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제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역사 연구는 원인에 관한 연구
우유를 뚜껑이 덮인 냄비 안에서 끓이면 넘치게 된다. 이것을 우유의 끓어 넘치는 성질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이는 웬만큼 사실이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럴 경우에 자연과학자라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관해 읽거나 심지어는 쓰는 사람들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가 전쟁을 원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하는 말도 웬만큼 사실이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것이며, 그러면서 자신을 역사가로 부르는 무례를 범해선 안 된다.
역사 연구는 원인에 관한 연구이다. 위대한 역사가-혹은 더 폭넓게 말하자면 위대한 사상가-란 새로운 것들에 관해서 또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왜?’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인과적 연구방법의 역사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Herodotus 기원전 484년~425년)는 자신의 책에서 “그리스인들과 야만인들의 행위에 관한 기억을 보존하는 것, 그리고 특히, 무엇보다도, 그들이 서로 싸운 원인을 밝히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원문은 "이 글은 할리카르나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 보고서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헤로도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이다. 서양 문화에서 그는 "역사학의 아버지"로 여겨진다(‘키케로’가 한 말이다). 그의 고향은 도리아 인에 의해 건설된 소아시아 지방의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 현재 튀르키예의 남서쪽 해안 도시인 보드룸)이며 그의 일족과 함께 사모스섬으로 망명하였다가 나중에 귀국하면서 BC 445년경에는 아테네로 가서 살았고, 말년에는 아테네가 건설한 남이탈리아의 식민지 투리오이로 가서 그곳 시민이 되었으며, 거기에서 여생을 마친 것 같다.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440년경에 쓴 《역사》는 서양 최초의 역사책으로 여겨진다. 전 9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항쟁 유래로부터 페르시아 전쟁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저술되어 있는데, 제9권은 미완성이다. 좁게는 그리스 도시 국가들과 페르시아 제국 사이의 전쟁을 다루었지만 헤로도토스가 여행한 여러 지역의 문화, 풍습, 역사도 폭넓게 다루었다. [출처: 위키백과]
이런 방식을 따른 헤로도토스의 제자는 고대 세계에서는 거의 없었고, 투키디데스(Thucydides 기원전 465년경~기원전 400년경)조차도 인과관계를 명백히 인식하지 못했다고 비난받아왔다.
근대의 인과적 연구방법
그러다가, 근대적인 역사서술의 기초가 마련되기 시작한 18세기에,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년~1755년)는 《로마인의 위대함과 쇠락의 원인에 대한 고찰》에서 ‘모든 군주정에 작용하여 그것을 세우고 유지하고 전복하는 도덕적인 또는 물리적인 일반 원인들이 있다‘는 원칙, 그리고 ’발생하는 모든 것은 이 원인들에 좌우된다.’라는 원칙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1748년에 《법의 정신》을 발표하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법학 연구에 처음으로 역사 법학적, 비교 법학적, 사회학적 방법을 적용하여 법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법의 정신》은 당시 정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여기서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라는 과거 이론가들의 고전적 구분법을 버리고 자신의 고유한 분석틀에 따라 각 정부형태들의 활동원리를 정의했다. 그는 공화정은 덕, 군주정은 명예, 독재정은 공포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 최초로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으로 권력을 나누는 삼권분립설, 입헌 군주 제도론 등을 전개하는 한편, 전제주의를 극력 공격하면서 법은 각국의 여러 환경에 적합한 고유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인권 선언과 미국 헌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법의 정신》에서 ‘이 세계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결과들이 맹목적인 운명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환상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다. 인간의 행동은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어떤 법칙이나 원리를 따른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로부터 거의 200년 동안 역사가와 역사철학자들은 '역사적 사건의 원인과 그것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인류의 과거 경험을 체계화하려는 일에 열심히 매달렸다.
최근에 들어와 사정은 다소 변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역사의 ‘법칙’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원인(cause)’이라는 말 대신에 ’설명(explanation)’이나 ‘해석(interpretation)’, 상황 논리(logic of situation)’나 ‘사건의 내적 논리(inner logic of events)’라는 용어를 쓰거나, 아니면, (왜 그것이 발생했는다라는) 인과적 연구방법에 반대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발생했는가라는) 기능주의 연구방법에 찬성하고 있다.
어떤 원인을 우선하는가의 문제
역사적인 사건의 명확한 원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역사가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에 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원인의 문제’에 대한 역사가의 연구방법의 첫 번째 특징은, 대체로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개인적 원인 및 장기적 원인과 단기적 원인 등 여러 가지 원인들을 제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여러 원인들을 마구 주워 모을 것이다.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은, “어느 하나의 원인과 뒤섞여 효과를 발휘하는 다른 원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 하나의 원인의 작동만을 고찰하는 일은 가능한 한 반드시 피하도록 주의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역사가의 연구방법의 두 번째 특징은, 그러한 원인들을 정리하고 궁극적인 원인을 결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역사가라면 자신이 수립한 원인들의 목록을 앞에다 놓고서는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는, 원인들 간의 상호관계를 고정시키게 될 일정한 위계질서를 수립하거나 혹은 어떤 원인이나 어떤 범주의 원인들이 ‘결국에 가서는’ 또는 ‘최종적인 분석에 따라서’ 궁극적인 원인, 곧 모든 원인들의 원인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직업적인 강박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연구주제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다.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이끌어내는 원인을 통해서 알려지게 된다. 기번은 로마 제국의 쇠퇴와 몰락의 원인을 야만성과 종교가 승리한 탓으로 돌렸고, 19세기 영국의 휘그 역사가들은 영국의 힘과 번영이 증대한 것은 입헌적 자유의 원리를 구현하는 정치제도가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원인의 다양화와 단순화
앙리 푸앵카레는, 과학이 ‘다양성과 복잡성을 향해’ 그리고 동시에 ‘통일성과 단순성을 행해’ 전진하고 있으며, 이 이중적이면서 명백히 모순적인 과정은 인식의 필요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역사가는 자신의 연구를 확장하고 심화시킴으로써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점점 더 많이 끊임없이 축적한다.
그러나 역사가는 과거를 이해하려는 충동을 가진 까닭에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답변들을 단순화하는 일, 답변들의 상하관계를 정하는 일, 무질서한 사건들과 무질서한 특수 원인들에 일정한 질서와 통일을 부여하는 일 등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도 이렇듯 이중적이면서 명백히 모순적인 과정을 통해서 전진하는 것이다.
역사에서의 결정론과 우연론의 등장
역사에는 결정론과 우연론의 논쟁이 있다. 전자에는 ‘헤겔의 (이성의) 간계(奸計)’*라는 꼬리표가, 후자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 헤겔 철학에서, 반이성적인 정열이 세계사를 진행하는 힘이 되지만 사실은 세계 이성(世界理性)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를 이용하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르는 말.
칼 포퍼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열린사회와 그 적들》, 《역사주의의 빈곤》이라는 대중적인 성격의 책들을 썼는데, 그 주요한 공격 목표들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이른바 ‘결정론적’(소위 ‘역사주의(historicism)’라는 무례한 이름으로 한데 묶였다고 한다) 역사철학들이었다.
한편 1954년 이사야 벌린 경은 《역사적 필연성》을 출간하면서 그 역시 마르크스와 헤겔의 역사주의를 비난했다. 그는 그 이유를, 그것이 인간의 행위를 인과관계로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있고, 샤를마뉴나 나폴레옹, 스탈린 같은 인물들을 단죄해야 하는 것이 역사가들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회피하도록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에서의 결정론
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있고 그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달라질 것이 없었다면, 그 사건은 다른 식으로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신념’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결정론은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행위의 문제이다. 원인도 없이 행동하며 따라서 그 행동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인간은 사회의 밖에 존재하는 인간처럼 하나의 추상이다. ‘인간사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포퍼 교수의 주장은 의미가 없거나 거짓이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자명한 명제는 우리 주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의 한 조건이다. 카프카 소설의 몽환적인 성격은 그 어떤 사건도 무엇인가 명백한 원인 혹은 확인될 수 있는 원인이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 이것은 인격을 완전히 분열시키게 된다.
인간의 행위가 원칙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하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 사람(예를 들어 아침에 만나서 갑자기 거칠게 욕설을 퍼붓는 스미스)에 대해 그의 의지의 자유로움과 인간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케 해 주는 증거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행동에 대해 거기에 틀림없이 무엇인가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겉으로는 아무런 이유도 없어 보이는 스미스의 행동의 원인을 진단해보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관한 논리적인 딜레마는 실제생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역사가도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동에 원칙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는 자유의지를 거부하지 않으며, 필연성의 문제에 대해 골치 아파하지도 않는다. 역사가들에게 ‘필연적’이라는 말은 그 사건에 대해서 기대하게 만드는 여러 요인들의 결합이 엄청나게 강력했다는 뜻이다. 역사가들은 실제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것이 필연적이라고 추정하지 않는다.
역사가들은 ‘선택은 자유’라는 가정 위에서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취할 수 있는 여러 대안적 경로들을 논의할 때가 많다. 사건이 다르게 발생했다면 그것에 선행하는 원인도 달랐어야 했다는 형식논리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면, 역사에서 필연적인 것이란 없다.
카는, 한 사람의 역사가로서 자신은, 인생은 더 단조로워질 것 같지만, ‘필연적인(inevitable)’, ‘불가피한(unavoidable)’, ’도망갈 수 없는(inescapable)‘, 심지어는 ’어쩔 수 없는(ineluctable)’이라는 말들을 쓰지 않고서도 살아갈 준비가 완전히 되어 있다고 말한다.
필연성에 대한 비난
사실 필연성을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최근 필연성에 대한 비난이 맹렬히 일어난다. 카는, 그 출처는 ‘그랬을지도 모른다(might-have been)’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학파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거의 전적으로 현대사 분야에 몰려 있는데, 이들은 (중세나 근세의 사건들인) ‘장미전쟁’이나 노르만인의 정복이나 미국 독립전쟁 같은 일에 대해서는 사실상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듯이 서술해도, 그 역사가를 결정론자라고 비난하거나 정복왕 윌리엄이나 미국의 반란자들이 패배했을 수도 있을 또 다른 가능성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카가 1917년 러시아 혁명에 관해서 서술하면, 이들은 카가 “발생할 것을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암암리에 묘사했고 발생했을지도 모를 다른 모든 것들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공격한다.
카는, “역사에서 그랬을지도 모를 것들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결정론과는 관계가 없다. 결정론자는 단지 이런 일들이 발생했으려면 그 원인들도 달랐어야만 했을 것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또 역사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든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던 시기를 기억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기정사실(fait accompli)‘을 다룸으로써 그 선택의 여지를 제거해 버린 역사가의 태도를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현대사의 골칫거리라고 이야기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필연성에 대한 공격에 또 하나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은 “역사란 전체적으로 우연의 계속이라는, 즉 우연의 일치에 의해서 결정되고 가장 뜻밖의 원인에서만 유래하는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이론이다. 악티움 해전의 결과도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그런 종류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얼이 빠진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악티움 해전은 안토니우스의 내전 기간에 일어난 해전으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연합 함대와 옥타비아누스의 함대가 교전했다. 기원전 31년 9월 2일 그리스의 악티움 곶 인근 이오니아해에서 전투가 발발했다.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는 로마와 로마의 영토에 대한 옥타비아누스의 세력을 확고히 하게 했다. 그는 프린켑스 ("제1 시민")라는 칭호를 택했고 기원전 27년에는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 ("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 칭호는 후세에 그의 이름이 되었다. 아우구스투스로서, 그는 복원한 공화정의 지도자의 과시적 요소들을 자제했으나, 역사가들은 그의 권력 강화와 앞서 언급한 존칭들의 채택을 보통 로마 공화정 시대의 종말이자 로마 제정 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출처 위키백과]
또한 바예지드(I. Bayezid 1347~1403 오스만 제국의 술탄)가 관절의 염증 때문에 중앙 유럽으로 진출할 수 없었을 때, 기번은 ‘한 인간의 단 한 개의 근육을 엄습한 매서운 통증이 여러 민족의 불행을 막거나 지연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1920년 가을에 그리스 국왕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원숭이에게 물려 사망했을 때, 이 우연은 연이은 사건들을 일으켰는데, 이에 대해 윈스턴 처칠은 ‘그놈의 원숭이가 물었기 때문에 25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했다.
1923년 가을,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스탈린(당시 ‘반트로츠키 삼두동맹’) 등과 논쟁하고 있던 중요한 시기에 오리 사냥을 하다가 열병에 걸려서 움직일 수 없게 된 트로츠키는 “누구나 혁명이나 전쟁을 예견할 수 있지만, 가을철의 야생오리 사냥 여행의 결과를 예견하기란 불가능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역사에서 이러한 우연들이 보여주는 인과적 전후관계는 역사가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자 하는 전후관계를 방해한다, 즉 그것과 충돌한다.
카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후관계가 그것과는 다른 아무런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전후관계에 의해서 언제라도 분쇄되거나 굴절되기 쉬울 때, 우리는 어떻게 역사에서 원인과 결과의 일관된 전후관계를 발견하고 어떻게 역사에서 무언인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우연의 역할’에 관한 주장의 기원
폴리비우스(그리스 출신의 로마 역사가)는 얼마간 의도적으로 ‘역사에서의 우연의 역할’에 관한 주장을 펼쳤던 최초의 역사가였다고 생각된다 ; 그리고 영리하게도 그 이유를 밝혀낸 것은 기번이었다.
기번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로마의 한 속주로 전락하게 되자, 로마인의 승리를 로마 공화정의 우월성이 아니라 행운 탓으로 돌렸다‘고 말했다. 타키투스 역시 자신의 조국이 쇠퇴하던 시기의 역사가였지만, 그도 우연을 폭넓게 성찰하는 일에 골몰했던 또 한 사람의 고대 역사가였다.
영국의 저술가들이, 역사에서의 우연의 중요성을 다시금 주장하게 된 것은, 불안과 근심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던 시기부터였는데, 그런 분위기는 20세기와 함께 시작되어 1914년 이후에는 뚜렷해졌다.
1909년 존 베리는 《역사에서의 다윈주의(Darwinism in History)》라는 논문에서 ‘우연의 일치라는 요소‘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그 요소는 상당한 정도까지 ’사회가 진화하는 동안의 사건들을 결정하는 데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1916년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제목의 또 다른 논문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다.
영국에서 역사를 우연의 연속으로 보는 이론이 유행하게 된 것은, ‘실존은 어떠한 원인도, 이유도, 필연성도 가지지 않는다’(사르트르의 《존재와 무》)고 설파하는 프랑스의 찰학자들이 등장했던 시기와 일치했다.
독일에서는 마이네케가 생애의 끝 무렵에 역사에서의 우연의 역할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지난 40년 동안의 독일의 국가 재앙은 “독일 황제의 허영, 힌덴부르크가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 히틀러의 편집광적인 성격 등 일련의 우연한 사건들”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했다.
역사에서의 운이나 우연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들이 역사적 사건들의 봉우리가 아니라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집단이나 국민에게서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험성적이란 모두 운수 나름이라는 생각은 열등반에 배치될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유행하게 마련이다.
우연론에 대한 비판
이러한 우연의 침투에 맞서 역사의 법칙을 수호하려고 했던 최초의 인물은 분명히 몽테스키외였다. 그는 로마인들의 위대함과 쇠락에 관해서 쓴 저작에서 ‘어떤 전투가 특정한 원인이 되어 마치 그 전투의 우연한 결과처럼 한 국가가 멸망했다고 해도, 단 한 번의 전투로 이 국가를 몰락시킨 어떤 일반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이에 관해 어떤 편지에서 단 한 번 언급했다고 한다.
세계사는, 만일 그 안에 우연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면, 매우 신비스러운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이 우연 자체는 본래 일반적인 발전 경향의 일부이며, 다른 형태의 우연들에 의해서 상쇄된다. 그러나 발전 경향의 가속과 지체는 이러한 ‘우연들’에 좌우되며, 그 우연들에는 처음부터 어떤 변화의 선두에 있는 개인들의 ‘우연한’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트로츠키는 하나의 기발한 비유를 통해서 우연들이 상쇄되고 스스로 소멸한다는 이론을 재차 강조했다.
역사의 전 과정은 우연적인 것을 통해서 역사법칙이 굴절되는 그런 과정이다. 생물학 용어를 빌리면, 역사법칙은 우연의 자연도태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카는 오늘날 역사에서의 우연의 역할은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비판하며, 동시에 역사에서의 우연은 단지 우리의 무지의 표지-그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한 하나의 명칭-일 뿐이라는 견해도 마찬가지로 적절하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어떤 일에 불운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원인탐구 회피에 해당하고, 지금까지 우연이라고 간주되어 오던 어떤 사건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원인에 대한 선택 체계
역사가와 역사에서의 ‘원인’과의 관계는 역사가와 역사에서의 ‘사실’의 관계와 똑같이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성격을 가지며, 연구과정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여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에서 역사가 시작되고, 모든 사실이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 사이의 구별이 엄격하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어떠한 사실도 그것의 적절성과 중요성이 밝혀지면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듯이 결국 역사는 역사적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의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역사에서 원인 역시 역사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하며, 그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배열을 결정한다. 원인의 등급화(원인들간의 상대적 중요성)는 역사가의 해석의 본질이다.
역사에서 역사의 경로를 바꾸게 한 우연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역사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이나 중요한 원인들에 대한 역사가의 순위 여부에 끼어들지는 못한다.
역사가는 과거의 경험에서, 즉 그가 입수할 수 있을 만큼의 과거의 경험에서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을 가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부분들을 추려내어, 그것으로부터 연구의 지침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인간의 정신은 ‘관찰된 “사실”이라는 넝마주머니를 샅샅이 훑어보고 나서, 그 관찰된 사실들 중에서 부적당한 것은 버리고 적당한 것은 골라내어, 그것들을 이어붙이고 본을 떠서 비로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의 누비이불로 꿰맨다‘는 것이다. (l. Paul, The Annihilation of Man)
이러한 과정은 철학자들은 물론 일부의 역사가들마저 곤혹스럽게 만들면서 충격을 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실제적인 일상사의 보통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아래 보기를 살펴보자.
평상시의 음주량 이상을 마시고 파티에서 돌아오고 있던 존스는 거의 앞으로 분간할 수 없는 컴컴한 길모퉁이에서, 나중에 브레이크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차로 로빈슨을 치어 죽였는데, 로빈슨은 마침 그 길모퉁이에 있는 가게에서 담배를 사기 위해서 길을 건너던 중이었다.
이 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음주 운전, 결함 있는 브레이크, 컴컴한 길모퉁이 등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당시 로빈슨의 담배갑에 담배가 있었던들 로빈슨은 그 길을 건너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로빈슨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이를 받아 들일 수 있을까?
거기에는 우리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 라든가 거울속으로(Through the Looking Glass)에서 발견하는 것과 같은 가차 없는 논리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의 방식이 아니다.
탤컷 파슨스의 말을 빌리면, 역사는 실체에 대한 인식적 지향들의 선택체계(selective system)일 뿐만 아니라 인과적 지향들의 선택체계이다. 무수한 인과적 전후관계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을 추출해 내고 그것을 자신의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의 패턴에 합치시키는 것은 역사가의 능력이다.
그 밖의 다른 인과적 전후관계들은 우연적인 것으로서 배제되어야 한다. 그 전후관계 자체가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합리적인 해석에 적합하지 않으며 과거나 현재에 대해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현실적인(real)’ 원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카는, 이에 관해 무수히 인용되지만 무수히 오해되고 있는 헤겔의 《법철학(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격언, 즉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인 것(what is rational is real, and what is real is rational)’이라는 격언을 인용한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원인의 구별 기준
우리는 한 사건의 원인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합리적이며 현실적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원인들은 비합리적이며 우연적이라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구별할까?
이성적 사고의 능력은 보통 어떤 목적을 위해서 발휘된다. 우리는 일정한 목적에 기여하는 설명들과 그렇지 못한 설명들을 구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에서의 원인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된다.
합리적인 원인은 다른 나라, 다른 시기, 다른 조건에서도 언젠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결국 유익한 일반적인 원인이 되며,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키고 심화시킨다는 그 목적에 기여한다. 그러나 우연적인 원인은 일반화될 수 없으며 어떠한 결론과 교훈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이렇듯 역사에서 인과관계를 다루는 데에는 어떤 목적이 고려되어 있는가의 ‘관념’이 개입되며 이 관념은 필연적으로 ‘가치판단’을 포함하는 ‘해석’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1920년대의 마이네케 역시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는 가치와의 연관 없이는 불가능하며, 인과관계의 연구의 이면에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항상 가치의 추구가 놓여 있다.’고 말했다.
역사가의 미래에 대한 관심
역사에서 과거에 대한 관심과 미래에 대한 관심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역사는 전통의 계승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전통은 과거의 관습과 교훈을 미래에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기록은 미래의 세대를 위해서 보존되기 시작한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하위징아(1875~1945)는 ‘역사적 사유란 항상 목적론적이다’라고 말한다.
최근 찰스 스노 경은 러더퍼드에 관해서 ‘모든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러더퍼드는 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거의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뼛속 깊이 느꼈다’고 말했다(John Raymond의 ‘The Baldwin Age’ 중에서). 훌륭한 역사가라면 미래에 관해서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미래를 뼛속 깊이 느끼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가는 ‘왜?’라는 질문에 더하여 ‘어디로?’라는 질문도 제기한다.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