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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Oct 27. 2021

(25) 헛된 걱정과 기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려야만 했다. 1년의 육아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스케줄이었다. 직장생활을 어떻게든 해내려면, 아이의 학교-학원스케줄을 나의 출-퇴근과 맞춰야 했다. 아이와 나의 일과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굴러가도록 만드는 것. 어떻게든 해내야만 하는 과제였다.

 

우선 아침 시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계획을 세웠다. 9시에 간당간당하게 맞춰 가던 아이의 등교스케줄을 45분 앞당기는 것. 그것만 해내면 별 무리는 없어보였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출근을 하면 지각은 면할 수 있으리라. 늦잠같은 변수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출근은 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오후 시간. 하교 후 학원에 가기 전에 비는 1~2시간을 채워야 했다. 보통 집에서 간식을 먹으며 놀던 그 시간은 돌봄교실을 신청해 해결했다.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무사히 승인. 출근을 2주 앞둔 시점부터 아이는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야근이 문제였다. 주1회는 어찌됐건 야근을 해야만 했고, 밥먹는 시간까지 아껴 일을 하면 밤10시에는 집에 돌아오는 게 가능해보였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부터 밤10시까지,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실 분을 찾아야 했다. 예전에도 사용한 적 있었던 '맘시터'라는 앱을 통해 사람을 구했다. 도보 15분 거리에 사시는 분이 마침 구직 중이셨기에, 그분께 전화를 걸어 만나뵙고 싶다고 말하고 약속을 잡았다. 다행히도 좋은 분 같아 보였기에, 주 1회 와주시기를 청했다. 그리고 망설임 끝에 이런저런 사정 설명도 했다. 밤10시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빠에 대해, 혹시나 아이에게 물어볼수도 있으므로 미리 이야기 해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이 아빠와 이혼 소송 중이에요. 혹시나 아이에게 아빠에 대해 물어보실까봐 미리 말씀 드려요."

미국에서 살아본 적 있다던 그분은, 별 일 아니라는 듯 흔쾌히 말씀하셨다.

"밤 10시까지 일하는 사람을 구하신다고 해서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야근까지 해결했을 땐 복직까지 10여 일 정도가 남아있었다. 성심성의껏 맞춰낸 톱니바퀴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고, 이대로라면 정말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았다. '프로 계획러'다운 스스로의 계획성에 감탄하며, 이 모든 것들을 '혼자서도' 잘 해낸 스스로를 칭찬해 마지 않았다. 거 참. 기특하고 독립심 강한 인간이었다.


남은 날들은, '즐기며' 보내자고 생각했다. 운전연수를 핑계 삼아 여기저기를 다니고, 못 만났던 이들을 만나며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게 3일쯤 뒹굴거렸을까. 복직을 일주일쯤 앞둔 밤 12시. 핸드폰이 울렸다. 야심한 시각의 연락은 역시나 불길한 것이었다. 주1회 아이를 봐주시기로 '약속한' 그 분이셨다.

"계단에서 굴러 다리가 골절됐습니다. 한달 정도는 못 움직일 것 같은데 어떡하죠. 다른 분을 구하셔야 할 것 같아요."

문자에는 깁스를 한 다리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정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구나 어디서든 넘어질 수 있고, 다리 정도는 다칠 수 있으니까. 그런 일이 이분께 일어나는 건 분명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쉽게 답을 보낼 수가 없었다.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문자를 읽는 순간부터 울컥 화가 치솟아 올랐다. '화'라고 단순히 표현하기도 어려운, 거대하고 뾰족한 감정. 솟구치는 감정에 스스로도 놀라 '왜 이래?' 할  만큼 날 것의 감정. 습습후후 심호흡을 하지 않았다면, 정신을 차리려 애쓰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밤 12시에 그분께 전화를 걸어 "무책임하게 이러시면 어떡해요!" 소리를 질러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의 감정이었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분노? 감정 자체가 너무 커다래서 완전히 압도당해 버린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스스로에게 끝도 없이 물었다. 

'왜 이래? 사람을 새로 찾아보면 되잖아, 별 일 아니야. 일주일이나 남았잖아.'

'머리로는'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아무리 애를 써도 '감정'이 가라앉질 않았다. 야심한 밤. 홀로 쪼그려 앉아 '왜 이래, 진정해'를 수십 번 외쳤을 때쯤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앞으로도 이런 일, 계획대로 잘 안 풀리는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면 어떡하지?'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분노라는 감정 뒤에 슬그머니 따라나온 두려움이란 녀석은,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생각보다 커다랬고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다. 


'별일 아니야, 해결할 수 있어' 내가 나를 다독이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떡할건데!' 하는 내가 화를 냈다. 

그무렵, 나는 매일같이 외쳐대고 있었다. 

"잘 될거야, 잘 할 수 있어!" 

나를 향한 주문처럼 주변에도 큰소리치고 있던 나날들. 그 뒤엔 "잘 안되면 어떡하지, 모든 게 잘 굴러갈 리가 없잖아" 생각하는 내가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박차고 나온 남편과 시댁이었다. 그들의 도움 없이 '보란 듯이' 아이를 잘 돌보고 싶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나 역시 알지 못했다. 혹시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떤 '예상하지 못할 일'에 대한 두려움이 생각보다 너무 커서 놀랐다. 두려움에 완전히 압도되어 그날 밤을 보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걱정하는 내 안의 나를, 불안에 달달 떠는 나를, 밤새 달래야만 했다. 참 이상했다. 그렇게 잘 될 것 같던 예감들이,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버릴 수가 있는 걸까. 잘 지낼 것이라 외쳐댔던 그 많은 다짐들은 얼마나 약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밖으로 외쳤던 많고 많은 다짐들이, 나 자신까지 속여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불안과 걱정에 압도됐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별일없이 새 도우미를 구했고 복직도 안정적이었다. 복직 후 2~3주 정말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아이와 내 시간표는 탁탁 맞아 굴러갔다. 출근하는 길에 아이를 배웅하고, 퇴근하면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칼퇴근을 위해 아이를 재우고 일을 하곤 했지만, 그 정도는 해 낼 수 있었다. 일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장담했던 그대로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밖으로 나온 '막연한 불안'이라는 녀석이 자꾸만 옆에서 속삭여댔다. 

'복직 초니까 잘 흘러가는 건 아닐까?'

'모든 게 잘 굴러갈리가 없잖아? 나쁜 일 하나쯤 터질 때가 된 것 같은데.'


녀석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톱니바퀴를 굴리던 그 어느날. 이번에는 집안에서 문제(?)가 터졌다. 2년 전 별거 직후에 집에 들여놨던 어항. 그 안에는 구피 10여 마리가 살고 있었다. 아이를 재우고 집안 정리를 한 후 잠들기 직전 무심코 살펴본 어항이, 뭔가 이상했다. 

'수초에 걸려있는 저게 뭐지?'

불을 켜고 어항을 유심히 본 순간, 정말 "에?" 소리를 지를 만큼 놀랐다. 어항 바닥 곳곳에 물고기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둥둥 떠 있는 녀석도 있었다. 아침에 먹이를 줄 때만 해도 별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한나절만에 절반쯤의 물고기가 죽어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대체 왜?'하는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물을 갈아준 건 2주 전. 어항 속 환경이 바뀔 만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기에 도무지 짐작되는 이유가 없었다. 그대로 두고 침대로 가버리기엔 남아있는 물고기들이 걱정됐고, 밤 12시가 넘은 시각 어항 앞에 쪼그려앉아 사체들을 건져냈다. 축 늘어져 뜰채에 걸려 나오는 녀석들. 이 조그만 녀석들이 왜 한 번에 죽어버린 것인지 이유를 알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안했던 것 같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이 녀석들을 죽인 것만 같았고 밤새 검색을 하며 이유를 찾아헤맸지만, 여전히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침. 잠시 눈을 붙였다가 해가 뜨자마자 침대에서 일어나 어항을 살폈다. 남아있던 모든 물고기는, 죽어 있었다.


총 14마리였다. 이제껏 일일이 세어본 적도 없었지만, 움직임이 없는 물고기를 건져내며 하나씩 헤아리니 14마리였다. 하루만에 그 모두가 죽었다. 이런 일, 흔한 걸까.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뭘 잘못한 건지도, 어항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아무 것도 명확하게 보이진 않았다. 뒤늦게 일어난 아이에게 "코로나같은 어떤 병이 어항에 퍼진 것 같아"라는 말로 상황을 설명했다. 


이건, 큰 일일까 아닐까. 물고기들에게 일어난 대 재앙을, 내 삶 안에서 벌어진 큰 일이라 할 수 있을까? 물고기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처음엔 생각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병이 도는데 저 좁은 어항에 어떤 병이 생길지 어떻게 알겠어, 라고 결론 내고 '잊고' 싶었다. 불가능했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생각할수록 자꾸 떠오르는 물고기들의 모습. 그걸 정말,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고, 그 후엔 자꾸 불안해졌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불길'했다. 아이를 보내고 회사에 오는 내내 불길했고, 회사에 도착할 때쯤엔 '조심해야겠어'하며 마음을 다잡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치솟는 불안. 뜬금없는 두려움. 스스로도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자꾸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우습게도, 물고기의 떼죽음이 어떤 징조처럼 느껴졌다. 

'내가 놓쳐버린 일이 뭐가 있지?'

'계획 중에 빠뜨린 게 있었나?'

며칠을 그런 상태로 보냈다. 안절부절. 자꾸만 핸드폰을 확인하고, 잠든 아이의 체온을 여러 번 재어보고. 다행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쫄보처럼 겁에 질린 스스로가 우스울 만큼,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진 않았다. 참... 한심했다. 덜덜 떨고 있는 스스로가.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예상'하고 있는 것일까. 이 정도면 정말, 나쁜 일이 벌어지길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뿌리 깊은 불안이란 녀석은 끝도 없이 소리친다. 

"이렇게 평탄하게 굴러갈 리가 없잖아? 조심해!"

..... 녀석에게 "시끄러워, 꺼져!"를 외치면서도, '역시 그렇지? 조심해야해!'하며 긴장하는 스스로가 보인다. 나약하고 나약한 나의 멘탈은, '혹시' '어쩌면' '설마' 같은 불확실한 단어들 위에서 오늘도 흔들린다. 막연한 두려움에 빠져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 하루를 망쳐 버리는 나. 


"오늘만 살자"

"오늘만 잘 넘어가면 되는 거야"

"오늘 하루 무탈했다니, 행복하구나"


이런 마음으로 살자며 지난 1년간 다짐했었다. 추스리고 추스리며 다잡은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역시나 참 쉽지가 않다. 끝도 없이 불안해하고, 도무지 안정되지 않는 스스로를 한심해하는 날들. '괜찮아!'하는 마음과 '무슨 일이 벌어질 때가 된 것 같은데'하는 마음이 매일같이 싸워댄다. 잘 풀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뭔가 벌어질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도 다 쓸데없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그럼에도 또 휘청인다. 

평정심. 그건 대체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걸까. 

안정감. 그건 대체 어떻게 흡수할 수 있는 걸까.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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