다 들었다.
이런 글을 누가 읽을까.
시간낭비 아닌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미친 걸까.....?
인터넷에서 찾아보며 출간기획서를 만들고, 다들 만든다는 PPT도 완성했다. 이즈음 되니 물러날 수가 없었다.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메일 발송은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메일들을 쏘기 시작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때, 딱 그 때의 느낌이 들었다. 글을 써서 올리긴하는데 누가 읽기는 하는 것인지,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어떤 느낌을 받을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그 기분. 넓디 넓은 초원에 혼자 앉아 허공을 향해 공을 던져대는 기분이었다. 아~무나 맞아라. 제~발 맞아라. 휙. 휙.
처음 메일을 발송한 곳은 8군데. 발송을 하고 2~3일간은, 메일함을 정말 미친듯이 들여다봤다.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평소 생활 패턴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부터 02, 031, 010이 찍히는 번호들까지. 전화기만 울리면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모조리 대출 혹은 보험 전화였다. 웬만하면 조금이라도 듣는 체하다가 친절을 가장해 거절하곤 했지만 그런 여유도 사라졌다. 기대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고객님"이라 부르면 기분이 팍 상했다. 한껏 까칠하게 "보험은 있어요", "대출은 이미 많아요" 대꾸하며 전화를 끊었다.
투고후기를 찾아보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관심이 있다면 빠르게 연락이 온다는 사실이었다. 투고를 통해 출간계약을 하신 분들 대부분이, 메일 발송 후 며칠 이내로 연락을 받으셨다고 했었다. 그래서 잔뜩 설레는 마음을 품고 2~3일을 보냈지만, 정말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 그 흔한 거절메일조차 한 통 없었다. '읽음'이라고 표시된 메일을 얼마나 들여다봤는지. "읽었는데 왜 말이 없어요" 아무한테나 따져묻고 싶었다. 고작 8통을 발송하고는 포기하고 싶어졌다. 읽씹은, 정말, 나쁜 거구나. 새삼 깨달았다. 복직을 해서 독자의 전화나 메일을 받게 되면,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빛의 속도로 응답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렇게 일주일 쯤이 지나자 답변이라는 것이 오기 시작했다. 큰 출판사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메일은 '보내주신 메일이 잘 수신되었다. 담당부서에 전달하겠다. 검토에 한 달여가 소요되며 긍정적 결과가 나올 때만 회신을 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 후가 되어서 긍정적 결과가 올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답변을 기다리며 천천히 메일을 보내겠다는 마음도 이때쯤엔 사라졌다. 어차피 읽씹인 걸. 아등바등 매달려봤자 나만 아팠다.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려 애를 썼다. 그리곤 그저 시간이 날 때 2~3통씩, 일주일에 한번씩 '취미 삼아' 메일을 보냈다. 이 메일들을 보내며 정말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됐다. 글을 쓰는 게, 이 길고 긴 글을 쓰는 게 차라리 편했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답을 기다리는 일 같은 건, 현기증이 날 만큼 지루한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곳의 출판사. 이 분들은 적어도 글을 읽었음을 확신할 수 있는 내용을 답메일에 담아주셨다. 내용은 분명 '뚜렷한 컨셉을 잡기 어려워 출간은 어렵다'는 거절이었지만,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만큼 친절한 답변이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시기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했던 분과, "기획서만으로도 얼마나 공들여 준비하셨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원고 역시 흥미를 가지고 읽었습니다만, 이 책의 미덕과 특징을 잘 살릴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 검토 결과는 오직 저희 출판사만의 것임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해 주셨던 분.
누구를 응원할 입장은 못되었지만, 진심으로 이 출판사들이 잘 되기를(지금도 잘 되고 있지만) 응원하게 됐었다.
거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메일을 보낸 것이 6월 13일 일요일 밤이었다. 남편을 만나러 간 아이의 귀가가 늦어지고 있었고, 올리려 생각했던 독후감도 올렸고, 심심한데 메일이나 보내볼까- 해서 시작된 메일 발송이었다. 주변에서 투고 결과를 물을 때마다 "요즘 내 취미가 메일 발송이야. 심심할 땐 메일을 보내지"하며 답하고 있던 나날들. 프로계획러의 은밀한 취미생활이랄까. '이번 발송을 끝으로 투고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며 발송 버튼을 누른 것이 밤 9시 30분. 월요일에 출근하면 보시겠지, 하며 별생각없이 발송을 눌렀고 잠들기 전 문득 수신확인이나 해볼까 하며 메일함에 들어갔다.(메일함 확인도 새롭게 추가된 취미였다) 엥? 이 시각에 웬 메일? 메일을 보낸 이는, 2시간 전쯤 메일을 발송했던 출판사였다.
'일요일 밤에 보낸 메일에 2시간도 지나지 않아 거절을 하시다니. 엄청나게 발빠른 일처리구나' 감탄하며 메일을 열었다. 아이를 재우며 무심하게 톡 열었지만,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점점 몸을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옆으로 누워있다가, 엎드렸다가, 마지막엔 반듯하게 앉아서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이 원고를 책으로 펴내볼까 합니다.... 참 좋은 원고입니다... 내일 접선해요!"
솔직히,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니, 갓 잠든 아이가 옆에 없었다면 "으악"하고 소리를 질렀을 것 같다. 소리없이 입모양으로만 "허.. 와... 우와..."했던 것 같다. 다시 누웠다가, 침대에서 발을 버둥버둥 거리다가, 거실로 나와 눈물을 찔끔 흘렸다. 1시간쯤은 정신없이 신이 났던 것 같다. 정말 간절할 만큼, 누군가에게 꺅꺅거리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거의 달달 외울 만큼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1시간쯤이 지나자 의심이란 녀석이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실화인가? 베스트셀러도 있는 출판사. 그 유명한 책을 키워낸 대표님이 왜 나에게...? 메일 내용 중 샘플글을 읽으셨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 원고를 읽지 않으신 상태였으므로,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들었다. 밤새 잠을 설쳤다. 자다 깨서 '와, 출간해주신대' 했다가, 까무룩 잠들었다가, 다시 깨서 '아... 마음이 변할 수도 있지'했다가. 그렇게 밤을 보냈다.
아이의 실내화를 전해주고 돌아와, 비장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대표님께 답메일을 보냈다. 솔직하게 심정을 표현했다.
"전체 원고를 다 읽으신 후에 아니라고 하셔도, 고이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대표님은 원고를 다 읽으셨다고 하셨고, 그럼에도 출간계약을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기쁠 줄만 알았다. 처음 메일을 확인했을 때의 기쁨이 쭈욱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정말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만감이 교차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거나 종이책을 발간하는 거나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하며 투고를 시작했지만, 막상 종이책이 나온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난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 글을 쓴 것도 아니었고, 나와 내 부모님의 생이 오롯이 들어있는 내용을 남들이 집어들고 읽는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글을 쓸 때는 분명 '내 또래 사람들에게 부모님 죽음 후의 감정을 전하고 싶어' 하는 또렷한 목표같은 게 있었지만, 지금은 막연히 굉장히 두려운 기분을 느낀다. 어떻게 느껴질까. 누군가 사서 읽어야 알 수 있는 문제이지만. 지금은 조금 두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가장 기쁜 한 가지. 글을 쓰는 이 시간에 죄책감(?)을 덜 느껴도 되는 것이 가장 기쁘다. 살풀이하듯 써대는 글. 글을 쓰는 게 너무나 즐거웠지만, 쓰면서도 문득문득 '이 시간에 인형눈알이라도 하나 더 붙이는 게 경제적이지 않아?'하는 자문이 들었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고작 1년. 육아휴직기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실컷 하는 게 뭐 그리 큰 문제겠어, 결심하고 글을 쓰고 있었지만, 늘 자괴감을 느꼈었다. 내 경제력은 앞으로의 아이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게 뻔했고, 부업도 되지 않을 글을 붙잡고 있는 내가 이기적이라 느껴졌던 날들이었다.
'돈 되는 걸 해야지. 너무 이기적이지 않니?'하는 마음과 '다시 없을 휴가야. 하고 싶은 걸 해봐'하는 마음이 매일 싸워댔었다. 글을 쓰다가도 '이 시간에 배달이라도 나가'하는 마음이 들면 발행을 하기가 어려웠던 시간들. 그래도 책을 내면, 글을 쓰는 스스로에게 조금은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글은 뭐하러 쓰는 거야'하는 자괴감 괴물을 이겨낸 것만 같아서, 그게 가장 기쁜 것 같다.
그리고, 4일 후 다가오는 아버지의 기일. 사인한 계약서를 들고 산소에 갈 수 있게 된 것, 그 사실 역시 진심으로 기쁘다. 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옆에 두고 잘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보내며 이걸 썼어요- 책을 내주신대요- 으쓱 대고도 싶다. 그리고... 이대로 쭉 가면 되는 게 맞나요, 여쭤 보고도 싶다. 영혼이 되면 미래도 볼 수 있고 그런 거 아닌가요. 이대로 책 내도 되는 거 맞아요? 좀 알려주시면 좋겠다. 인생 참. 정말, 알 수가 없다.
책은 연말쯤은 되어야 나올 것 같습니다. 열심히 수정해서, 여기서 보신 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려 노력해보겠습니다.
자괴감 괴물을 이겨내고, 더 자주 글을 올리리라 다짐해봅니다. 자괴감을 이겨내지 못해, 쓰다가 말아버린 많은 글들이 작가의 서랍에 있습니다;;
그동안, 구구절절한 개인사를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칭찬해주셨던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