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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Nov 28. 2021

(26) 12번의 상담이 끝났다

세 달이 흘렀다. 가정법원 판사님으로부터 '부부상담 명령'을 받은 것은 8월 중순. 8월 말에 첫 개인상담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4차례 나의 개인 상담이 진행됐고, 이후 5차례 남편의 개인 상담이 진행됐고, 3차례의 부부상담이 진행됐다. 11월 중순에 이 모든 과정이 끝났으니, 대략 세 달여가 상담 과정에 소요된 것 같다. 가정법원에서 허락하는(?) 최대 상담횟수는 12회까지라고 했고, 상담사는 어떻게든 그 횟수 안에서 둘의 문제들을 풀어내려 애쓰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요?"하며 열려있는 질문을 받았고, "글쎄요"하며 요즘 지내는 일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시간들을 보냈었다. 원래의 일정으로는 4차례 나의 상담, 4차례 남편의 상담, 4차례 부부 상담으로 진행되었어야 했었지만, 부부상담으로 잡혔던 1회를 남편의 개인 상담으로 돌릴 만큼 남편의 경우에는 상담이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다. 


부부상담 1회를 남편의 개인상담으로 진행해도 되겠냐는 상담사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어우~~ 당연하죠. 됩니다. 부부상담 전부 남편 개인상담으로 진행하셔도 됩니다"하며 격한 반응을 보였었다. 마주 앉는 횟수를 한 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또 울어버리는 나를 마주하는 횟수를 줄일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았다. 어쨌거나 그 이후 3차례 부부상담을 받았고, 남편은 법원의 명령과는 별개로 개인상담을 추가로 신청하고 자기 돈을 냈다는 이야기 또한 들을 수 있었다. 개인상담을 좀 더 받는 게 좋겠다고 상담사님이 권했고, 남편이 권유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 


두 가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솔직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상담 받을 만큼 돈이 있구나! 다행이다'하는 것이었다. 양육비라는 것을 받고 있는 입장인 나는, 내내 남편의 경제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복직을 하고 월급을 받으면서 나와 아이의 생활은 온전히 굴러갔지만, 저쪽에는 양육비를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양육비를 보내는 남편의 경제 사정이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 생활이 온전한 만큼, 저쪽의 생활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진심으로 품고 있었기에, 상담에 돈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두 번째 생각은, 정말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남편과 대화할 때 느꼈던 답답함. 내가 인지하고 있는 현실과 상대가 믿고 있는 현실의 극단적 차이가, 계속 대화를 가로막곤 했었다. 이 현실을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내가 이상한가. 나 역시 이상한 인간이지만, 저쪽 역시 이상한 인간이라고 늘 생각해왔었기에.... 그 부분을 남편이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이 무렵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어떤 식으로든 그의 마음과 생활이 '안정'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이 시간을 통해서 그의 마음이 좀 더 편해지기를, 이혼이라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를, 버티기보다는 이혼 이후를 바라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3차례의 부부상담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왜 이혼을 선택했나"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답답함, 원망, 분노, 슬픔, 자괴감 등등을 '언어'로 풀어내야 했고, 남편도 듣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한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결혼생활이 이어질수록, 저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 같아요. 결혼 초엔 남편도 미워했다가 시부모님도 미워했다가 했던 것 같은데, 가장 오랜 시간 저를 괴롭힌 건 자괴감이었습니다. 왜 나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 왜 나는 이 사람과 결혼을 했을까. 왜 이 상황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참고만 있을까. 멍청하고 한심한 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너무 커서 그게 참 힘들었죠."


"별거를 시작하고 2년 여가 흐르면서, 가장 큰 변화도 그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의 제가 좋아요. 자존감이라는 말을 이렇게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상황을 벗어나려 애썼고 노력했고 여기까지 버텨준 제가,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잘했다 수고했다, 잘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지금이 좋고, 저를 아끼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자괴감과 분노, 극단의 감정이 사라진 상태의 평온. 그리고 가끔 느껴지는 '세상에 혼자 서 있는 듯한' 막막함과 두려움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적당히 횟수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행이 될수록 솔직한 이야기를 상담사에게 전하려 애를 쓰게 됐던 것 같다. 옆 자리에 앉아있는 남편은 거의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냈었다. 


사실, 이것 역시 돌이켜보면 꽤나 놀라운 변화였다. 처음 가사조사관실에서 부부가 함께 상담을 받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좌절하고 절망하고 말 그대로 '멘붕' 상태에 빠졌었다. 며칠을 괴로워했고, 2~3시간의 조사 내내 눈물을 쏟았고, 그 시간이 너무 싫어서 후유증도 꽤나 오래 느껴야 했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나 왜 이렇게 멀쩡하지?' 싶을 만큼 놀라운 차이. 


몇 달만에 내 마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3번의 부부상담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그저 날짜를 잡고 회사 일정을 조정하고 시간에 맞춰 이동해 자리에 앉았었다. 남편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고, 별로 의식도 하지 않았었다. 그게 스스로가 느낀 가장 큰 차이였던 것 같다. 나는 어느새, 두려움도 미움도 거부감도 크게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상담사가 해준 이야기들이, 이런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을 마주하는 게 두렵고 너무 싫고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치기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상담사님께 털어놓은 그때, 상담사님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셨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잘 하고, 많이 생각하셨고, 다 결론낸 듯 말씀하시면서 뭐가 두려운거죠?"


글쎄, 이건 나 역시 딱히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남편의 불같은 화와 공격적인 말과 그 후의 상처가 두려운 것 같다고 우물쭈물대며 이야기를 했지만, 스스로도 의아했었다. 최근에 남편이 내 앞에서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그랬기에, 그저 트라우마가 남은 걸까 하는 정도의 짐작만 하고 있던 상황. 통화를 하게 될 때마다 미친년처럼 소리를 지르는 건 오히려 내쪽이었다. 


상담사님은 그 부분을 주의 깊게 봐야한다고 이야기 해 주셨다. 남편 앞에서 화를 내지 못했던 지난 날, 그 시절 내가 느낀 분노와 무력감. 그것들을 나는 꾹꾹 눌러담은 상태로 처리했고, 그 상태로 방치하고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남편이라는 존재는 당연히 그 감정들을 자극했고, 나는 그때마다 파르르 치를 떨며 분노하고 소리를 질러대곤 했었다. 지금의 나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것 자체가... '귀찮았다'. 지금 잘 살고 있는데 뭐,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을거야, 하는 다짐들로 생각을 끊어내곤 했었던 나. 돌아보기 싫었던 것 같다.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기에, 섣부른 다짐을 하며 서둘러 결론을 내버리곤 했었다. 그 감정들은, 꽁꽁 굳어진 채 내 속 어딘가에 쌓여있는 것일까. 


상담사님은 말씀해주셨다. 

"화를 내게 되는, 평정심을 잃고 화를 내는 스스로가 두려우신 건 아닐까요?"

"........."

"화를 내도 돼요. 어떻게 사람이 늘 한결같이 평정심만 갖고 살아요. 화를 내고 이성을 잃는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걸 모두 남편분 탓이라 여기시는 것 같아요."

"...................."


상담과정 내내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이유없는 거부감, 몸서리치게 싫었던 그 감정이, 사실은 내 내면의 쌓이고 쌓인 감정의 폭발이고, 그걸 터뜨리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는 이야기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음껏 미워하세요. 그리고 터뜨리고. 그게 지나가야 진짜 평온한 상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상담을 가기 전엔 늘 이 말을 떠올렸고, '에라,  화나면 욕이라도 해버리지 뭐'하는 마음으로 상담에 참여했었다. 예전과 똑같은 상황이었으나, 나의 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다음부터는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거부감이 줄어있었다. '거슬리기만 해봐라. 나도 터져버린다'....? 이런 상태랄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상대가 아니라 나라는 사실. 이런 식의 인정(?)이, 우습게도 꽤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줬었다. 


희안했던 또 하나의 변화는 남편이었다. 

내가 '터져버릴테다, 난 몰라, 다 죽지 뭐'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걸 눈치라도 챈 것인지, 남편은 상담 내내 불편함을 호소했다. 가사조사 당시, 내가 "한 공간에 함께 머무는 게 너무 힘듭니다"하고 말을 하면 "그래도 얼굴을 오래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하고 말을 했던 남편이었다. 


그랬던 그가, 두 번째 부부상담에서 "너무 오기가 싫어서 잠을 설쳤고, 어디 가서 차로 벽이라도 들이받을까 고민까지 했습니다"하고 말을 하고 있었다. 상담사는 왜 그렇게 오기가 힘들었냐 물었고, 남편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너무 미안하고. 지나온 시간들이 후회도 되고"하는 말을 했었다. 

남편의 이 말을 듣고,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면 내가 너무 '변태'같은 것일까. 그의 현실인식이 이제야 시작되는 것 같다,고 나는 느꼈다. 


늘 상대를 탓하는 이는 본인의 잘못을 보지 못하는 법. 지나온 결혼생활에 대해 아무리 말을 해도 "앞으로 변하면 되잖아"하는 말만 했던 그가,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는 느낌을 이날 처음 받았던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상담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출된 것은 아니었을까. 내 맘대로 그렇게 생각을 해 버리곤, 이 상담과정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믿게 됐었다. 




상담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가 쌓인 후(이런 걸 라포형성이라고 하는거군, 하고 깨달았었다)에는 웬만하면 그의 해석과 이해와 분석에 토를 달지 않게 됐었다. 아, 그렇군요, 아, 그랬을 수도 있네요, 하는 것이 대부분의 답변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건 아닌데요"하고 정색하는 부분은 딱 하나였다. 바로 '미래'에 대한 언급을 하는 부분. 


상담사는 이 모든 과정을 보낸 후에 재결합하는 부부들도 있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부부상담 때마다 했었는데, 그 부분이 딱 거슬렸었다. 남편에게 희망(?) 같은 걸 주는 느낌이랄까. 말하는 상담사는 별 생각이 없었을 수 있겠으나, 나는 재결합, 화해, 하나의 가정,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정색하며 말을 끊곤 했었다. 

"아뇨,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은 안 바뀌고. 저는 같은 시간을 반복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재결합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이다지도 확실하게 말하는 경우가 내 삶에 있었던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와는 다른, 의외의 내 모습에 나 역시도 놀랐다. 나는 조금은 '조심스런' 화법을 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왔었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단언컨대' '확실히' 이런 류의 확신을 뿜어대는 종류의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부부상담에서는 꾸준히 말을 했던 것 같다. 

"단언컨대 확실히, 재결합같은 건 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이 좋은데, 그런 위험한 시도를 하고픈 생각은 1도 없습니다."

"제가 힘들고 외롭다한들 그건 내 문제고, 그것이 남편을 받아들일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상담에서도 "이렇게 확고히 이혼을 원하시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같은 질문을 받았고, 나는 뜬금없이도 '행복추구권'을 대답했었다.

"행복추구권이라는 게 법에 보장되어 있잖아요. 저는 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고, 안행복했던 시간을 지금부터라도 바꾸고 싶습니다. 행복은 너무 큰 개념일지도 모르겠고, 그저 평화롭고 평온한 일상을 살고 싶을 뿐이에요.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살면 되고, 저는 제 스타일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함께 해서는 그런 걸 누리는 게 불가능하다, 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상담사는 남편에게도 물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이혼에 동의하시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저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저 싫다는 사람 잡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렇지만 아이가 있잖아요. 이혼가정에서 자라는 아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자라면서 점점 더 아이는 외로워질거예요. 이 사람이 힘들어하는 부분들, 뭔지 충분히 이해했으니 제가 고쳐나가면 되는 거고. 굳이 가정을 깨야만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가정을 '쉽게 포기했다'는 이야기만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소송 1년. 3번의 가사조사와 12번의 상담을 거쳤음에도, 접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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