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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Aug 16. 2021

노력: 리듬을 따라 계속 흐르는

#청소년인문학클래스 #단어수집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비율을 의심해. 반반이 섞여 있다고 하지만 사실 ‘오직 진담’ 아닐까? 농담 반 진담 반이라며 웃으며 건네는 말에 화를 낼 수도 없고, 애써 웃으며 넘겼지만 마음이 무척 상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농담 반 진담 반은 오직 진담이 맞아. 그것도 벼르고 벼른 진담. 어떤 말들은 너무 투명해서 말하는 사람의 속살을 다 보여주는 것 같아. 그런데 우리는 발가벗고 살 수가 없잖아? 그대로 보여주기 어려운 말들에 농담 반이라는 얇은 옷을 입혀 놓는 거지. 충고나 비난을 전하고 싶은데 못된 사람이 되기 싫을 때 농담을 입기도 하고, 감정을 고백하거나 믿고 있는 이상과 진리를 표현하고 싶은데 아무도 믿지 않고 우스워질까 봐 농담을 입기도 하지.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진담을 전해.

      

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인데, 선생님은 책과 나의 운명을 믿어. 책과 나의 운명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거 같아. 책은 어려운 일이 없지만, 사람은 늘 어렵거든. 종종 이런 상상을 해. 작은 방 안이고, 나는 한 손에 잔뜩 엉킨 실타래를 쥐고 서 있어. 실타래를 내려다보는 미간에 주름이 선명하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차곡하고 빽빽한 책장을 바라봐. 다른 한 손으로 이리저리 책등을 가만히 쓸다 보면 어느 순간 책 한 권이 불쑥 튀어나오는 거야! 우리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엉킨 실타래에 비유하잖아, 정말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지. 그럴 때 만난 책들은 질문을 던져.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가진 고민과 다가온 책이 전혀 다른 주제와 장르 같은데, 참 신기하단 말이지. 질문은 지름길을 피해 길고 느리게 다가오고 또 정답도 없지만 너무나 적절하거든. 엉킨 실타래의 한쪽 끝을 손에 쥔 기분이 들지. 실타래는 여전히 엉켜있지만 나는 실의 시작을 손에 쥐고 있으니 이제 풀기만 하면 돼.


“그래서, 노력이 뭔데?”     


운명처럼 다가온 책들이 나에게 던진 질문이야. 나는 늘 그렇듯 엉킨 실타래를 손에 들고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그때 나타난 책들은 놀랍게도 같은 질문을 했어. 한쪽 끝을 찾았으니까 나머지는 내 몫이겠지.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었는지 이제부터 들려줄게.      


나는 네가 쓴 소설이 참 좋았어. ‘그냥 남는’ 자리에 앉는 아이와 그 아이를 눈여겨보는 다른 아이의 시선이 좋았어. 인간의 언어 대신 비인간의 언어로 채운 장면이 좋았어. 너를 알게 되어 좋았고, 너의 작품의 첫 독자가 될 수 있어 좋았어.      


“못 쓰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귀담아듣지 않았어. 또 시작이구나, 했던 것 같아. 종종 글쓰기가 어렵다고 투정을 부렸잖아. 하지만 너는 결국 써냈고. 나는 여느 때처럼 “괜찮아.”로 시작하는 긴 대답을 했지. 네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아이인지 칭찬을 하고, 글쓰기의 어려움을 깊이 이해한다고 말했어. 못 써도 괜찮으니까 쉽게 생각하라고도 했지. 누구나 그래. 나도 그런 적이 있었고. 너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고 또 잘 썼던 아이니까 지금 이 장애물을 넘으면 돼. 눈앞에 뜀틀이 엄청 커다랗게 보이겠지만 도움닫기를 잘하면 되거든.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그다음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한발 한발 천천히, 그러다가 속도를 붙여 달리는 거지! 글감에 대해 충분히 생각을 하고, 천천히 단어들을 찾고, 단어들을 엮어 문장으로 만들고, 문장을 모아 문단으로 쌓아 보자. 내가 곁에서 도와줄게. 같이 노력해 보자. 할 수 있겠지?

      

힘들겠지만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나의 일이라 생각했고 왠지 정의의 용사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 하지만 너는 울 것 같은 얼굴이 됐어. “노력해 볼게요. 그런데 뭔가를 쓴다는 그 자체가 너무 어려워요.”     


수업을 마치고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는 너의 고개와 어깨를 오래 쳐다보았지.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어. 도와주고 싶은데, 그리고 분명히 ‘옳은 방향’으로 돕고 있는 것 같은데, 너는 왜 더 힘들어 보일까. 이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하지?     


그때 내 손에 들어온 책이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그림책 『어려워』야. 운명답게 그 어떤 예고도 하지 않고 선물의 형식을 빌려 내게로 왔어.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지. 어떤 책인지 알 것 같았거든. 그림책의 주요 독자는 어린이고, 어린이들은 어려운 일을 겪으며 성장하지. (사실 어른이 되어도 계속 어려운 일을 겪으며 성장해) 그래서 어려워하는 어린이와, 어린이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어른과, 어린이를 돕는 또 다른 어른이 나오는 이야기가 참 많아. 누구에게나 언제든 어려운 일은 생기기 마련이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용기를 주지. 그런데 이 책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금 이상해. 주인공이 용기를 가질 때가 됐는데, 계속 어렵기만 해. 말하는 건 몹시 어렵고, 대답하는 건 몹시 어렵고, 집중하는 건 몹시 어렵고, 이름을 부르는 건 몹시 어렵고, 말문을 여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고 끝내 해결이 되지 않아. 독자는 주인공의 노력을 보는 대신 속마음을 들을 수 있지. 주인공이 속마음을 말할 때 배경은 온통 까만색이야. 까만 마음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문장들. 그중 두 문장이 걸려서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어.

 


라울 니에토 구리디, <어려워>, 미디어창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들 한다. 그러니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하는 걸까? 사람에 따라 하루 이틀일 수도 있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겠지, 아니면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어. 그동안 나는 반드시 ‘나아져야’하는 불완전한 존재인 걸까? 그런데,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존재가 이 세상에 있을까? 질문들은 순식간에 떠올랐지만 대답은 바로 하지 못하겠더라. 우리는 지금까지 배워 왔잖아, 어려움은 삶의 장애물이야.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뛰어넘고 부숴. 해결 방법은 분명히 있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어.

       

이 책의 번역자는 마지막 장에 있는 헌사 번역이 가장 어려웠대.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고 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주인공이 계속 어려운 이야기, 그리고 이 이야기를 만든 작가의 헌사. 우리는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내 손에 들어온 책이 아네테 멜레세의 그림책 『키오스크』야. 운명답게 그 어떤 예고도 하지 않고 인터넷 서점의 신간 소개 코너를 통해 내게로 왔어. ‘현실이 옥죄더라도 우리는 모두 꿈을 이룰 수 있다’, ‘중요한 건 무엇을 꿈꾸는가 이다.’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문장들이 눈에 띄었어. 열대 과일 맛 사탕을 닮은 선명한 색깔과 주인공의 느긋한 표정에서 여름 휴가를 떠올렸지. 구리디의 『어려워』와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둘의 연관성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앞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대답을 찾았지 뭐야!

      

이 책의 주인공 올가는 키오스크에서 살아. 극장이나 카페에서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는 작은 기계를 키오스크라고 부르지. 하지만 옛날에는 신문이나 잡지, 복권, 간단한 간식을 파는 작은 가판대를 가리켰어. 지금은 찾아보기 아주 어렵지만 예전에는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마다 있었지. 키오스크는 올가의 인생이나 다름없었대. 올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종종 지루한 표정이 스치고 가끔 키오스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보면, 때때로 지치고 답답했을 것 같아. 올가는 석양이 황홀한 먼바다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꿈을 꾸지. 하지만 키오스크를 벗어나는 일은 너무 어려운가 봐. 여러 이유가 있겠지, 언젠가 다시 찾아오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키오스크 바깥에서 큰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어. 키오스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전 재산일 수도 있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하나는 올가에게 키오스크를 벗어나는 일은 아주 어렵다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올가는 꿈을 이루지. 과연 어떤 노력을 했을까?

      


아네테 멜레세, <키오스크>, 미래아이



선생님은 이 책에 대해 인터넷 서점의 신간 소개와는 다른 말을 하고 싶어. 올가가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꿈을 꾸었기’ 때문도 ‘꿈을 찾아 떠났기’ 때문도 아니야. 올가는 어떤 행동도 애써 하지 않았어.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우연에 기대어 가지. 우연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우연한 사건으로 키오스크가 뒤집어지고 우연한 사건으로 강물에 빠져. 그리고 우연히 석양이 황홀한 바다에 닿지. 우연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잖아, 올가는 온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강물의 물결과 바다의 파도에 몸을 맡겼어. 키오스크와 함께 말이야. 조금 전에 말했던 구리디의 헌사 기억나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라는. 선생님은 올가를 보면서 이 헌사를 생각했어.

      

엉킨 실타래와 운명의 책, 그 마지막은 올리비에 푸리올의 『노력의 기쁨과 슬픔』 이야. 지혜 씨, 이 책 읽어 봤어요? 운명답게 그 어떤 예고도 하지 않고 친구의 손을 건너 내게로 왔지. 제목을 보고 정말 놀랐어. 노력이라니. 노력이 뭘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노력의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책이 나타났어! 선생님은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열렬하게 동의하는 몇 부분을 통해 ‘노력’이라는 단어 수집을 마무리했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노력’은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였잖아. 최선 인내 끈기 반복 힘 성공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었지. 그런데 노력 또한 아주 사적인 단어라는 거야. 노력의 모양과 생김새는 단 하나가 아니야. 노력은 기쁘고 슬프며 팽팽하고 느슨하며 거칠고 유연해. 뜀틀은 뛰어넘어갈 수도 있지만, 옆으로 피해갈 수도 있고 들어서 치워 버릴 수도 있지. 나와 너의 노력이 다르고 나의 경험 속 각각의 노력도 달라. 그렇다고 모든 노력이 상대적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해. 먼저 한 걸음 그 다음에 또 한 걸음 멈추지 않고 걸어야 어딘가에 닿을 수 있다는 분명한 뜻이 있지. 그래서 노력은 바다의 파도를 닮았어. 저 멀리에서 너를 향해 다가오는 파도는 모두 다 다른 속도와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씩’이라는 리듬으로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르니까.



올리비에 푸리올, <노력의 기쁨과 슬픔>, 다른

      


지금 무엇인가 어렵다면, 당연한 거야. 우리는 모두 어려움을 가지고 산단다. 다른 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말을 못할 수도 있고 키오스크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 한 글자도 못 쓰겠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고. 하지만 어려움은 너를 구성하는 부분일 뿐이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대신 올가처럼 어려움과 같이 ‘가야 해.’ 노력을 한다면, 그러니까 수많은 우연을 받아들이고 살피면서 리듬을 타고 어려움과 같이 흐르다 보면 너는 석양이 황홀한 바다에 닿을 수 있을 거야. 마지막 책 속에서 찾은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로 오늘 수업을 마칠게.


  

훌륭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오래 생각할 필요도, 아니면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 그냥 받아들인 다음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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