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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세계 (4)

구리(Copper) <보이지 않는 연결된 세계>

by Andy강성
Part 4 구리(Copper)
<보이지 않는 연결된 세계>


10장 구리의 시대

어둠에서 빛으로, 전력망의 탄생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가슴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품는 겁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집에 전기를 들이는 겁니다." 1940년대 초반, 테네시주 시골 교회에서 어느 농부가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 자신의 농장에 전기가 막 들어온 참이었다. 그는 저녁이 되면 작은 언덕에 올라가 집, 헛간, 훈연장에서 흘러나오는 환한 빛을 보면서 감격을 금치 못했다.


이 일화는 당대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미국의 도시부터 시골까지 전기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의 생활상이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가 얼마나 급작스럽고 강렬했는지는 현대인의 감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전기가 '하나님의 사랑' 다음으로 중요해진 것은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면을 빠르게 개선했기 때문이다. 전기를 생산하여 각 가정으로 보내는 물질, 이러한 혁명을 초래한 물질은 바로 ”구리“였다.


구리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이 반짝거리는 금속은 고대 역사의 상징이자 미래의 열쇠이다. 광산 재벌 로버트 프리들랜드(Robert Friedland)는 이렇게 말했다. "생태 문제와 환경 문제를 고려한다면 모든 해결책은 구리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블룸버그 텔레비전 출연 중인 프리들랜드 출처 유튜브]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21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구리는 새로운 석유"라고 선언했다. 근본적 중요성에서 구리를 능가할 금속은 없다. 다른 금속들은 구리만큼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리는 열과 전기 전도성이 우수하다. 연성이 매우 커서 돌돌 말거나 늘이거나 와이어로 꼬아도 끊어지지 않는다. 강도, 부식에 대한 내성, 재활용 적합성 모두 뛰어난 금속이다.


구리는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위대한 기본 물질이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만약 구리가 없다면, 우리는 글자 그대로 어둠 속에 내몰릴 것이다. 강철이 세상의 뼈대를 세우고 콘크리트가 살을 붙인다면, 구리는 문명을 이루는 신경계라 할 수 있다. 구리로 만든 회로와 전선이 없다면 세상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강하고 무거운 자석을 순수한 구리로 만든 순동판 위에 떨어뜨려보라. 공중에 매달린 듯 서서히 회전하던 자석이 순동판 위에 부드럽게 안착한다. 이것은 전자기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결과이다. 실제로 구리 옆에서 자석을 통과시키면 전류를 유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현대의 가장 중요한 힘이 생성되는 것이다.

[구리와 자석 출처 유튜브]

현대 전력망을 이루는 발전기와 변압기는 주로 강철과 구리로 만들어졌는데,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발명품으로 손꼽혀야 마땅하지만 컴퓨터나 제트 엔진에 밀려서 무시당하기 일쑤이다. 물질의 세계에서 이런 일은 흔하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저평가된 경제적 사건을 이야기할 때 전기모터의 탄생을 빼놓을 수 없다. 공장에서 투박하고 비효율적인 증기 엔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전기모터가 들어왔다. 이것만으로도 미국의 제조업 생산성이 1930년대에 두 배나 증가했고, 1960년대에는 또다시 두 배 증가했다.


전기가 현대 생활 전반에 미친 영향은 더 어마어마하다. 전기모터는 광산에서 암석을 분쇄했고, 전차와 기차의 바퀴를 굴러가게 했으며, 엘리베이터를 작동시켜서 마천루 시대를 열고, 건물에 냉난방을 제공하여 이 세상 전역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구리가 없다면 이 결정적이고 필수적인 에너지를 만들거나 배포할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1831년에 마이클 패러데이가 사용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대부분의 전기를 생산한다. 자석 주변에서 구리를 회전시켜서 운동을 전기로 변환하는 방식 말이다.

[패러데이와 전자기 유도 장치 출처 구글 이미지]

오늘날 구리 코일에 연결된 터빈들은 패러데이가 구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효율적이다. 그 터빈들은 석탄이나 우라늄, 또는 연소 가스에 의해 가열된 증기로 돌아가는데, 자석으로는 구리로 된 전자석을 종종 쓴다. 작동 원리는 그대로이고, 중심에 있는 금속도 마찬가지이다.


영국 서머싯주에 건설 중인 원자력발전소 힝클리포인트 C(Hinkley Point C)에는 강력한 증기 터빈이 있다. 그 주인공은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아라벨(Arabelle) 증기 터빈으로, 중심부가 구리 코일로 된 최첨단 발전기이다. 와인딩이라고 부르는 코일은 1분에 1,500회씩 회전하는 바퀴의 빠른 운동을 각 가정에 흐르는 전류로 변환하는 핵심 작업을 수행한다.

[힝클리포인트 C의 터빈홀과 증기 터빈 출처 구글 이미지]

이 패러데이 방식과는 다른 식으로 전류를 얻는 태양광 패널조차도 내부에 다량의 구리를 갖고 있다. 태양광 패널에 흐르는 전류 대부분은 구리 덕분에 존재한다. 우리 주변의 어떤 장치에서나 스위치를 누른다면 구리의 힘이 소환된다. 만약 세상에서 구리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탱하는 전기 인프라도 같이 사라질 것이다.


구리가 전기 전도성을 가진 유일한 금속은 아니다. 알루미늄도 전기 전도성이 높은 편이다. 알루미늄은 구리보다 훨씬 가벼우므로, 지하에 매설하는 대신 높이 매달려야 하는 전선에 장거리 고압 케이블로 종종 사용된다. 은은 구리보다 전기 전도성이 더 높다. 강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연성은 구리 못지않다.


물질 세계에 반복되는 주제가 여기서도 등장한다. 콘크리트와 강철의 사례처럼, 어떤 물질의 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편재성이다. 은은 희귀하다. 구리는 철만큼 흔하진 않지만 은보다는 훨씬 많다. 그래서 인류는 그 어떤 산업용 금속보다 오랫동안 구리를 채굴하고 정제한 역사가 있다.


구리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류가 구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전기의 발명보다 훨씬 앞선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쯤, 아르메니아-튀르키예-이집트를 잇는 삼각형 어딘가에서였을 것이다.


키프로스에서는 지금도 몇몇 산에서 화석화된 검은색 금속 찌꺼기가 발견되는데, 이는 수천 년 전에 액상 구리를 얻기 위해서 동광석(copper ore)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새까맣게 타버린 폐기물이다.

[키프로스와 동 제련 유적 출처 구글 이미지]

석기에서 금속 도구로의 전환은 동기시대(Copper Age) 혹은 금석병용시대(Chalcolithic Age)를 거쳐 구리에 주석을 첨가하는 청동기 시대가 도래했고, 철이 청동기를 능가하면서 철기시대가 새롭게 열렸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중요한 구리의 진정한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한동안 구리 무역의 중심은 지금의 독일 작센 땅이었다. 콘크리트와 유리를 제조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작센의 장인들은 구리 제조에 엄격한 규율을 부과하고 최초의 광산학교를 세웠으며, 비공식적 거래를 하나의 직업으로 탈바꿈했다.

[작센 Mining Museum 출처 구글 이미지]

영국은 고대 켈트인과 로마인이 구리와 주석을 채굴하던 곳이었으며, 19세기 중반에는 세계 구리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산량 대부분은 잉글랜드 남서부 콘월의 광산에서 나왔다. 하지만 영국이 구리 무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구리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은 전 세계에 무기를 판매하는 군수 산업이 존재했는데 고품질의 청동이 주력 상품이었다. 18세기 무렵, 영국 해군은 전함의 선체를 구리로 덮었다. 구리로 덮인 전함은 더 빠르고, 조종이 쉬웠으며, 수온이 상승하면 자주 발생하는 부식과 부패에도 잘 견디며 바다에서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영국은 그 많은 구리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구리가 거의 나지 않는 스완지(Swansea)가 구리 생산의 세계적 수도가 된 사연은 물질 세계에서 망각된 또 하나의 이야기이다. 스완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는 경제 모델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곳이다.

[스완지의 구리 제련 공장 출처 구글 이미지]

스완지에 구리는 거의 없었지만, 대신 석탄 매장량이 풍부했다. 당시 구리를 제련하려면 동광석 1톤당 석탄 3톤이 필요했다. 그래서 광산기업들은 정제 작업을 위해 스완지로 동광석을 보내기 시작했다.


스완지의 정제소들은 다른 나라의 정제소들보다 정제 실력이 뛰어났다. 쿠바, 호주, 뉴질랜드, 미국, 페루 등 전 세계의 동광석이 모두 스완지로 향했다. 한동안 스완지에서는 전 세계 구리의 약 65퍼센트를 정제했다.


시내 중심에서 반경 8킬로미터 안에 무려 36개의 탄광과 12개의 구리 정제소, 각종 금속 공장이 있었다. 공장들은 유황 구름을 계속 뿜어댔고, 주변에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쌓였다. 영국에서 가장 발달한 산업 지역인 동시에 가장 오염된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스완지의 공장들을 그린 그림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러나 19세기가 지나면서 스완지의 구리 무역 지배력은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무너졌다. 미국의 초대형 신규 광산들이 자체적으로 구리를 정제하기 시작하면서 웨일스의 정제소들은 하나씩 문을 닫다가 결국 모두 폐쇄되었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스완지의 시대는 현대 금융시장에 희미한 흔적을 남겼다. 많은 금속이 3개월 단위로 가격이 책정되는데, 이는 칠레에서 스완지까지 구리를 운반하는 데 걸린 기간에서 비롯한 관행이다.


웨일스의 구리 산업이 쇠퇴한 다른 이유도 있다. 스완지 구리는 선체 외장, 청동 혹은 황동(brass)을 합금하는 데는 완벽한 재료였지만 제2의 구리시대, 즉 전기의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기는 어떻게 보급되었는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도시를 전기로 연결하기 시작했고 대서양을 건너는 케이블을 만드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초기의 전선 제조사들은 스완지의 용광로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구리로 겨우 전선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토머스 에디슨과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가 런던과 뉴욕에서 구리 코일을 사용한 대형 발전기를 도입한 세계 최초의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본격적인 전기의 시대가 도래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그의 회사 출처 구글 이미지]

스완지 구리는 전기 전도체로서 수준 미달이라는 사실이 곧 명백해졌다. 그리하여 구리선 제조사 역시 반도체 제조사들이 초기에 직면했던 것과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웨이퍼의 원자 구조가 덜 순수할수록 전자들이 통과하기 어려웠는데, 이 같은 문제가 스완지 구리선에서도 발생했다.


에디슨이 더 나은 품종의 구리를 찾아 나섰던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영국과 미국의 몇몇 광산기업에서 해결책을 찾아냈다. 이들은 동광석을 녹여서 구리를 분리하는 기존의 방법 대신 전기분해로 구리를 얻었다. 동광석을 용액 속에 넣고 전류를 흐르게 하는 전기분해 방식으로 정제된 구리는 훨씬 높은 순도를 자랑했다. 이렇게 얻은 순수한 구리만이 미래에 전력을 제공할 첨단 전기모터와 발전기에 적합한 유일한 금속이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이 새로운 기술은 스완지 정제소들에는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지만, 막 태동하던 전기 산업에는 아주 시의적절했다. 전기 산업이 초순수 구리를 막 필요로 했던 때, 금속 산업은 그 수요를 공급할 수 있었다.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발전소에서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할수록 정제소들은 더 많은 전류를 전해셀로 흘려보내서 초순수 구리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순환은 에디슨과 동료 사업가들이 미국부터 전 세계의 도시까지 전력망을 확장하는 일을 도왔다. 구리 시장이 세계적 수요를 맞출 만큼 구리를 충분히 공급한 첫 번째 사례였다.


에디슨은 전구를 최초로 발명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 공은 영국의 과학자 조지프 스완(Joseph Swan)에게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에디슨은 콘크리트 때 그랬던 것처럼, 전구를 양산용으로 개량했다.

[좌: 조지프 스완의 전구 우: 에디슨의 필라멘트 백열 전구 출처 구글 이미지]

그는 전구나 기발한 전기 기구를 제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장치들을 연결할 수 있는 전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위해서는 뉴욕 지하에 매설할 전선을 만들기 위한 구리, 가정과 직장에 들어가는 구리, 발전기 바퀴에 휘감을 구리 등 상당한 양의 구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에디슨은 얇은 구리선으로 작동하는 전구, 최초 계획과 달리 굵은 구리선이 필요하지 않은 뉴욕 전력망을 고안했다. 하지만 그의 전력 시스템은 뉴욕같이 인구가 밀집한 도심에서는 잘 작동했지만, 도심을 1.6킬로미터 이상 벗어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웨스팅하우스와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교류 방식을 개발하면서 해결되었다. 에디슨의 전류는 아래로 흐르는 강물처럼 한 방향으로만 흘렀지만,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의 전선에 흐르는 전류는 바다의 과도처럼 고동쳤다. 교류의 비범함은 매우 얇은 전선을 따라서 고압 전류를 송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테슬라와 수백만 볼트를 생성하는 "확대 송신기" 옆에 앉아 있는 테슬라의 다중 노출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이로써 전 세계에서 구리가 고갈될 염려가 사라졌고, 더는 발전소가 거주지 근처에 위치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시스템이 탄생했다. 대규모 발전소들이 고압 전선을 통해 도시와 지방으로 교류 전력을 보낸다. 그야말로 구리 위에 세워진 시스템이다.


11장 땅속으로 더 깊이

구리 부족과 천연자원의 고갈


칠레의 추키카마타(Chuguicamata)는 언뜻 보면 칠레 북부의 여느 산간 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인다. 하지만 이례적인 두 가지 모습이 있다. 첫 번째는 마을 광장에서 북동쪽으로 구불구불 나 있는 큰길을 따라서 걸어가다 보면, 터널을 지나면 갑자기 눈앞에 거대한 크레바스가 나타난다. 추키카마타 구리 광산이다.

[추키카마타 시내와 광산 출처 구글 이미지]

추키카마타 광산의 현대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1899년, 탐험가들이 이곳에서 한 광부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 광부는 550년경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시신이 구리염(copper salt)으로 된 얇은 막에 의해 보존되었다. 소금의 항균성 때문에 시신이 부패하지 않을 수 있었다(일명 'Copper man'). 이 시신은 고대에 구리 채굴이 장인들의 소규모 장사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추키카마타 copper men 출처 구글 이미지]

구덩이 바닥에서 초대형 트럭들이 지상까지 올라오는 데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트럭들이 마을 근처의 격납고에 도착한 뒤 동광석들은 잘게 분쇄된다. 이 가루를 특별한 용액에 넣으면 거품이 부글부글 일면서 구리와 다른 물질들이 분리된다. 그 후, 일부 가루는 제련과 전기분해 공정을 거쳐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순수한 상태의 반짝이는 구리가 된다. 이것을 전기동(copper cathode)이라고 부른다.


동정광(copper concentrate)은 구리 함량이 30퍼센트 정도인 어두운 색의 흙 알갱이인데, 전기동을 만들고 남은 동정광은 다른 곳으로 보내져 최종 제품으로 정제된다.


기차는 매일 전기동과 동정광을 싣고 질산칼륨 전쟁을 촉발한 유명한 노선을 따라 해안을 향한다. 여기서 전기동은 제조업체로 직행하고, 동정광은 중국의 정제소로 향하는 컨테이너선에 실린다. 전 세계 구리의 약 80퍼센트가 이런 식으로 생산된다.

[추키카마타 광산 출처 구글 이미지]

철광석의 철 함량은 60퍼센트인 데 비해, 동광석의 구리 함량은 겨우 0.6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구리 1톤을 얻으려면 철 1톤을 얻을 때보다 훨씬 많은 흙을 파내야 한다.


폐광하기 전까지 채굴한 구리의 양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어떤 광산도 추키카마타 광산을 따라오지 못한다. 100여 년간 추키카마타 광산은 그 어떤 광산보다 더 많은 구리를 생산했다. 지구상에서 채굴되고 정제된 구리의 13분의 1은 여기 추키카마타에서 나왔다.

[2020년 전 세계 구리 생산량 순위 출처 ICSG]

지난 100여 년간 무수한 회사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전기의 시대는 저물었고, 컴퓨터의 시대가 무르익었으며, 전기차가 자동차 시장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추키카마타는 여전히 건재하다.


해마다 수십억 톤의 암석을 지하에서 채굴해 수십만 톤의 순수 구리로 정제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름조차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이 광산에서 20세기 전기의 시대를 지탱한 구리가 나왔다.


마을을 집어삼킨 광산


추키카마타의 또 다른 기이한 면모는 큰길로 돌아가면 더욱 또렷이 보인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고, 경기장에는 운동선수가 없으며, 은행 창구에는 줄 선 사람들이 없다. 추키카마타는 아타카마의 유령 마을 중 하나이다. 추키카마타 마을은 광산이 마을을 집어삼킬 지경에 이르러 폐쇄되었다.

[유령 마을이 된 추키카마타 출처 구글 이미지]

2000년대 초, 광산에서 나온 폐석이 마을의 주택과 정원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정제소에서 흘러나온 유독 가스는 도로와 거리를 덮쳤다. 마을 주민들은 점점 병들었고, 광산은 추키 키 마타(Chuqi gui mata, 사람을 죽이는 추키)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결국 이 광산을 운영하는 국영기업 코델코는 주민들 2만 명을 가장 가까운 도시인 칼라마로 이주시켰다. 하지만 이곳은 아타카마였다.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환경이 마을을 계속 보존했다.


북쪽으로 차를 몰고 가면 쓰레기 더미가 만든 거대한 산, 토르타(torta, 스페인어로 케이크라는 뜻)라고 불리는 인공산을 만나게 된다. 토르타는 이미 주택가와 상점가의 4분의 1 이상을 먹어 치웠고,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발달했던 7충 짜리 병원도 이제 쓰레기 더미 속에 완전히 파묻혔다.

[토르타와 돌로 덮힌 병원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러나 쓰레기산은 추키카마타 광산이 환경에 미친 영향 중 눈에 가장 잘 띄는 것일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메마른 사막 지대의 지하에서 광석을 캐내는 사람들은 왜 그토록 많은 물을 사용하는가? 이러한 규모로 광석을 채굴 및 가공하려면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한데, 광석을 더 많이 가공할수록 더 많은 물이 필요하다.


광산에서 소비하는 물은 대부분 플라스틱 시트 위에 쌓인 거대한 분쇄 동광석 더미에 뿌려진다. 그러고는 희석한 산성 용액에 동광석을 적신다. 이것은 광석에 침출액을 부어 금속을 녹여내는 퇴적침출작업이다. 구리의 경우에는 그 규모가 놀라울 정도로 크다.


추키카마타에서 차를 몰고 언덕을 내려오면 커다란 토벽을 따라서 몇 킬로미터를 주행하게 되는데, 토벽 너머에는 테일링 댐(Tailings dam)이 있다. 테일링 댐은 광산에서 나온 찌꺼기를 보관하는 댐인데, 정제 공정에서 나온 폐기물을 이곳으로 운반하여 침전시킨다.

[칠레 테일링 댐 출처 구글 이미지]

예전에 아타카마의 광산에서 나오는 폐수는 근처 계곡과 운하로 바로 흘러들어 바다로 향했다. 해안가의 물은 수십 년간 계속된 무절제한 폐수 방류로 인해 여전히 오염된 상태이다. 차냐랄 항구의 경우, 구리 광산에서 나온 약 220메가톤의 폐기물이 만회에 버려지는 바람에 해안선을 따라서 약 10킬로미터의 인공 해변이 형성되었고 수많은 야생동물이 목숨을 잃었다.


1989년의 법적 조치로 인해 폐기물 투기가 중단되기는 했지만,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지역민들의 소변에서 니켈, 납, 비소 수치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칼라마 주민들은 물과 공기가 여전히 비소에 오염되어 있다고 항의한다. 만약 광산을 채굴하지 않았더라면, 비소와 같은 유해 원소들은 땅속에 그대로 묻혀 있었을 것이다.


칼라마 이야기는 구리 산업이 직면한 엄청난 도전을 상기시킨다. 추키카마타 같은 광산들이 더 깊이 땅속을 파고들어 동광석을 손쉽게 캐낸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발전기, 모터, 전기차, 풍력발전용 터빈을 만드는 구리에 대한 전 세계의 갈망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이 물질이 고갈될 수 있지 않을까?


구릿값을 걸고 하는 세기의 대결


1980년대에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줄리언 사이먼(Julian Simon) 사이에 벌어진 내기의 전말을 살펴보자. 곤총학자 파울 에를리히는 원래 나비 군집을 주로 연구했으나 일명 현대판 노스트라다무스로 이름을 알렸다. 1968년에 그는 ⟪인구 폭탄(The Population Bomb)⟫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발표했는데, 서두에 다음과 같이 핵심 논지가 잘 요약되어 있다.


전 인류를 먹여 살리기 위한 전쟁은 끝났다. 1970년대와 1980년대가 오면, 지금 시행 중인 긴급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수억 명이 굶어 죽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세계 사망률의 급격한 증가를 막지 못할 것이다.
[파울 에를리히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평범한 대학에 근무하는 무명의 경제학자였던 줄리언 사이먼은 그 예측에 놀랐을 뿐 아니라 혐오감까지 느꼈다. 그는 인구 증가를 그리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인구가 늘어난다면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질 것 아닌가. 그렇다면 재난에서 벗어날 혁신적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이먼은 이렇게 추론했다. 지구는 유한하다. 하지만 지구의 천연자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하다. 그러므로 한 가지 물질이 고갈되면 다른 물질을 발명하거나 대체 물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출처 AZ Quotes]

18세기 후반,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가 그 걱정에 특별한 이름과 틀을 부여했다. 맬서스는 1798년에 발표한 저서 ⟪인구론⟫에서 인구가 식량 생산력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가 함정에 갇혔으며, 인구가 증가할수록 기근, 식량난, 파괴에 직면할 가능성도 더 커진다고 했다.

[출처 구글 이미지]

맬서스 전후로 몇몇 사람은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17세기 철학자 윌리엄 페티(Wiliam Petty)는 300년 뒤의 사이먼과 비슷한 입장이었다 페티 역시 인구가 늘어나면 문제 해결을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들 역시 더 많아지리라 보았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ich Engels)는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토지의 생산성은 자본, 노동, 과학을 이용하면 무한히 증가할 수 있다"라고 썼다

[윌리엄 페티와 엥겔스 출처 구글 이미지]

이러한 논쟁이 한창이던 1968년 에를리히가 <인구 폭탄>을 출간했고, 같은 해에 학자들, 정책 입안자들, 사업가들이 모여서 지구가 당면한 환경적・문화적・경제적 문제들을 논의하는 로마 클럽(Club of Rome)을 창설했다.


훗날 로마 클럽은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인류가 생태적・환경적 재앙을 향해서 가고 있고 곧 천연자원이 고갈되리라고 경고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이런 상황에서 사이먼은 <사이언스>에 이렇게 썼다. "나쁜 소식을 실어야 책, 신문, 잡지가 팔립니다. 좋은 소식은 그 절반만큼도 흥미롭지 않습니다." 그는 에를리히, 로마 클럽의 주장들 대부분이 거짓이라고 기술했다. 천연자원이 고갈되기 직전이라면 이 모든 것의 가격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져야 하지 않겠는가?


에를리히는 이 무례한 태도를 묵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이언스>에 사이먼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러다가 둘 사이에 편지가 오가기 시작했는데, 사이먼이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내 말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곡물과 석유 등 정부가 관리하지 않는 원자재의 가격이 장기적으로 상승하지 않는다는 데 품목마다 100~1,000달러씩 총 1만 달러 규모의 공개 내기를 걸겠습니다.


에를리히는 재빨리 그 내기를 받아들였다. 구리, 크롬, 니켈, 주석, 텅스텐 이렇게 다섯 가지 주요 금속의 가격에 대한 내기였다. 1980년 9월 29일에서 1990년 9월 29일 사이, 인플레이션율을 고려하여 조정된 실질 가격의 관점에서 이 금속들의 가격이 상승하리라는 데 에를리히는 항목당 200달러씩 돈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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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를리히가 보기에 구리는 예측이 쉬울 것 같았다. 약 1만 년 전, 야금업의 초창기에 구리는 종종 광석의 원형 그대로 발견될 정도였고, 최초의 대규모 광산인 키프로스의 청록색 암석은 구리 함량이 무려 20퍼센트에 이르렸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구리 함량이 낮은 광석들뿐이고, 매장량도 30년을 겨우 넘는 정도였다.


그러나 사태는 에를리히의 예측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1980년에서 1990년 사이에 세계 인구는 45억 명에서 53억 명으로 늘어났지만, 다섯 가지 금속은 인플레이션을 적용하니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 10월 줄리언 사이먼은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서 온 우편물을 열어보니 금속 가격표와 에를리히가 발행한 576.07 달러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따로 편지는 없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줄리언 사이먼은 1998년에 사망했다.


지금도 에를리히는 자신이 운이 없어서 내기에서 졌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에를리히의 생각도 일리가 있다. 만약 둘의 내기가 1960년대나 1970년대 혹은 2000년대에 있었더라면 에를리히가 이겼을 것이다.


그 후, 둘의 내기는 일종의 경제적 우화로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졌다. 1980년대에 전 세계가 자유시장을 받아들이면서 이 내기는 새로운 시대에 딱 맞는 완벽한 우화가 되었다. "세상의 종말이 걱정이라고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공급, 수요, 시장에 대한 믿음이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해 준답니다."


에를리히는 구리 부족 현상을 경고한 최초의 사람도, 최후의 사람도 아니었다. 전기의 시대 초창기에, 당시 현자들은 새로운 전기 기술이 희소한 천연자원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에 곧 무너지리라고 예측했다.


1924년 저명한 지질학자인 아이라 요랄레몬(Ira Jorlemon)이 이런 예측을 내놓았다. "전 세계의 구리 공급은 앞으로 20년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전기에 기반한 우리 문명은 점차 쇠퇴하다가 사라질 겁니다."

[아이라 요랄레몬과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심지어 오늘날에도 몇몇 연구자는 이와 비슷한 수치를 제시하면서 구리 생산에 종말이 임박했다고 주장한다. 2007년 예일대학교 발표 연구 결과가 그랬다. 2014년 <사이언스> 논문에서도 2030년부터 구리 공급량이 감소하리라고 예측했다. 구글 검색창에 "peak copper"라고 입력하면 비슷한 사례를 더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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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키카마타 광산도 사정은 비슷했다. '코퍼맨'이 일하던 초창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 파냈던 광맥에서는 구리 함량이 10~15퍼센트인 고급 동광석이 나왔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남아 있던 동광석의 구리 함량은 몇 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여기서 구겐하임 가문이 등장한다. 이 광산 재벌 가문은 일찍이 앤드루 카네기미네소타주 메사비의 철광산에서 어떻게 철광석을 채굴하는지 본 적이 있었다. 카네기는 거대한 굴착기로 엄청난 양의 철광석을 긁어 모았다. 그 방법을 구리 채굴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구겐하임은 진취적 성향의 광산 기사 대니얼 C. 재클링(Daniel C. Jackling)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들은 빙엄캐니언 광산에서 굴착기와 대량의 폭발물을 사용했고 저등급 광석을 채굴하여 구리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대량생산하는 동안, 구겐하임은 광산업을 대규모 생산(파괴) 활동으로 바꾸고 있었다.

[대니얼 재클링의 ‘Open Pit Mining’ 출처 구글 이미지]

추키카마타는 수작업으로 땅을 파내고 손으로 일일이 광석을 선별하던 구시대의 광업이 신시대의 광업에 자리를 내준 곳이기도 하다. 파나마운하 건설을 도왔던 굴착기들은 칠레로 운반되어 추키카마타에 투입되었다. 새롭게 세워진 거대한 공장들에서 암석을 가루로 만든 뒤 무거운 구리 입자를 더 가벼운 석영과 분리했다.


구겐하임은 질산염 생산으로 주력 사업을 전환하면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추키카마타의 채굴권을 아나콘다 구리(Anaconda Copper)에 팔았다. 구겐하임이 대재앙에 가까운 실수를 저지른 순간이다. 그 후 채굴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계속되는 채굴로 인해 산은 고원이 되었다가 결국 협곡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혁명가 체 게바라(Ché Guevara)는 1951년에 이곳을 방문하고는 다음과 같은 감상을 남겼다. "아름다움이 부족하진 않다. 그러나 그것은 우아함이 결여된 인상적이고 냉랭한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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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과 오늘날 사이에, 구리 1톤을 생산하기 위해서 가공해야 하는 동광석의 양은 50톤에서 800톤으로 증가했다. 공정에 필요한 물의 양 역시 7만 5000리터에서 거의 두 배인 13만 리터로 늘었다. 필요 전기량은 250킬로와트에서 4,000킬로와트로 늘었다. 그러나 해당 기간에 구릿값은 상승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운 업적이다. 전기의 시대는 구리에 의해 구축되었다. 주요 도시들의 전기화, 가전제품의 시대, 배선 및 전자 제품 분야에서 중국과 인도 같은 대규모 시장 형성 등 20세기 들어서 구리의 거대한 물결이 밀려왔다. 구리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었으나 지구는 점점 더 구리를 내놓지 않으려 했다.


파울 에를리히가 알지 못했던 것


다시 추키카마타 협곡의 입구로 돌아가자. 저 아래에 있는 웬만한 단독주택보다도 더 큰 트럭들은 1980년대에 도입한 울트라 클래스 차량이다. 그전까지는 광산용 트럭이 하루에 대략 40톤의 암석을 운반했지만, 오늘날에는 이 트럭들이 400톤 이상의 암석을 운반한다.


눈을 돌려서 암석들을 분쇄하는 기계가 줄지어 선 공장을 살펴보자. 분쇄기들은 쉬지 않고 꾸준히 돌아가면서 암석들을 베이비파우더 수준으로 만들어버린다. 사막의 지평선 속으로 녹아내릴 정도로 거대한 침출 패드를 보라. 거기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현재 코델코는 저 깊은 구형의 아래 지하에서 구리를 채굴한다. 추키카마타 광산은 세계 최대의 노천 광산일 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지하 광산이 되어 가는 중이다. 추키카마타 지하 광산에서는 '블록 채굴법(block mining)'을 사용하는데 그 개념을 이해하고 나면 얼굴이 찌푸려질지도 모른다.


블록 채굴법은 다소 무자비하게 광석층 밑에다 터널을 파서 대량의 폭약올 설치한 뒤 발파한다. 그러면 중력이 작용하여 터널 안으로 수십만 톤의 암석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이렇게 얻은 암석들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바깥으로 운반되어 추키카마타의 제련소에서 정제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져 추가 공정을 거친다.


블록 채굴법은 새롭게 도입한 대규모 기술로 추키카마타에서만 사용되진 않는다. 뉴기니섬 서부의 인도네시아 땅에는 해발 4,000미터 이상인 외딴 산맥이 있는데, 바로 여기에 그래스버그(Grasberg) 광산이 있다. 거대한 구덩이가 움뚝 팬 산 정상에서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춘 광산은 마치 영화 속 빌런의 은신처처럼 보인다.

[그래스버그 광산 출처 구글 이미지]

그래스버그와 추키카마타에서는 구리 채굴을 위해 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 신기한 점은 그 피해 규모와 정도에 비해 광산에서 일하는 인력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20세기 동안 미국에서 구리 채굴과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 수는 3분의 2가 줄었다. 하지만 구리 생산량은 네 배 이상 증가했다.


로마 제국 시기에 순수 구리 1톤의 가격은 평균 임금 40년치에 해당했다. 그러나 1800년 무렵, 이 비율은 순수 구리 1톤당 평균 임금 6년치로 떨어져 있었다. 그 후 200년 간 1톤당 0.06년치로 더 떨어졌다. 이는 반도체에 대한 무어의 법칙만큼이나 인상적인 생산성의 기적이다.


업계의 다음 관심사는 대형 트럭과 채굴기를 무인으로 운행하여, 현장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원격으로 작업을 제어하는 것이다. 자동화의 장점은 중장비를 직접 다루는 사람들이 적어지면서 잠재적인 사고 위험 역시 줄어든다는 점이다.


에를리히가 내기에 진 또 다른 이유는, 암석에서 물질을 추출하는 방식이 훨씬 편해졌기 때문이다. 추키카마타의 거대한 공장들과 부유 선광기(Flotation machine)는 저등급 암석 채굴을 100년 이상 도왔다. 침출 패드는 최근 수십 년간 이루어진 습식제련 혁명을 대표한다.


추키카마타에는 전해채취 시설도 있는데, 전해채취는 액상 농축액을 전기분해하여 순수한 전기동을 얻는 혁신적 방식이다. 이런 채굴 기술과 대형 트럭들에 대한 정보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피크 코퍼에 대한 예측이 빗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현대 사회의 광맥에 계속 피를 돌게 한다.


그렇다면 전 세계 구리 매장량이 30~40년 분량만 남았다는 말은 어떻게 된 것일까? 광산기업들이 말하는 매장량이란, 그들이 소유하거나 채굴권을 보유한 광산에 남아 있는 매장량을 뜻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땅속에 구리가 그 정도만 있다는 뜻이 아니라 광산기업들이 채굴 계획을 세운 시계가 그 정도라는 소리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전 세계 구리 자원의 총량은 56억 톤이며 그중 21억 톤은 이미 발견되었다. 연간 구리 소비량을 고려하면 앞으로 약 226년을 쓸 수 있는 분량이다.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이 본격화된 지난 10년간의 소비량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115년 분량이 된다.


친환경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사회 기반 시설에서는 훨씬 많은 구리를 사용한다. 발전기의 심장부에 구리가 들어가므로 종래의 발전소들은 실제로 구릿빛을 띠고 있다. 태양광 패널에는 일반 발전소들보다 일곱 배나 많은 구리가 쓰인다. 그와 동일한 양의 전력을 풍력발전으로 생산하려면 열 배나 많은 구리가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진짜 문제점과 마주한다. 진짜 걱정해야 하는 점은 구리 생산국들에서 얼마나 참아줄까이다. 현재 칠레와 페루(전 세계 구리 생산량 2위)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구리 채굴에 따르는 환경 부담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미래를 걱정하면서 채굴 한도를 두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가 막 씨름하기 시작한 역설이다. 구리 없이는 정부와 환경 기관이 설계한 탄소 중립의 청사진을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전기화 열망이 커질수록 일부 무모한 탐험가들은 구리를 얻기 위해 더 깊고, 어둡고, 논란의 소지가 많은 장소를 찾고 있다.


12장 새로운 국경

깊은 바다, 심해 채굴의 현장


지표면의 그 어떤 산맥보다 훨씬 큰 해저산맥이 바닷속에 쭉 뻗어 있다. 이 해저산맥은 1872년 HMS 챌린저호의 첫 번째 탐사에서 발견되었다. 대서양 횡단 전신 케이블을 설치할 최적의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해저를 살피던 탐사대는 자신들이 해저산맥의 정상부를 항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심해의 경이를 발견한 최초 혹은 최후의 사례는 아니다.

[1872 HMS 챌린저호 출처 구글 이미지]

1977년 갈라파고스 제도 부근을 항해하던 배에서 해양 지질학자 밥 밸러드(Bob Ballard, 타이타닉호 발견으로 유명)가 세계 최초로 열수구(hydrothermal vent)를 발견했다. 열수구는 뜨거운 물이나 가스가 솟아오르는 지하의 구멍인데, 그중에서도 검은 연기 같은 분출불이 솟아오르는 열수구를 블랙 스모커(black smoker)라고 한다.

[해저에서 타이타닉호를 발견한 밥 밸러드 출처 구글 이미지]

그로부터 20년 뒤 국제공동해양시추프로그램(International Ocean Discovery Programme, IODP)의 아틀란티스 대산괴 탐사 중이던 이들은 더욱 매력적인 것을 발견했다. 심해의 어둠을 뚫고 나온 괴상하게 생긴 하얀 굴뚝들이 생명의 기본 요소인 탄화수소를 자연적으로 생성하고 있었다. 훗날 과학자들은 이곳에 '잃어버린 도시(The Lost City)'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름처럼 생명에 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곳이었다.

[심해 hydrothermal vent 출처 구글 이미지]

약 150년 전 HMS 챌린저호 탐사대는 태평양 해저에서 감자만한 크기의 괴상한 돌덩어리들을 건져 올랐다. 잘 부스러지는 성질에 어두운 색인 이 돌들은 윗부분이 매끈하고 아랫부분이 거칠었는데, 훗날 다금속단괴(polymetallic nodule)라는 이름을 얻었다. 태평양 특정 지역에 가면 해저에 이런 돌덩어리들이 무수히 많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Clarion-Clipperton Zone, CCZ)이 대표적이다.


감자처럼 생긴 이 작은 돌들은 상어 이빨이나 조개껍데기 등 해저에 떨어진 유기물 파편에 무기물이 달라붙으면서 수백만 년에 걸쳐서 형성된다. 니켈, 망간, 코발트, 구리 등 지표면에서 발견되지 않는 등급의 광물들이 다금속단괴에 얼마나 많이 농축되어 있는지 지질학적 관점에서는 놀라울 정도였다.

[다금속단괴와 망간 단괴 출처 구글 이미지]

다금속단괴의 발견은 해저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알려주는 첫 번째 힌트였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해저에 매장된 금을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나눠준다면 각각 4킬로그램씩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시가 17만 달러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러나 채금 비용이 금값의 두 배나 든다고 한다.


해저에 얼마나 광물이 풍부한지 코발트와 니켈 사례로 더 살펴보자. 코발트는 세계적으로 희소한 금속 중 하나이며, 강합금뿐만 아니라 2차전지의 핵심 성분이다. 또한 고성능 배터리의 화학 작용에는 대량의 니켈이 필요하다.


현재 지상에 매장된 코발트 자원이 약 2500만 톤인데, 대부분이 콩고민주공화국과 잠비아에 묻혀 있다. 이에 비해 다금속단괴나 해저 표층 등 바다 밑에 매장된 코발트의 총량은 1억 2000만 톤에 달한다. 또한 지상에는 약 3억 톤의 니켈 자원이 있는데,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에만 약 2억 7000만 톤의 니켈이 매장되어 있으므로 태평양 전역을 놓고 보면 전체 매장량은 훨씬 많을 것이다.


한편 구리의 경우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의 구리 매장량은 약 2억 3000만 톤으로 전 세계에 10년 동안 공급할 수 있지만, 코발트나 니켈 정도로 획기적인 양은 아니다. 하지만 구리의 최대 매장지가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 수치가 틀렸다면? 해당 지역의 잠재력을 조금이 아니라 몇 배나 과소평가했다면 어떨까. 지질학자들은 수심 3,000미터에서도 압력을 견디며 작업할 수 있는, 심해용 굴착기를 동원하여 한 달간 해저를 깊숙이 파고들면서 상당히 긴 암석 코어를 수집했고 탄성파 탐사로 해저 언덕을 조사하는 일을 도왔다.


해저 탐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해저 구리 자원 추정치에서 빠져 있던 사르가소해의 어느 작은 지점에 수천만 톤의 광석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기존 수치는 실제와 상당히 다를 가능성이 크다.


탐사팀의 말에 의하면, 이곳의 구리 매장량은 10억 톤을 넘을 수도 있다. 이는 지상에 매장된 구리 총량을 뛰어넘는 엄청난 양으로, 앞으로 수십 년간 전 세계에 구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정도이다. 이렇게 되면 해마다 추키카마타 같은 광산을 세 개는커녕 아예 파낼 필요가 없어진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해저 자원의 채굴에는 어떤 문제가 따르는가?


잃어버린 해저 도시를 찾아서


국제해저기구(International Seabed Authority, ISA)가 회의를 개최하는 자메이카 킹스턴만의 컨벤션센터는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던 1970~1980년대의 영화 007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일렬로 늘어선 전화 부스들을 보니, 제임스 본드가 블로펠드의 부하들을 피해 부스 한 곳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런던으로 전화를 걸 것만 같다.

[ISA 로고와 자메이카 본부 출처 구글 이미지]

UN 산하에 있는 국제해저기구의 주 임무는 전 세계의 해저를 관리하면서 바다 밑의 광물들이 누구의 소유인지 판단하는 일이다. 국가를 기준으로 자국의 연안으로부터 200해리를 벗어나면 '공해'로 보는데,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서 공해는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된다.


이런 규정은 공해를 일종의 외교적.경제적 회색지대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공해에서 채굴을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단 굴착기를 바다 밑으로 내려보내기만 하면 분쇄와 발파를 시작할 수 있을까? 채굴에 제한은 있는가? 어업처럼, 심해 채굴도 무법지대가 될 것인가?


중국과 러시아 등 은밀하게 움직이며 자원 획득에 힘쓰는 일부 국가가 이미 물밑에서 채굴 작업을 조용히 진행 중인 건 아닌지 의심받고 있다. 이 일들은 국제해저기구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다금속단과 해저표층, 블랙 스모커 등 공해 밑의 천연자원에 대하여 대부분의 관할권을 국제해저기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가 중 선두 주자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국제해저기구와 이미 네 건의 계약을 체결했고, 해저에서 대량의 자원을 채굴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는 국제해저기구와 각각 세 건의 계약을 맺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은 각각 두 건의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영국은 그 권리를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에 넘겼다. 심해 채굴에 관해서 록히드마틴은 나름의 흥미진진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회사는 1970년대에 요란스럽게 심해 채굴을 시작했으나 실제로는 침몰한 소련 잠수함을 인양하려는 CIA 작전이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미국은 관련한 UN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으므로 국제해저기구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연안과 섬에서 200해리 이내에 들어가는 해저의 규모를 고려해 보면 미국은 심해 채굴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다.


미국이 태평양과 오세아니아의 미드웨이섬, 하울랜드섬,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의 척박하고 황량한 바위섬들을 그토록 많이 차지한 배경에는 친차 제도에서 구아노를 얻겠다고 새똥 쟁탈전이 한창이던 1856년에 미국 의회가 제정한 구아노 제도법(Guao lslands Act) 덕분이다.


국제해저기구의 주요 목표는 인류가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개척지로 나아가 이익을 얻는 것이다. 만약 공해에서 채굴을 원하는 국가가 있다면, 공해 사용료를 전 세계 모든 국가와 공유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국제해저기구의 인류 공동 유산 개념을 존중하는 것이 된다.


수년간 광산기업들은 국제해저기구가 작성 중인 해저 채굴 규칙이 완성되기를 기다려왔다. 이 규칙들이 최종적으로 승인되면 그 자체로 유효한 출발 신호가 되어 광산기업들이 공해에서 채굴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국가는 이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22년 구리 채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던 칠레가 환경적 영향을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심해 채굴을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고, 피지, 팔라우 등 여러 국가가 동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은 UN 회원국들에 '심해 채굴을 중지하는 법적 기준'을 만들자고 촉구했다.


전 세계 국가들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해저는 지구에서 가장 깨끗한 서식지 중 하나이지만, 인류는 다른 생태계에 비하여 해저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지난 몇 년간 레인보우피시, 울트라블랙피시, 페이스리스피시 등 새로운 심해어들이나, 수많은 달팽이, 게, 성게, 괴상하게 생긴 새우, 해면동물, 입이나 소화 기관이 없는 거대한 서관충 등도 함께 발견되었다.

[faceless fish와 Giant Tube Worn 출처 구글 이미지]

생물학자들은 우리가 새로운 서식지에 대하여 이제 막 눈을 떴다고 말한다. 광산업계에서는 환경을 교란하지 않고도 광물을 추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환경에 아무런 피해가 없으리라 여기기는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수중 생태계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환경 규제를 아무리 엄격하게 해도 무언가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침전물 교란, 소음 공해, 해저 미생물 군집의 변화 등 심해 채굴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의 개입으로 생태계에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다시 자메이카로 돌아가자. 국제해저기구는 활성화 상태의 블랙 스모커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채굴할지, 해양 생물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할지 등 환경 규칙들을 작성해 왔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외딴곳에 자리 잡은 이 작은 기구가 과연 이런 일들을 관리할 자격이 충분한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대서양 중앙해령에서 1만 제급킬로미터의 땅이 폴란드에 할당되었다. 이 구역은 중심부에 있는 해저산 측면의 지층들이 아니었다면 그리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은 마치 돌로 된 첨탑같이 생겼는데, 생명의 신비를 풀 열쇠가 되어줄 터였다.


그런데 국제해저기구는 '잃어버린 도시'라고도 불리며 지구상에서 유일한 이곳을 채굴 지역으로 지정해 버렸다. 바로 얼마 전, 유네스코가 그랜드 캐니언, 타지마할과 함께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선언한 참이었다. 그런데 그 자매 기구인 UN의 국제해저기구가 이곳을 광업용 탐사 부지로 지정하다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Underwater Lost City 출처 구글 이미지]

사실 아무도 폴란드가 '잃어버린 도시'를 허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높고 하얀 첨탑 주변에서 그리 가치 있는 금속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산기업들은 해저로 탐사선을 계속 보내면 더 놀라운 곳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더 깊은 곳을 채굴하려는 경쟁은 해저 생태계에 대한 인류의 지식을 훨씬 심화시키리라는 게 그들의 의견이다.


사정이 이렇다고는 해도, 광업의 새로운 국경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구리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광산업계가 우리를 불유쾌한 곳으로 데려간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중이 구리를 추출하는 새로운 방식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도 처음이 아니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슬루프(SLOOP) 프로젝트이다. 1960년대에 미국이 구상한 슬루프 프로젝트는 구리 채굴에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계획이었다. 애리조나주의 구리 광산에서 20 킬로톤의 폭탄을 터뜨리려고 했었는데,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3분의 1에 필적하는 강도였다. 지역 주민들이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내놓자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심해 채굴과 마찬가지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채굴은 뜨거운 관심을 끌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앞으로 풍력 터빈과 고속철도에 들어갈 구리를 어디서 공급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면, 심해 채굴 같은 깔끔한 해결책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수십 년간 의지해 온 방식으로 돌아갈 가능성 역시 큰 편이다. 앞으로 인류는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해도 높은 등급의 광석을 지닌 까다로운 국가들에서 더 많은 구리를 얻을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카모아카쿨라(Kamoa-Kakula) 광산과 몽골의 오유톨고이(Oyu Tolgoi) 광산은 곧 세계 최대의 구리 생산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저등급 광석에서 구리를 더 많이 짜내는 능력을 계속해서 향상시킬 것이다.

[콩고의 카모아카쿨라 광산 출처 구글 이미지]
[오요톨고이 광산과 개발사 리오 틴토 출처 구글 이미지]

미국의 스타트업 제티 리소시스(Jetti Resources)는 가장 낮은 등급의 황동석에서 구리를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에 매장된 구리 자원의 3분의 2가 저등급 광석이므로 이것은 상당히 반가운 소식이다.


이 기술은 추키카마타 같은 곳에서 어떤 의미일까? 광산기업들은 구리 함량이 0.5퍼센트만 되어도 광석을 가공하지만, 그 이하는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추키카마타 마을의 병원, 경기장, 주택가는 등급 미달의 광석 더미에 파묻혔다. 그런데 이 광석들을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칠레 전역을 좀먹던 토르타들이 구리의 새로운 원천이 될 것이다.


전기가 하나님 다음으로 위대했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전기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큰 희망이다. 재활용률을 높이고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는 아주 낙관적 전제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여전히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지상이든 해저이든 구리 채굴 작업은 지저분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물질 세계의 또 다른 역설을 만난다. 이 지저분한 작업에서 벗어나려면 그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은 화석연료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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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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