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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Sep 22. 2021

(24)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부상담'을 명령 받았다

가정방문을 마쳤던 건 7월 말. 8월 중순이 되었을 때 가사조사관이 제출한 '가사조사관보고서'가 PDF 파일로 전송되어져 왔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보낸 것이었다. 보고서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굉장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쓴, 사실들의 나열이었다. 원고는 이렇게 이야기했고 피고는 저렇게 이야기했다,는 사실들. 각 가정의 상황 역시 사진과 함께 객관적으로 서술되고 있었다. 방이 몇 개, 용도는 어떻게 같은 내용이 다였다. '어느 쪽집이 아이에게 좋은 것 같다'는 평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판사에게만 전해지는 가사조사관의 보고서도 있다고 들었으나, 내용을 볼 수는 없었다) 형용사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건조한 문장들.

굳이 눈에 띄는 부분을 꼽자면 '주변 자원(양육보조)' 부문이었다. 내 자리엔 단 한 줄 '육아 돌보미 고용 예정'이 적혀 있었고, 남편의 자리엔 어머님과 시동생들의 의견이 서술되어 있었다.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자라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들. 양육을 보조할 사람도 없는 주제에, 소송을 질러 버린 내 입장이 확실히 와닿는 부분이었다. 다른 항목들을 다 채워넣어도, 도무지 내가 채울 수 없는 넓고 넓은 빈 자리가 구체적인 크기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결국 궁금한 건 하나였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변호사 사무실에선 여전히 알 수 없다고 답을 해왔다. 변호사 사무실과 연락을 할 때마다 묻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까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때마다 듣는 답변도 똑같다.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시라, 지금으로선 확답드리기가 어렵다.

어느 정도 답변을 예상하고 있으면서도, 하릴 없이 또 묻는다.

"와- 아직 한참 남은 거죠?"

요즘은, 이혼을 생각하는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진지하게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합의 못하면 한 2년 예상해야해, 괜찮겠어? 웬만하면 그냥 살아."

그럼에도, 나의 웬만하지 않았던 결혼생활을 거듭 떠올리며 다짐하게 된다.

나는 버티고 버텨서 끝을 보고야 말리라.

잔뜩 불만을 늘어놓고 있지만, '끝을 보고야 말리라' 다짐하게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도 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결혼생활 당시의 모습들. 지금의 평화로운 매일을 둘러보면 결국은 '이혼 결심은 옳았어'하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현재가 훨씬 좋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무탈하게 하루가 흘러가는 실체적 평화.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매일의 가치.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나는 깨달아 버렸고, 기간이 얼마가 걸리든 '절대로' 예전 생활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된다. 별거는 2년째, 소송은 1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가사조사관보고서를 읽고 일주일쯤 흘렀을 때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변론기일이 잡히지 않을까, 예상하던 변호사 사무실의 이야기를 듣고 변론기일을 기다리고 있던 내겐 의외의 결론이었다. 가정법원의 판사님께서 '부부상담'을 '명령'하셨다는 이야기. 일상생활 중에 잘 접하기 어려운 '명령'이라는 단어부터가 귀에 와 닿았다.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소용없다는 얘기같았고, 명령을 하달받은 자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이혼소송 내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이혼이 이렇게 큰 문제인가. 내 인생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변호사부터 가정법원까지 이 많은 법조계 분들이 관여되어 해결해야 할 만큼 중차대한 문제인가 하는 근원적 의문. 판사로부터 '명령'같은 걸 받는 일이 내 인생에 펼쳐지고 있음이 낯설었다. 무엇을 느끼든, 아무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매우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하루라도 빨리 일이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임을, 나는 배우고 있었다.


며칠 후엔 가사조사관님이 전화를 걸어오셨다. 가정법원과 연계된 지역 상담센터들이 있었고, 그곳들 중 두 분의 주소지와 가장 가까운 센터를 연결해드리려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상담시간을 잡기 위한 대략적인 일정을 물어보시곤 전화를 끊으셨고, 며칠 후엔 상담센터 측에서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보통 8~10회 정도 상담이 진행된다는 이야기였고, 일단 부부 각자의 개인 상담을 진행한 후 '함께' 상담을 받으셔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까지의 소송 과정(변론기일, 가사조사 등)이 거의 월 1회 간격으로 진행됐기에, 상담 횟수를 듣고 뜨악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8번의 상담이면 8달이 걸린다는 이야기인가요?"라는 내 질문에 상담사님은 "최대한 일정을 당겨서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하셨고 구체적 일정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셨다. 통화를 하고 일주일 후 평일 오전 9시에 1차 상담 예약을 잡았다.






살면서 한 번쯤, 경제적 여유가 허락된다면 더 많이, 상담이라는 것을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었다. 결혼 초 남편과의 도무지 끝나지 않는 싸움을 이어갈 때엔 '제발' 누구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 "당신 정말 말이 안통해!"라는 말을 서로를 향해 쏘아댈 즈음에도 '객관적인 제3자'의 눈으로 봐도 내가 이상한 것인지를 정말 묻고 싶을 때가 많았었다. 그날들이 흐르고, '포기'라는 단어까지 모두 체득한 후에 뜬금없이 상담을 받게 됐다. 상담 전 가장 뚜렷이 떠오르는 거부감은 딱 하나였다.

'이혼을 하지 말라는, 길고긴 설득을 하는 게 상담이면 어떡하지?'

재판과정 내내 나는,  없는 법이라는 것이 나의 이혼을 말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마치 '건방지게 혼인제도에서 벗어나려 하다니! 너의 인내심을 시험해 주겠어!'하는 느낌. 그렇기에 8~10회라는 어마무시한 횟수로 다가오는 상담은, 이미 결심한 이혼을 번복하려는 법원의 노력쯤으로 느껴졌고, 절대 번복하지 않으리라는 결심만을 다지며 상담날을 기다렸었다.


그래서였을까. "안 좋은 일로 뵙게 되어 안타깝네요" 같은 상담사의 첫인사에도 잔뜩 날을 세우며 대답했었다. "제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결정이라서, 안좋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나는, '웬만한 상황'에선 유들유들하게 굴려 애쓰는 쪽이었으나 이날만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상담사는 그런 내 상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왜인지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말을 이어가게 됐었고, 그런 스스로가 낯설었던 것도 같다.

"저는, 이혼을 번복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이 상담의 목적이 그것이라면 협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경력이 많아 보였던 상담사님은 웃으며 말했다.

"뭔가 오해하고 계세요. 상담은 목적이라는 게 없습니다. 이혼을 막을 생각도 없고 부추길 생각도 없어요. 다만 이혼을 하신다해도 두 분의 삶은 계속 될테고, 그 삶을 살아가시면서 좀 더 편안하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우려는 것뿐이에요. 그 도움이, 아이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거고요."

할 말이 없었다. 이혼 후의 내 삶과 아이의 생활을 돕겠다는 의도라면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날이 선 감정들을 내려놔야 할 때였다. 물을 마시며 숨을 골랐다.


의외로 상담은, 어린시절의 것부터 진행이 됐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죠?"

"그런 어머니(혹은 아버지)를 볼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사실 '부부상담'이었기에 부부의 시작부터를 물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개인 돈을 내고 개인상담을 받으러 온 것도 아닌 주제에, 내 삶 전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라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의외로 상담은, 내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상담사는, 상담까지 명령 받아 이곳에 온 대부분의 부부들은 원가정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 부분부터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 상담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했다.


원가정의 문제라.

다른 이들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경우가 많을까. 정말 모르겠지만, 내 경우엔 상담을 받았던 이 시기가 좀 특이한(?) 상황이긴 했었다. 몇 달간 부모님과 관련된 글들만 써대고 있었고, 책 계약을 맺었고, 생애 첫 '퇴고'라는 과정을 겪는 중에 상담 역시 진행되어 버렸다. 덕분에(?) 상담사의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승-전-결이 갖춰진 이야기를 줄줄 읊어댈 수 있었다.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성향은 저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유전된다는 이야기도 이런저런 책들에서 읽었고, 그 결과 저에게 있는 그 영향을 줄이기 위해 이런 저런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회피 성향은 저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남편과의 결혼 생활 내내 그런 부분들을 고민했고, 어머니의 그런 성향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가 궁금해 외할아버지의 생활에 대해서도 삼촌들에게 물어봤었고....."


말을 하다보면 꽤나 자주 헛갈렸었다. 나 지금 글 속에 써둔 문장을 읊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지금의' 내 생각이 맞나. 아닌데, 어제 퇴고한 문장 같은데. 갈팡질팡, 스스로도 계속 헛갈렸었다. 3번의 퇴고로 글 안의 문장과 흐름들이 거의 암기된 상태였기에, 부모님을 주제로 한 질문에 글 내용을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대답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했었다. 망설임도 없이 줄줄줄 문장을 읊어나가는 나를 상담사는 빤히 쳐다보곤 했고, 두번째 상담 때엔 묻기도 했었다.

"평소 이런 생각을 많이 하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막힘없이, 외운 걸 말하듯 이야기 하시는 거죠?"

이쯤되면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고 글이고 상담을 하며 굳이 밝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말을 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린시절 문제에 대해 막힘도 없이, 심지어 아무런 감정 동요도 없이 줄줄줄 말하는 나같은 사람은 이상하게 보일 것도 같았다.

"취미로 글을 쓰고 있는데, 아버지 돌아가신 후엔 부모님에 관해서 많이 썼어요. 말씀하시는 대부분 문제들은 글로 써 봤고, 그 글을 고치며 지내는 게 요즘 하루 일과라서요.."

그제야 상담사가 웃었다.

"아... 이제 이해가 되네요. 어쩜 저렇게 막힘이 없지, 계속 궁금했었거든요."

하하하. 역시 그녀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복직까지 3주가 남은 시점에 첫 상담을 했고, 상담사의 빼곡한 일정들 사이에서 남는 일정에 내 스케줄을 맞췄다. 주 1~2회, 오전 9시, 평일 상담에 참여했다. 그렇게 내 몫의 4차례 상담을 채우고 복직. 남편 몫의 4차례 상담은 진행 중인 상황. 그 과정까지 마무리되면, 부부 함께 4차례의 상담을 하자고 상담사는 제안해 왔다.

일반적인 경우 8~10회기를 기본으로 진행하지만, 남편과 나의 경우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들이 많기에 시간을 더 들이기를 바란다고 상담사가 말을 했고 굳이 거부하진 않았다. 개인적인 문제들. 그 대부분은 성장과정과 관련된 것이었다. 남편의 원가정이 가진 문제, 나의 원가정이 가진 문제. 그것들을 현 가정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었던 남편과 나. 스스로는 꽤나 많이 고민했던 그 문제들. 대물림과 극복. 내가 가진 문제를 제3자의 시선으로 듣는 것도, 내가 남편의 가정에 대해 품어왔던 생각들을 제3자를 통해 듣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지리멸렬한 횟수이긴 하지만, 소송이라는 과정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수 있는 이 상황은 어쩌면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 39살. 아무래도 내 39살의 大과제는 '대물림에 대한 고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상담 내내 했었다. 혼자 글을 쓰며 고민했던 그 부분을, 글을 마무리 짓자마자 또 전문가와 마주앉아 이야기하게 되다니. 내 삶은 나에게 대물림에 대해 확실히 인지하고 마흔을 맞이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좀 비약하자면, 온 세상이 나에게 "너의 39살 과제는 대물림을 끊어내는 거야"하고 숙제를 내는 기분.

그래서 내 아버지는, 그래서 내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사셨던가. 그 두분의 삶은 내 안에서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 그 영향을 어떻게 거르고 걸러야 할까.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어쩌면 평생 고민해야 할, 끝도 없는 그 질문들을 여전히 마주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어쩌면 이혼이라는 이 과정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좀 더 자주 하게되는 시간인 것도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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