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권 제3부
제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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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의 모스크바 점령과 새로운 전투 없이 진행된 프랑스군의 패주와 더불어 보로디노 전투는 역사의 가장 교훈적인 현상들 가운데 하나다. 많은 역사가들은 국가들과 국민들의 외면적 활동이 충돌하면서 그것이 전쟁으로 나타난다는 것, 국가와 국민의 정치적 힘은 전쟁에서의 크고 작은 성공의 결과에 따라 강해지거나 약해진다는 것에 동의한다.
군대가 승리하면 승리한 국민의 권리는 패배한 국민의 희생으로 인해 강해진다. 군대가 패하면 국민은 그 즉시 패배의 정도에 따라 권리를 박탈당하고 군대가 완전히 패하면 국민도 완전히 복속된다. (역사에 따르면)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랬다. 나폴레옹 전쟁 역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까지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1812년에 모스크바 부근에서 프랑스군이 승리하여 모스크바는 점령되었고, 이후 새로운 전투는 없었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60만 명의 프랑스 군대, 그다음에는 나폴레옹의 프랑스였다. 역사 법칙에 사실을 끼워 맞춘다거나, 보로디노 전장(戰場)은 러시아 수중에 있었으며 모스크바 점령 이후 나폴레옹의 군대를 파괴한 전투도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로디노 전투부터 프랑스군 축출에 이르는 1812년 전쟁 기간은 전투의 승리가 정복의 원인이 아닐뿐더러 정복의 불변의 징후도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 또한 그 기간은 국민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이 정복자에게 있거나, 심지어 군대와 전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있음을 보여 준다.
전투의 승리는 보통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카르프와 블라스라는 농민들과 (이들은 프랑스군이 출발한 후 짐마차를 끌고 도시를 약탈하러 모스크바로 들어왔고 개인적으로 영웅심을 드러낸 적이 대체로 없었다) 이들과 같은 셀 수 없는 수많은 농민들이 프랑스군이 건초에 대해 값을 잘 쳐주겠다고 제안했음에도 건초를 모스크바로 가져오는 대신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스몰렌스크 화재 때부터 전쟁의 이전 규칙을 전혀 따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시와 촌락의 소실, 전투 이후의 퇴각, 보로디노에서의 타격, 또 다른 퇴각, 모스크바 포기와 화재, 약탈자 체포, 수송 대열 탈취, 파르티잔 전투, 이 모든 것이 전쟁의 규칙을 벗어났다. 나폴레옹은 이를 감지했고 불평했지만, 국민 전쟁의 몽둥이는 그 누구의 취향이나 규칙에 대해 묻지 않고 무식하고 단순하지만 일관적으로 프랑스군을 내리쳤다.
1813년의 프랑스군처럼 펜싱의 모든 규칙에 따라 경례하고 칼자루를 돌려 우아하고 예절 바르게 승자에게 건네지 않은 국민은 복이 있다. 시련의 순간에 다른 나라 국민은 그와 유사한 경우, 어떤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지 묻지 않고, 단순하고 편하게 맨 처음 본 몽둥이를 잡아 마음속의 모욕감과 복수심이 멸시와 동정으로 바뀔 때까지 몽둥이를 내리친 국민은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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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규칙이라 불리는 것들로부터 가장 확실하고 유리하게 일탈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리저리 흩어진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뭉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그런 종류의 군사 행동은 국민적 성격을 띠는 전쟁에 항상 나타나기 마련이다. 스페인의 게릴라들이 그렇게 했고, 캅카스의 산사람들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1812년의 러시아인들도 그렇게 했다.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전쟁을 파르티잔(partisan) 전투라 부르고, 그렇게 부름으로써 그 의미를 설명했다고 생각했다.
전술 규칙에 따르면 공격군은 전투하는 순간에 적군보다 강해지기 위해 자신의 군대를 집결시켜야 한다. (역사가 보여 주는바 언제나 성공적인) 파르티잔 전투는 이 규칙과 정반대다. 이러한 모순은 군사학이 군대의 힘을 군대의 수와 동등하게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군사학은 군대의 규모가 클수록 군대의 힘도 강하다고 말한다. 대군은 언제나 옳다.
이러한 전술 규칙은 군대의 힘이 병사들의 사기에 의존한다는 진실만을 무의식중에 뒷받침할 뿐이다. 병사들을 포탄 아래로 이끌기 위해서는 공격에 저항할 때 필요한 것보다 더 강력한 기강이 필요한데 이는 오직 집단행동에 의해 성취된다. 그러나 군대의 사기를 간과하는 이 규칙은 끊임없이 그릇된 것으로 드러나고, 모든 국민 전쟁에서처럼 특히 군 사기의 고양과 저하가 심하게 나타나는 곳에서는 충격적일 만큼 현실과 모순된다.
1812년, 퇴각 중이던 프랑스군은 전술상 흩어져 개별적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집단으로 뭉쳐 다녔는데, 집단으로 있지 않으면 군대를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사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군은 전술상 반드시 집단으로 공격해야 했으나 실제로는 흩어져 있었는데, 이는 개개인들이 명령 없이도 프랑스군을 무찌를 만큼, 그들을 강제로 어려움과 위험에 내던질 필요가 없을 만큼 군의 사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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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파르티잔 전투가 시작된 것은 적군이 스몰렌스크에 진입한 이후부터였다. 파르티잔 전투가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기 전부터 이미 (본대에서 낙오된 약탈자들이나 말여물을 징발하는) 수천 명의 적군이 카자크와 농민들에 의해 절멸되었다.
데니스 다비도프(러시아의 군인이자 시인으로, 1812년 8월 21일 자신이 성장했던 곳이기도 한 보로디노 전투 이전에 파르티잔 부대 창설을 바그라티온에게 맨 처음 제안했다.)는 러시아인만의 감각으로 병법의 규칙을 묻지 않고 프랑스군을 죽이는 이 무서운 몽둥이의 의미를 가장 먼저 깨달았고 따라서 이 전법을 합법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첫걸음을 떼는 영예를 얻는다.
8월 24일에 다비도프의 첫 파르티잔 부대가 창설되었고 그 후 연이어 다른 부대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전쟁이 진행될수록 이 부대들의 수도 점점 늘어났다. 10월, 프랑스군이 스몰렌스크로 도주할 때에는 다양한 규모와 성격을 띤 부대들의 수가 수백에 이르렀다. 군대의 모든 방식을 받아들여 보병대, 포병대, 사령부, 생활 시설을 갖춘 부대도 있었다.
10월 하순은 파르티잔 전투가 정점에 이른 때였다. 이 전쟁 초기, 파르티잔들이 말안장을 벗기지도, 말에서 거의 내려오지도 않고 언제든 추격당할 것을 예상하여 숲속에 숨어 매 순간 프랑스군에 잡히거나 포위될까 두려워하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이 전쟁은 명확히 규정되었는데, 프랑스군에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지, 또 어떤 행동을 취하면 안 되는지가 모든 이에게 분명해졌다.
10월 22일, 파르티잔의 일원인 데니소프는 파르티잔의 열정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자신의 부대와 함께 있었다. 아침부터 그는 부대와 함께 움직였다. 그는 하루 종일 가도와 접한 숲에 숨어 기병대 물자와 러시아 포로를 이송하는 프랑스군의 대규모 수송대를, 정찰병과 포로의 말에 따르면 다른 부대와 떨어져 강력한 엄호를 받으며 스몰렌스크로 이동하는 수송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수송대에 대해서는 데니소프와 그 부근에서 움직이는 돌로호프뿐 아니라 (그 역시 소규모 파르티잔 부대를 이끌었다) 참모를 거느린 대규모 부대의 지휘관들도 알고 있었다. 다들 그 수송대를 알았고, 데니소프의 말에 따르면 다들 그 수송대에 대해 이를 갈았다. 데니소프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돌로호프와 함께 자신들의 적은 병력으로 이 수송대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10월 22일, 수송대는 미쿨리노 마을에서 샴셰보 마을로 가고 있었다. 수송대 인원은 대략 1천5백 명으로 예상되었다. 데니소프에게 2백 명이 있었고, 돌로호프에게도 아마 그 정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수적인 우위가 데니소프를 막지는 못했다. 그가 또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이들이 어떤 부대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데니소프는 혀(즉 적의 종대에 속한 군인)를 잡아야 했다. 오전의 치중차 공격에서는 일이 너무도 성급히 이루어져 카자크들이 치중차에 탄 프랑스군을 전부 죽이고, 낙오병으로 북 치는 소년만 생포했다. 그리고 데니소프는 티혼 셰르바티라는 농부를 샴셰보로 먼저 보내 프랑스군 전위 부대의 숙영 담당 병사를 한 사람만이라도 붙잡아 오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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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이 연이어 떨어지는 부르카와 털모자를 착용한 데니소프는 마르고 허리가 움푹 들어간 품종마를 타고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귀를 뒤로 눕힌 자신의 말과 똑같이 그도 비스듬히 내리는 빗줄기에 얼굴을 찌푸리며 근심스럽게 전방을 주시했다. 짧고 검은 숱 많은 수염으로 뒤덮인 그의 여윈 얼굴은 화난 듯 보였다.
그 뒤에 사람들의 왕래로 훼손된 좁고 질척한 숲길을 따라 셋씩, 넷씩 무리 지은 경기병들이, 그다음에는 부르카를 걸치거나, 프랑스군 외투를 입거나, 머리에 말 덮개를 뒤집어쓴 카자크들이 뒤따랐다. 길게 뻗은 카자크들의 대열 한가운데에서 프랑스 말과 안장을 얹은 카자크 말이 끄는 치중차 두 대가 그루터기와 가지에 걸려 덜커덩거리고 물이 가득 고인 바큇자국을 따라 철퍽거렸다.
‘수송대를 습격하기에 오늘처럼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우리 부대 홀로 습격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다른 날로 미루면 큰 파르티잔 부대의 누군가가 우리 코앞에서 노획물을 가로채겠지.’ 데니소프는 쉬지 않고 앞쪽을 흘깃거리며, 돌로호프의 사자가 보이기를 기대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누가 오고 있군.” 그가 말했다. 카자크 일등 대위는 데니소프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옵니다. 장교와 카자크군요. 다만 저 사람이 중령이라고는 가정할 수 없습니다만.” 카자크들이 모르는 말을 사용하기 좋아하는 카자크 일등 대위가 말했다. 홍조를 띤 너부데데한 얼굴의 앳된 소년 장교가 데니소프 쪽으로 말을 몰고 와서 흠뻑 젖은 봉투를 건넸다.
“장군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장교가 말했다. “봉투가 젖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건 뭔가요?” 그가 프랑스군의 북 치는 소년을 가리키며 물었다. “포로입니까? 당신들은 벌써 전투를 한 겁니까? 저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까요?”
“로스토프! 페탸!” 편지를 대충 읽어 본 데니소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네가 누구인지 왜 말하지 않았나?” 데니소프가 미소 지으며 돌아서더니 장교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소년 장교는 페탸 로스토프였다.
“어떤 명령을 내리시겠습니까?” 페탸가 거수경례를 하고, 자신이 준비한 ‘장군과 부관 놀이’로 되돌아가며 데니소프에게 말했다. “아니면 제가 이곳에 남아야 합니까?”
“장군은 자네에게 어떤 명령을 내렸나? 즉시 돌아오라고 했나?” 데니소프가 물었다. 페탸는 얼굴을 붉혔다.
“아무 명령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좀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그는 묻기라도 하듯 말했다.
“음, 좋아.” 데니소프가 말했다.
데니소프는 부하들을 향해 부대를 숲속의 초소 옆에 지정된 휴식 장소로 이동하라고, 키르기스산 말을 탄 장교에게는 (그 장교는 부관의 직책을 수행했다) 돌로호프를 찾아보고, 또 돌로호프가 어디에 있는지, 그가 저녁에 올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어이, 턱수염.” 데니소프는 농부 길잡이를 돌아보았다. “샴셰보로 안내해.” 그리고 데니소프, 페탸, 카자크 일등 대위는 카자크 몇 명과 포로를 호송하는 경기병 한 명과 동행하여 왼편 골짜기를 지나 숲 가장자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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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완만한 언덕으로 나오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무들이 벽처럼 드문드문 늘어선 곳으로 향했다. 그는 아직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은 커다란 참나무 옆에 멈춰 서서 자기 쪽으로 오라며 은밀하게 손짓했다. 데니소프와 페탸가 그를 향해 말을 몰았다. 농부가 멈춰 선 장소에선 프랑스군이 보였다. 숲 너머 아래쪽에는 봄밀밭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펼쳐져 있었다.
거리가 2백 사젠 이상이 안 되는 그곳에서 아른거리는 안개 속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다. 짐마차를 끌고 간신히 언덕을 올라온 말들을 향해 내지르는 그들의 러시아어가 아닌 고함 소리와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여기로 포로를 데려와.” 데니소프가 프랑스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데니소프가 프랑스군을 가리키며 이 부대는 어떤 부대고 저 부대는 어떤 부대인지 물었다. 포로인 북치는 소년은 언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눈썹을 치켜세운 채 겁에 질려 데니소프를 바라보았는데, 아는 것을 전부 말하려는 분명한 갈망에도 불구하고 두서없이 대답했고, 다만 데니소프가 묻는 것을 확인해 줄 뿐이었다.
“돌로호프가 오든 안 오든 우리가 차지해야 해……! 그렇지 않나?” 데니소프가 유쾌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위치는 적당합니다.” 카자크 일등 대위가 말했다.
“보병은 늪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정원으로 잠입한다.” 데니소프는 말을 이어 갔다.
"난 여기서 내 경비병들과 함께 들어간다. 그리고 총소리를 신호로……."
"저지대는 습지라 말들이 빠질테니 좀 더 왼쪽으로 우회해야 합니다." 카자크 일등 대위가 말했다.
그들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을 때 아래쪽 저지대의 못가에서 총성이 한 발 울리고 작은 연기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또 다른 소리, 산비탈에 있던 1백 명가량 되는 프랑스군의 유쾌한 함성 같은 소리도 들렸다. 아래에서, 늪지를 따라 붉은 것을 걸친 남자가 달리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분명 그를 향해 총을 쏘고 함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저런, 저 사람은 티혼입니다.” 카자크 일등 대위가 말했다.
그들이 티혼이라고 부른 남자는 개울로 달려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뛰어들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가 개울에서 빠져나와 더 멀리 달아났다. 티혼 셰르바티는 부대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그자트 부근의 포크롭스코예에서 온 농부였다. 데니소프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티혼이 부대를 귀찮게 따라다니면서 부대에 넣어 달라고 요청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데니소프는 그를 넣어 주라고 지시했다.
티혼은 곧 파르티잔 전투에서 큰 의욕과 능력을 드러냈다. 그는 밤마다 노획물을 구하러 나가 매번 프랑스군의 의복과 무기를 가져왔고, 명령을 내리면 포로를 끌고 오기도 했다. 이날 밤에도 티혼은 데니소프의 명령으로 혀를 잡으러 샴셰보로 갔다. 그러나 프랑스인 한 명에 만족을 못했기 때문인지, 혹은 밤 동안 잠이 들었기 때문인지, 그는 대낮에 프랑스군 한가운데에 있는 덤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가 데니소프가 언덕에서 보았듯이 프랑스군에 발각되었다.
6
데니소프는 프랑스군을 가까이에서 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한 다음 날의 공격에 대해 카자크 일등 대위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눈 후 말을 돌렸다.
“자, 형제, 이제 몸을 말리러 가자고.” 그가 페탸에게 말했다.
숲의 초소 부근에 이르자 데니소프는 멈춰 서서 숲속을 주시했다. 숲의 나무들 사이에서 짧은 상의, 나무껍질 신발, 카자크 모자를 착용한 남자가 어깨에 라이플총을 메고 허리띠에 도끼를 꽂은 채 긴 두 팔을 흔들며 기다란 다리로 성큼성큼 가볍게 걷고 있었다. 데니소프를 본 그 남자는 황급히 덤불 속으로 무언가를 집어 던졌고, 챙이 처진 젖은 모자를 벗은 후 대장에게 다가왔다. 티혼이었다.
“뭐 하러 대낮에 기어들어 간 거야? 짐승 같은 놈! 뭐야, 못 잡은 거야……?”
“잡기야 잡았죠.” 티혼이 말했다.
“어디 있는데?”
“새벽녘에 우선 한 놈을 잡았습죠.” 티혼은 틀어진 나무껍질 신발을 신은 벌어진 두 발을 더 성큼성큼 옮기며 계속 말했다. “그놈을 숲속으로 데려갔어요. 보아하니 쓸모 있는 놈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가서 더 괜찮은 놈을 데려오자, 생각했죠.”
“한 놈이 나타났지요.” 그는 계속 말했다. “저는 그놈을 이렇게 붙잡았습니다.” 티혼은 날렵하게 가뿐히 일어섰다. “대령님께 가자고 말했어요. 엄청 소리를 질러 대더군요. 그래서 다른 놈들 넷이 그곳에 왔어요. 그자들이 장검을 들고 달려들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도끼를 휘둘렀고요. ‘이놈들아, 하느님의 축복이나 받아라’ 하면서요.” 티혼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리고 가슴을 쑥 내밀며 두 팔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바보 같은 짓 좀 그만해.” 데니소프는 화가 나 기침을 하며 말했다. “첫 번째 놈은 왜 데려오지 않았지?”
“하지만 정말로 변변치 못한 놈이에요.” 티혼이 말했다. “옷가지도 형편없는 놈을 어디에 데려갑니까요? 게다가 버르장머리도 없는 놈이에요, 대장님. 어떻게 ‘난 장군의 아들이다. 가지 않겠다’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이 짐승 같은 자식!” 데니소프가 말했다. “내가 심문을 해야 하는데…….”
티혼이 말하고 미소 지을 때 페탸를 사로잡았던 웃음이 사라졌다. 페탸는 티혼이 그 남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거북해졌다. 포로가 된 북 치는 소년을 돌아보았고 무언가 가슴을 콕콕 찔렀다. 하지만 그런 거북함도 한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부적합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고개를 더 높이 들고, 더 기운을 내고, 내일 계획에 대해 카자크 일등 대위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여러 가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느꼈다.
7
가족을 남겨 두고 모스크바를 떠난 페탸는 자신의 연대에 합류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부대를 지휘하는 장군의 연락 장교로 차출되었다. 장교로 승진한 이후, 특히 그가 이곳 소속으로 뱌지마 전투에 참가했던 실전 부대에 들어간 이후 페탸는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기쁨으로 늘 행복하고 흥분한 상태였으며 진정한 영웅심을 보여 줄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겠다는 열광적이고 조급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10월 21일, 그의 장군이 데니소프 부대에 누군가를 보내고 싶다는 얘기를 했을 때 페탸는 자신을 보내 달라고 너무도 애처롭게 간청하여 장군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페탸를 보내려는 순간, 장군은 뱌지마 전투 때 보여 준 페탸의 광기 어린 행동을 기억해 냈다.
그 전투에서 페탸는 가도를 따라 명령받은 곳으로 가지 않고 프랑스군의 포화 아래 산병선을 향해 말을 타고 질주하여 그곳에서 두 발의 피스톨을 쏘았다. 장군은 페탸를 보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데니소프의 작전 행동에 가담하는 것을 금지했다. 데니소프가 남아도 되는지를 물었을 때 페탸가 얼굴을 붉히며 당황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데니소프가 페탸와 카자크 일등 대위와 함께 숲 속 공터의 임시막사로 들어갔을 때 소매를 걷은 카자크 하나가 양고기를 썰고 있었다. 장교들과 함께 테이블 앞에 앉아 비계 기름이 흐르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양고기를 손으로 뜯어 먹으면서 페탸는 사람들에 대한 부드러운 애정을 느끼면서, 또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자기한테 똑같이 애정을 느낀다고 믿는 어린아이 같은 환희를 느꼈다.
“제게 상황을 알아 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러니 알아보겠습니다. 다만 저를 보내 주십시오…… 가장…… 중요한……. 전 포상이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페탸는 치켜든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 팔을 휘두르며 이를 악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장 중요한 곳으로…….” 데니소프가 미소를 지으며 페탸의 말을 따라 했다.
“제발 저에게 부대를 주십시오.” 페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는 별거 아니잖아요? 아, 칼을 드릴까요?” 그는 양고기를 썰고 싶어 하는 장교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칼을 건넸다.
장교는 주머니칼을 칭찬했다. “가지세요. 내겐 그런 것이 많습니다…….” 페탸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게 아주 좋은 건포도가 있는데, 그게 어떤 거냐 하면 씨가 없는 건포도예요. 우리 부대에 새로 매점이 생겨서 좋은 물건들이 있는 거죠. 나는 10푼트를 샀어요. 단것을 먹는 습관이 있거든요. 드시고 싶으세요?” 그러더니 페탸는 현관방에 있는 자신의 카자크에게 달려가 건포도 5푼트가 든 자루를 가지고 돌아왔다. “드세요, 여러분, 드십시오.”
“커피포트는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부대 매점 상인에게서 훌륭한 걸 샀습니다. 부싯돌도 1백 개가 있어요. 아주 싸게 샀죠. 필요한 만큼 가져가세요. 아니면 전부 다…….” 그는 문득 너무 말을 많이 한 게 아닌지 걱정스러운 듯 말을 멈추고 얼굴을 붉혔다.
“포로로 잡은 소년을 불러와도 됩니까? 그 아이에게 먹을 걸 좀 주고 싶은데요…… 아마…….”
“그래, 불쌍한 소년이지.” 데니소프가 말했다. 그는 북 치는 소년을 언급하는 것을 전혀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듯했다. “아이를 불러와. 그 애 이름은 뱅상 보스야. 불러와.”
“보스! 뱅상!” 페탸는 문 옆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북 치는 소년이 맨발로 진창을 철벅거리며 문가로 다가왔다.
“아, 당신이군요!” 페탸가 말했다. “뭐 좀 먹고 싶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니까 무서워하지 말아요.” 그는 소심하면서도 다정하게 소년의 손을 어루만지며 덧붙였다. “들어와요, 들어와요.”
“감사합니다, 무슈.” 북 치는 소년은 어린아이 같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자신의 더러운 발을 문지방에 비벼 댔다. 페탸는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굴욕으로 여겨 그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았다.
8
돌로호프의 도착으로 페탸의 관심은 북 치는 소년에게서 멀어졌다. 페탸는 군대에서 돌로호프의 비범한 용기와 프랑스군에 대한 잔혹 행위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은 터라 돌로호프가 통나무집에 들어온 이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주시하면서, 돌로호프 같은 무리에게 부끄러움을 사지 않기 위해 치켜든 고개를 더 뒤로 당기며 스스로의 사기를 더욱 진작시켰다.
데니소프는 돌로호프에게 큰 부대들이 적의 수송대에 관해 세운 계책, 페탸의 파견, 자신이 두 장군에게 보낸 답변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리고 프랑스 부대의 위치에 대해 자신이 아는 바를 전부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어떤 부대가 있고, 그 수가 얼마인지 알 필요가 있어.” 돌로호프가 말했다. “그곳에 다녀와야겠어. 적의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일을 시작할 순 없으니까. 난 일을 철두철미하게 하는 걸 좋아해. 자네들 가운데 나와 적진에 다녀오길 원하는 사람 없나? 나에게 군복이 있는데.”
“저, 제가…… 제가 당신과 가겠습니다!” 페탸가 외쳤다.
“자네가 갈 필요는 없어.” 데니소프가 돌로호프를 돌아보며 말했다. “난 절대로 이 녀석을 보내지 않겠어.
이건 훌륭한 일이잖아요!” 페탸가 외쳤다. “왜 제가 가면 안 됩니까?”
“그야 갈 이유가 없으니까.”
“형제, 우리는 이제 그런 상냥함을 버려야 해.” 마치 데니소프를 자극하는 이런 화제에 대해 말하는 것에서 특별한 만족을 얻는 듯, 돌로호프는 말을 이어 나갔다.
“날 잡으라고 스무 번쯤 명령 내리지 않은 프랑스인들이 누가 있어? 정말로 저들이 나도 잡고 기사도를 갖춘 자네도 잡았다고 쳐. 어차피 사시나무에 매달리는 건 다 똑같아.” 그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일은 해야지. 나에게 프랑스 군복이 두 벌 있어. 그래, 나와 함께 갈 건가?” 그는 페탸에게 물었다.
“저요? 네, 네, 꼭 갈 겁니다.” 페탸는 데니소프를 힐끔거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데니소프가 가지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페탸는 자신이 모든 일을 철두철미하게 하는 데 익숙하다고, 자신에게 닥칠 위험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데니소프에게 내가 그의 말에 순종할 거라든지, 그가 나를 지배할 수 있다든지 하는 생각을 못하게 해야 해. 난 돌로호프와 함께 프랑스군 진영으로 꼭 갈 거야. 그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당신도 동의하시다시피, 그곳에 적군이 얼마나 있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것에 수백 명의 목숨이 달렸을 수도 있고,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 둘밖에 없는 데다 저는 그 일을 몹시 하고 싶으니 반드시, 반드시 갈 겁니다. 당신은 절 막을 수 없습니다.” 그는 말했다. “사태만 악화될 뿐입니다…….”
9
프랑스군 외투를 입고 원통 모양의 군모를 쓴 페탸와 돌로호프는 데니소프가 적진을 살펴보던 숲속 공터를 향해 말을 타고 출발하여 캄캄한 숲을 지나 저지대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간 후 돌로호프는 동행한 카자크에게 거기서 기다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길을 따라 다리를 향해 빠르게 말을 몰았다. 페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와 함께 나란히 말을 몰았다.
도로를 건너고 있는 사람의 검은 그림자를 포착한 돌로호프는 그를 불러 세워 지휘관과 장교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어깨에 자루를 짊어진 그 사람은 병사였는데, 돌로호프의 말에게 가까이 다가와 한 손으로 말을 만지면서 지휘관과 장교들은 언덕 오른편의 농장 (그는 지주의 장원을 그렇게 불렀다) 안마당에 있다며 친절하게 이야기했다.
돌로호프는 지주의 저택 안마당으로 말 머리를 돌렸다. 대문을 통과한 그는 말에서 내려 활활 타고 있는 커다란 모닥불 곁으로 다가갔는데, 모닥불 주위에는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여러분, 안녕하시오!” 돌로호프가 큰 소리로 또렷하게 말했다.
모닥불 그늘에 있던 장교들이 움찔거렸다. 그중 키가 크고 목이 긴 장교가 모닥불을 빙 돌아 돌로호프에게 다가왔다. 돌로호프는 동료와 함께 연대를 뒤따라가는 길이라 말하고, 제6연대에 관해 아는 게 있냐고 그곳의 장교들에게 물었다. 다들 아무것도 몰랐다. 페탸는 장교들이 적대적이고도 의심스럽게 자신과 돌로호프를 훑어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몇 초 동안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장교는 돌로호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쳐다보며 어느 연대 소속이냐고 한 번 더 물었다. 돌로호프는 질문을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고 프랑스풍의 작달막한 파이프를 주머니에서 꺼내 피우며 앞쪽 도로에서 카자크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어디까지냐고 물었다.
“그 강도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모닥불 너머에서 한 장교가 대답했다.
돌로호프는 중단된 대화를 다시 이어 가며 그들 대대의 인원수가 몇 명인지, 대대의 수는 얼마나 되는지, 포로의 수는 얼마인지 노골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돌로호프는 그들 부대에 잡혀 있는 러시아 포로들에 대해 물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시체들을 뒤에 달고 다니는 건 추잡한 짓이지. 그 어중이떠중이들은 총살하는 편이 나을 거야.”
돌로호프는 일어나서 말을 데리고 있는 병사를 큰 소리로 불렀다.
‘말을 줄까, 안 내줄까?’ 페탸는 자기도 모르게 돌로호프 옆에 가까이 붙으면서 생각했다.
병사가 말들을 넘겨주었다.
“잘 있으시오, 여러분.” 돌로호프가 말했다.
페탸도 잘 있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장교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페탸는 프랑스인들이 뒤쫓아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돌아보고 싶었지만 감히 그러지는 못하고 그의 옆에서 나란히 말을 몰았다. 도로로 나오자 돌로호프는 들판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을을 가로질러 갔다. 그는 한곳에 말을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들리나?” 그가 말했다.
페탸는 러시아인들의 말소리를 알아듣고 모닥불 옆에서 러시아 포로들의 검은 형체를 보았다.
“자, 이제 작별이군. 새벽녘의 첫 번째 총소리를 신호로 하자고 데니소프에게 말해.” 돌로호프는 이렇게 말하고 떠나려 했는데 페탸가 그의 팔을 잡았다.
“정말로!” 그가 외쳤다. “당신은 대단한 영웅입니다. 정말 훌륭해요! 정말 굉장해요! 당신이 정말 좋습니다.”
“알았네, 알았어.” 돌로호프는 그에게 입을 맞추고 소리 내어 웃더니 말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10
초소로 돌아온 페탸는 현관방에서 데니소프를 발견했다. 페탸를 보낸 것 때문에 흥분과 불안과 자책에 빠져 있던 데니소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그가 외쳤다.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는 페탸의 열광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반복해서 말했다. “이 녀석을 악마나 잡아가라지. 너 때문에 잠도 못 잤다!” 데니소프가 말했다.
“이제 가서 자거라. 아침까지는 조금 잘 수 있을 거다.”
“네…… 아니요.” 페탸가 말했다. “아직 자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잘 알아요. 만약 잠이 들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리고 저는 전투를 앞두곤 자지 않습니다.”
페탸는 통나무집에 잠시 앉아 아까 다녀온 정찰을 하나도 빠짐없이 회상하면서 내일 일어날 일을 생생하게 상상해 보았다. 그 후 데니소프가 잠든 것을 알고는 일어나 안마당으로 나갔다.
"나리, 안 주무시는 거예요?” 치중차 밑에 앉아 있던 카자크가 말을 걸어왔다.
“응, 그런데 자네 이름이 아마 리하쵸프였지? 난 이제 막 돌아왔어. 우리는 프랑스 진영에 다녀왔지.”
"부탁이 있는데, 내 기병도를 좀 갈아 줘. 날이 무뎌져서……. (하지만 페탸는 거짓말하기가 두려웠다.) 한 번도 이 기병도를 간 적이 없어. 그렇게 해 줄 수 있나?”
“당연하죠, 해 드릴게요.”
페탸는 치중차 위로 기어 올라가 가장자리에 앉았다. 지금 그는 현실과 전혀 닮지 않은 마법의 왕국에 있었다. 커다란 검은 반점은 정말 초소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땅속 심연으로 가는 동굴일지도 모른다. 붉은 반점은 불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거대한 괴물의 눈일지도 모른다. 지금 그는 무엇을 보아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페탸는 눈을 감고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페탸는 미지의 엄숙하고도 감미로운 찬송가를 합창하는 조화로운 음악 소리를 들었다. 페탸는 나타샤에 뒤지지 않는, 그리고 니콜라이보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한 번도 음악을 배워 본 적이 없었고 음악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돌연히 머리에 떠오른 모티프가 그에게는 매우 새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음악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하게 들렸다.
장엄한 승리의 행진곡이 노래와 합쳐지고, 물방울이 떨어지고, 브직, 직, 직, 기병도가 휘파람 소리를 내고, 말들이 또다시 서로 다투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소리들은 합주를 망치지 않고 그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이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페탸는 몰랐다. 그는 음악을 즐겼고, 자신의 즐거움에 계속 놀라워했으며, 그 즐거움에 대해 말할 사람이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리하쵸프의 다정한 목소리가 그를 깨웠다.
“다 됐습니다, 장교님, 후랑스 놈을 두 동강 낼 수 있을 거예요.”
페탸는 몸을 털고 벌떡 일어나 주머니에서 1루블짜리 은화를 꺼내 리하쵸프에게 주었고 장검을 시험 삼아 휘둘러 보고는 칼집에 넣었다. 카자크들은 말의 뱃대끈을 조였다.“저기에 대장님이 계시네요.” 리하쵸프가 말했다.
초소에서 데니소프가 나와 페탸를 큰 소리로 부른 뒤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11
“자, 모두 준비됐나?” 데니소프가 말했다. “말을 끌고 와.”
카자크가 말을 끌고 왔다. 뱃대끈을 약하게 매었다고 데니소프는 카자크에게 욕지거리를 퍼붓고는 말에 올라탔다. 페탸는 재빨리 안장 위로 펄쩍 올라탄 후 데니소프에게 다가갔다.
“바실리 표도로비치, 저에게 뭔가 맡겨 주시겠어요? 제발…… 모쪼록…….” 그가 말했다.
“자네에게 하나 부탁하지.” 그가 엄하게 말했다. “내 말에 복종하고 절대 쓸데없이 나서지 마.”
페탸는 데니소프 옆에서 말을 몰았다. 그의 몸속에서 일어나던 전율이 더욱 심해졌다. 날이 점점 더 밝아졌고, 다만 안개가 멀리 떨어진 사물들을 가릴 뿐이었다. 아래까지 내려가 뒤를 둘러본 데니소프가 옆에 선 카자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 그가 말했다. 카자크가 한 손을 올리자 총성이 울렸다.
첫 말발굽 소리와 고함 소리가 울리자마자 페탸는 그를 향해 소리치는 데니소프의 말은 듣지도 않고 말을 후려치고 고삐를 늦추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총성이 들린 순간, 페탸는 갑자기 날이 눈부시게 밝아 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다리 쪽으로 말을 몰았다.
“우라! ……제군들, 아군의…….” 큰 소리로 외친 페탸는 흥분한 말의 고삐를 늦추고 길을 따라 달려 나갔다.
그는 총성이 끊임없이 들리는 곳으로 질주했다. 총성은 어젯밤 돌로호프와 함께 들른 지주의 저택 안마당에서 울리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대문 가에 모인 카자크들을 향해 사격하면서 바자울 뒤편의 떨기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란 정원에 매복해 있었다. 대문으로 접근하던 페탸는 포연 속에서 창백하고 푸르스름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외치는 돌로호프를 보았다. “우회하라! 보병을 기다려!” 페탸가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그가 외쳤다.
“기다리라고……? 우라!” 페탸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함성을 지르며 총성이 들리는 곳으로, 포연이 자욱한 곳으로 질주했다. 일제 사격의 소리가 들리고, 빗나가거나 또는 무언가에 명중한 탄환이 새된 소리를 내며 빗발쳤다. 페탸의 두 팔은 고삐를 잡는 대신 기이하고도 빠르게 흔들렸고, 그의 몸은 안장 한편으로 계속해서 기울어졌다. 페탸는 축축한 땅 위로 육중하게 무너져 내렸다. 카자크들은 그의 머리가 미동도 하지 않는 반면 팔다리는 빠르게 경련하는 것을 보았다. 탄환이 머리를 관통한 것이다.
돌로호프는 장검에 손수건을 달고 저택 밖으로 나와 항복을 선언한 프랑스 고참 장교와 협상한 후 말에서 내려 두 팔을 벌린 채 부동의 자세로 누워 있는 페탸에게 다가갔다.
“끝났군.”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을 향해 말을 몰고 오는 데니소프를 맞으러 대문 밖으로 나갔다.
“죽었어?” 데니소프는 페탸의 몸이 죽은 것이 분명한 자세로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곤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는 페탸에게 다가가 말에서 내린 뒤 떨리는 손으로 피와 진흙으로 더러워진, 이미 창백해진 페탸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저는 단것을 먹는 습관이 있어요. 좋은 건포도니까 다 가져가세요.’ 그는 페탸의 말을 기억해 냈다. 카자크들은 개 짖는 소리와 유사한 소리에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그것은 데니소프가 빠르게 돌아서서 바자울(마른 나뭇가지로 만든 시골 담장)로 다가가 그것을 붙잡으며 낸 소리였다.
데니소프와 돌로호프가 탈취한 러시아 포로들 중에는 피에르 베주호프가 있었다.
12
모스크바를 떠난 후 프랑스 지휘관은 베주호프가 속한 포로 무리의 처리에 대해 어떤 새로운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10월 22일에는 포로 무리와 함께 모스크바를 떠난 부대나 수송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행군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식량을 싣고 포로들을 뒤따라오던 수송대 가운데 절반은 카자크에게 탈취당했고, 나머지 절반은 포로들을 앞서 도망가 버렸다. 포로들 앞에서 걸어가던 기병들은 이제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그들은 전부 사라졌다.
전에는 3개 중대로 이동하던 프랑스군이 뱌지마에서부터 한 덩어리로 움직였다. 모스크바를 떠난 후 첫 휴식에서 피에르가 눈치챈 무질서의 그 징후들은 이제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그들이 가고 있는 도로 양쪽에는 죽은 말들이 쌓여 있었다. 다 떨어진 옷을 입은 다양한 부대의 낙오병들은 끊임없이 뒤섞이면서 행군 중인 종대에 합류하기도 하고 다시 뒤처지기도 했다.
함께 행군하는 세 무리, 즉 기병대 소속 대열, 포로 대열, 쥐노의 수송대는 그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별개의 전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중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포로 대열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나올 때 330명이던 사람들은 이제 1백 명도 되지 않았다. 도로고부시에서 호송병들이 포로들을 마구간에 가두고 자신들의 저장고를 약탈하러 떠난 동안 몇 명의 포로가 벽 아래를 파고 달아났지만, 프랑스군에 잡혀 총살당했다.
모스크바를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카라타예프는 그로 인해 모스크바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던 바로 그 열병에 걸렸고, 카라타예프가 쇠약해짐에 따라 피에르는 그와 멀어졌다. 최근 3주 동안의 이 행군에서 이제 그는 위안을 주는 새로운 진리를 또 하나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세상에 무서운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고통에 한계가 있고 자유에도 한계가 있으며 이 한계들이 매우 가까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비로소 피에르는 인간의 생명력이 지닌 힘을 깨달았다. 그리고 증기 압력이 정해진 한계를 넘는 순간 여분의 증기를 방출하는 보일러의 안전밸브처럼 인간 내면의 주의력을 변환시키는 데 구원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미래가 더 끔찍해질수록 자신이 처한 상황과는 더욱 상관없이 기쁘고 평온한 생각과 추억들, 이미지가 머리에 떠올랐다.
13~14
22일 정오에 피에르는 자신의 발과 울퉁불퉁한 길을 쳐다보며 미끄러운 진창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다. 비가 금방 그치고 하늘이 갤 것 같았는데 잠깐 그쳤다가는 더욱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빗물을 가득 머금은 도로가 더 이상 물을 흡수하지 못하자 바큇자국을 따라 실개울이 흘렀다.
어젯밤 휴식 때 꺼진 모닥불 옆에 있는 바람에 몸이 얼었던 피에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더 잘 타고 있는 가장 가까운 모닥불 쪽으로 옮겨 갔다. 그가 다가간 모닥불 옆에선 플라톤이 사제의 제의처럼 외투를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앉아 빠르고 유쾌하지만 힘 빠진 병약한 목소리로 피에르도 알고 있는 이야기*를 병사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자신이 느낀 카라타예프에 대한 연민에 놀라 자리를 뜨려 했지만 다른 곳에는 모닥불이 없었고, 피에르는 플라톤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모닥불 가까이에 앉았다.
“그래, 건강은 어때?” 그가 물었다.
“건강이 어떠냐고요? 병을 한탄하면 하느님께서 죽음을 허락하지 않아요.” 카라타예프는 이렇게 말하고 곧장 자신이 시작한 이야기로 돌아갔다.
“제자리로!” 갑자기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포로와 호송병 사이에서 기쁜 소요가, 행복하고도 장엄한 무언가에 대한 기대가 일렁였다. 사방에서 명령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왼쪽에서 옷을 잘 갖춰 입고 좋은 말을 탄 기병들이 포로들 주위를 빠르게 우회하며 나타났다. 모든 이들의 얼굴에 최고 권력층에 가까운 사람이 등장할 때 종종 나타나는 긴장한 표정이 떠올랐다. 포로들은 무리 지어 도로에서 밀려났고, 호송병들은 대열을 갖추었다.
“황제다! 황제다! 원수다! 대공이다!” 그리고 살진 호송병들이 지나가자마자 2열 종대의 회색 말들이 끄는 카레타들이 줄지어 쿵쿵거리며 지나갔다. 피에르는 삼각모를 쓴 남자의 평온하고 잘생기고 퉁퉁한 하얀 얼굴을 얼핏 보았다. 그 사람은 원수들 가운데 하나였다. 원수의 시선이 피에르의 눈에 띄는 거구를 향했고,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릴 때의 원수의 표정에서 피에르는 연민과 그것을 감추려는 바람을 본 것 같았다.
피에르는 이날 아침에 아직 보지 못한 카라타예프를 보게 되었다. 외투를 입은 카라타예프는 자작나무에 기대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어제 죄 없이 고통받은 상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기쁨 어린 감동 외에 고요하고 엄숙한 표정이 빛나고 있었다. 카라타예프는 특유의 선량하고 둥근, 지금은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피에르를 바라보았는데, 그를 불러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피에르는 자신이 너무 두려웠다. 그는 카라타예프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카라타예프는 길가의 자작나무 옆에 앉아 있었다. 두 명의 프랑스군이 그를 내려다보며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피에르는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다리를 절며 언덕을 올라갔다. 뒤에서, 카라타예프가 앉아 있던 곳에서 총성이 들렸다. 프랑스 병사 두 명이, 그중 하나는 연기가 나는 라이플총을 들고, 피에르를 지나쳐 달려갔다. 둘 다 얼굴이 창백했고, 그들의 표정에는 (그중 한 명은 소심하게 피에르를 슬쩍 쳐다보았다) 피에르가 처형 때 젊은 병사에게서 본 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다.
15
부대도, 포로도, 원수의 수송 대열도 샴셰보 마을에서 멈췄다. 모두 모닥불 주위에 무리 지어 모여들었다. 피에르는 모닥불로 다가가 구운 말고기를 조금 먹은 뒤 불을 등지고 누워 바로 잠들었다. 그는 보로디노 전투 이후 모자이스크에서 잘 때와 똑같은 형태의 잠에 빠져들었다.
‘삶이 곧 전부야. 삶이 곧 신이야. 모든 것이 이동하고 움직이며, 그 운동이 신이야. 그리고 삶이 있는 동안 신을 자각하는 기쁨이 있어. 삶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신을 사랑하는 거야. 무엇보다도 가장 힘들고 가장 행복한 일은 자신의 고통 속에서, 무고한 고통 속에서 이 삶을 사랑하는 거야.’
‘카라타예프!’ 그에 대한 기억이 피에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해가 뜨기 전 요란하고 빈번한 총소리와 고함 소리가 그를 깨웠다. “카자크다!” 프랑스인들 중 한 명이 외쳤고, 곧 러시아인의 얼굴을 한 무리가 피에르를 에워쌌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피에르는 한참 동안 깨닫지 못했다. 그는 사방에서 동료들이 기쁨에 겨워 우는 소리를 들었다.
“형제들! 여보게!” 늙은 병사들이 울면서 카자크들과 경기병들을 얼싸안고 소리 질렀다. 피에르는 그들 가운데 앉아 흐느끼면서 단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에게 맨 처음 다가온 병사를 껴안았고 울면서 입을 맞추었다.
16
10월 28일, 영하의 추위가 시작되면서 프랑스군의 도주는 동사한 사람들, 모닥불 옆에 있다가 타 죽는 사람들, 털외투를 입고 콜랴스카에 약탈한 재산을 싣고 계속 달리는 황제와 왕들과 대공들 때문에 더욱 비극적인 성격만 띠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군의 도주와 붕괴 과정 자체는 본질적으로 모스크바를 떠난 이후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 뱌지마에 도착할 때까지 근위대를 제외한 7만 3천 명의 프랑스군 가운데 3만 6천 명이 (이 숫자 중 전투에서의 사망자는 5천 명도 되지 않았다) 남았다. 이것은 수열의 1항으로, 이후의 항들은 이 첫 항에 의해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결정된다. 모스크바에서 뱌지마까지, 뱌지마에서 스몰렌스크까지, 스몰렌스크에서 베레지나까지, 베레지나에서 빌나까지 추위와 추격, 도로 차단 그리고 개별적으로 취해진 다른 모든 조건들이 수준 및 강도가 크든 작든 간에 프랑스군은 동일한 비율로 소멸되었다.
뱌지마 이 후 프랑스 군대는 3개 종대로 가는 대신 한 덩어리로 모였고 마지막까지 그렇게 행군했다. 베르티에는 군주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휘관들이 군대의 상태를 기술할 때 진실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제 의무는 지난 2~3일 동안 행군하면서 관찰한 여러 군단의 상황을 폐하께 보고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전 부대 병사의 4분의 1만 군기 아래 남았을 뿐, 다른 자들은 식량을 찾고 부대에서 이탈하려고 이리저리 가 버렸습니다. 다들 스몰렌스크를 쉴 장소로만 생각합니다. 최근 며칠 동안 많은 병사들이 탄약 상자와 라이플총을 버렸습니다. 폐하의 이후 의도가 어떻든 간에 폐하의 군대의 이익을 위해서는 스몰렌스크에서 군대를 결집하고 말과 무기를 잃은 기병들, 불필요한 물자, 현 부대의 수에 상응하지 않는 대포 일부를 버려야 합니다. 식량과 며칠 동안의 휴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병사들은 굶주림과 피로로 기진맥진한 상태입니다. 최근 많은 병사들이 길 위에서, 야영지에서 죽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상태가 계속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전투가 벌어졌을 때 우리의 통제하에 있는 군대는 곧 없어질 것입니다.
11월 9일, 스몰렌스크에서 30베르스타 떨어진 곳으로부터.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약속의 땅으로 생각한 스몰렌스크에 이르자 식량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자신들의 창고를 약탈했으며, 모조리 약탈한 후에는 앞쪽으로 도주했다. 모든 사람들이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면서 나아갔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천재 나폴레옹이었는데, 왜냐하면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 이다. 그와 주변 사람들은 겉으로만 군대를 걱정하는 척할 뿐, 각각 자신에 대해서만, 가능한 한 빨리 도망가 위험에서 모면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17
모스크바에서 네만강으로 되돌아가는 동안 러시아군과 프랑스군이 보여 준 행동은 두 명의 놀이 참가자가 눈을 가리고 한 사람이 술래에게 자기 위치를 알리기 위해 이따금 종을 울리는 술래잡기 놀이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도망 다니는 이가 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종을 울리지만 자신에게 불리해질 때엔 소리 없이 움직이려고 애쓰며 적에게서 달아나다가 자신이 도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주 적의 손아귀로 곧장 향한다.
처음에는 나폴레옹의 군대 역시 자신의 존재를 알렸는데, 이때는 칼루가 가도를 따라 진군하던 초창기였다. 그러나 이후 스몰렌스크 가도로 나온 뒤부터 한 손으로 종의 혀를 움켜쥐고 도망치기 시작했고, 종종 도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러시아군을 향해 곧장 달려 갔다.
스몰렌스크부터 프랑스군 앞에 수많은 길이 놓여 있었다. 따라서 그곳에 나흘 동안 머무른 프랑스군은 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유리한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 새로운 무언가를 실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흘 동안 머무르고 나서 그들 무리는 다시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어떤 작전이나 계획도 없이 이전의, 최악의 길을 따라 크라노스예와 오르샤로, 사람들의 발길에 다져진 길을 따라 도주했다.
프랑스인들은 산개하여 스물네 시간 정도 거리를 두고 서로 떨어졌다. 그들 누구보다도 앞서 황제가, 그다음에는 왕들이, 그다음에는 대공들이 달아났다. 크라노스예로 향하는 대로에서 마치 러시아군의 대열을 관통하듯 프랑스군의 개별 부대들이 지나갔는데, 처음에는 부왕(副王)의 부대가, 그다음에는 다부의 부대가, 그다음에는 네의 부대가 줄줄이 빠져나갔다.
가장 마지막으로 이동한 (그들의 운 나쁜 상황으로 인해, 혹은 그들을 다치게 한 바닥 마루를 부수고 싶어서 아무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 스몰렌스크 성벽을 폭파하느라) 네는, 1 만 명의 군단과 함께 맨 나중에 이동한 네는 다른 병사들과 대포를 버리고 밤에 남몰래 숲을 통과하여 드네프르강을 건너, 단 1천 명의 군사들만 이끌고 오르샤에 있는 나폴레옹에게로 달려왔다.
베레지나에서 그들은 다시 무질서한 혼란에 빠져 많은 사람들이 익사했고 많은 사람들이 항복했으나 강을 건넌 사람들은 더 멀리 달아났다. 그들의 총지휘관은 털외투를 입고 썰매에 올라탄 후, 자신의 동료들을 버리고 혼자 질주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도망치고, 그럴 수 없는 사람은 항복하거나 죽었다.
18
도주라는 군사 행동을 하면서 프랑스군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멸뿐이었다. 칼루가 가도로 방향을 돌린 것부터 이 무리의 모든 행동들은 전적으로 무의미했다. 군중의 행위를 단 한 사람의 의지에 귀속시키는 역사가들이 이 시기 퇴각을 그런 의미로 기술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산더미처럼 많은 책들이 나폴레옹의 명령과 그의 심오한 작전과 그의 휘하 원수들의 천재적 명령에 대해 기술했다.
나폴레옹이 말리 야로슬라베츠에서 퇴각할 당시 비옥한 지방으로 향하는 도로가 있었고, 향후 쿠투조프가 추격할 때 밟았던 나란히 뻗은 도로 역시 열려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폐한 도로를 따라 불필요한 퇴각을 한 것에 대한 심오한 이유들이 우리에게 제공된다. 그가 스몰렌스크에서 오르샤로 퇴각한 것도 똑같이 심오한 이유로서 기술된다.
그다음에는 크라스노예에서 나폴레옹이 보여 준 영웅적인 행동이 기술되는데, 거기서 그는 전투를 하고 직접 지휘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므로 자작나무 지휘봉을 쥐고 걸어 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미 충분히 오랫동안 나는 황제의 역할을 했다. 이제 장군의 역할을 할 때다."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곧 그는 각자 흩어져 뒤에 남아 있던 군대를 운명의 신에 맡긴 채 더 멀리 달아난다.
역사적 판단이라는 그토록 탄력적인 실을 더 이상 늘이는 것이 불가능할 때, 하나의 행동이 전 인류가 선, 심지어 정의라고 지칭하는 것과 명백히 대립될 때 역사가들에게서는 '위대함'에 대한 구원적인 개념이 나타난다. 위대함은 선과 악이라는 잣대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하다. 위대한 것에 악이란 있을 수 없다. 위대한 사람에게 그 죄를 물을 수 있을 만한 참상은 없다.
"숭고와 (그는 자기 안에서 숭고한 무언가를 본다) 우스꽝스러움의 차이는 한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그리고 온 세계가 50년 동안 반복해서 말한다. "숭고하다! 위대하다! 나폴레옹은 위대하다. 숭고와 우스꽝스러움의 차이는 한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선악의 잣대로 측량 불가능한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보잘것없음과 측량할 수 없는 시시함을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누구의 머리에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스도로부터 선악의 잣대를 받은 우리가 측량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소박함과 선과 진실이 없는 곳에는 위대함도 없다.
19
러시아인들 가운데 1812년 전쟁의 마지막 시기에 대한 기술을 읽으면서 어느 누가 분노와 불만과 모호함 같은 무거운 감정을 느끼지 않겠는가. 수적으로 우세한 러시아의 세 군대가 프랑스군을 포위했을 때,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던 프랑스군이 혼란에 빠져 무리 지어 항복했을 때, 러시아군의 목적이 프랑스군의 진로를 막고 퇴로를 차단하여 모두 생포하는 것이었을 때 도대체 왜 러시아군은 프랑스 군 전체를 생포하지도 못하고 소탕하지도 못했을까, 라고 자문하지 않은 이가 도대체 있었을까?
역사(이런 단어로 불리는 것)는 이 질문들에 답하면서, 쿠투조프, 토르마소프, 치차고프 등 이런저런 사람들이 작전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 모든 작전을 수행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들의 잘못으로 예정된 목적이 성취되지 못한 것이라면 어째서 그들은 재판도 받지 않고 처형도 당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설령 러시아군이 실패한 책임이 쿠투조프와 치차고프 등등에게 있다고 가정해도, 크라스노예와 베레지나 부근에 주둔했을 당시 러시아군이 동일한 조건에서 (두 경우 모두 러시아군의 병력이 더 우세했다) 러시아군의 목적이 프랑스 군대와 원수들과 왕들과 황제를 생포하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 기이한 현상을 쿠투조프가 공격을 방해했다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러시아의 군사 역사가들은 그렇게 설명한다) 근거가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쿠투조프의 의지가 뱌지마와 타루티노 부근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의 자존심은 차치하고라도 프랑스군의 연승은 그들을 파멸로 이끌었던 반면, 러시아군의 연패는 적을 섬멸하여 그들을 조국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이 모순의 근원은 군주와 장군의 편지, 전투 보고, 통보, 계획서 등을 토대로 사건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1812년 전쟁 마지막 시기의 목적, 결코 존재한 적 없는 그 목적이 마치 나폴레옹과 원수들과 군대의 퇴로를 차단하여 생포하는 것으로 구성되는 것인 양 목적을 옳지 않게 가정했다는 데 있다.
그 목적은 그 어떤 의미조차 가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첫째, 혼란에 빠진 나폴레옹의 군대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하여 최대한 빨리 러시아에서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프랑스군은 러시아인이라면 누구나 바랄 만한 것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도주하는 프랑스군에 다양한 작전을 펼쳐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둘째, 온 힘을 다해 도주하는 사람들의 갈 길을 막아서는 것은 무의미했다.
셋째, 프랑스군을 섬멸하기 위해 자신의 군대를 희생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모든 길을 차단하지 않아도 프랑스군은 12월에 국경을 넘은 자들, 즉 전체 군의 1백분의 1 외에는 국경을 넘지 못할 속도로 전진하면서 외적 요인 없이도 파멸하고 있었다.
넷째, 당시의 가장 능수능란한 외교관들도 인정한 것처럼 러시아군의 활동을 극도로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는 사람들, 즉 황제와 왕들과 대공들을 포로로 잡으려는 바람은 무의미했다. 크라스노예까지 가는 동안 러시아군의 군대도 절반이나 사라진 마당에 생포한 군대를 위해 몇 개 사단을 호위로 붙여야 하는 상황에서, 또 러시아군 병사들도 늘 충분한 식량을 배급받지 못하고 있고 생포된 포로들 역시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상황에서 프랑스군 군단을 생포하겠다는 바람은 더욱더 무의미했다.
또한 나폴레옹과 프랑스 군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은 무의미할뿐더러 불가능한 것이었다.
첫째, 경험이 보여 주듯이 한 전투에서 5베르스타 정도 되는 종대의 움직임은 작전 계획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고, 치차고프와 쿠투조프와 비트겐시테인이 지정된 장소에서 제때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미미했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쿠투조프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에 작전 계획을 받으면서 멀리 떨어진 적에 대한 견제 공격은 바라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둘째, 나폴레옹의 군대가 퇴각할 때 관성의 힘을 마비시키기 위해서는 러시아군이 보유한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대규모 군대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셋째, 차단이라는 군사 용어가 어떤 의미도 갖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빵 조각을 자를 순 있어도 군대를 자를 수는 없다. 군대를 자르는 것, 즉 군대의 길을 가로막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주변에 우회할 만한 장소가 널려 있고, 아무것도 보이 지 않는 밤도 있기 때문이다.
넷째, 그것이 불가능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계가 존재한 이후 1812년 전쟁만큼 악조건에서 일어난 전쟁은 없었고, 또 러시아군 역시 프랑스군 추격에 전력을 기울이긴 했지만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타루티노에서 크라스노예까지 이동하는 동안 병자와 낙오병으로 5만 명, 즉 큰 현청 소재지의 인구에 맞먹는 수를 잃었다. 전투도 치르지 않고 병력 절반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군대가 부츠와 털외투도 없이, 충분한 식량도 없이, 보드카도 없이 영하 15도의 눈 속에서 몇 달 동안 야영하던 그 전쟁 시기에 대해, 낮은 고작 일곱 시간에서 여덟 시간뿐이고 나머지 시간은 규율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밤이던 그 전쟁 시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만 몇 시간만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가던 전투 때와 달리 사람들이 몇 달 동안 매 순간 굶주림과 추위로 인한 죽음과 싸우며 살아가던 그 전쟁 시기에 대해, 한 달 동안 군대 절반이 사라진 그 전쟁 시기에 대해 역사가들은 우리에게 밀로라도비치는 저기로, 토르마소프는 거기로 측면 공격을 했어야 하며 치차고프는 저리로 이동했어야 한다고, (무릎 위로 쌓인 눈 속을 이동하는 것이다) 또 누구는 여차저차 차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고서들과 전체 계획에 대한 연구를 폐기하고 사건에 직접 참여한 수십만 명의 움직임을 탐구한다면 이전에는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모든 문제들이 갑자기 매우 쉽고 간단하게, 확실히 해결될 것이다. 나폴레옹과 그 군대를 차단하겠다는 목적은 수십 명의 상상 속을 제외하곤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 그것은 존재할 수도 없었는데, 왜냐하면 무의미하고, 성취가 불가능했기 때문 이다.
민중의 목적은 자신들의 땅에서 침략자들을 내쫓는 것, 이 하나뿐이었다. 그 목적은 첫째, 프랑스군이 도주했기 때문에 저절로 성취되었고, 따라서 움직임을 막지만 않으면 되었다. 둘째, 그 목적은 프랑스군을 섬멸한 국민 전쟁의 활동으로 성취되었고, 셋째, 러시아 대군이 프랑스군이 움직임을 멈출 경우에만 무력을 사용할 준비를 갖추고 그 뒤를 추격했다는 점 역시 목적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러시아군은 도망치는 짐승을 때리는 채찍처럼 행동해야 함이 마땅했다. 그리고 경험이 풍부한 몰이꾼은 도망치는 짐승의 머리를 채찍으로 후려갈기는 것이 아니라 채찍을 높이 들어 짐승을 위협하는 것이 가장 유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제4권 제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