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Oil) <물질 세계의 또 다른 역설>
Part 5 석유(Oil)
<물질 세계의 또 다른 역설>
지구를 움직이는 에너지
1940년대 초 지질학자 어니 버그(Ernie Berg)는 탐사 중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부분의 와디(wadi, 간헐하천)가 근처 산에서 내려와 동쪽으로 흐르며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데, 동부 하라드(Haradh)의 와디는 갑자기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꽤 먼 거리를 흐르다가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흘러가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 지하 석유 트랩의 융기로 인해 와디의 방향이 틀어졌을지 모른다는 추측)
'와디'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술에 취한 듯 괴상하게 생긴 산도 있었다. 현지인들이 ‘제벨(jebel)’이라고 부르는 이 흙더미는 정상부가 평평한 작은 고원이었고, 아무 방향으로나 기울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나 모래에 의해서는 그렇게 침식될 수 없을 텐데, 대체 그 원인이 무엇일까?
그로부터 몇 년 전, 어니 버그의 상사이자 탐험대의 수석 지질학자인 맥스 스타이네케(Max Steineke)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담맘에서 북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상한 언덕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곳저곳을 연달아 시추해 봤지만, 뜨뜻한 염수와 도로포장용으로나 쓸 법한 찐득찐득한 석유뿐이었다.
일곱 번째 탐사정을 시추하던 중 인내심이 바닥이 났고, 몇몇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갑자기 탐사정에서 거대한 가스 폭발이 일어나면서 원유가 뿜어져 나왔다(1938년).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산유국 대열에 합류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유전
원유는 자매 연료인 천연가스와 더불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다. 강철이 현대 사회의 뼈대를 이루고 구리가 혈관을 만든다면 석유는 이 세계를 지탱하는 식량이라고 할 수 있다. 석유는 에너지를 제공하고, 비료를 만드는 화학물질의 원료가 되어 지구의 절반을 살게 한다.
자동차부터 제트기까지 동력 수송 혁명을 촉발하여 인류의 생활에 위대한 가속장치가 되어주었다. 석탄이 시대에 뒤이어 등장한 석유의 시대는 인류를 힘들고 단조로운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켰고, 전 세계의 소득을 높이고 우리가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다시 말해서, 연료와 화학물질의 원천인 석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원유 이야기는 하라드의 와디가 어니 버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한참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하라드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먼저 원유를 사용했다. 수천 년간 페르시아만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땅속 곳곳에 스며 있던 이 진하고 끈적끈적한 물질로 선박의 바닥에 난 구멍을 메우거나 벽돌을 접합했다. 타르 구덩이에서 나온 역청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들기 전에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데 사용되었다.
19세기 중반, 화학자들이 역청에서 가연성 액체를 증류하는 법을 알아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증류된 이 등유는 향유고래의 기름보다 여섯 배나 밝았고, 사람들은 더 많은 등유 공급원을 찾아 나섰다.
이 탐색은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되었지만 미국에서 가장 열심히 찾았다. 1859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원유가 발견이 되었고 몇 년 후 텍사스주 제퍼슨 카운티에서 거대한 분유정이 발견되었는데 분유정이 위치한 스핀들톱(spindletop)은 암염돔(salt dome)의 꼭대기에 있었다.
당시 지질학자들은 소금은 지하에 매장된 원유를 그 자리에 고정시키는데 완벽한 물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에 세계 곳곳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암염돔을 찾아서 탐사정을 뚫는 경쟁이 시작되었는데, 페르시아만에 엄청난 양의 소금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1908년 이란, 1927년 이라크, 1930년대에 쿠웨이트와 바레인에서 원유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늘날과 같은 산유 대국의 모습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대형 정유회사 소속의 몇몇 지질학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잠재력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하라드에서 언덕을 조사하던 어니 버그는 아라비아반도를 뒤덮은 모래사막인 룹압할리(Rub'al Khali) 사막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 황량한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느꼈다.
이 지역에는 암염돔이 없었지만 버그는 암염돔이 땅속에 원유를 봉인하는 트랩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때로 원유는 지질학적 단층 밑이나 습곡 작용으로 지층이 볼록하게 올라간 부분인 배사(背斜) 구조에도 매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각 트랩 유형은 종종 지표면에 볼록한 부분을 남기는데, 이는 버그 같은 지질학자가 아니면 대부분이 놓칠 정도로 미묘한 흔적이다.
버그는 몇 달간 공들여 지도를 그리면서 제벨들이 어떻게 기울어졌는지 측정했다. 하라드의 제벨들은 마치 밑에서 무언가가 불쑥 솟아오른 듯이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다시 지도를 살폈다. 만약 볼록한 부분이 있다면, 하라드의 와디가 동쪽이 아니라 남쪽으로 갑자기 방향을 튼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가능성을 떠올리면서 버그는 점점 더 흥분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이런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유가 있다! 진짜로 원유가 있었다(*1949년 발견). 그것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매장량이었다.
훗날 버그는 가와르 유전(Ghawar field)도 발견했다. 이 유전은 매우 광대한 탓에 여기서 100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유전과 실은 하나의 유전임을 지질학자들이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와르 유전은 남북으로 282킬로미터, 너비는 31킬로미터에 달하는 규모다.
가와르 유전을 전후로 수많은 유전이 발견되었지만, 가와르에 필적할 만한 유전은 어디에도 없었다. 매장량이 5억 배럴 이상인 유전은 자이언트, 50억 배럴 이상인 유전은 슈퍼 자이언트 등급으로 분류된다.
가와르 유전은 이미 700억 배럴 이상의 원유를 생산했으며, 지하에 500억 배럴 이상의 매장량을 보유했다고 알려져 있다. 누군가는 이 유전을 ‘엘리펀트(elephant)' 등급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원유가 어떤 조건에서 형성되는지 잠시 살펴보자. 무거운 비중의 중질원유부터 가벼운 비중의 경질원유까지, 원유는 여러 물질이 뒤섞인 혼합물이다. 석유와 가스는 모두 탄화수소(탄소와 수소의 혼합물)가 주성분이며, 거의 같은 방식으로 형성되고, 종종 함께 발견된다.
가와르는 세계 최대의 유전일 뿐만 아니라 세계 2위의 가스전인데, 유전과 가스전에서 나오는 가스로 매년 상당량의 메탄을 생산한다. 가와르는 가스전으로도 슈퍼 자이언트급이다.
가와르 유전은 지구온난화 덕분에 존재한다. 가와르의 이야기는 약 1억 년 전에 시작되었다. 당시는 빈번한 화산 활동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플랑크톤의 개체 수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던 때였다. 오늘날의 페르시아만 지역(당시에는 초대륙 곤드와나의 북쪽 해안) 해저에서 이러한 유기물들의 잔해가 쌓이면서 곧 하나의 층을 이루었다. 그 후 이 잔해가 수백만 년 동안 가열 및 압축되어 석유와 가스로 변했다.
원유가 형성되는 곳과 발견되는 곳은 보통 일치하지 않는다. 석탄과는 꽤 다른 양상이다. 원유 매장지에 구멍을 뚫는 작업은 고대의 해저를 건드리는 행위가 아니다. 버그가 발견한 매장층은 1억 년 전에 플랑크톤과 해조류가 자리 잡은 위치가 아니다.
플랑크톤과 해조류가 압축된 단단한 근원암(source rock)에서 원유와 가스가 생성되면, 근원암층 위에 자리한 저류암(reservoir rock)층은 다공성과 투과성을 갖추고 있는데, 근원암층에서 생성된 원유와 가스를 흡수해 단단한 천장으로 막아 저장한다. 버그가 찾던 것이 바로 이 저류암층이었다.
페르시아만은 전 세계 석유 매장양의 절반과 가스 매장량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지구상에서 탄화수소가 가장 풍부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페르시아만은, 적절한 바위에 자리 잡은 고대의 해조류, 시간이 지나면서 가해진 적절한 양의 열과 압력, 원유와 가스를 밀봉할 적절한 트랩을 갖춘 저류암층 등 그야말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
전 세계에는 많은 유전이 있지만, 가와르만큼 모든 조건을 갖춘 유전은 없다. 석유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생산한 원유의 절반 이상이 바로 '가와르 유전'에서 나왔다. 지구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가와르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곳은 없다.
미국은 왜 사우디아라비아에 고개를 숙였을까
산업혁명은 단지 아이디어와 공학, 화학 분야만의 혁명이 아니라 에너지 혁명이기도 했다. 모래에서 유리로의 변환, 반도체의 개발, 소금물로 염소를 생산하고, 철에서 강천로의 전환, 전기의 생산 등 앞에서 살펴봤던 물질들의 공정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에 의존한다.
현재 우리에게 도달되는 에너지 대부분은 직간접적으로 화석연료의 도움을 받고 있다.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부와 복지의 폭발적 증대는 화석연료를 비범하게 활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인류는 열역학 사다리를 오르는 데 꽤 오랜 시간을 들였다. 에너지 밀도는 단위 부피당 저장된 에너지의 양인데, 석탄은 나무보다 에너지 밀도가 약 두 배 더 높고, 등유는 석탄보다 1.5배 더 높다. 에너지 밀도는 산업화 초기에 특히 중요했다. 배를 움직이는 연료로 석탄 대신 나무를 쓰면 두 배 이상의 연료 저장 공간을 사용해야 하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등유는 동력 비행을 가능하게 한 요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땅속에서 원유를 퍼올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계속되어 온 지질학적 사이클을 파괴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를 태우는 동안, 지하에 격리되어 있던 이산화탄소가 다시 대기 중으로 나오면서 '지구온난화'라는 새로운 시대를 촉발했다. 석유와 가스는 매우 유용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파괴적이다.
과학자들이 오존층에서 구멍을 발견하고 그 원인인 프레온가스의 대체재를 개발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석유와 가스는 그 본질상 대체가 어려운 편이다. 석유와 가스로부터 벗어나려면, 선의와 탄소 중립 목표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벌어진 일들만큼 생생하고 중요한 에피소드는 없을 것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석유 사용량의 12퍼센트, 전 세계 가스 사용량의 17퍼센트를 공급한다. 전쟁이 발발하고 몇 달 동안 유럽과 미국은 탄화수소 공급량이 조금이라도 줄면 어떤 위기가 생기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5달러를 넘어서면서 2022년 7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여 원유 생산량 증가를 촉구했다. 대선 캠페인에서 "미국이 앞으로 단지 석유를 사거나 무기를 팔겠다고 원칙을 굽히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라는 모토를 내세웠던 바이든에게는 특히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2020년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이 요원들을 보내서 저널리스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를 살해한 사건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었다. 곧이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멘 전쟁 개입도 비난했다.
하지만 휘발유 가격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자, 그는 황급히 제다(Jedda)를 방문하여 무함마드 왕세자를 만났다. 자신이 멀리하겠다고 공언했던 사람들과 화기애애하게 어울리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힌 바이든은 1940년대에 가와르 유전이 발견된 이래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들이 거쳐간 의식을 되풀이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이었고, 2위인 소련을 한참 여유 있게 따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1947년이 되자 국내 공급이 줄어든 반면 에너지 소비가 크게 증가하면서 수입이 수출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알래스카주의 프루도만 유전이나 멕시코만 심해의 원유 매장총 등 슈퍼 자이언트 등급의 유전을 발견했음에도 이 불균형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운송, 난방, 석유화학제품의 주요 에너지원인 이 중대한 연료의 공급이 갑자기 불안정해졌다.
1970년대 중반 소련에, 1990년대 초반 사우디아라비아에 연달아 추월당한 미국은 다른 산유국들에 의존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고서는 영 거북해졌다. 그 과정에서 중동, 때로는 나이지리아,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타국의 정치가 원유 공급과 얽히면서 석유 파동이 잇따랐다. 에너지가 무한하리라는 미래에 대한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처드 닉슨(Richand Nixon) 이후로 미국 대통령들은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바이든이 지금 하는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서 저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2022년 바이든의 방문에는 특히 역설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일각에서 이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력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어니 버그가 일하던 캘리포니아-아라비안 스탠더드 오일은 타사에 인수되어 아람코(Arabian American Oil Company, ARAMCO)로 이름을 바꾸었다. 2019년에 아람코는 주식 일부를 공개 상장했는데 가와르의 일일 원유 생산량은 시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와르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큰 유전이지만, 모두가 예상했던 500만 배럴이 아닌 하루 38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면서 중년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미국에서는 석유와 가스 생산의 혁명이 이 모든 이야기를 뒤집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
이 혁명은 1980년대에 헌신적인 환경운농가의 길로 들어선 사업가 조지 P. 미첼(George P. Mitchell)이 시작했다. 그는 지구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려는 ⟪로마 클럽의 성장의 한계⟫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미첼은 천연가스가 석탄보다 환경을 덜 오염시키므로 미래의 연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81년에 그의 팀원 중 한 명이 지질학적 통념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논문을 썼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연구의 요점은 가스가 마지막으로 저장되는 곳인 저류암층이 아니라 처음에 생성되는 곳인 근원암층에서 곧바로 가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로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 텍사스주를 포함한 몇몇 지역에서 세일(shale)로 된 근원암층에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와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을 개발할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미첼은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기술자들을 독려하면서 텍사스주의 거대한 근위암층인 바넷 셰일(Barnett Shale)에서 가스를 추출하는 기술을 구상했다. 미첼의 팀은 수압파쇄법을 사용하여 실험했는데, 이는 물, 모래, 화학물질의 혼합물을 고압으로 분사하여 셰일층을 부수고 가스를 꺼내는 기술이다. 프래킹(Fracking)이라는 이름으로도 볼리므로 암반에 분사된 혼합물을 '프래킹 용액'이라고 한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수압파쇄를 암반을 옆에서 뚫는 수평시추(horizontal drilling)라는 기존 기술과 결합하면서 실질적인 결과를 내기 시작했다. 종래의 수직시추(vertical drilling)는 지하 암반을 똑바로 뚫고 내려가는 방법으로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수평시추를 적용하면 프래킹 용액을 근원암층에 더 많이 투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이 단단한 셰일층에서 갑작스럽게 가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제 정유회사와 가스회사는 더는 트랩을 찾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의 전임자들이 개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고대 해저를 찾고 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미첼이 사망한 2013년 시점에는 환경운동가들의 핵심 타깃이 되어 있었다. 특히 화학물질이 잔뜩 들어간 프래킹 용액이 유발하는 지하수층 오염 및 수질오염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고, 수압파쇄법으로 인한 지진이나 프래킹 용액에 사용하기 위해 채취, 운반되는 모래의 양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2007년부터 2021년 사이에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두 배 이상 늘어났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뛰어넘어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 자리를 차지했다. 전례가 없는 도약이었고, 보통 사람들은 이해조차 힘든 일이었다. 마치 이 세상에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이 하나 더 생긴 듯했으니 말이다.
사막과 석유로 상정되는 사우디아라비아 땅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여전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중앙은행 같은 역할을 한다. 다른 대안이 모두 실패했을 때 마지막으로 찾아갈만한 유일한 산유국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역할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 나라의 내부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여전히 극비로 남아 있다. 석유의 시대에 반복되는 불변의 교훈이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를 과소평가하면 그에 따르는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5년 ⟪사막에서의 여명⟫이라는 책을 써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가 고갈되리라고 예측했던 작가 맷 시먼스(Matt Simmons)는 <뉴욕 타임스>의 어느 칼럼니스트와 내기를 했다. 하지만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유가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시먼스는 내기에서 졌지만, 그 결과가 알려지기 전에 사망했다.
정유공장에서 바라보는 미래
독일 쾰른에 위치한 베셀링 정유공장(Wesseling refinery)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 말하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베셀링 역시 다른 정유공장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스파게티처럼 교차하는 강철 파이프, 크롬 용기, 열기 내뿜는 악취 나는 굴뚝까지.
정유공장에서는 마치 연금술 같은 변화가 벌어진다. 만약 이 연금술이 없었더라면 세상은 지금과는 무척 달랐을 것이다. 정유 공장의 파이프 안에서 원유가 순수한 탄화수소로 바뀌는데, 이때 하나의 분자 세트로 들어간 액체는 전혀 다른 분자 세트가 되어 나오기도 한다. 말하자면, 원유 1배럴을 가져다가 아무것도 넣지 않고 1.25배럴로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공정이다.
이곳은 역설적인 장소이다. 탄소의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곳이지만, 인류가 어떻게 탄소 배출물을 처리하고 화석연료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대량의 원유를 연소하면서 상당한 탄소를 배출하는 동시에, 파이프에서 떨어지는 방울방울마다 가치를 추출하면서 효율성의 귀감이 되는 장소이다.
석유에서는 어떤 맛이 날까
베네수엘라의 메레이 원유(Merey crude)와 멕시코의 마야 원유(Maya crude)는 무겁고 끈적끈적한 반면, 가와르 유전에서 나오는 원유는 점성과 밀도가 낮아 '아라비안 라이트(Arabian Light)'라고 불리고, 비중이 가벼워 땅속에서 더 쉽게 추출할 수 있으므로, 추출과 정제에 드는 비용이 대부분의 원유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원유는 황의 함량에 따라 '달콤'하거나 '시금'하다. 황의 함량이 높을수록 더 시큼한 맛이 나는데, 원유가 더 가볍고 단맛이 날수록 정유공장에서의 시간과 노력이 덜 들어가므로 더 높은 가격을 형성했다.
베셀링의 정유공장은 전 세계에서 온 대략 100가지 맛의 다양한 원유를 정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다. 이곳에서는 유럽연합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한 일이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온 원유를 혼합하면 되었다.
그에 반해 대부분의 미국 정유공장은 캐나다, 멕시코, 베네수엘라에서 얻은 무겁고 시큼한 중질원유를 정제하기 위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정유공장들을 운영하기 위해서 해외에서 계속 중질원유를 수입하는 동시에 비중이 가볍고 품질이 뛰어난 텍사스산 경질원유는 유럽과 아시아에 보내 정제 처리를 하고 있다.
정유공장에서는 먼저 사우디아라비아, 나이지리아, 텍사스 등지에서 온 원유에서 염분과 오염물을 제거하여 깨끗한 상태로 만든다. 그다음은 가장 중요한 증류 단계로 원유를 가열, 증발, 응축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혼합물을 분리한다.
이런 식으로 혼합물을 증류하여 분리하는 증류탑은 위스키를 증류할 때 사용하는 장치와 거의 같은데, 원유 증류탑이 월씬 더 길고 크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LPG 같은 가스류는 섭씨 30도 이하, 석유는 섭씨 40도 이상이 끓는점이다. 시간이 흐르고 정유회사는 열, 압력, 촉매를 조합하여 고분자를 저분자로 쪼개는 법, 그리고 저분자를 고분자로 재형성하는 법을 알아냈다.
최종 제품은 크게 여섯 가지로 분류되는데, 자동차용 휘발유, 트럭/기차/기타 중량차용 경유, 플라스틱 같은 석유화학제품, 등유 및 제트유, 왁스 및 윤활유, 도로의 표면을 덮는 아스팔트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나게 단순화한 설명이다. 원류 1배럴은 수백 가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유회사 필립스 66(Phillips 66)이 운영하는 영국 링컨셔 주의 험버 정유공장(Humber Refinery)은 타르류의 물질인 콜타르(coal tar)로 '니들코크스(needle coke, 침상코크스)'를 만든다. 니들코크스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음극재로 쓰이는 인조 흑연의 핵심 원료이다.
험버 정유 공장 같은 곳들은 미래 세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과거의 비전이자 세련미 없는 파이프 더미로 치부하기 쉽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유공장에서 벌어지는 일 대부분이 믿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기 때문이다.
베셀링 정유공장의 비밀
베셀링 공장은 유럽의 가장 선진적인 공업 국가인 독일에서도 제일 큰 정유공장이다. 왜 이렇게 과할 정도로 공간이 넓을까? 그리고 왜 이렇게 기괴한 방식으로 공간을 배치했을까? 베셀링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베셀링의 역사는 나치의 비밀 무기 공장에서 시작한다. 원래 이곳은 나치 공군에 항공 연료를 공급하는 공장이었던 탓에 공군 총사령관인 '헤르만 괴링(Hermann Göing)'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1940년대에 무기 생산 목적에 따라 맞춤형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배치가 괴상한 것이다. 각 구역 사이에 넓은 공간이 있는 이유는 공습 시 적의 폭격기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였다.
베셀링은 당시에도 독일 연료 산업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는데, 지금과는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당시에 항공기 연료는 석유가 아니라 석탄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 독일이 일군 경제는 풍부한 석탄을 이용하여 경쟁력을 확보한 덕분에 가능했다.
독일 석탄은 지저분한 갈색의 갈탄이었지만, 세계 최고 수준으로 훈련받은 독창적인 과학자들의 활약으로 천연자원의 부족함을 메우고도 남았다. 이들은 석탄으로 거의 모든 걸 가능하게 했다.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Bayer)은 독일산 석탄으로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 아스피린)을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뒀다. 바스프(BASF)는 독일산 석탄으로 다양한 염료를 개발하여 돈방석에 올랐다.
독일산 석탄으로 탱크, 트럭, 비행기에 사용할 수 있는 휘발유를 개발한 것은 화학자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 Friedrich Bergius)이다. 그는 프리츠 하버의 제자인데, 1913년 튼튼한 강철 용기 안에서 촉매를 사용하여 고압 반응을 일으키면 잘게 부순 석탄을 수소화하여 합성 석유를 만들 수 있었다.
원유를 거의 무제한에 가깝게 생산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석탄을 석유로 바꾸는 기술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1920년대 초에는 훗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피크 오일(peak oil)'에 대한 공포가 처음으로 나타났었다.
전 세계 회사들이 '수소화(Hydrogenation)'로 알려진 베르기우스의 특허를 이용하겠다고 줄을 섰다. 하지만 카를 보슈만큼 흥분한 사람은 없었다. 합성 석유는 합성 질산염의 뒤를 잇는 블록버스터 제품이 될 터였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석탄을 석유로 바꾸는 공정은 원유를 수입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비쌌다.
1930년대 초반, 바이엘과 바스프 등이 합병하여 만들어진 독일의 화학기업 카르텔 이게파르벤(IG Farben)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구원은 하필 아돌프 히틀러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자립에 집착하면서 미국과 소련으로부터 원유 수입을 끊으려던 히틀러는 국산 자동차가 전국의 고속도로를 누비는 독일의 비전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이게파르벤 임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독립을 바라는 독일에서 석유 없는 경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했던 이게파르벤에 히틀러의 말은 마치 음악처럼 들렸다. "설령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국산 자동차 연료를 반드시 개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석탄의 수소화 작업을 이어가는 것은 시급한 일입니다."
석유는 2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기계와 내연기관을 사용한 최초의 대전이었고, 서부 전선의 참호로 대표되는 소모전이기도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2차 세계대전은 전례 없이 광활한 지역에 전선이 펼쳐진 기동성의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은 석유로 석유를 쟁탈하려는 싸움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석유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 전쟁이었다.
원유가 나오지 않는 독일 역시 다른 곳에서 원유를 조달하는 데 전략의 초점을 맞추었다. 루르 지방의 노천광에서 캐낸 갈탄은 베셀링 정유공장의 챔버에서 분쇄되고 수소화 공정을 거친 뒤, 파이프를 타고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전쟁 포로와 강제수용소의 수용자들은 버스로 실려 와 이런 공장들에서 강제 노역을 해야 했다.
베셀링부터 로이나에 이르는 주요 공장에서 독일군의 연료 대부분을 생산했다. 이 공장들이 없었더라면 2차 세계대전은 훨씬 빨리 끝났을 것이다. 이 공장들은 절정기에 연간 2500만 배럴의 합성 석유를 생산했고, 독일 공군이 사용한 연료의 95퍼센트를 제공했다.
1944년 봄, 정유공장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연합군 전투기들은 수소화 공장들에 20만 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고, 베셀링은 초기 공습에서는 구역 사이 넓은 공간과 기계 사이에 쌓은 벽돌 등으로 인해 살아남아 원유를 계속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44년 7월 19일 이른 아침, 약 100대의 폭격기로 편성된 영국 공군 비행대대가 베셀링을 공습하기 시작했다. 간밤에 하늘이 맑게 개면서 공습에는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언제나처럼 다들 벙커로 달려갔지만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인공 안개가 피어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폭격기들이 조명탄을 터뜨리자 눈부신 붉은빛 아래로 설비와 저장고들이 전부 모습을 드러냈고 폭격기들은 약 20분 동안 세 차례 공격하면서 1,000개에 가까운 폭탄을 투하했다. 석탄 저장고가 타올랐고, 수소화 작업에 사용되는 가스를 생산하는 시설도 파괴되었다. 베셀링 공장은 다음 날 정오까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후 10월 초에 '하늘의 요새'라고 불리는 B-17로 무장한 미국 항공대의 공습으로 베셀링의 생산력은 바닥에 가까워졌다. 1944년 말, 연합군이 단 한 번의 폭격으로 3만 4000배럴 이상의 항공 연료를 사용했던 반면, 당시 독일 공군 전체는 하루에 겨우 1만 2500배럴의 연료를 쓸 수 있었다. 1945년이 되었을 무렵, 독일 공군은 사실상 지상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2차 세계대전은 정유공장과의 전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유공장들 사이의 전쟁이기도 했다. 연합군은 독일의 수소화 공장을 공격하는 동안에도 독일보다 더 많은 연료를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기 연료 보급에 있어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독일의 합성 연료는 물론 경이로웠지만, 대서양 반대편에서 미국의 정유회사들 역시 약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복잡한 접촉 분해 기술(catalytic cracking)을 활용하여 초고층 빌딩 크기의 정유공장에서 옥탄가 100의 고급 연료를 생산했다. 옥탄가 100인 미국산 연료는 베셀링 정유공장에서 생산하는 옥탄가 87의 연료보다 훨씬 고품질이었다.
내연기관에서 연료가 비정상적으로 연소할 때 일어나는 폭발을 '노킹(knocking)'이라고 하는데, 노킹이 일어나지 않고 연료가 얼마나 압력에 잘 견디는지를 옥탄가로 측정한다. 옥탄가가 높은 연료가 있으면, 스핏파이어, 랭커스터 등의 전투기에 롤스로이스 멀린 같은 고성능 엔진을 장착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연합군 전투기는 독일군 전투기보다 15퍼센트 더 빨랐고, 폭격 임무에서도 사거리가 2,400킬로미터 더 길었으며 비행 최대 고도도 3,000미터 더 높았다. 이러한 차이가 브리튼 전투에서 승리의 추를 연합군 쪽으로 기울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비의 집'에서 일어난 일들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인 '엔진 노크'는 자동차 산업이 초기에 마주했던 큰 난관 중 하나였다. 1920년대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는 경쟁사 포드를 앞서기 위해 캐딜락의 엔진을 조용하게 만들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제너럴 모터스의 엔지니어인 토머스 미즐리(Thomas Midgley Jr)는 휘발유에 테트라에틸납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마치 기적처럼 옥탄가가 높아지고 모든 엔진 노크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대사의 가장 수치스러운 오염 문제 중 하나가 이렇게 시작되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탄소 배출보다 훨씬 부끄러운 일이다.
현대 콘크리트의 발명에 영감을 준 로마시대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납을 다루는 사람들이 건강을 심하게 해치는 것을 보고 납 파이프에서 나오는 물을 조심하라고 조언했었다. 납은 강력한 신경독으로 특히 어린아이의 뇌를 망가뜨린다.
의사와 정책 입안자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 대다수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제너럴 모터스는 납은 대체할 방안을 찾는 대신 자신들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이름을 고쳐 썼다. '테트라에틸납'을 '에틸(Ethyl)'로 바꾼 것이다.
위험 신호는 처음부터 있었다. 에틸을 시장에 선보인 직후, 뉴저지 정유공장에서 환자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들은 글자 그대로 미쳐 갔는데, 환각에 빠져 점차 광란 상태가 되었다. 제너럴 모터스 정유공장의 테트라에틸납 합성 구역에서 일했던 노동자 여섯 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이 구역 사람들은 자기 몸에 붙은 상상의 곤충들을 계속 떼어내려 했기 때문에 이곳에 '나비의 집(House of Butterflies)'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몇몇 주에서는 납을 첨가한 유연 휘발유 사용을 금지했다. 제너럴 모터스가 대안을 내놓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에틸알코올을 비롯한 몇 가지 대안이 있긴 했지만, 특허 취득이 어려워 수익성이 현저히 낮아 보였다.
그런데 이때 테트라에틸납의 개발자인 토머스 미즐리가 열연을 펼쳤다. 기자 회견을 열어서 테트라에틸납 용액으로 손을 씻고 1분간 그 냄새를 들이마시면서 부작용이 없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이 사건은 정말 기괴한 퍼포먼스였다. 사실 이때 그는 납 중독 치료를 위해 플로리다주에서 요양을 마치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
제너럴 모터스와 변호인단은 사망자가 자신의 과실로 죽었음이 분명하다면서, 비효율적이고 철커덕거리는 엔진을 개선하기 위해서 납의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때는 바야흐로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광란의 시대인 1920년대였다. 주 정부들은 납 사용 금지 조치를 철회했고 마침내 유연 휘발유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아무리 미세한 양이더라도 납에 일단 노출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뇌, 삐, 폐에 축적될 수 있다. 납을 흡입한 세대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IQ가 더 낮았고, 폭력적 행동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설득력 있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은 1980년대가 되어서야 유연 휘발유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결국 정유회사들은 2차 세계대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묘책을 짜냈고 납이 들어가지 않는 휘발유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반세기가 넘도록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분출된 매우 작고 무수한 납 입자들은 여전히 전 세계 도시의 토양과 먼지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정유공장에 관한 이야기에는 꼭 납이 아니더라도 벤젠 같은 유독성 물질들로 인한 오염 문제가 늘 따라다닌다. 이로 인해 정유공장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국제석유자본도 전기자동차와 수소에너지라는 새로운 트렌드에 직면하여 정유공장들을 매각하는 추세이다.
베셀링은 종전 후 석탄 대신 원유를 정제하는 곳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한동안 하버-보슈 공정으로 암모니아를 생산했고, 1950년대에는 다시 한번 항공 연료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륙하는 여객기를 위해서였다. 2000년대 들어 베셀링은 유럽에서 가장 정교한 정유 공장 중 하나가 되었다.
2025년이 되면 원유를 운반하는 파이프들이 막히고 친환경 대체 연료가 생산되기 시작할 것이다. 공장의 녹색 탱크들은 앞으로는 근처에 있는 전해조에서 만들어진 그린수소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일 것이다. 역사의 흔적을 구석구석 품은 베셀링 정유공장은 이제 희미하게라도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플라스틱 세상의 우연한 발견들
존 D. 록펠러(John D. Rockfeller)는 정유 산업 초창기에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석유 제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정유공장들을 살펴보다가 굴뚝에서 불길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고, "뭐가 저렇게 타오르는 거지?"라고 물었다.
록펠러의 질문을 받은 직원이 정유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증류탑에서 원유의 유분을 증류하고 분쇄할 때 시장성이 없는 어떤 화합물이 불가피하게 나온다고 했다. 바로 에틸란 가스였다. 록펠러는 딱 잘라 말했다. "뭐가 되었든 낭비는 안될 일이야. 저걸로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찾아봐!"
이 일화가 사실일 가능성은 적지만, 원유이야기는 현대의 소비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런 부산물로는 플라스틱, 의약품, 비료, 기타 석유화학제품이 있다. 이 제품들을 저렴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 휘발유와 디젤을 생산하기 위해 정유공장에서 처리하는 원유의 양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탄화수소 대부분은 차량의 연료 탱크로 들어가고, 천연가스 대부분은 전력과 난방을 생산하는데 쓰인다. 나머지 10%, 즉 원유와 가스를 정제하고 생긴 부산물은 그 적은 비율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것들은 에너지 절약을 돕지만,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화석연료로 만들어졌다. 석유화학제품들은 깨끗하지만 더럽고, 무척 흔하지만 보기 드문 모순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이 제품들에 대해서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플라스틱, 비료, 포장재, 의약품, 방부제와 합성수지, 페인트와 접착제, 염료와 향료, 이 많은 제품들이 어디서 오는지 아는가? 정유공장의 일이 원유를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석유화학 부문의 일은 단순한 분자를 아찔할 정도로 많은 수의 제품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토마토에 관한 진실
토마토, 오리, 후추, 상추 등과 같이 당분과 풍미를 내는 원자들은 에너지 기업이 땅속에서 퍼낸 메탄가스 분자의 일부로서 삶을 시작한다. 사실 우리가 먹는 것 대부분은 따지고 보면 화석연료의 산물이다.
요즘은 토마토를 바깥의 밭이 아니라 온실 안에서 재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환경 제어 농업(CEA)으로 불리는 이 기술은 작물 재배의 미래로 여겨진다. 인공조명을 설치한 대규모 온실이나 수직 농장(다단온실)에서 작물을 재배하면 1,000제곱미터의 일반적인 밭에서 얻는 양보다 100배나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다.
마치 동굴 같은 온실 내부에는 뜨거운 파이프가 바닥을 따라 깔려 있어서 온도가 섭씨 20도로 유지된다. 바닥에서 몇 미터 위에 있는 배수로에 토마토 줄기가 매달려 있고, 토마토의 뿌리는 흙이 아니라 현무암으로 만든 섬유인 미네랄 울에 묻혀 있었는데, 여기에 물과 비료를 섞어서 만든 용액이 계속 공급된다.
토마토가 화석연료의 산물이라는 첫 번째 단서는 온실 옆에 있는 골함석 창고 안의 보일러로, 온실 바닥에 깔린 파이프에 열을 공급하는 원천이다. 농업은 본질적으로 태양에너지를 먹을 수 있는 칼로리로 바꾸는 셈이다. 이러한 태양에너지의 온기를 화석연료인 온실의 가스 난방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비료회사들은 석탄 대신 천연가스를 사용하여 하버-보슈 공정에 따라 대기 중에서 질소를 고정하는데 필요한 수소를 생산한다. 즉 온실 속 토마토들은 천연가스 제품으로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다.
또한 온실 바닥에는 구멍이 송송 뚫린 흰색 플라스틱 타공 파이프가 있는데, 이 파이프는 농축된 이산화탄소를 계속 내뿜는다. 빛과 더불어 광합성의 주료 재료인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평균적으로 400피피엠 정도 들어 있는데, 이 파이프를 통해 이산화탄소의 함량을 800~1,000피피엠까지 증가시켜 성장속도를 가속화한다.
결국 이 토마토의 엽록소에는 천연가스에서 나온 탄소와 수소, 그리고 천연가스로 생산된 비료에서 나온 질소가 모두 들어 있다. 모두 화석연료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과학자 바츨라프 스밀은 토마토 하나당 디젤유 5 테이블스푼만큼의 에너지 비용이 든다고 계산했다. 또한 온실 자체도 유리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플라스틱은 우연히 만들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합성 소재는 우연에 의해 발명되었다. 플라스틱의 세계에서 이런 일은 드물지 않으며, 주요 플라스틱은 거의 우연히 발견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합성 소재가 무려 세 번의 우연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은 꽤 독특하다.
첫 번째 발견은, 1894년에 독일의 화학자 한스 폰 페히만(Hans von Pechmann)이 디아조메탄(diazomethane)이라는 폭발성 가스를 다루던 중에 일어났다. 페히만은 디아조메탄이 수소와 탄소로 이루어진 흰색 가루로 분해된 모습을 보고 폴리메틸렌(polymethyle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고는 이 물질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았다.
두 번째 발견은 1930년에 일리노이대학교에서였다. 몇몇 연구자가 유기 비소 화합물을 가지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흰색 밀랍 같은 이상한 잔여물이 남았다. 그들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이 고체는 더는 연구되지 않았다."그게 끝이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발견은 1933년 3월 영국 화학 기업 ICI의 연구소에서 일어났다. ICI의 화학자 에릭 포셋(Eric Fawcett)과 레지널드 깁슨(Reginald Gibson)은 고압 상태에서 화학반응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이들은 에틸렌으로 실험을 시작했는데, 1,400 기업의 압력에서 에틸렌과 벤즈알데히드(benzaldehyde)를 합성하려고 하자 '흰색 밀랍 같은 고체'가 반응관에 나타났다. 이렇게 폴리메틸렌이 발견되었고, 현재는 '폴리에틸렌(polyethylene)'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수천 가지 종류의 플라스틱이 있지만, 폴리에틸렌만큼 용도가 다양하고 유용한 플라스틱은 드물다.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UHMWPE)은 강철보다 더 단단하고,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은 밀랍만큼 부드럽다. 또한 폴리에틸렌은 놀라운 연성 덕분에 부러지기보다는 늘어나는 편이다.
물이 잘 스미지 않고, 내구성이 우수하며, 물의 끓는점 이상에서 버티는 내열성이 있지만, 재활용이 가능하다. 폴리에틸렌 몇 가닥을 엮으면 총알도 튕겨낼 정도로 튼튼해진다. 비전도성을 갖춘 완벽한 절연체이기도 하다.
이런 특성으로 이론상 폴리에틸렌은 전선 주변의 절연기능이 있는 보호막으로 사용되던 기존의 고무 유액인 구타페르카(gutta-percha)를 대체할 수 있었다.
1930년대 후반, ICI는 플라스틱을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얼마 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이 경이로운 물질은 국가 간 전쟁 준비에 빠르게 동원되었다.
폴리에틸렌으로 절연한 전화선은 1944년에 영국 해협을 가로질러 놓였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 및 연합군 통신망에 큰 전력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공은 레이더 시스템의 무게를 전투기 내에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줄일 수 있었던 역할이다.
레이더를 발명한 로버트 왓슨와트(Robert Watson-Watt)는 이렇게 말했다. "폴리에틸렌은 항공기 기상 레이더의 설계, 조립, 설치, 유지 등 불가능해 보이기만 하던 일을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는 작업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종전(終戰)과 함께 플라스틱 과잉 상태에 맞닥뜨리면서 ICI는 구매자를 찾아 나섰다. 저렴한 플라스틱 장난감, 구슬, 보석류, 자질구레한 장신구는 소비자의 욕구보다는 공급 과잉 덕분에 생겨난 물품들이다.
1950년대 필립스석유는 폴리에틸렌의 반강체 타입을 실험하면서 어떻게든 성과를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실험으로 회사에 심각한 재정 위기가 닥쳤을 때, 웸오(Wham-O)라는 회사가 실험 재고를 전부 사들여 새로운 장난감인 훌라후프를 만들어 전 세계적인 열품을 일으키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막대한 폴리에틸렌 재고를 떠안은 ICI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폴리에틸렌을 길고 얇은 투명 필름으로 만들어서 식품업계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폴리에틸렌은 식품을 훨씬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완벽한 포장재였다. 결국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식품에 스며들지 않는다는, '식품 접촉 물질'로 인정받아 폴리에틸렌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폴리에틸렌은 가장 널리 손쉽게 사용되는 플라스틱이다. 에펠탑을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포장할 수 있는 양의 폴리에틸렌이 6초마다 유럽에서 생산된다. 폴리에틸렌의 연간 생산량은 1억 톤에 달하는데 이는 구리와 알루미늄의 전 세계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대부분은 비닐봉지를 만드는데 쓰인다.
저밀도 폴리에틸렌으로는 쇼핑백과 식품 포장용 랩을, 초저밀도 폴리에틸렌으로는 지퍼백을, 선형 저밀도 폴리에틸렌으로는 에어캡과 타파웨어를 만든다. 고밀도 폴리에틸렌으로는 세정제 용기, 플라스틱 장난감을 만들 수 있다.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은 인공관절 혹은 방탄조끼의 재료로 사용할 정도로 강하다.
물론, 폴리에틸렌이 유일한 플라스틱은 아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고분자로는 저밀도 폴리에틸렌, 고밀도 폴리에틸렌 폴리스티렌(PS), 폴리염화비닐(PVC), 폴리프로필렌(PP)이 있는데 이들을 묶어서 5대 범용 플라스틱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고분자가 있다. 부드러운 스타킹을 만드는 재료로 유명한 나일론(nylon)은 단단한 기계 나사로 쉽게 성형할 수 있다. 접착제로 알려져 있는 에폭시 수지 같은 열경화성, 즉 열을 가하면 단단하게 경화되는 화학적 변형을 일으키는 물질도 있다.
인류는 자연을 개선할 뿐 아니라 보호하는 데도 고분자를 사용했다. 최초의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는 당구공에 사용되던 상아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고, 근사하게 염색된 셀룰로이드는 천연의 거북딱지를, 폴리에스터는 밍크 모피를 대신했다. 플라스틱 포장재 덕분에 더는 대량의 모래를 녹여서 유리를 만들거나 수많은 나무를 베어서 종이와 카드를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는 플라스틱 세상에 산다
1940~1950년대에서 1960~1970년대로 넘어가면서 놀라운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유공장과 가스공장에서 나오는 나프타(naphtha)와 에틸렌을 공급받은 화학회사들이 탄화수소 분자로 맞춤 설계할 수 있는 화학물질과 의약품, 플라스틱을 대량생산했다.
플라스티의 사용이 급증했지만, 새로운 물질들 대부분은 과거의 황금기, 즉 2차 세계대전 후반에 발견된 5대 범용 플라스틱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획기적인 발전이긴 했지만, 포셋과 깁슨이 노스위치에서 발견(후은 재발견)한 것만큼 획기적이진 않았다.
에틸렌은 이제 거대하고 새로운 석유화학 부문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한때 세계 곳곳에 폴리에틸렌을 공급했던 ICI 공장은 현재 월턴의 티스사이드에 자리를 잡고 여전히 가동 중이다. 오늘날 이 공장은 아람코의 석유화학 부문 자회사인 사빅(SABIC)이 소유하고 있다.
유럽에서 한때 경이로운 물질로 추앙받던 플라스틱은 이제 의혹과 실망의 눈길에 휩싸여 있다. 플라스틱은 때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닷속 미세 플라스틱은 눈에 띄지 않은 채 떠돌다가 각 가정으로 흘러 들어간다. 또한,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미세 플라스틱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 높은 산악 지대에서도 검출된다.
현재 상당수 국가에서 비닐 쇼핑백과 플라스틱 빨대 같은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데, 어떤 경우는 근시안적인 대책이 될 수도 있다. 종이봉투와 종이 빨대가 비닐 쇼핑백과 플라스틱 빨대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1배럴의 미세한 유분조차도 낭비하지 않으려 하는 무척 인색하고 단호한 석유 산업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제품과 수익으로 연결하겠다는 각오 끝에 나온 산물이 바로 플라스틱이다. 그리고 플라스틱은 그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산업과 재료의 탄생을 도왔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정유공장이 폐기되는 사태는 막아줬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폐기물이 되고 말았다. 해변, 도로, 바다, 매립지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라.
비하인드 스토리
원유를 가지고 석유. 디젤, 기타 석유화학 제품을 정제하는 방법을 발견한 순간 3차 에너지 대전환이 일어났다. 그리고 천연가스는 4차 에너지 대전환을 상징한다.
석유는 대부분의 석탄 종류보다 에너지 밀도가 훨씬 높고 내연기관용 연료로도 더 적합하지만, 연료를 동력으로 전환하는 데는 가스가 더 낫다. 오늘날 가스 터빈은 현존하는 에너지 변환 장치 중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며, 가스를 가장 효율적이고 오염을 최소화하는 연료로 만들었다.
석유는 1960년대 중반에 석탄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에너지원으로 부상했지만, 가스는 2020년대 초반에야 석탄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가스가 석유보다 수송이 훨씬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가스 수송에는 광대한 유통망이 필요하므로 구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4차 에너지 전환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가스는 곧 석유나 석탄보다 최종 에너지를 더 많이 제공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천연가스에 의존하여 용광로를 가열해서 모래를 녹이고 유리를 만든다. 소금을 화학 물질로 탈바꿈하는 일, 구리를 녹이고 제련하는 일 모두 천연가스에 의존한다. 오늘날 천연가스는 심지어 석탄과 함께 용광로에도 주입된다.
천연가스는 가장 효율적이고 환경오염도 가장 덜한 화석연료이다. 천연가스는 석유보다 5분의 1, 최고급 석탄보다 3분의 1 적게 탄소를 배출하지만, 탄소 배출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반드시 5차 에너지 전환을 이루어내겠다고 결의한 상태이다. 5차 에너지 진환의 목표는 이전처럼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지금 사용 중인 화석연료를 수력, 태양력, 풍력, 원자력 같은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다음 단계는 원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전반적인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2022년에 여러 정부가 맺은 약속에 근거하여 2020년대 중반이면 석유와 가스의 수요가 안정될 것이다.
석유와 가스를 사용하지 않으려면, 태양광 패널, 풍력발전 터빈, 원자력발전소 등을 활용하여 인류가 전에 단 한 번도 성취하지 못한 속도로 전 세계에 결처 새로운 에너지 생산 능력을 구축해야 한다.
정유공장에서 증류된 복합 제품은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해결할 배터리 재료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거대하고 튼튼한 풍력발전 터빈에 필요한 탄력성 있는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석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광물 개발의 새로운 시대로 향하게 될 것이다.
20세기의 블랙 골드, 즉 석유는 하얀 황금으로 대체될 것이다. 가루 형태의 하얀 황금, 즉 리튬은 21세기를 이끌 새로운 동력을 약속한다. 페르시아만의 맞은편에서 새로운 시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종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