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어른
밤 10시 10분.
야근을 마치고 회사 문 앞에서 확인한 시각은 10시 10분이었다. 인적도 없는 어두운 주차장을 터벅터벅 걸을 때, 머릿속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가득했다.
“맥주!!!!! 맥주를 사야 해!!! 마시고 말 거야!!!!”
뭔 놈의 욕구가 이다지도 강렬한 지는 모르겠지만, 야근을 마칠 때쯤이 되면 매우 간절히 술이 마시고 싶어 진다. 꿀꺽꿀꺽꿀꺽. 마시고 잘 테다. 마시고 잠들어버리고 말 테다. 보통의 날이라면 참아보려 애도 쓰지만, 야근 날은 예외. 하루 종일 바짝 긴장했던 뇌는, 잠들기를 거부하곤 했었다. 몸은 잠을 원했지만 뇌가 도망가는 느낌이랄까. 그런 밤을 수차례 보내고 결심했었다. 차라리 빨리 마시고 푹 자자. 그 편이 몸을 위해서도 뇌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는 합리화는 꽤 설득력이 있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뭘 사지, 뭘 먹지, 사치스러운 고민을 하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가득 채운 색색의 맥주 캔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Blanc은 너무 달지,
역시 고전의 맛 Stella를 택할까. 아니야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생했을 땐 쌉쌀한 하이네켄...?
많고 많은 맥주들 사이에서 고르고 골라 4개를 집었다. 수년간의 술 생활로 '결국 그놈이 그놈'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마치 처음 만나는 사이처럼 집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고른 녀석들이었다. 아름다운 녀석들을 소중히 장바구니에 담은 후 차로 향했다.
조수석에 맥주님을 태우고, 켜 뒀던 비상 깜빡이를 끄고, 기어를 바꾸고, 핸들을 잡았다.
자연스레 핸들 위로 손을 턱- 올리는 그 순간. 아아, 절로 감탄이 나왔다.
캬, 이런 찐 어른의 모습이라니.
그야말로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어른만 살 수 있는 맥주를 고르는 것도 어른스러웠고, 고작 맥주에 11000원을 써버릴 수 있는 것도 매우 어른스러웠고, 어른만 할 수 있는 운전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 시각이 밤이라는 것도 엄청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세상에. 나 언제 이렇게 자란 거야.
나이 마흔에, 술 사고 운전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감탄하는 내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소박한지! 어우, 이 정도면 어른이네 하고 행복해하는 나란 인간, 참 잘 자랐구나 싶었다.
진짜 어른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은 요즘이었다. 세상은 나를 어른이라 불러주고 있는 듯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른 같지는 않았다. 맥주를 살 수 있으면,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진짜 어른이 된 것일까. 붙잡을 새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겉모습은 빠르게 늙어갔다. 늙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더 안타까운 건 내면의 아이가 전혀 자랄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나이에도 어른스럽지 않다고 느끼는데, 얼마나 나이를 더 먹으면 내면도 어른스러워지는 것인지 꽤나 궁금한 요즘이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어른을 보고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어이쿠, 이를 어째. 3번 정의는 나를 더 머리 아프게 만들었다. 이혼소송 중인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른이 되려다 포기한 사람쯤 되는 걸까.
회사 후배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서른 중반의 회사 후배는 어떤 문제로 꽤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큰 맥락과 무관한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뜸 묻게 됐었다.
"아니, 부모님이랑 이런 이야기를 해요?"
진심으로 궁금했었다. 30대 자녀가 자신의 고민을 부모님과 상의하는 일이 흔한 것일까. 나로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진로든 연애든, 윗사람과 상의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그저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는 상황들이 내 삶엔 가득했으니까. 선 결정 후 설명을 하는 쪽이 익숙했던 나. 후배는 자주 부모님과 상의한다고 했었다. 그가 부모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존중하고 있음이 대화 내내 느껴졌다.
후배와 이야기를 하면서, 10살인 내 아이를 떠올렸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 이야기, 게임에서 잘 풀리지 않는 부분, 유튜브에서 본 신기한 영상 등 떠오르는 건 대부분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초3의 세계였다. 과연 20년 후, 30살이 된 이 녀석은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좀처럼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엄마에게 말할 필요를 느끼기나 할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한들 듣고는 있을까. 후배의 부모님이 후배에게 '어른으로' 조언을 해주듯, 나도 멋들어진 상담 상대가 되어주고 싶지만 그건 내 욕심일 뿐. 아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지도 몰랐다.
처음엔, 후배가 잘 자랐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곧이어 부모님이 아들을 잘 키우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연이어 부모님이 잘 사셨기에 아들에게서 어른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삶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가족관계이기에 진짜 생활을 나눌 수밖에 없을 테고, 그럼에도 '믿을 만한 어른'의 위치를 지킬 수 있다는 건, 그 부모님이 삶으로 믿을 수 있는 어른임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리라.
그럼 나는? 맥주캔을 조수석에 실어놓고 귀한 분들께 벨트를 해줄까 말까 고민하며 피식 거리는 마흔의 나는, 아들에게 과연 어떤 어른으로 보일까. 어른으로 보이기나 할까.
예전엔, 세월이 무게를 더해주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어른스럽게' 성장하는 것이라 막연히 믿어왔던 나. 하지만 살면서, 생각이 바뀌었던 것 같다. 직장이라는 곳. 그곳에서 어른 대 어른으로 생활을 하면서 나이는 나이일 뿐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곤 했었다. 나이가 늘어난다고 어른스러움이 자라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아니, 저 나이에 대체 왜 저러지, 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너무나도 많았고, 그들을 욕하다 나를 돌아보면, 나 역시 마흔이나 먹고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머릿속에 있는 어른스러움은 어떤 모습인가. 지혜롭고, 대담하며, 마음이 넓고, 세상사에 통달하고, 뭐든 물으면 답을 내려주고, 젊은이들을 웃게도 울게도 만드는 센스를 갖추고, 두려움이 없으며, 모난 곳이 없으며, 시대를 초월한 매력을 갖고. 아, 쪼들리지 않는 경제적 여유 또한 갖춰야겠군. 내 집도 있고, 삶에 힘겨워하는 젊은이들이 있으면 긴 말 않고 큰돈 쥐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쪼잔하지 않아야겠고, 구김이 없어야겠고, 냄새가 나지 않아야겠고...
이상은 높게-라지만, 이 정도 목표는 높아도 너무 높은 것이 아닌가 하는 현실적인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이런 완전체 어른을 꿈꾸고 있었다니. 지금의 내 모습을 보건대, 50, 60이 된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요즘 대세 윤여정 님은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면 된다. 어른이라고 해서 꼭 베울 게 있겠냐"는 말씀을 하셨단다. 그 이야기를 곱씹게 되는 건, 지금의 내 고민에 대한 대답을 찾은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끝낸 것이 어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흔을 달고 보니, 이 고민은 평생 함께 가야 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만큼 살았으니 다 안다" 해버리는 순간, "내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결론 내버리는 순간, 어른이 되는 과정은 뛰어넘은 볼썽사나운 늙은이가 되어 있을 것만 같다. "이만큼 살아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쯤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반성과 성찰만은 끝까지 할 수 있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고 싶다.
중2 소녀처럼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마흔의 나. 잘 늙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