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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Jul 30. 2021

커버링: 스카프 따위는 벗어던지고

#청소년인문학클래스 #단어수집

오늘은 페트리샤 폴라코가 쓰고 그린 그림책 『바바야가 할머니』를 먼저 볼 거야. 지난 시간 우리 같이 이야기 나눈 ‘혐오’가 잘 드러난 텍스트거든. 바바야가 할머니의 외모를 살펴볼까? 커다란 귀, 기다란 손톱, 뻣뻣하고 두꺼운 머리카락, 주름이 가득한 피부. 바바야가 할머니는 ‘맨 마지막 마녀’, ‘전설 속 괴물’, ‘숲에 사는 짐승’이지. 사람들은 바바야가를 혐오해. 하지만 바바야가 할머니는 마녀도 괴물도 짐승도 아니야.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마을에 내려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싶어하지.     

    

결국 바바야가 할머니는 변장을 해. 커다란 귀를 스카프로 감추고 손톱을 짧게 자르지. 마지막으로 숲의 냄새가 남았는데, 흐르는 물에 벅벅 닦아 냄새를 지워. ‘바바야가’가 가지고 있는 동물성을 모두 감추지. 그렇게 ‘할머니’가 되어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랑하는 아이 빅터를 만나서 행복하게 산단다. 하지만 숲속 바바야가에 대한 혐오성 짙은 말들에 상처를 받고 마을의 바깥으로, 바바야가 할머니가 원래 살던 숲으로 돌아가. 그러던 어느 날 빅터가 숲속에 들어왔다가 늑대들에게 공격을 받게 돼. 바바야가 할머니는 아이를 구출해 내고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행복하게 살지.


마지막 장면을 볼까,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돼. 마음이 중요한 거야.” 모두가 웃고 있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이 조금 슬퍼. 할머니의 뾰족한 귀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스카프 속에 숨어서 숨죽여야 하지. 몸에 깊이 밴 숲 냄새를 지우기 위해 깊은 밤 남몰래 씻고 또 씻어야 했을지도 몰라.      


선생님은 바바야가 할머니가 결국 바바야가 할머니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해. 마치 ‘사람 같이 보이는 바바야가’ 할머니의 자리는 있어도, ‘고유한 바바야가’ 할머니의 자리는 끝내 없었던 거야. 누군가는 되물을 수도 있겠다. 이제 마을 사람들 모두 바바야가 할머니의 정체에 대해 알고 또 존경과 사랑까지 얻게 되었다는데, 사람 같이 보이든 고유하든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말이야.

      

바바야가 할머니의 자리는, 뾰족한 귀와 거친 손톱과 숲 냄새가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주어졌어. 마을 대표와 바바야가 할머니가 협상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는 뜻이 아니야. 바바야가 할머니에게 귀와 손톱과 냄새를 감춰야 파티에 초대받을 수 있다고 직접 말한 사람도 하나 없었을 거야. 그저 스카프가 벗겨져 뾰족한 귀가 드러났을 때 바바야가 할머니의 눈을 피하거나, 바바야가 할머니에게 예쁜 스카프를 선물해 주었겠지. 선의로 말이야. “바바야가 할머니도 ‘우리’가 될 수 있어요.” 바바야가 할머니는 끝까지 ‘우리’가 되려고 노력하지, 그래야 마을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으니까. 바바야가 할머니는 커버링을 하고 있어.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커버링’을 발견하고 이름 붙였어. 이렇게 쓰고 보니 커버링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심해 생물이나 우주 행성이고, 어빙 고프먼은 커버링을 최초로 발견한 과학자인 것 같은데?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 그리고 그 배경과 이유에 관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도 있어. 생각이나 행동이 심해 생물이나 우주 행성처럼 시각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발견하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와 우리의 공동체는 그것이 없던 이전처럼 살 수 없게 된단다. 세계를 해석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거든. ‘인권’을 발견하고 이름 붙이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모든 인간에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했지만, 지금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존엄하기에 권리를 가진다고 믿고 있지. 인권을 바탕으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인권을 침해했을 때에는 처벌을 받아. 발견, 그리고 이름 붙이는 행위를 통해 우리와 우리의 공동체는 점점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단다.         


다시 ‘커버링’으로 돌아오자. 어빙 고프먼은 그의 책 『스티그마』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낙인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사람들도 사실은 그 낙인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어. 그리고 그 과정을 커버링이라고 불렀지. 조금 더 찬찬히 설명을 해줄게. 낙인은 특정한 모양으로 만든 쇠붙이를 뜨거운 불에 넣어 달구어 찍는 도장이야. 목재나 가구, 가축에 표시를 하려고 낙인을 찍었어. 뜨거운 쇠붙이로 태워서 표시를 남기는 도장이니 지우기 어렵겠지? 그래서 옛날에는 죄인의 몸에 낙인을 찍는 일도 있었어. 지금은 지울 수 없는 불명예나 나쁜 평판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어. 어빙 고프먼이 커버링을 설명한 문장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낙인’은 바로 불명예나 나쁜 평판이야.


우리 명예와 평판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자. 명예나 평판은 본래 나의 것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내린 평가나 판단이 쌓여 생기는 거야. 칭찬이나 비난이 하나일 때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날아가는데, 쌓이면 쌓일수록 힘을 발휘하지. 그 힘은 아주 세서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을 수 있어. 문제는 평가나 판단을 내리는 기준이 문화와 관습을 따른다는 거야. 문화와 관습은 불변하는 사실이나 진실이 아니야. 끊임없이 사라지고 생겨나고 뒤섞이고 뒤집히거든. 그래서 절대적인 옳음이라고 할 수 없어. ‘아름다운 몸’이라는 평판은 쉬지 않고 달라져 왔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렴.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상의 몸과 지금 TV에서 볼 수 있는 연예인의 몸은 아주 많이 다르지.     


불명예와 나쁜 평판은 문화와 관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쌓이고 쌓여야 힘을 얻어. 그래서 낙인은 ‘지금 여기’를 사는 ‘다수’가 혐오하는 대상을 향하지. 우리 ‘혐오’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 기억하니? 아시아인, 흑인,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들은 부족하거나 잘못된 아시아인, 흑인,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라는 낙인을 가지고 산단다. 그리고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말라는 사회적 압박을 받지.       


커버링은 나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지만 혹은 숨길 수 없지만, 두드러져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든 행동을 말해. 어빙 고프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이야기를 통해 낙인과 커버링에 대해 더 자세히 말했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사용했어.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의 휠체어는 보이지 않았지. 구글에 루스벨트 대통령을 검색해 이미지를 찾아보면, 다리가 드러나지 않아. 거의 대부분 의자에 앉아있거나 책상이나 자동차 뒤에서 상반신만 찍은 사진들이야. 회의를 할 때에도, 참석자들이 회의 장소로 오기 전에 먼저 테이블 뒤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고 해. 모두가 그의 장애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장애가 두드러지지 않도록 행동했지. 주류 혹은 다수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장애인이고, 장애를 결핍이라 여기지. 그 기준에 따라 장애는 대통령의 강하고 반듯한 이미지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을 거야.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도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커버링했어. 발성 교정과 연습을 통해 만든 낮고 굵은 목소리로 연설을 했지. 여성은 약하고 의존적이고 감정적이며 남성은 강하고 독립적이고 이성적이기 때문에 정치는 남성의 것이라는 주류의 기준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여성성을 연상시키는 목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지.      


작고 크게, 우리는 모두 커버링을 하면서 살아. 선생님 역시 커버링을 해왔고 하고 있어. 마른 몸과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특정한 성격을 연상시키잖아, 까다롭다거나 신경질적이라는. 처음 만난 상대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까 봐 부단히 노력하지. 더 많이 웃고 유쾌하게 말해. 거절이나 싫은 소리도 안 하고 배가 부르거나 먹기 싫은 음식이 있어도 그냥 먹어. 아이와 함께 외출했을 때에는 혹시라도 ‘맘충’이라는 평가를 들을까 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있어.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아이의 말과 행동까지도 엄격하게 제한해.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를 입에 달고 다니지. 가장 오래, 그리고 자주 커버링했던 정체성은 생리하는 몸이야. 생리통이 심해서 안색도 표정도 나쁘기 마련인데,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행동하려고 애쓰지. 화장실에서 일회용 생리대 포장을 뜯을 때에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뜯는 ‘매너’를 배웠고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그날이나 마법이라고 돌려 말해야 했어. 생리하는 몸은 오염된 몸이 아닌데 말이야.      

 

우리는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무조건 나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삶을 염려하고 한발 물러서는 일은 서로를 위해 꼭 필요한 존중의 태도야. 배려하고 예의를 배우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지. 하지만 장소와 역할에 알맞은 행동을 하는 것과 ‘나 아님’을 연기하는 행동은 완전히 달라. 빠르게 지치고 오래 우울하지. 커버링은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틀렸다는 평가와 판단에서 시작하거든. "우리는 정상이고 너는 비정상이야."  


바바야가 할머니의 정체성은 기준에 따라 부서지고 조각났어. 전체로 존재할 수 없지. 그런데,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그 기준은 무엇일까? 마을 사람들과 바바야가 할머니 사이 -  이 세상 모든 몸들을 동그란 귀와 뾰쪽한 귀, 매끈한 손톱과 거친 손톱, 마을 냄새와 숲 냄새 단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까? 동그란 귀와 매끈한 손톱 사이에는 아주 동그란 귀와 조금 덜 동그란 귀와 더 뾰족한 귀와 아주 뾰족한 귀들이 있잖아. 매끈한 손톱과 거친 손톱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손톱이 있지. 마을의 주변부, 거의 숲에 맞닿아 있는 집에서는 마을 냄새가 날까 아니면 숲 냄새가 날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정상은 그 어디에도 없어. 우리의 귀와 손톱과 냄새는 모두 다를 테니까.      


그래서 그림책 『바바야가 할머니』의 마지막 장면은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 돼. 나는 바바야가 할머니가 스카프 따위는 벗어 던지고 거친 손을 씩씩하게 흔들며 마을 광장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치마를 입은 남자, 근육이 울퉁불퉁한 여자, 뛰어다니는 아이, 그늘에 숨은 아이, 휠체어를 탄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든 있는 그대로 바바야가 할머니 곁을 지나가지.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몸을 데우고 있는 나도 있을 거야. 생리 중이라서 휴식이 필요하거든.  너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을 광장에서 만나! 서로의 말간 얼굴을 보고 마음껏 소리 내어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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