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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Dec 24. 2020

(13) 멋진 위로를 해주고 싶다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어떻게 타인을 위로할 수 있겠어요

10대에 치른 어머니 장례식, 30대에 치른 아버지 장례식에서 참 많은 위로의 말을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든 잘 아는 사람이든 일단 슬픈 얼굴을 하고 "괜찮니?" 하고 물어봤다. 어머니 장례식에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괜...."찮다라는 말을 끝까지 뱉지 못했다. 그저 울음이 터졌다. 아버지 장례식에서는 울먹이는 이들을 달랠 마음의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 잘 대답할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지금은 괜찮습니다. 이건 어차피 오래오래 가라앉혀야 할 감정이더라고요)"

그때 생각했다. 사람들이 참 위로를 어려워하는구나. 나라고 다를까. 나 역시 참 위로를 못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말을 해도 어차피 위로가 안 되는 걸 나도 안다. 그래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뒤돌아 나오며 벽에 머리를 찧어댄다.


나의 위로가 상대의 슬픔에 닿기를 바라는 것. 어쩌면 그 자체가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버티고 있는 상대에겐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을 타인이 어떻게 가라 앉혀 줄 수 있을까? '한 마디' 말로 임팩트 있게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만이지 않을까.




어머니 장례식에서 나는 성경책을 읽었다. 친구들이 봤다면 놀라워할 만한 광경이었다. 신앙심이 투철하지도 않은 내가, 퉁퉁 부은 얼굴로 성경책을 읽고 있다니. 딱히 손님이 많지 않았기에 시간이 많았다. 눈을 들면 보이는 영정사진이 그렇게 서글퍼서 어딘가 눈 둘 곳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말이 안 들리는 척 빠져있을 만한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아이고, 이 어린것들을 놔두고. 눈도 못 감았겠다."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닙니다만. 어머니는 눈은 감고 돌아가셨습니다 등을 대답해야 하나 고민됐다.

"얘들(오빠와 나)도 힘들겠다."

검은 옷을 입고 있으면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10대 미성년자는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저런 말을 내게 건네는데, 심성이 비뚤어진 것인지 그 말들 모두가 날카롭게 느껴졌다. 듣는 내내 아팠다.

밥을 먹으면서도 시종일관 "아이고,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인데", "아이고, 발길이 안 떨어졌겠다" 하는데, "어리지만 잘 살아보겠습니다" 외칠 수도 없는 일. 별 수 없이 성경에 얼굴을 박고 글자를 따라 눈을 움직였다.


분명 위로였다. 마음은 느껴졌다. 하지만 정말, 칼날 같은 위로였다. 듣는 이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아니라, 한 마디 한 마디가 듣는 이의 마음을 베어댔다. 어머니의 아팠던 마음을 굳이 장례식장에서 그 자녀에게 상기시키는, 저런 무심한 말을 하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어머니의 아픔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무너졌으므로, 다른 생각을 하려 애를 쓰는 중이었기에, 그분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참 아팠다. 이후로는 위로를 할 상황이 다가오면, 이 순간이 떠올라 말을 더 잘할 수 없게 됐다.




30대에 맞은 아버지 장례식. 성인이 된 지도 한참 지난 나이였지만, 나보다 더 어른인 사람들이 세상엔 많았다. 그리고 그 어른들이 하는 말은 여전히 무심했다. 

“아이고, 이제 고아됐네. 좀 빠른 편이긴 하네.”

“남편 있고 애 있으면 됐지. 다 지나간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 표현 앞에서 유난을 떨고 싶지 않아 졌다. 입을 다물고 싶어 졌기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위로는 마음에 건네는 것일까 상황에 건네는 것일까. 위로는, 상대의 상황을 '알고' 있다는 표현일까, 아픈 마음을 다독여 주는 다정함일까. 사전을 찾아봤다.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으로 정의되어 있다. 역시. 위로는, 따뜻하게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손길을 의미했다. 


내가 불편했던 이 위로들은, 물론 나의 예민함도 한몫 거들었겠지만, 전혀 다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에 와 닿지도 않았다. 부모님을 먼저 보낸 마음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하지만 그 마음의 결은,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지 않을까. 겪어보니 다 지나가는 일이라 하더라도 '다 지나간다' 보다는 '나도 그때 아팠어' 하는 편이 더 마음에 와 닿지 않았을까. "나 그거 아는데" 하며 상대의 감정을 함부로 짐작하는 말 또한 상대를 아프게 할 수 있음을 배웠다. 


“상심이 크시죠”라는 아주 매끈한 인사를 건넨 어른도 기억이 난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오늘 날씨가 어떤가요?” 같은 심상한 느낌으로 “상심이 크시죠” 하니, 순간 '이분이 상조회사에서 나온다는 그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었다. 아직도 나는 이 분이 누군지 모른다. 모르는 사람에게 '상심이 크시죠'라는 말을 들으면, "네. 큽니다"가 정답일까, "아니오. 괜찮습니다"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네, 아니, 뭐-" 같은 이상한 말을 했었다. 상심이 크긴 큽니다만 인사를 그리 해주시니, 크다고 해야 할지 괜찮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도를 모두 포함한, 정체불명의 대답이었다. 아무리 모르는 사이라 하더라도, 조금쯤은 슬픔을 담아 말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쯤까지 쓰고 나니, 솔직히 더 모르겠다. 어떤 위로가 멋진 위로인 것인지. 

다만 내가 받았던 위로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있다. 50을 바라보는 회사 선배가 “나는 부모님이 아직 다 살아계셔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느낌일지 정말 모르겠어요. 밥 챙겨 먹어요”라고 했는데, 별 것 아닌 이 말이 가장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역시 잘 모를 때는 모른다고 하는 편이 낫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장례식이 몇 주 지난 후 뜬금없이 "뭐 먹고 싶은 건 없니" 라거나 "주말인데 뭐해" 등 일상을 물어준 이들의 인사. 그게 참 와 닿았었다. 

그저 진심과 걱정. 그것만을 담으면 되는 것 같다. 그 정도로 '힘을 뺀' 위로가 오히려 마음까지 와 닿는 것 같다. 어설픈 짐작도 아는 체도, 위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인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여겨지는 멋들어진 명언 역시 시간이 좀 흐른 후에 알려줘도 늦지 않다.


물론 나도 안다. 위로를 해 주는 사람들의 '의도'는 내가 받은 상처와 무관하다는 것을. 그들의 말들은 모두, 슬픈 상대를 다독이고 싶은 다정함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의도가 좋아도 결과가 나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상대가 듣고 아프면, 위로라고 이름 붙이긴 어렵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다짐들을 하게 된다. 위로할 상황이 오면 아는 체하지 말아야지, 멋진 체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게 된다.  '화려하게' '힘을 줘서' '멋들어진' 위로를 건네려 하지 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안부나 물어야지 생각한다. 그리고 기다려야지. 오롯이 혼자 가라 앉혀야 하는 슬픔도 있을 테니, 상대가 그것들을 잘 소화하고 답해줄 그때를 기다리는 거다. 그리고 다시 만나면, 밥은 먹고 다니냐, 잠은 잘 자냐 물어봐야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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