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왔습니다

by 이림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문안인사쯤으로 이름붙여도 될 글입니다.

오오, 이제 새 글을 한 번 써볼까- 하고 '글쓰기'를 눌렀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어요.

하얀 여백, 깜박이는 커서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넓은 공간을, 무슨 용기로 그렇게 채워댔을까, 하는 생각이 우선 떠올랐어요. 다른 작가님들 글은 계속 읽고 있었기에, 새삼스럽게 그분들 모두가 엄청난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이 넓은 공간을, 활자로 꽉꽉 채워내시는 분들. 지치지 않고 쓰시는 분들. 그 열정과 능력이... 새삼 샘이 납니다;;; 부럽고.... 존경합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랜 여행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했는데, 돌아오니 막상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기분? 일단 짐을 옆에 두고, 집 정리를 시작하는 마음입니다.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거미줄을 치워내고. 그런 기분으로 그저 일상을 전하기 위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를 그렇게나 고민했지만 ㅎㅎㅎㅎ 결국은 일기가 마음 편한 것을, 아직은 그 수준인 것을 어찌합니까.

6월말즈음부터 새 글을 게을리하기 시작했으니, 두 달이 지나고서야 새 글을 쓸 수 있게 됐네요. 고백컨대, 나름은 바빴던.... 것....... 같습니다.


6월 22일. 아버지의 첫 기일을 보냈습니다. 기일을 일주일쯤 앞두고 투고를 통해 한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됐었죠. 우편으로 계약서를 주고 받았고, 산소에선 "아빠! 나 책 낸다! 짱이지, 멋있지?!"하는 마음으로 인사도 드렸습니다. 나름은 버거웠던 1년이, 계약이라는 결과 앞에서 '잘 버텨낸 시간'으로 마무리지어지는, 그런 건방진 기분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타이밍도 기막히게, 입금 확인을 했습니다. (계약금을 바로 쏴주신 대표님. 사...사...랑.... 합니다...ㅎㅎㅎ)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우습죠. 그렇게나 글로 돈을 벌고 싶었는데, '글쟁이' 이름 하나 가질 수 있게 책 한 권 내고 싶었는데, 막상 입금을 확인 하고나니 겁이 났습니다.

내 글이, 이럴 가치가 있었던가.

돈을 준 이 회사에 누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뼛속까지 직장인인 저는, 입금을 확인하고 나서야 '진짜' 현실이 인지되더라고요. 오예! 하던 마음은 저 구석으로 밀려나고, '오마이갓. 어쩌지' 하는 마음이 크게크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부턴 글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차를 바꾸고, 세부제목들을 수정하고.

3주후쯤 어머니 기일이 돌아왔죠. 실제 생활도 죽음과 애도... 틈틈이 보는 글도 죄다 죽음과 추억.

"이 기억들을 '팔려고' 하는 건가?" 하는 자괴감도 꽤나 컸고...

그 와중에 글을 다듬고 있는 스스로가 좀 많이 한심해 보이더라고요....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거지?"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답을 내리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저 글을 쓰다가, 나도 책 한 번 내보고 싶다 하다가,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기분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도 품었다가, 목차를 만들어 글을 쓰다가, 투고 성공. 그렇게 시간들을 보내고 나서야, 뒤늦게 끝도 없이 자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기일 즈음에는 "짱이지!"하는 마음이 1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계속 물었던 것 같아요.


이 원고, 계속 하는 게 맞을까? 계약금을 돌려드리고 없던 일로 해야하는 거 아닐까?


이상하죠. 스스로 물어서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질문들은, 꼭 기일에 묻게 되더라고요. 아 제발- 영혼이면 다 알 수 있는 거 아니야, 나한테 답을 좀 줘. 그렇게 떠났으면 꿈에 나와서 로또 번호를 불러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 문제에 답이라도 좀 줘.

당연히, 아무 말도 없으셨습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려,

이 기회 아니면, 언제 내 글로 책을 내보겠어- 하는 마음이 꾸준히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주제와 글 수준이었죠.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인쇄물로 남겨도 되나? 부모님께 누가 되진 않을까?" 이것이 첫번째 고민이었습니다.

(이 고민 뒤엔, '아무도 안 읽으면 좋겠다!!'하는 마음과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도 안 읽으면, 어쩌지!!'하는 마음이

정말 같은 크기로 함께 오더라고요...

어떤 날은, 부끄러우니 아무도 읽지마라!하다가,

또 어떤 날은 이렇게 글만 붙잡고 있는데 아무도 안 읽으면 어쩌지!하다가...

스스로가 참 웃겼습니다. ㅎ)

"이따위 글 수준으로 책은 무슨"하는 것이 두 번째 고민이었습니다. 젠장. 계약을 했다고 해서, 없던 글 실력이 생겨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엉엉. 쓰는 사람이 그대로이니, 고쳐도 고쳐도 제자리인 글을 보는 게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습니다. ㅠㅠ 자기 전엔 "음~ 이쯤이면 하고 싶은 말은 다 담았나?"하는 기분으로 잠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 보면 "미친 거야, 이게 뭐야"해서 다시 고치고, 그걸 며칠 하다보면 "젠장. 처음 쓴 게 젤 괜찮은 것 같은데....."하게 되는. 그런 날들을 반복했습니다. 아하하하하.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야!"하다가 "일단 하기로 했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자!" 갈팡질팡.

그 사이 어디즈음에서 출판사 대표님을 직접 뵙게 되었었죠. 그 무렵 저는..... 글 하나를 새로 써서 대표님께 보내고, 챕터 하나 고친 후에 대표님께 보내고, 목차 수정하면 대표님께 보내고.. 뭐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정말, 뼛속까지 직장인이라.... 일종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상사가 OK해야 다음 프로젝트를 잡을 수 있는, 그런 직장인의 마음으로 계속 대표님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제게 돈을 주신분! 그분의 OK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난 대표님과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거였어요.


"이건 에세이예요. 제가 작가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일일이 다 모르는데, 어떻게 제가 수정을 하겠어요. 작가님 원하시는 만큼, 원하시는 대로 다 고치세요. 바로 인쇄해도 문제없겠다 싶을 때까지."


그때 문득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글의 주인을 출판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쓸 뿐이고, 최종 과정은 출판사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이랄까. 딱, 직장인의 마인드였죠 ㅎㅎ 나는 시키는 것을 할 뿐. 나머지는 윗분들이 알아서 하시겠지. 그 마음으로 제 글을 보고 있었더라고요. '작가'같은 이름을 갖기엔 근성 자체가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리곤 글을 다시 붙잡으려..... 했지만, 아이의 방학이 시작됐어요.

학교-학원들로 아이가 떠난 시각에 글을 써왔던 저였기에, 시간이 반토막 나버렸죠. 아아- 이제 좀 제대로 해보려 하는데!! ㅎㅎ 하루에 남는 건 2~3시간. 방학 맞은 아이를 데리고 나름은 열심히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고. 아이가 학원에 가면 또 앉아서 글을 수정하고. 그런 날들을 보냈습니다.

새 글을 쓰고 싶다, 글 쓰는 법이 기억도 안나, 하던 시간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일상 중에 틈틈이 새 글도 썼으나, 거의 메모에 가까운 수준들 ... 또 '작가의 서랍'만 채워버렸습니다. 계획을 잘 세우면, 새 글도 쓰고 퇴고도 하고.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퇴고만으로도 이미 시간이 없더라고요... 엎고 또 엎고. 혼자 그런 날들을 보냈습니다. 첫 원고에선 774매였던 분량이, 여러 번 수정을 거치고는 904매까지 늘어나 있었습니다;;; 뭘 뺄까, 한참 고민하다가, 일단 보내버렸습니다. 아하하하하;;; 그렇게 '나름의' 최종 원고를 보낸 게 8월 30일 밤. 꽤나 새로운 기분으로 9월을 맞았습니다.


9월 1일입니다.

사실.... 이 날짜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D-9 라는 숫자가 더 와닿네요. 9일 남았습니다. 9일 후에 저는.....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 을 하게 됩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1년, 정말 금방이네요. 정말.

다른 건 모르겠고, 그래도 39년 살면서 가장... 글을 열심히 썼던 시기로 이때를 기억하게 될 것 같긴 합니다. 아이가 집을 나서면,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글은 치유의 힘이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섣불리 답하기도 어려운 문제이지만,

확실한 건 방황할 시간을 많이 줄여주는 것 같긴 합니다.

"앞으로 어쩌지! 젠장! 내 삶 어떻게 되는거야?!"

이 마음으로 좌불안석하던 시간을, 글을 안 쓰고 그저 버텼다면- 그저 걱정하고 생각만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불안정한 상태일 것 같긴 합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 답도 없는 질문을 붙잡고 한숨만 쉬며 우울에 잡아먹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몰두하고 문장을 만드는 동안 시간이 흘렀던 것 같습니다. 저에겐 사실,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흘러가게 만드는 데, 글이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도피,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때로는 답없는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것보단, 도피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음을 배운 것 같습니다.


월급 받는 생활을 하면서도 나름은 열심히 글을 써 나갈 마음입니다. 그래야, 좀 더, 편안해 질 것 같으니까요.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 와... 이런 글, 정말 오랜만에 써봤는데, 정말!! 재밌네요! 정말! 확- 신이 나 버렸습니다. 흐흣!

복직은 이렇게나 하기 싫은데... 거 참.... 큰일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