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 없는 겨울은, 많이 힘들까
흰색 패딩.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1년 새에 아이는 자랐고 작년 옷들이 꽉 끼길래 따뜻한 점퍼를 하나 사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입혀봤자 1~2년, 비싼 옷은 필요 없었다. 아동복 매대를 '스캔'하던 중, 흰색 패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할인 중이었다. '아동복인데, 거기다 패딩인데 흰색이라니, 금방 더러워질 거야. 다들 안 사가니 쟤만 할인하겠지.' 분명 꽤나 '현명하게'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가격이 궁금해 가격표를 봤다. 3만 8000원. 오리털 패딩이 3만 원대? 그 순간 흰색 패딩을 입은 아이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겨울엔 늘 검정 외투였는데 흰색? 흰색 패딩을 입고 하얀 눈 위에 서 있는 8살 꼬마. 예쁠 것 같았다. “어머, 이건 사야 해” 하며 홀린 듯 결제를 해버렸다.
역시 흰색 패딩이었다. 3일쯤 입히자 곳곳이 거뭇거뭇해졌다. 특히 소매 쪽이 문제였다. 세탁소에 맡겨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번 겨울을 보내는 동안 이 패딩을 몇 번이나 빨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고작 3일 만에 빨아야 할 것 같은데 한 달이 30일이니 한 달에 10번? 매일 입히지 않는다 해도 한 달에 3~4번쯤은 빨아줘야 할 것 같았다. 옷값보다 세탁비를 더 쓰자니 왠지 아까웠다. 세탁망에 넣어 돌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다른 빨래들과 함께 세탁기에 넣어 신나게 돌렸다. 검색조차 해보지 않았다. “왜 다들 패딩을 세탁소에 맡길까?” 같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더럽다-빨아보지 뭐. 끝이었다.
세탁기 뚜껑을 열고 가장 먼저 살핀 건 패딩이었다. 돌돌 통돌이 안에서 돌아가면서 혹시 터지진 않았을까 염려됐다. 무사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널면서 깨달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잘못됐음이 느껴졌다. 아들의 패딩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안녕? 나는 오리야.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을 수십 번 보내는 동안 단 한 번도 씻지 않은 노숙자 냄새를 풍기지.”
정말, 굉장한, 냄새가 났다. 빨래를 넌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패딩의 향기가 온 집으로 퍼져나갔다. 도무지 집 안에 둘 수가 없어서 일단 베란다로 옮겼다. 물에 빨면 있던 냄새도 사라지는 거 아니야? 뭐지? 어딘가 썩어서 싸게 판 거야? 아니, 오리털이 썩나?
그제야 검색을 했다. 의외로 물빨래를 해도 된다는 글이 많았다. 다만 중성세제를 사용하라고 했다. 그리고 오리털이 덜 마르면 냄새가 날 수 있으므로 햇볕에 수일을 말리거나 드라이기를 사용하거나 건조기를 사용하거나, 아무튼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바~싹 말려야 한단다.
오늘로 베란다 격리 3일째. 패딩 녀석은 아직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5~6년 전 겨울, 나는 작은 다짐을 하나 했었다.
“다른 건 못해도 동물 털로 만든 건 입지 말자.”
지인의 채식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극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내가 살면서 먹을 고기의 양은, 얼마나 엄청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채식을 하는 저분에 비하면, 내 기름진 세 끼 식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는 걸까 생각하니 섬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끊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름은 고민 끝에 “적어도 동물 털로 만든 건 입지 말자”하는 다짐을 했었다. 다짐 후 몇 년간은 분명 실천도 했었다. 내복을 껴입고 솜이 누벼진 옷들을 샀었다. 산 채로 털이 뜯기는 생명들을 아예 모른 척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재작년 겨울, 결국 패딩을 “질러” 버렸다. 다짐도 어느새 잊혀 있었고, 급격한 다이어트 후 맞은 겨울이, 정말로 너무나도 추웠다. 뼈를 철갑옷처럼 감싸주던 지방이 줄어들고, 난생처음 ‘뼈 시리는’ 추위를 느꼈던 나는 패딩을 서둘러 사 입었다.
기름진 식사로 뒤룩뒤룩 살을 찌우고, 그걸 용을 쓰며 빼고, 그리고는 춥다며 동물 털이 든 옷을 사 입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 시작을 찾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잘못된 것은 분명했다. 좀 더 편안한 내 삶을 위해서 무언가가 희생(혹은 살생)되고, 그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나.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올해도 당연한 듯 패딩을 사버린 나는, 굉장한 냄새로 인해 녀석이 원래 ‘살아있는 오리’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맞다. 생명이었지. 생명이 깃들었던 것을 막 다루다 보니 생명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게 된 것 같았다. '오리'가 아니라, 3만 8천 원짜리 옷. 그것으로만 녀석을 대했던 것이다.
3일째 베란다에 방치된 패딩 녀석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안 사기로 결심했으면 안 사야지. 이 멍청한 인간아. 내 꼴 좀 봐.”
그래. 멍청한 인간은 원래 다짐한 걸 한 번만에 잘 지켜내지 못한다. 그러니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다짐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경험을 돌이켜 보건대, 절대 다시는 두 번 다시 동물 털 옷을 안 사겠다는 다짐까지는 못 지켜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 더 고민해보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정도는 어떨까.
“내 입에 들어가는 고기와 내가 걸치는 털들이, 원래는 생명이었다.”
이 문장을 잊지 않고 계속 계속 되뇌다 보면, 그 생명을 위한 조금 더 큰 다짐들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일단 올해의 다짐은 이 정도로 가볍게 시작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내 입에 들어가는 고기와 내가 걸치는 털들이, 원래는 생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