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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Apr 24. 2022

(30) 조정이 결렬됐다2

글이 점점 길어집니다. 정말 깁니다;;;

"엄마, 모든 걸 뚫을 수 있는 창도 있고 모든 걸 막을 수 있는 방패도 있대. 그럼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거야?"


2차 조정기일을 앞두고 만난 남편. 남편과 2시간 넘게 대화(?)를 할 때, 며칠 전 아이가 내게 던졌던 질문이 문득 떠올랐었다. 모든 걸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걸 막을 수 있는 방패.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나는 그때 아이에게 "누구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야. 그만큼 창도 강하고 방패도 강하다는 말인데, 그렇게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을 모순(盾)이라고 해"하고 말했던가. 설명충에 빙의된 엄마의 말에 아이는 별 반응이 없었다. 남편과 대화라는 이름으로 뱅뱅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즈음에는, 나 역시 궁금해지고 있었다. 모든 걸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걸 막을 수 있는 방패,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온힘으로 부딪히게 만들면 창이든 방패든 둘 중 하나는 부서지지 않을까? .... 그리고 이 대화 역시, 둘 중 하나가 부셔져야 끝이 나지 않을까. 


남편은 말했다.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줄 수 있게 기회를 줘."

나는 방패 뒤로 몸을 숨겼다.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저주하지 않으려고 온 힘을 쏟고 있어.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더이상은 바라지 마."


"그 상처들 내가 돌봐주고 싶어."

"이혼에 합의하는 게 당신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원하는 건 뭐든지 다할게. 이혼만은 하지 말자."

"소송을 취하해달라는 말이야? 그럴 마음은 없어."


그는 이혼을 강력히 거부했다. 그리고 꾸준히 '기회'를 달라고 했다. 어떤 기회를 말하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네~ 그럼 기회를 드리죠"하고 대답을 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기회니 시간이니 그런 애매모호한 단어를 소송 중인 상대에게 들이밀어봤자,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것일까. 도돌이표같은 대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문득 귀에 걸린 것은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겠다'는 그의 말이었다. 원하는 걸 전부 다?


"내가 원하는 건 이혼이야. 다음 조정 때 이혼 의사가 있다고 말해줘. 원하는 건 다 들어준다며?"

"그건 안돼. 이혼만은 들어줄 수가 없어."


모든 걸 다 들어준다던 남편은, 내 제안을 칼같이 거절했다. 거 참,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만을 말할 뿐, 양쪽 모두 한걸음도 물러설 생각은 없어보였다. 오전 반차를 낸 상황. 오후 출근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대화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송 취하는 못해. 그것 말고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해봐."

한 번 들어나보자 싶었다. 소송 취하가 아닌 다른 무엇, 그가 원하는 기회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그럼 우리 하루라도 데이트 하자. 노래방도 가고.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많아."

"................."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신기하게도 얼굴 표정이 먼저 굳어버림을 이 순간 느꼈던 것 같다. 도무지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데이트, 노래방..... 그 단어들이 귀로 흘러들어왔을 땐, 정신줄이 끊어지는 것 같은 아득함을 느꼈다. 이런 말을 그대로 옮기기엔 망설여지지만.......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싶은 마음이, 솔직히 들었다. 이 상황에 노래방? 그에겐 소송이라는 이 상황이 전혀 무게감이 없는 것일까. 소송을 제기한 원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것은, 낭만일까 객기일까. 대화 내내 울다가 소리지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왜, 라는 것을 궁금해해봤자 나 따위가 이해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세상엔 그런 영역이 있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러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처럼, 나 역시 상대가 '대체 왜 저러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때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는 건 무의미했다. 그저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남편은 소송 중인 나에게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그런 일이 벌어졌다. 더이상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 한 줄 남은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변호사님을 불렀다. 

 "변호사님, 얘기 다 한 거 같습니다."

2시간을 훌쩍 넘긴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5일 후, 2차 조정에 참석했다. '무려' 판사까지 참석하는 과정. 법적 절차가 이제야 개시되는 느낌도 가졌던 것 같다. 법원에서 고용된, 50~60대로 보이는 남녀 조정위원 각 1명(그러니까 총 2명), 남편의 변호사와 남편, 내 변호사와 나, 판사까지. 총 7명의 어른이 '조정실'에 모였다. 코로나 상황이었으므로 각자의 자리에는 투명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3평 남짓한 공간에 테이블이 직사각형(?)을 그리며 길게 자리잡고 있었다. 상석이라 부를 수 있는 가장 윗자리는 당연히 판사님의 것이었다. 판사석 왼쪽으로 원고측, 그러니까 나와 변호사님이 앉았고, 판사석 오른쪽으로 조정위원 2분이 앉으셨고, 판사석 맞은편 자리에 피고측인 남편과 남편의 변호사가 자리했다.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했어야 했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변호사님은 1차 조정의 분위기를 내게 전달해 주셨었는데, 그건 상당히 '호의적'인 것이었다. 1차 조정 때에 조정위원들은 남편에게 이혼을 권했다고 하셨다. 아내의 고통이 이해가 된다, 지금 이혼을 받아들이는 게 아내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수도 있다, 버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등등. 변호사님은 "피고측에 상당히 불리한 분위기였다"고 1차 조정 분위기를 전해주셨었고, 나는 그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 '속단'하고 자리에 앉았다. 


예상과 달랐던 시작은, 판사의 발언들이었다. 우선 판사는 내게 1차 조정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화요일은 참석이 불가능해서 기일 변경을 요청했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기일을 변경해봤자 요일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회사 상황 때문이라면 불참을 해도 된다고 말을 하길래 그런 줄 알았습니다"하고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하나도 먹혀 들지는 않는 것 같았다. 

"양측이 이혼에 대해 의사가 다른 경우에는 기일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하기 때문에 다음 기일에는 꼭 참석을 해주시길 바랍니다"하고 판사는 이야기했다. 좀 억울했지만, 변호사 사무실의 말을 의심도 없이 곧이곧대로 들은 나한테도 문제는 있어 보였다. "네 알겠습니다"하고 짤막하게 답변을 했었다. 


그리고 판사님이 말씀하셨다. 

"두 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수만 건의 이혼사건 중에도 두 분 같은 경우가 굉장히 드뭅니다. 면접교섭(아이와 아빠가 만나는 것)도 잘 이뤄지고 있고 양육비 지급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요. 모범적이라는 단어를 써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모범적이에요.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두 분이 잘 하고 계세요. 그래서 더 판결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원고의 뜻을 받아들여 '이혼하세요' 하면 피고가 항소를 할 테고, 원고의 뜻을 거절해 '이혼하지 마세요'하고 판견을 내도 항소가 이어지겠죠. 어떤 결론을 내도 항소가 이어질 거면, 두 분이 이 자리에서 만족할 만한 조정을 이뤄내시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 같아 보입니다."


이 말을 끝으로 판사님은 퇴장하셨고, 조정위원 둘이서 전체 진행을 이끌어 갔다. 조정이 성사되어야 조정위원들은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조정안을 도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판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남편은 '이혼 판결이 나면 항소하겠다'하는 말을 여러 번 하고 있었고, 나 역시 '이혼 불가 판결이 나면 항소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위자료니 양육비니, 이제는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이혼 판결. 제발 이 관계를 끝내주기를. 그것만을 바라게 됐다. 


조정은 내 예상과는 엄청나게 달랐다. 1차 조정 때 남편을 '몰아세웠다'던 조정위원들은, 작정한 듯 이번엔 나를 몰아세웠다. 아무리 설득해도 남편이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자 타겟을 바꾼 것 같았다. 


"이걸 이기고 지는 '싸움'이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두 분 마음도 그러시겠지만, 저희 역시 아이의 미래만을 걱정합니다. 그러다보니 '원만하게' 조정 단계에서 합의하시기를 추천드려요. 이 단계를 넘어가 판결이 나고, 그래서 두 분 중 한분이 항소를 하게 되고, 그러면 정말 온갖 추잡한 이야기들을 다 하게 되거든요. 그 과정을 거치면 서로를 미워하게 될 수밖에 없고, 그 감정은 오롯이 아이에게로 전달됩니다. 그러니까 조정이 성사될 수 있도록 두분이 협조하셔야 해요."


"남편분은 도무지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원고측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시는 것도 제안하고 싶어요. 둘 중 누구든 항소를 하고 대법원에 가면 지금 상황에서 2년쯤은 더 걸린다고 예상하셔야 해요. 너무 힘드시잖아요. 그러니까,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지를 생각해보세요."


"제출해주신 서류들을 봤을 때, 원고가 충분히 힘들었다는 걸 저희도 느꼈어요. 하지만 힘들었던 그 시간들 안에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는 없습니다. 남편분이 법적으로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으신거죠. 소송이 길어지는 건, 원고한테도 너무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최단기에 끝낼 수 있게 원고도 협조를 하셔야 해요."


참....... 적극적인 분들이었다. 결혼 당시의 힘들었던 이야기나 별거 후 공황이 왔던 이야기 등을 질질 울면서 말했지만 그들은 "그게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은 아니잖아요. 마음은 아프지만 여긴 법원이니까"하고 말씀하셨다. 그놈의 도박, 외도, 폭행. 그 세 가지가 없는 결혼생활은 종지부를 쉽게 찍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고, 이혼만을 주장하는 나는 '아이 미래를 생각하지도 않는 엄마'로 취급받고 있었다. 참.. 끔찍한 논리였다. 아무리 힘들었다한들, 도박 외도 폭행이 없었기에 이혼 판결을 쉽게 내릴 수 없고, 길어질수록 아이는 상처를 받을테니 조정에 원만하게 합의하라는 논리. 


길고 긴 설명 끝에 그들이 내게 내민 조정안은 '1년'이었다. 지금 받고 있는 양육비에서 매달 50만원을 더 받고 1년을 지내봐라. 별거 상태는 유지하고, 남편이 그 어떤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이야기' 해주겠다. 그동안 아이는 더 자랄 거다. 그리고 1년 후에도, 여전히 이혼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다시 소송을 재기해라. 첫 소송에서 조정안을 받아들여 1년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두 번째 소송을 시작하면 다음 소송에서는 원고에게 유리하게 '이혼'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1년만 더 보낸다고 생각해라. 어차피 상대가 항소해서 대법원에 가면 2년은 훌쩍 간다. 그러니 1년만 더 참아봐라. 그쯤 지나면 남편이 협의이혼을 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 


대법원, 항소 등의 단어가 꽤나 현실감 있게 다가왔고, 그들이 내미는 제안들이 설득력 있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조정이라는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대충'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들은 정말, 지독하고 질기게 꾸준히 말을 이어갔고,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숨이 막혀왔다. 덥석, 그냥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픈 마음이 들었던 건 '도망가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내가 접어줘야 다들 편해지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설득하는데 내가 '과한'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이게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라면 받아들이는 게 맞지 않을까. '고집쟁이' 남편과는 달리 '설득이 통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들었던 것 같다. 내가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자 그들은 조정실에서 나가 생각을 좀 해보라고 했다. 남편측에도 이 내용을 전달할테니, 원고 피고 둘 모두가 괜찮다면 조정안을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탁.'

등 뒤로 닫히는 조정실 문 앞에서, 몇 걸음 걷지못하고 옆에 있는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어떤 단어로 설명해야 가장 적확할까. 그냥... 너무 힘이 들었다. 그냥... 너무 지쳤다. 이게 이렇게까지 힘들 일인가. 낯 모르는 이들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다 까발리는 것도 싫었고, '나약하다', '아이를 생각해라' 등의 평을 듣고 있는 것에도 진저리가 처졌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나름은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다 생각하건만, 어쩌다 저런 이들에게 충고를 듣고, 월 50만원보다 내 마음 편한 게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가 '현실감 없는' 사람으로 평가 받고. 그들의 말이 너무 아팠고, 이 상황에 진저리가 났다. 


"니 아버지 영정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냐?"


이 말이 떠올랐던 건 왜였을까. 그냥 털썩 의자에 앉아있을 때 다시금 그 말이 떠올랐었다. 부끄러움. 그제야 그 순간의 내 모습이 조금은 객관화되어 보였다. 나는 또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대충' 조정안에 사인하고 얼른 끝내버리고 싶다, 다음은 모르겠고 일단 여기서 나가고 싶다, 생각하고 있던 나. 

나는 또, 조정을 위해 애쓰는 남들을 생각하느라 내 삶을 마구 내던지고 있었다. 


다시 들어간 조정실. 조정위원들의 표정이 아까보다 한껏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남편측이 '내 제안'을 받아들여 1년간 양육비를 더 주기로 했으니 조정안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다. 그들의 표정을 마주하고 욱, 하고 화가 치밀었다. 판사에게 전달될 나란 사람의 인상. 그 부분까지 생각하느라 차분하게 말하려 애썼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조정이 성사되는 게 그렇게 기쁘신가요? 왜요? 돈을 벌게 되어서요? 그 돈이, 정말 그렇게나 귀한 건가요. 

월 50만원이나 더 받게 되었다는데 저는 왜 기쁘지 않죠?


고민 끝에 말을 해버렸다. 

"저, 생각이 바꼈습니다. 조정 결렬 할게요. 더이상의 조정은 불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설득이 이어졌지만, 나 역시 화를 내며 받아쳤던 것 같다. 

"조정안을 그렇게나 강요하시면 안되죠. 제가 왜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데요? 그 제안을 안 받아들이면 현실감 없는 사람, 애 생각 안하는 나쁜 엄마, 그렇게 만들어놓고 계속 말씀을 하셨잖아요. 죄송한데, 저 이 조정에 더이상 참석할 마음이 없습니다. 이혼 판결 안나오면 항소할게요. 그냥 끝까지 소송할게요. 조정을 그렇게 몰아붙이시면 안되는 거잖아요. 말씀 그렇게 막하시는거 아니에요!"


이토록 격렬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 몇 년간을 돌아봐도 좀처럼 없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별 후회는 남지 않았다. 한달 여가 지난 지금 돌아봐도, 그때 화를 낸 건 정말 잘한 일 같다. 그들은 너무 거만했고, 함부로 단정지었고, 맘대로 말을 뱉었다. 무슨 자격으로?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나를 그렇게 함부로 대했던 걸까. 법원에 고용된 입장이 되면, 상대가 하잖아보이는 걸까? 여러 번 곱씹어 돌아봐도, 정말 그 조정위원들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한참 나이가 많은 상대에게, 나같은 성격의 사람이 왁-하고 달려들만큼. 2년여의 소송과정 중 가장 끔찍한 시간이, 조정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질러버리고 나는, 가방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2시에 시작한 조정이 4시에도 끝나지 않고 있었고, 아이의 하원시각이 다가오고 있어서 마음이 급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조정위원들이 "어디가세요?"하고 묻길래, "애 하원 시각이 다가와서 가보려고요"하고 당당하게 답했다. 그들은 더 당당하게 대꾸했다. 

"엄정한 법정에서, 판사님의 퇴장조치 없이 독단적으로 나가실 수는 없습니다."

정말, 정말, 묻고 싶었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저한테 왜이러시는건데요?' 

내 생활에서 최우선 순위는 아이의 등하교였다. 내 모든 스케줄은 그 시각에 맞춰 움직였고, 조정이 잡혔을 때부터 수차례 몇시에 마치는 지를 변호사 사무실에 물었었다. 4시에 마친다고 했었다. 시각에 맞춰 일상을 살아가는 것조차, 법정이라는 곳과 엮이면 어려워짐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아아, 이혼판결을 받아야 이혼을 할 수 있는 나따위 힘없는 사람은, 절대 권력인 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자포자기의 마음도 들었다. 

왜? 왜? 그냥 편안하게 살아보겠다고, 그거 하나 원해서 이혼 좀 하게 해달라는데 대체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 

법적 절차에 이토록 반발심을 갖게 될 줄은 정말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이혼 소송을 거치며 나는 자연스레 "이따위 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껏 내가 생각해 온 법원은 '정의'를 위한 공간이었다. 내게 있어 정의는 '판결'이었다. 옳고 그름, 시시비비에 대한 판단을 내려주는 곳. 결혼이 파탄에 이르게 된 과정에 내 '잘못'은 적다는 판결을, 법원에서 너무나 듣고 싶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음을, 내 삶을 '바르게' 살아왔음을, 법원 판단을 통해 인정받고 싶었다. 

막상 겪어본 법원은, 옳고 그름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정의는 그저 '결론'이었다. 둘 중 누가 잘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대법원에 항소하게 되면 '골치 아파지고', 위대하신 판사님들이 더 피곤해지므로, 그들의 수고를 덜어야 한다는 사명감만이 그 세계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정의, 옳고그름 같은 건, 가정법원과 상관없는 단어였다. 





그날, 결국 아이의 하원 시각에 맞춰 도착하지 못했다. 학원으로 전화를 해 데리러 간다고 말을 하고,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학원으로 가 아이를 만났다. 그렇게나 아이의 행복을 말하던 법원은, 이 아이의 하원시각조차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학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부터 오한이 들기 시작했고, 무사히 아이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쯤엔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목도 자꾸 잠겼다. 

전기장판을 깔고 한겨울 이불을 꺼내 덮고도 오한이 들었다. 까무룩 잠이 들면, 조정위원들이 떠올랐고, 다시 눈을 떠서 허공을 향해 욕을 하며 밤을 보냈다. 


'바람 필 능력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 밤 내내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했었다. 차라리 바람이라도 펴서, 지금 곁에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진짜 힘들더라", "그 사람들 진짜 나쁘더라"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할 수 있다면, "목이 너무 아픈데 물 한잔만 떠다줄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바람 필 능력도 못 같춘 나는 그저 혼자 밤새 덜덜 떨었고, 새벽녘에는 '아아, 코로나구나'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었다. 같은 팀 내에서 매일 이어졌던 확진 러쉬, 내 차례가 됐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다음날 휘청휘청거리며 병원을 찾아 신속항원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음성이었다. 


조정 이후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건 '지리멸렬함'이었다. 삶이 참 길다는 생각을 많이도 했었다. 내 삶이 한 편의 영화라면 이제쯤은 끝날 때도 된 것 같다는 그런 느낌. 이렇게저렇게 살았고, 이렇게저렇게 버텼고, 버틸 에너지를 다 쓰고 행복하게 죽었습니다, 하는 그런 통속적인 끝이 올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매일 나를 괴롭혔었다. 삶이 그저 이렇게 버티기만 하는 것이라면, 또 힘을 내 버틴다한들, 남편과 계속 엮여서 그 관계를 끝내는 데 또 힘을 쏟고. 겨우 한 고비 넘겨서 또 버틴다 한들, 항소 또 항소가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 그게 너무 버거웠다. 또 힘을 내야해? 무엇을 위해서? 


소송 초기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버티고 버텨서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그 판결을 너무나 간절히 받고 싶었고,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봐봐, 법원에서도 내 편을 들어주잖아. 

조정과정이 유난히 힘들었던 건, 첫째, 법원이 '옳고 그름'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느껴서였고 둘째, 끝이 아직도 멀고 멀고 멀었음을 새삼스레 깨달아버려서 였던 것 같다. 버티고 버텼던 이유들이 무너지는 느낌이랄까. 이 고비를 넘긴다 한들, 또 고비가 올 텐데. 굳이 버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혼이니 판결이니 뭐가 그리 중요할까. 나는 좀 지쳐버렸는데, 그저 좀 쉬고 싶을 뿐인데. 


나이 마흔에 중2병을 앓는 기분이랄까. 쓰기에도 유치하지만, 정말 지금으로도 충분히 할만큼 했다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와, 충분했다. 이제 좀 쉬고 싶다. 조정위원님들, 너무 하셨어요. 남편, 나는 정말 당신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사는 게 참 우습다. 자기 만족과 자기 혐오가 동전의 앞뒷면 같다. 한쪽 면엔 확신에 찬 내가 서 있다. 잘했어, 나 잘 버티고 있어, 충분히 애썼어. 뒷면엔 잔뜩 지친 내가 서 있다. 너무 지친다, 그냥 쉬고 싶다, 고작 이정도 힘밖에 없으니 이제 그냥 쉬자, 여기까지 온 것도 잘 한 거야. 


아마 앞으로도 나는 동전 앞뒷면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버텨갈 것 같다. 아아, 오늘은 앞면이구나, 아아, 오늘은 뒷면이구나. 어라, 오늘은 동전이 서버렸네, 하며 오르락내리락 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동전을 던지는 주체는 누구일까. 앞뒷면을 택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평온함에 만족하던 매일이, 조정기일 단 하루로 무너졌다면, 나의 만족은 얼마나 얕은 것이었을까. 방전된 에너지가 차오르려면, 또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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