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 퍼시벌 로웰, 고더드, 바이킹 1호
제5장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신들의 과수원들에서 그는 운하들을 감시한다.
- 수메르 신화 《에누마 엘리시》, 기원전 2500년경
사람들이 눈의 기능을 크게 확장하여 지구와 같은 행성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우리 곁에 오고야 말 것이다. - 크리스토퍼 랜(Sir Christopher Wren), 그래샴 대학 취임사, 1657년
이 장은 제목 그대로 붉은 행성 화성에 관한 인류의 호기심과 바이킹 프로젝트에 의한 탐사 과정 그리고 그 곳에 과연 생명체가 존재하는 지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칼 세이건은 이 장을 다음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 저명한 신문의 발행인이 유명한 천문학자에게 전보를 쳤다고 한다. 그 전보에는 “화성에 생명이 존재하는지 500개의 단어로 정리하여 수신자 부담으로 즉시 전송해 주기 바람.”이라는 요구가 적혀 있었다.
그 천문학자는 시키는 대로 순순히 답을 보냈다. “아무도 모름, 아무도 모름, 아무도 모름 ……”하는 식으로 ‘아무도 모름’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정확히 250번 반복하는 식으로 답을 작성하여 보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이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의 무지를 인정했고 또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답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칼 세이건은, 인간은 그동안 화성에 생명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두고 양쪽이 모두 도가 지나치도록 자기주장을 해 왔고, 양 진영의 감정이 극도로 고조되다 보니 과학의 기본 미덕마저 저버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쪽의 의견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되다 보니 사람들은 어느 쪽이라도 좋으니 그냥 한 가지의 답만을 달라고 요구했고, 사정이 이렇게 되다 보니 그동안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는 여러 차례 반복 연주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왜 하필 화성인가? 그것은 언뜻 보기에 화성이 지구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화성은 지구에서 그 표면을 관측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얼음으로 뒤덮인 극관이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 맹렬한 흙먼지의 광풍, 계절에 따라 변하는 붉은 지표면의 패턴, 심지어 하루가 24시간인 것까지 지구를 닮았다.
그렇다면 누구나 화성 생명을 상상하고픈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화성이 지구인의 희망과 두려움을 투사할 수 있는 신화의 공간으로 어느새 둔갑해 버린 것이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그의 1897년 작품인 《우주 전쟁》의 첫 장을 다음과 같이 열고 있다.
“우주의 심연 저너머에서는 짐승과 우리 사이의 격차만큼이나 우리보다 뛰어나고 냉철한 지성을 갖춘 지적 존재들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지구를 공격할 확고부동의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우주 전쟁》이 출판되기 꼭 3년 전에 미국 보스턴 출신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이 대규모의 천문대를 설립하고 심혈을 기울여 화성 생명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그는 명왕성의 발견에 큰 기여를 했고 명왕성의 영어 이름인 Pluto의 첫 두 글자는 그의 머리글자 두 글자 P와 L에서 땄다고 한다).
그런데 그전인 1877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가 화성의 ‘카날리(canali)’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그는 한 개 혹은 두 개의 직선들이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이 행성의 밝은 지역 여기저기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고 이것을 “카날리”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영어권에서 ’운하‘로 번역되면서 화성의 열풍이 유럽과 미국을 휩쓸기 시작했다.
1892년 시력을 잃어 가던 스키아파렐리가 화성 관측을 그만두겠다고 발표하자 로웰은 그의 작업을 자기가 대신하기로 결심하고 시상이 좋은 최상의 관측 장소를 물색해서 애리조나 주 플랙스태프(Flagstaff)라는 도시의 한 언덕에 자신의 천문대를 건설하고 ‘화성의 언덕(Mars Hill)’이라고 불렀다.
로웰의 공책은 그가 보았다고 생각한 화성의 특징들로 빼곡한데, 로웰은 자신이 보고 있는 그물 같은 것이 “극관에서 녹아내린 물을 적도 지방에 사는 목마른 도시민들에게 수송해 주는 거대한 용수로 시스템”이라고 믿었다.
그는 화성의 기온이 약간 낮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국 남부’처럼 지낼 만한 정도일 것으로 상상했다. 화성의 대기가 비록 희박하지만 호흡하기에 충분하고 물이 전반적으로 귀하기는 하겠지만 운하망이 잘 짜여 있어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양을 화성 전역에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로웰은 1905년 1월 21일자 일지에 “이중 운하가 순간적으로 여러 차례 나타났다. 운하의 실재가 확인됐다.”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매리너 9호에서 찍은 위성사진들과 비교해 보면 아무런 상관관계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의 '화성 이야기(Martian Tales)' 소설에 보면 버지니아주 상류층 출신의 모험가인 존 카터가 화성의 거주지인 바르숨으로 모험을 떠나 그곳에서 헬륨 왕국의 공주와 결혼하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의장이나 전쟁에 사용되던 로켓이 점차 진화해서 행성까지의 교통수단으로 거론된 것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한 중등학교 교사인 콘스탄틴 에두아르도비치 치올코프스키(1857~1935)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10세 때 성홍열로 귀머거리가 됐는데 도서관 등을 드나들며 거의 독학으로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그는 우주항해학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행성의 지구화'가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일찍이 예견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고공비행용 로켓은 미국의 과학자 '로버트 허칭스 고더드'(Robert Hutchings Goddard)가 처음 개발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이 사용한 군사용 V-2 로켓은 사실상 고더드의 혁신적 기술을 거의 그대로 활용한 것이었다고 한다. 마침내 1948년에 2단계 V-2/WAC 코포럴 통합형 로켓을 그 당시로서는 초유의 고도인 400km까지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함으로써 로켓 개발사의 한 획이 그어졌다.
1950년에 들어서는 로켓 개발의 주도권은 (구)소련의 세르게이 코롤로프와 미국의 베르너 폰 브라운의 손에 쥐여 있었다. 그러다가 로켓이 대량 파괴 무기의 운반체로서 각광을 받게 되면서 로켓 개발에 충분한 재정적 지원이 쏟아부어졌고 그 결과로 로켓에서 인공위성이 탄생하게 되었다.
치올코프스키와 고더드의 초기 아이디어들 중에는 아주 높은 고도에서 지구를 관찰하는 과학 궤도선과 화성의 생명을 탐색하는 탐사선을 실현하는 데 우주 로켓을 응용하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 낯선 행성에서 지구에 접근하고 있다고 상상할 때, 아래 사진들을 보면 수백 킬로미터 분해능(아래 그림 맨 왼쪽 위 01)이나 수십 킬로미터(02), 적외선 10킬로미터 분해능(03, 04 바하마군도 베리섬과 산호 바위)으로도 생명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 수십 미터의 분해능을 구현해야(05, 06, 아래 그림 왼쪽 07, 08, 09) 비로소 지구상의 지적 생물의 존재가 분명해진다. 그러나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소련은 무인 행성 탐사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했다. 배네라 8호에서 12호까지 금성에 착륙해서 측정 결과와 실험 자료를 지구로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소련은 화성에는 한 번도 탐사선을 성공적으로 착륙시켜 본 적이 없다.
1971년 (구)소련의 마르스 3호가 화성의 대기로 진입했지만 착륙 후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 20초짜리 텔레비전 영상 한 조각만을 달랑 지구로 전송하고는 작동을 멈추었고 이후 마르스 6호 착륙선도 착지 후 1초 만에 작동 불능 상태가 됐다.
마르스 3호의 경우는 당시 엄청난 규모의 먼지 폭풍(초속 140미터의 광풍으로 추측)에 휘말리면서 수평 방향으로 격렬하게 밀렸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마르스 6호의 경우는 대규모 폭풍이나 국지 폭풍의 징후도 없어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1976년 미국이 진행한 ‘바이킹 1호’의 경우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는 때를 골라서 표고가 낮은 저지대에 착륙시켜야 했다. 당시 그전 1971년에 최초로 화성 궤도에 진입한 탐사 위성 ‘매리너 9호’를 통하여 얻은 정보와 레이더 연구로부터 북위 21도가 바이킹 1호의 목표 위도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위도에서 착륙지 1순위는 네 개의 구불구불한 운하가 합류하는 지점 근처에 있는 '크라이세'(Chryse, 그리스어로 ‘황금의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라는 지역으로 낙착됐다고 한다.
결국 태양 주위를 돌아서 1억 킬로미터의 먼 거리를 가로지르는 1년 반에 걸친 행성 간 여행의 끝에 바이킹 선단의 궤도선-착륙선 통합체들이 화성 주위의 적절한 궤도로 진입했고, 화성 대기에 진입하여 융제 보호막의 위치를 올바르게 조정한 다음 낙하산을 펼치고 덮개를 벗어 버리고 나서 자신의 역추진 로켓에 불을 댕겨 안전하게 착륙하였다.
바이킹 1호가 인류에게 보낸 화성의 지평선 사진들은, 지구의 콜로라도나 애리조나나 네바다 주 등 지구상의 풍경들과 다를 바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바위 덩이와 모래 언덕들이 무심하게 놓여 있었고 지평선 멀리에는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는 풍경이었다고 한다.
화성의 경관은 황량하고 붉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진에는 운하를 건설하는 기사도 바르숨의 비행 자동차나 단도도 찾아볼 수 없었고 시야에 들어오는 경관에는 생명의 징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화성에서 생명을 찾으려면 세균부터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칼 세이건은 뉴욕주 로체스터 대학교의 울프 블라디미르 비시니액(Wolf Vladimir Vishniac, 1922~1973)이라는 미생물 학자 이야기를 한다.
그는 화성 탐사를 위해 ‘늑대의 덫’이라고 불리는 장치를 만들었는데, 영양 유기물이 담긴 작은 병에 채취한 화성 토양을 넣고 섞은 뒤 화성 미생물이(있다는 전제 하에) 그 속에서 번식(한다는 전제 하에)함에 따라 액체의 혼탁도가 변화하는 양상을 관찰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그러나 NASA의 예산이 삭감을 당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진행되지 못하였고 그는 지구상에서 화성과 가장 비슷한 환경인 남극의 건조 계곡에 소형의 미생물학 실험 기구들을 남극 토양에 심어 놓고 회수하러 갔다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 미망인은 남극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보이는 신종의 효모균을 발견하기도 하였고 그 남극 탐험 여행에서 가져온 큰 돌멩이들에서 아주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바이킹의 화성 탐사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우주 탐사 계획이었다. 다른 종류의 생명에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찾아본 첫번 째 시도였을 뿐 아니라, 우주선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수 시간 이상 작동할 수 있었던 최초의 경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바이킹은 수 년간이나 작동했다). 어디 그 뿐인가. 지질학, 지진학, 광물학, 기상학 그리고 대여섯 개의 과학 분야에서 외계에 관한 데이터를 풍부하게 수확하는 기록을 수립했다.
칼 세이건은 아직까지 화성에서 우리가 현재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화성의 미생물학적 존재를 받아들여야 할 확실한 증거는 없다’이고, ‘유기물의 증거를 화성의 토양에서 단 한 건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바이킹의 유기화학 실험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설혹 화성에 생명이 없다 할지라도 화성 탐사를 통해 과학적으로 엄청난 소득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화성의 표면적은 지구의 육지 넓이와 거의 같다. 철저하게 답사하려면 분명히 몇 세기 동안 꼬박 이 일에만 매달려야 할 것이다. 언젠가 화성 탐사가 완료되는 때가 오면 그다음에는 화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
칼 세이건은 화성이 적정 수준으로 지구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마 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불과할 것이다라고 예견하고 있다. 미래에는 운하망 건설을 통해 얼음을 적도 지방으로 수송할 수 있게 되어 적도 지방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면(스키아파렐리와 로웰의 착각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화성에서의 인간의 거주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칼 세이건은 “나는 굳이 로웰의 생각에 큰 무게를 실어 주고 싶다. 그의 생각을 하나의 훌륭한 예언으로 간주하고 싶기 때문이다. 언젠가 화성의 지구화가 실현된다면 화성에 영구 정착해서 화성인이 될 인간들이 거대한 운하망을 건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바로 우리가 로웰의 화성인인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무리하고 있다.
[참고자료]
그 동안 화성 탐사의 주요 모멘텀이 된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최근 2021년 2월 19일에 화성 탐사 로봇이 탑재된 퍼시비어런스(Perseverance)호가 화성에 착륙했다. 미국은 이번에 처음으로 화성의 토양 시료를 지구로 가져오겠다고 밝혔다.
퍼서비어런스가 화성 토양 시료를 채취해 원통에 넣어두면 나중에 미국과 유럽이 개발한 탐사선이 따로 화성에 가서 회수한 다음 2031년 지구로 가져올 계획이다. 과학자들은 퍼서비어런스호가 보내온 화성 시료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기대하고 있다.
<6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