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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May 28. 2022

우리들의 밥심에 대하여

오늘의 단어-밥솥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잘 섞어서 보온해 주세요."


오늘도 열일을 마친 밥솥을 바라본다. 그야말로 열일. 쌀을 열로 익혀, 밥을 만들어냈다. 냉동용 그릇들을 꺼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들을 퍼 담는다. 작은 그릇은 아이용, 큰 그릇은 내꺼. 우리 가족의 2~3일 양식이 완성됐다. 하나씩 꺼내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당연한 듯 살아가는 일상이다. 하지만 문득 돌아보면, 이 일상을 누리기까지 거쳐온 날들이 참 새삼스럽다.    


내 생애 두 번째 밥솥이라 할 만한 이 녀석을 '처음' 사용하던 때, 나는 완성된 밥을 먹으며 눈물을 찔끔거렸었다. 별거를 위해 이사를 한 직후였고, 짐정리도 끝내지 못했지만 매일 밥은 먹어야 했었다. 며칠간 배달로 연명하다가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친 후에야 밥을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을 씻고, 취사를 누르고, 그 옆에서 계란과 햄을 구웠던가. 아이와 단둘이 먹는 첫 집밥. 소박하기 짝이 없는 식탁이었다. 무슨 말인가를 자꾸 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밥을 한술 떠 입에 넣었는데 왜인지 눈물이 차올랐었다. 익숙한 맛. 밥이 입에 들어가니, 그제야 현실감이 들었달까. 와 이사를 했구나, 와 이사한 집에서 밥을 먹는구나. 이 모든 것을 해낸 스스로가 그렇게나 기특하게 느껴졌었다.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워 눈물을 흘리다니. 쓰고보니 우습지만, 정말 내가 너무 대견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밥알을 꼭꼭 씹어 삼키며, 일상을 살아가는 '힘'에 대해 생각했었다. 밥을 챙겨먹는다는 것. 그 일상을 살아낼 힘이 내게 있다는 게, 아이를 위해 밥상을 차릴 힘이 내게 있다는 게, 엄청난 일을 해낸 듯 느껴졌었다. 한 공기를 뚝딱 비워냈다. 밥을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넘기며 다짐도 했던 것 같다. 

잘 챙겨먹어야지.   

아프지 말아야지. 

힘을 내서 잘 살아내고 말리라. 


그야말로 눈물 젖은 밥이었다. 





내 생애 첫 밥솥이라 이름 붙일만한 녀석은, 친구가 결혼 선물로 준 것이었다. 수년간 고장도 없이 밥솥은 잘 돌아갔지만, 밥솥이 자리잡은 가정은 잘 돌아가질 못했다. 결국 일방적으로 별거를 '선언'하고 이삿짐을 싸던 때, 끝까지 고민이 됐던 건 밥솥이었다. TV도 냉장고도 아이를 무기 삼아 다 챙겨 들고 나왔지만, 끝끝내 밥솥만은 도저히 챙겨나올 수가 없었다. 마지막 예의같은 느낌이랄까. 아이와 내가 떠나는 이 집에서, 남편은 살아가야 했으니까. 친구의 선물이긴 했지만, 그것을 이유로 챙겨나오기엔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었다. 


이사 후, 친구에게도 상황을 설명했다.   

"이러저러해서 밥솥까지는 도저히 못 들고 나오겠더라."

선물 받은 물건을 내 맘대로 남에게 준 것만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친구는 쿨하게도 "주소 불러봐, 내가 새 걸로 보낼게"라고 응답했다. 

사실, 당시의 나는 매우 쪼들리고 있었다. 이사 비용과 새로 마련한 가구, 침구들. 필요한 건 지나치리만큼 많았고, 모든 걸 갖추고 나니 한달한달 생활이 아득하기만 했던 그때. 초저렴 전기밥솥이나 사야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친구 덕분에 압력밥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친구는, 내 생애 첫 밥솥에 이어 두 번째 밥솥까지 선사했다.


밥솥만 보내고 끝이 아니었다. 이삿짐 정리와 육아와 직장일로 너덜너덜해져 있던 이사 첫 주. 그 주말에 친구는 집으로 찾아왔었다.

"다 끝나가네. 여기만 더 하면 되겠다."

"냉장고야 빤하니까 내가 냉장고 정리할게. 넌 다른 거 해."

덕분에 옷정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책장 정리를 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어릴 때보던 책까지 모두 꽂혀있는 혼란스러운 책장. 버릴 건 버리고 옮겼어야 했지만, 별거를 하는 주제에 차분히 짐정리를 할 시간은 없었고, 모조리 싸와서 여기서 정리하면 될 것이라 미련하게 생각했었다. 1~2시간쯤, 버릴 책들을 따로 빼고 자주 보는 책들을 아이의 키높이에 맞게 새로 꽂아넣었다. 정리는 순조로웠지만, 책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무거웠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3층부터 1층까지 책들을 옮기고 나르고를 여러 번 하고 마지막 책 꾸러미를 옮기면서, 현관 앞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피곤해서일까, 너무 무거워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작스레 눈물이 터져나왔다. 미친 사람처럼 왔다갔다 짐을 나르다 갑자기 주저앉아 우는 내 옆에는 친구가 있었다.

"아, 왜... 왜 우는데."

이런 상황에 취약한 친구는 정말 기이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눈물 어린 시야로 보이던 친구의 표정. 그 얼굴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울다가 웃으면 안되는 거지만, 그 표정은 정말 너무도 웃겼다. 

"아 몰라, 책이 너무 무겁잖아."

어색한 침묵을 두고 내가 먼저 일어났던 것 같다.   

"이것만 옮기고 뭐 좀 시켜먹자. 뭐 먹을래?"

가만히 있다가는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다시 눈물이 나버리면 또 멈추기는 쉽지 않으리라. 문득 눈물이 터진 그런 순간,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고마운 일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된 것 같다. 혼자가 아니어서,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울어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가볍게 웃으며 그 자리에서 일어날 힘을 낼 수 있었다.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으리라. 어쩌면... 한동안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카톡으로 친구에게 소식을 전했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온 친구는, 나 대신 울어주고 있었다. 문상을 온 친구를 마주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사실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모두가 까만 옷을 입은 그곳에서 나눈 대화는, 신기하리만치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어쨌거나 확실한 건, 친구도 나도 울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우린 굉장히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상주와 조문객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2주쯤 흘렀을까. 집에서 멍하게 있던 때에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주말인데 뭐해?"

피식, 웃음이 났다. 참 너 답다, 싶었다. 뭐라고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걸 물었을 친구가 그려져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다음주가 엄마 기일이라 좀 슬프다. 위로 좀 해줄래."

"..........."

친구는 실제로 수많은 점을 찍어 보냈다. 점 다음으로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던가. 많은 이들이 위로를 건네던 때였지만, 친구는 참 성격답게 말했다.   

"내가 위로를 잘 못해서.."

"위로, 라고 쓰면 되지. 위로 좀. 나 위로 좀 해달라고."

피식피식 웃으며, 카톡을 주고 받았다. 이런 소소한 웃음이, 참 힘이 되는 것임을 친구 덕에 배웠다. 다들 너무 진지하고 다들 너무 무거워서, 피식-하고 김을 뺄 필요가 있던 때였다. 압력밥솥이 취이- 소리를 내며 취사를 마치듯, 휘몰아치듯 흐르는 시간 안에서는 오히려 피식피식- 웃을 순간이 간절했었다.   


되돌아보면, 삶을 이어나가게 만드는 건 그런 순간들인 것 같다. 삶을 휩쓰는 일들에 정신이 아득해져,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그런 시간들 속에 피식 웃음이 나는 순간. 그제야 아, 맞아, 나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살아있다는 감각. 웃을 수 있는 여유. 그런 것들이 느껴졌을 때, 비로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야, 진짜 나이 먹으니까 삶이 무겁긴 하다."

얼마 전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우린 삶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와, 10대 때는 친구랑 진학이 고민이고, 20대 때는 연애가 고민이고 했었는데. 40 되니까 뭐 이것저것 다 문제야."

참 맞는 말이었다. 심지어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주체가 되어 해결해 나가야 했다. 어쩜, 주변을 둘러봐도 가볍게 가볍게만 살아가는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다들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쩔쩔 매는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런 게 사는 건가, 이런 게 나이 먹는 건가,를 체감하게 만드는 일들은 꾸준히 일어났고, 어라어라 휘청대다보니 여기까지 와 있었다. 앞으로의 시간? 두렵기도 한 것 같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조마조마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도 같다. 어우, 이제 큰 일은 제발 그만. 간절히 원하지만.. 인생사, 내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런 삶. 이걸 버티고 살아갈 힘은 대체 어디서 얻어야 하는 걸까,를 꽤나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많았다. 뭘 해야 힘이 날까, 뭘 하면 힘이 날까. 지나고보니 결국 밥심으로 버텼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밥을 먹고 나서 생긴 힘'이라 사전에서는 정의하지만, 단순히 먹고 나서 생긴 힘이라기 보다는 밥을 먹는 행동 그 자체가 동력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밥을 먹는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조리하고, 입에 넣고, 씹고 삼키는 그 모든 시간. '살기 위해' 그 모든 일들을 해내는 것. "입맛이 없어도" 그 행위들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밥심이었고, 그렇게 버티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진짜 힘이 생겼던 것 같다. 결국, 힘든 시간 나를 버티게 한 건 밥이었고, 그 밥을 만들어준 건 친구가 준 밥솥이었다. 


친구가 준, 내 생애 두 번째 밥솥에 오늘은 현미밥을 앉혔다.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잘 섞어서 보온해 주세요."

처음 이 밥솥에 밥을 할 때만 해도 눈물을 찔끔거렸지만, 이제 더이상 울지 않는다. 이제는 건강과 체중감량까지 생각해 밥을 한다. 현미밥을 먹기로 결심했다고 친구에게 말하면, 친구는 무슨 말을 할까.  

예상컨대 "야, 술을 먹지마. 현미밥이고 뭐고 술을 안 먹으면 다 해결되는 문제잖아"라고 말을 하겠지. 친구야, 정답은 나도 안다. 하지만, 인생사,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이렇게 또 피식거리며 대화를 할 생각에 쓰면서도 웃음이 난다. 덕분에 피식 웃고, 또 밥심을 낸다. 자기 전엔 카톡이나 하나 보내봐야지. 


"주말인데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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