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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Sep 19. 2021

(23)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는 일

가정방문조사 / 출장 가사조사 / 양육환경조사 등으로 불리는 그것

세 번 만난 사람을 '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집에 들일 만큼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가사조사관과 나는(남편 역시) 친한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아주 구구절절하게 말했기에 '심리적 거리감'이 가깝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일방적인 관계에 불과했다. 나는 조사관의 원래 직업이 무엇인지 결혼을 했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물어보기도 어려운 분위기였다. 본인이 사는 동네를 말한다거나 자신의 가족에 대해 말한다거나 하는, 일상에서 자연스레 나올 수 있는 그런 개인정보 역시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이 뚜렷이 느껴졌었다. 굳이 묻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친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일방적으로, 내 사정이 까발려진 관계라고나 할까. 그러니 어찌보면 더 불편했다. 사회적 관계이지만 모든 개인적 사정을 다 아는, 그렇기에 회사 일 등으로엮여 밖에서는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느낌. 가사조사관은 내게 그런 '애매한' 느낌의 사람이었다. 


가정방문 날짜가 잡히고는 매우 신경이 쓰였었다. 친하지는 않지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지내는 이 집의 환경이, 남편의 것보다는 좋아보이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이 있어서였을까. 가사조사관이 11시에 집을 방문하겠다며 최종적으로 알려왔을 때, 나는 밑도끝도 없는 질문을 가사조사관에게 던졌었다. 

"11시요? 그럼 점심은 어떡해요?"

11시에 방문을 하겠다고, 보통 가정방문은 5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알려주시니 자연스레 12시에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장인에게 '12시=점심시간'이었기에 불쑥 질문이 나가버렸다. 내 점심을 어떡하냐는 건지, 아이의 점심을 어떡하냐는 건지, 조사관의 점심을 어떡하냐는 건지... 묻는 나도 몰랐다. 그저 문득 튀어나가버린 이상한 질문. 가사조사관 역시 이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짐작해 보는듯, 2~3초의 정적이 흐른 후에 말을 이어갔다. 

"저는 12시에 나와서 알아서 해결하고, 2시에 ***씨(남편) 자택으로 갑니다."

"아, 그럼 아이는 그 시간에 밥을 먹으면 되겠네요."

"네."

솔직히, 알아서 해결한다는 가사조사관의 말을 듣고 안도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설마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헛된 상상을 잠시 했었던 것도 같다. '성격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면, "어머~ 저희 집에서 드시고 가세요. 준비할게요"하며 붙잡아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도 잠시 들었다. 예의상 붙잡았는데 가사조사관이 "그래도 될까요" 해버리면 어떡하지. 가사조사관을 암살할 것도 아니고, 직접 요리를 하는 불상사는 벌어져선 안될 것 같았다. 내 요리 수준의 참담함은, 정말 숨기고 싶은 정보 중 하나였으니. 어쨌듯, 그런 고민 끝에 붙잡을 타이밍도 놓쳐 버렸고, 전화는 끊어졌다. 





 

"그냥 편안하게, 집에서 하던 그대로 계시면 됩니다."

라고 가사조사관은 말을 했지만, 그런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편안하게, 집에서 하던 그대로? 그런 건, 문을 열어주지 않아야 가능한 것 아닐까. "불편한데 들어오지 마세요" 해버릴 수도 없는 일. 

일주일쯤 앞으로 가정방문이 다가오자 매일매일 집을 살펴보게 됐었다. 

아이가 늘 쓰기에 펼쳐둔 채 사용했던 사인펜과 색연필. 그것들이 자꾸 눈에 거슬려 결국 작은 트롤리 하나를 구매해 그곳에 모두 정리를 해 버렸다. 어느 날은 피아노 위에 쌓인 먼지가 거슬려 닦아냈고, 욕실 청소와 냉장고 정리까지 '혹시 모르니' 하게 됐었다. 그리고 가정방문 하루 전날은, 정말 열심히 청소를 했다. 아이를 재우고 이방저방을 훑으며 최종 점검도 했다. 쌓인 먼지는 닦고, 책상 위엔 '정말 티나게' 학습지를 펼쳐두고, 거실 한 켠 잘 보이는 곳엔 '아주 부자연스럽게' 육아책 몇 권도 뒀다. 자연스러움은 무슨. "나 애한테 신경쓰는 엄마예요"를 알리고 싶어 용을 썼다. 내가 별 생각없이 방치한 어떤 것이 '양육 부적격자'로 낙인 찍히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무엇이 단서가 될지 알 수 없었기에, 구석구석을 자꾸만 살펴보게 됐었다. 


그럼에도, 이 와중에도, 너무 깨끗한 상태는 '지양'해야 했다. 법원에서 진행된 가사조사 당시, 남편이 집안일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내 말에, 남편은 내게 정리벽과 강박이 있어 '과한' 청소를 매일 하려했다는 신박한 주장을 펼쳤었다. 청소에 대한 강박이라. 적당한 결벽증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건 내게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작정하고' 청소를 하고 싶었고, 그 와중에도 강박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곤 싶진 않았다. 거 참. 정말 애매했다. 아이가 지낼만큼 깨끗하지만 과하지는 않은 청결 상태란 대체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적~당하게'. 그런 '적당한 집'이 어떤 상태일지를 내내 고민하며 청소를 했다. 


그리고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냉장고 정리까지 마쳤다. 냉장고의 서랍형 채소칸에 자리잡고 있던 과일과 채소들을 굳이 꺼내,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겼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 딱 보이는 곳에, 가장 신선해 보이는 아이들을 골라 두고, 유통기한이 넉넉한 유제품도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뒀다. 그냥, 그렇게 해 두고 싶었다. 하루종일 난리를 치다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진 않았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가사조사관에게 보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과하게 더럽지도, 과하게 청결하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로 집을 유지하며, 아이가 먹을 신선한 식재료들을 구비해두고 정성으로 식사를 차려주며, 학습지를 시키지만 과하지 않은 적당한 수준의 교육열을 가지고, 평범하고 다정하고 온화하며 아이를 신경쓰는 양육자.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는 '이상적인 엄마'에 가까운 모습을, 내가 흉내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가 그런 존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하루만큼은 그런 존재로 보이고 싶어하는 이상한 마음.


청소에 앞서 고민했던 것도 있었다. 사실 이 고민이 굉장히 압도적이어서 며칠 동안 머리를 굴렸다. 

'아이에게, 가사조사관을 누구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솔직한 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말. 잘 알고는 있었지만 아이에게 대놓고 "엄마집 아빠집 중에 어느 집이 너를 키우기 좋은 환경인지 보러 오신 분"이라고 가사조사관을 소개하기는 망설여졌다. '이혼'이라는 단어도 인식하지 못한 아이에게,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럴 듯한 거짓말을 짜내야 했다. 얼마 전 학교에서 아동학대에 대해 배웠다는 아이의 말이 문득 머리를 스쳤고, 그걸 엮어 '선생님'으로 가사조사관을 소개하면 거부감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 잔머리를 굴렸다. 

"요즘 학대받는 아이들이 많대. 너도 학교에서 배웠지? 그래서 나라에서, 미래를 이끌어갈 귀한 어린이들이 지내는 가정환경을 살펴보라고 선생님을 보내주신대."

아이는 별 의심없이 내 거짓말을 받아들였다. 

"친구들 다 받는거야?"

"아니, 엄마가 신청했어. 혹시나 엄마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우리집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걸 잘 아는 분이 와서 니가 지내는 환경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더라고."

일정을 조율하는 가사조사관과의 전화통화에서도 이 부분을 미리 설명했었다. 아이에게 가사조사관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했고, 따라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당신에게 사용할 것인데 양해를 바란다고. 다행히 가사조사관은 잘 수긍했고 이해해 주셨다. 

.... 결국 아이에게 대놓고 거짓말을 한 엄마였다. '남'과 짜고, 내 아이를 속인 상황. '어쩔 수 없잖아' 생각은 하면서도, 아이에게 죄책감이 드는 것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 






가사조사관이 약속한 시간은 오전 11시. 10시 58분에 정확하게 벨이 울렸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너무' 정확한 시각에 맞춰 오시니, 새삼 긴장이 됐었다. 

'1시간 동안 무엇을 하는 걸까?'

'아이에게 이상한 걸 질문하면 어떡하지?'

인터넷을 찾아봐도 가정방문시 하는 일들에 대한 '뚜렷한' 소개가 없었고 두루뭉술하게 '양육환경을 조사한다'는 설명뿐이었기에 더 걱정이 됐었다. 결론적으로, 인생 대부분 문제가 그러하듯 이런 '앞선' 걱정은 전부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아이를 앞에 앉힌 가사조사관님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 물어보셨다. 학교 가고 학원 가고, 하는 일은 뻔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은 "집에 있을 때는 보통 뭘하니?"였다. 줄넘기를 한다고 하면 '한 번 보여줄래' 하셨고, 아이는 신이 나서 요즘 연습하고 있는 1.5중뛰기(?) 기술을 선보였다. 피아노도 친다고 하면 '한 번 보여줄래' 하셨고, 아이는 또 잔뜩 신이 나서 외우고 있는 몇 곡을 선보였다. 딱딱한 인상으로 가사조사관을 생각했던 내 이미지도 완전히 바뀌었다. 조사관님은... 지금 생각해봐도... '리액션의 여왕'이셨다. 

"와- 우와- 대단하다!!" 이어지는 조사관의 칭찬에 아이는 잔뜩 신이 났고, 조사관의 손을 덥석 잡고 이방 저방으로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완성 그림을 넣어두는 액자를 보여주고, 이방 저방에 쌓여있는 클레이 작품들을 보여주고, 최근에 산 블럭으로 집짓기도 보여주며 아주 신이 나 있었다. 옆에서 계속 지켜보며 처음엔 함께 웃다가 점점 의아해져갔다. 

'원래 이런 건가? 이래도 되는 건가?'

마치 아이와 놀아주러 오신 분처럼 즐겁게 웃으시며 아이에게 반응을 해 주셨고, '이 분 원래 어린이를 가르치는 그런 분인가?'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이를 잘 다루셨었다. 굳이 상황을 옮기자면, 내 집에서 나만 홀로 따돌려지는 그런 느낌? 이런 표현을 쓸 만큼 1시간은 금방 흘렀다. 


'아이와 매우 잘 놀아준다'는 점 말고도, 일반적인 손님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그 어떤 음식도 손대지 않는다는 것. 그래도 집에 손님이 오는데 맨입에 맞이하기는 불편했고, 음료수와 커피, 물 등을 권했지만 "괜찮아요, 안주셔도 됩니다"하는 대답을 들었었다. 그럼에도 저렇게 리액션을 하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을 컵에 따라 바로 앞에 드렸지만, 정말 입도 대지 않았다. 썰어둔 과일도, 담아둔 과자도 아예 먹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느낌이었다. 시국이 이래서 그런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아무튼 마스크를 절대로 잠시도 내리지 않았다. 

두번째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 아이와 잘 놀고 떠나실 무렵이 다가오자 "너가 어떤 곳에서 지내는지, 선생님이 사진을 좀 찍어가도 될까?"하고 아이에게 물으셨고, 내게도 따로 물어봐 주셨었다. 그리곤 거실, 부엌, 각 방, 욕실 사진을 정면에서 한컷한컷 찍으셨다. 


그리고 집을 나서는 길. 가사조사관은 망설이는 듯 하다가 한마디를 작게 덧붙였다. 

"이 아이는 정말, 사랑 많이 받고 지내는 티가 나요."

직업 혹은 상황의 특성상, 가사조사관이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경우는 정말 없었다. 귀로 흘러들어오는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가사조사관과 눈을 마주치게 됐었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알고 싶었던 걸까. 어쨌거나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혼자 오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조사 내내 아이 걱정을 하는 걸 지켜봐온 상황이었기에,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렸고 나는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며 이상하게 배웅을 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위로를 하고 싶어 건넨 말이었을까, 진심으로 그저 생각나는 바를 말한 것일까. 어떤 의도였든, 그 말은 엄청나게 위로가 됐었다. 이런 상황을 벌인 엄마이지만, 때로는 화도 내고, 때로는 폭발도 해버리지만.. 그럼에도 '사랑 받은 티'가 난다니. 그럼 나, 꽤, 잘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 말은 위로로 다가왔었다. 내 아이가, 앞으로도 그런 티를 마구마구 내면서 자라기를 바라게 됐다. 


가정방문까지 4차례의 가사조사가 끝났다.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해서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봤었다. 가사조사관의 보고서를 본 판사의 결정에 따른다고,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 확실한 건? 가사조사를 끝으로 '판결'이 내려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가능성 1) 변론기일. 변호사들끼리 몇 차례 만나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그런 것. 

가능성 2) 가사조정 단계에 돌입. 이 역시 3~4차례 정도 진행되는데 일반적으로 이혼에 '합의'한 다음 과정으로 진행된다는 설명을 해 주셨다. 위자료, 양육비 등 서류에 남겨야 할 '숫자'와 관련된 것들을 '조정'하는 과정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조사는 말 그대로 '조사'일 뿐, 세부항목을 '조정'하는 건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가능성 3) 부부상담. 한쪽은 이혼을 강력히 원하고, 다른 한쪽은 이혼을 강력히 원하지 않을 때 상담을 판사가 '명령'하는 경우가 있다고. 보통 8~10차례 정도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대체 언제쯤 판결이 날까요?"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물어보면서도 대답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천천히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라는 답변. 역시나, 그랬다. 

1년의 육아휴직도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다. 육아휴직 중에 모든 과정이 끝나면 좋겠다고 바랐던 건 역시 너무 큰 목표였던 것 같다. 1년 전엔 '빨리 끝나라!!'하고 빌고 있었지만, 이젠 그 마음도 내려놓게 된 것 같다. 그저 살다보면, 내게 주어진 일을 쳐내며 지내다보면, 어떻게든 결론이 나겠지. 그렇게 생각해야 버틸 수 있는 것이 이혼소송인 것 같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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