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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Dec 17. 2020

(8) 돈도 안 되는 이 글을, 왜 붙잡고 있을까

처음엔 '와, 너무하네. 브런치' 생각했었다. 인터넷에 작은 공간 하나 '허락'해 주면 알아서 글을 쓰겠다는데, 누굴 욕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해를 끼치겠다는 것도 아니고,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이야기 좀 쓰고 싶은 마음에 '발행'만 하게 해 달라는데 거절당했다. 단박에 거절당한 마음의 상처가 좀 치유됐을 때쯤 처음 작가 신청에 첨부한 글들을 다시 읽어봤다. 내가 봐도 '좀 너무하다' 싶은 내용이 많았다. 죽고 싶다로 한 페이지를 채우거나 죽이고 싶다로 한 페이지를 채우거나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글들을 좀 '둥글게' 다듬었다. 나름은 '정제'한 글들로 두 번째 신청을 하고 또 떨어졌을 땐 '에라이, 글 쓸 데가 여기밖에 없나. 블로그 같은 데 가서 혼자 쓰련다. 퉤퉤' 했다. 그러고도 미련이 사라지지 않아 또 매달렸다. 불쌍하게 '나 좀 봐주세요' 하며 징징거렸다. 세 번째만에 '공간'을 얻었다.


이제 한 달 꽉 채우고 5일쯤이 지났다. 아이가 잠든 밤, '만세- 뭘 하지' 고민하던 시간들이 사라졌다. 당연한 듯 컴퓨터를 켜고 뭐라도 쓰려고 나름은 용을 쓰고 있다.(감사해요! 구독 눌러주신 은혜로운 분들!)

낮 시간도 완전히 브런치에 지배당했다. '아, 이런 거 써봐야겠다' 하면 일단 브런치를 열어서 메모라도 남겼다. 메모 남기기에 빠져 문장을 이어 가다 보면 시간이 훅훅 갔다. 앱을 끄려다 끌리는 글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읽고 있었다. 라이킷이나 구독을 눌러주는 분들이 있으면 어떤 분들인지 궁금했고 그분들 글을 읽다 보면 또 시간이 훅훅 갔다. 웹소설도 웹툰도 강제로 끊게 됐다. 아이가 부르는 소리도 못 듣는 경우도 많았다. 뭘 쓸까, 어떻게 쓸까, 머리 한편에 자리 잡은 이 생각을 off 시키려고 애를 쓸 지경이었다. 대단히 작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단한 작가도 아니므로, 왜 이러고 있나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왜 이렇게 글을 써 대나, 지금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매일 이어졌다. 왜 이러는 거야, 드디어 미친 거야? 왜 이렇게 빠져있어? 이유가 뭐야?




소통이 막힌 채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혼 소송을 위해 변호사 사무실들을 찾아다니면서 깨달았다. 일로 엮이지 않은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그토록 힘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스스로에게 약간 놀랐다. 내가 이렇게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었나 의문이 들 만큼 낯선 사람 앞에서 어버버 거렸다. 특히 남자 변호사들을 마주 하면 입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여자 변호사들을 만나면 자존심이 상했다. 멋진 사무실에 앉아 정장을 입은 분들을 마주 하면 왠지 기가 죽었다. 나도 회사를 다니는 사람인데, 스스로가 의아할 만큼 주눅이 들었다. 낯선 이들에게 애써 축약한 결혼생활에 대해 말을 하고 나서는, 반응을 기대했다. "저 힘들었겠죠", "제가 이상해서 이 상황을 못 받아들이는 거 아니죠" 끊임없이 공감을 받고 싶어 했다.


이런 상태의 내게 “배우자가 혼인 파탄의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면 그렇게 속이 상했다. "이 상황을 힘들게 느끼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이렇게 되물어도 답이 없는 변호사도 있었다.

진술서(이혼 사유서)를 내고는 스스로도 의아할 만큼 칭찬 혹은 공감을 바라고 있었다. A4 10장에 걸쳐 채운 진술서를 변호사님께 건네고는 '글이 어땠나요? 문장에 막 힘을 줬는데 오버스러웠나요? 혹시 비문은 없었나요?' 이런 걸 묻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걸 다 읽은 사람(이런저런 증거들까지)이 변호사님 뿐이라 여쭤보는 건데, 객관적으로 봐도 저 힘들었겠죠?' 이 질문을 정말 여러 번 참았다. 나는 객관적인 누군가가 “힘들었겠어요”하고 말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린아이는 넘어지면(물론 약하게 넘어졌을 때의 이야기다) 울기 전에 보호자 얼굴부터 본다. 보호자가 놀란 얼굴로 달려오면 그제야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 보호자가 '일어나. 괜찮아' 하면 '음? 별 거 아닌가' 하며 울먹이다가도 일어나 논다. 딱 그런 상태였다.

'객관적'으로 저 힘든 거 맞죠? 제가 이상한 건가요? 누구든 붙잡고 묻고 싶었다.

'제가 지금 좀 큰 사고(이혼)를 치려고 하는데, 저 이래도 되는 거 맞죠?' 대답이 너무나 듣고 싶었다.


글을 써 둬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 무렵이다. 이혼에 대해 미친 듯 검색하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이렇게 힘든 '감정'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안 쓴 거지(이제 보니 제가 못 찾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현재 진행형인 글이 왜 없지, 법적인 절차를 설명한 글은 이렇게나 많은데 왜 아무도 자기감정을 안 쓴 거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궁금한데 왜 없지 생각했고, 나라도 일기 쓰듯 기록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진술서에 쓴 '나쁜' 내용 외에 좋았던 기억도 있었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남겨두고 싶었다. 기억이 사라지면, 아이에게 전할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글쓰기 계획은 결혼-이혼 이게 전부였다. 이와 관련된 하소연으로 벌써 몇 년째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나 힘들겠지, 나 힘들어, 어쩌고 저쩌고. 좋은 노래도 계속 들으면 질리는데,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내 입을 막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그래서 혼자 쓰고 좀 털어버리고 싶었다. 진술서를 쓰다 보니 어느 정도 마음 정리가 되길래, 아예 다 써 버리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다.

나름은 묵혔던 결혼 이야기들을 마음대로 막 써 버리고 나니, 신기하게도 문득 부모님이 떠올랐다. 토양이 표층-심층으로 나뉘듯, 최근의 일들을 걷어내고 나니 옛날 기억이 마구 떠올랐다. 그래, 이 참에 생각나는 건 남겨두자, 다 써 버리자 하는 마음도 들었다. '부모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들 있을 테니 읽는 분들도 공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단순히 말하자면,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작가의 에너지가 요동쳤다!............. 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그냥 가벼워지고 싶었다. 울어도 울어도 나오는 눈물도 지겨워서 그냥 다 꺼내 놓고 싶었다. 집중포화하는 심정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기억들을 이것저것 써댔다.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도 두려웠다. 현재의 기억도 어느 정도 각색된 것인 지 확신하지 못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더 잊을까 봐 걱정도 됐다.


그렇게 구구절절 '나 힘들어요', '나 좀 봐줘요', '저 힘들었겠죠' 하는 글들을 써댔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여기서 나 이렇게 징징 거려도 되는 걸까, 읽는 사람들도 우울해지겠다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러다 또 '뭘 쓰지' 하면 결국 생각나는 건 우울한 기억들이었다. 쓰면서 정말 많이도 울었다. 물을 마시는 만큼 눈물이 만들어지는 걸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생길 만큼 많이도 울었다.


많은 분들이 응원도 해 주셨다. 로그인을 해서 라이킷을 누르는 것도, 댓글을 남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이혼 글에도, 부모님 이야기에도 응원들을 해주셨다. 그분들 덕분에 알게 됐다. 나 좀 외로웠나 보다. 누구에게든 "힘들만했다", "수고했다"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약간의 자괴감도 느낀다. 관심 가져 달라고 그렇게 글을 써 대고는, 힘들겠다는 공감을 받으면 왠지 '저 지금 잘 살아요', '저 딱하지 않아요' 말하고 싶어 졌다. 참 이상한 인간이다.




곰곰이 생각하고 정리해 봤다. ' 왜 이렇게 쓰고 있을까'

하나, 외로워서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막연히 외롭고 막연히 두려운 이때에 대놓고 징징거릴 공간을 확보받은 듯한 느낌? 나 힘들었어요, 허공을 향해 징징대며 공감받고 싶었던 것 같다.


둘, 도망치고 싶은 것 같다.

코로나 시국에 아이의 육아 문제는 꾸준히 싸움의 이유가 됐다. 홧김에 육아휴직을 써 버렸고, 뒷감당을 하지 못해 쩔쩔 매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믿을 수 있는 밥벌이를 마련해야 아이를 키울 수 있어!' 하는 생각이 강해졌고 이것저것 기웃기웃거려봤으나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지금 상황에 마음 편히 쉬는 것도 사치라서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과거 소환을 하며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 아닐까. 문득 부모님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어쩌면 그 품으로 돌아가 기대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셋, 글을 잘 쓰고 싶어서라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마치 슈퍼스타케이 같은 오디션에 '강제 소환' 당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세상에 저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았나, 저 사람들은 어디서 뭘 하다가 갑자기 등장했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브런치도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이 많구나, 이런 분들은 이 필력으로 아직 책을 안 내신 건가' 하는 느낌.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오디션에 참가한 느낌이었고, 매일 쓰는 게 글 잘 쓰는 첫째 비법이라길래 '평일에 한 편씩'은 써보자 다짐하게 됐다. 하지만 쓰는 내내, 이건 돈이 안되잖아! 돈 되는 걸 찾아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글을 잘 써서 뭐할 건가', '이게 애 키우는 데 도움이 되나' 하는 현실적 질문들. 그럼에도 일단 모른 척하고 뭐든 쓰고 있다. '공포의 방학'이 시작되면, 이마저도 할 여력이 안될 수 있으니 일단은 평일 한 편씩 쓰기로 했다.


넷, 다 필요 없고 재미있단 말이야!

일단 방학 전까진 소소한 재미를 누리리라 다짐해 본다.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엄청나게 긴 이 글의 결론.

"결국 이렇게 브런치의 노예 한 마리가 탄생했습니다."


(+) 브런치는 정말 굉장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처음 조회수가 1000을 넘었을 때, “와! 미쳤다”라는 생각을 했다. 1000명이 내 글을 읽은 거야? 1000명?!

1000 단위로 알람이 오는 이 시스템은 글 쓴 사람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1000... 2000... 10000 쯤을 보고 나면 '어머, 어머, 이 세상 만 명이 내 글을 읽었어!!! 오만 명이 내 브런치에 들어왔대' 하며 감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 모두가 진심으로 글을 읽은 것인지, 잘못 눌러 들어온 것인지, 혹은 독자가 무엇을 느낀 것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다음, 카카오 등에서 브런치로 유입되는 인원이 꽤나 많기에, 결국 브런치가 선별한 글들이 '등판'하게 되는 느낌인데 글 쓰는 입장에서는 그 기준을 모르겠으니 혼자 짐작하게 된다. 제목이 자극적이었던 게 이유인가 보다. '숫자에 집착하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잖아' 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도박'처럼 또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진다. 와, 만 명이 내 글을 읽었어!! 그 기분에 빠져서 또 자발적으로 시간 들여 글을 쓰고 공 들여 제목을 붙인다. 조회수와 구독자 수. 단지 숫자에 집착하게 만드는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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