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 보이저 1, 2호, 하위헌스, 갈릴레이
6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세상은 단 하나의 세계로만 존재할까, 아니면 다중의 세계일까? 이것이야말로 자연 탐구에 있어서 가장 고상하고 가장 소중한 질문의 하나일 것이다. -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13세기
이 장은 태양계 외행성 관측을 위해 보이저 1, 2호를 쏘아 올린 이야기와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탐험 정신을 가졌던 네덜란드의 번영과 하위헌스의 업적 그리고 보이저 1, 2호가 보내온 목성과 그 위성들 그리고 토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칼 세이건은 다음과 같이 이 장을 시작하고 있다.
"현대는 인류가 우주의 바다를 항해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케플러의 궤도를 따라 힘차게 노를 저으며 우주의 바다를 항행하는 현대판 범선에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타고 있지 않다. 무인 우주선이야말로 기막히게 잘 설계된 고도의 지능형 로봇이다."
1960년대 중반 아폴로 계획을 세우고 유인 달 탐사 준비에 한창이던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게리 플란드로는 1970년 후반에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정렬되어 탐사선 하나로도 중력 도움을 이용해 네 천체 모두를 방문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러한 정렬 현상은 175년마다 일어난다.
JPL은 1976~1978년에 탐사선을 발사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렇게 시작된 계획이 나중에 보이저로 명명되는 ‘매리너 주피터-새턴 1977(Mariner Jupiter-Saturn 1977)’이다.
보이저 1호
보이저 1호는 원래 매리너 계획의 일부인 매리너 11호로 계획됐다. 처음부터 보이저 1호는 당시 최신 기술이던 중력 보조를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일명 ‘행성간 대여행’이라 불리는 행성의 배치가 행성간 탐사선의 개발에 영향을 주었다. 행성간 대여행은 연속적인 중력 보조로 한 탐사선이 궤도 수정을 위한 최소한의 연료만으로 화성 바깥쪽의 모든 행성(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탐사할 수 있는 여행을 뜻한다.
보이저 1호는 보이저 2호가 발사된 지 얼마 안 된 1977년 9월 5일에 케이프커내버럴에서 발사됐다. 원래 1호가 먼저 발사되어야 했으나 시스템 문제로 연장되었다. 보이저 2호보다 늦게 발사됐지만, 보이저 1호가 더 빠른 궤도로 움직였기 때문에 2호보다 목성과 토성을 먼저 탐사했다. [출처 위키백과]
보이저 2호
1977년 8월 20일: 발사
1979년 7월 9일: 목성 통과
1981년 8월 26일: 토성 통과
1986년 1월 24일: 천왕성 통과
1989년 2월: 해왕성 통과 후, 공전면 아래쪽으로 카이퍼 벨트 진입
2018년 12월 18일: 말단 충격 통과 후 아래쪽으로 태양계를 벗어남
보이저 2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자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많은 발견을 이루어냈다. 화성과 당시에는 아직 행성이었던 명왕성을 제외한 모든 외행성, 즉 모든 목성형 행성을 방문해 준 덕택에 엄청난 수확을 과학계에 안겨주었다.
우주 공간은 중력과 마찰력이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한 번의 가속을 가지고도 관성으로 등속직선운동이 가능하므로 비행에는 동력이 필요 없지만, 탑재된 장비를 구동하는 데에는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이저호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 발전기(RTG)로 전력을 얻고 있다.
각종 위성과 탐사선에 흔하게 사용되는 태양전지 판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보이저호는 외우주 탐사선이라 태양계에서 아주아주 멀리 떨어진, 태양빛이 매우 미약한 곳에서도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0년까지는 지구와의 통신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으며, 발사 후 만 48년째가 되는 2025년 이후에는 출력이 너무 떨어져 탑재된 장비들이 작동을 멈추고 지구와의 교신도 중단될 것으로 예측된다.
보이저호에는 외계인과의 조우를 염두에 두고 55개의 언어(한국어 “안녕하세요‘도 녹음되어 있다)로 녹음된 ‘황금 레코드’가 탑재되어 있는데, 재생방법과 지구의 위치 등을 수학적으로 표기해 놓았다.
보이저호는 태양권을 벗어나면서 미지의 성간 물질과 우주방사선에 노출돼, 사전에 예측할 수 없었던 문제에 직면했다. 탐사선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자세 제어 시스템(AACS)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오차가 발생해 지구를 향하는 안테나의 방향이 틀어졌고 지구에서 수신되는 시그널의 세기도 약해졌다.
보이저 호에는 지상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문제를 검출하는 컴퓨터 명령 시스템(CCS)을 비롯한 과학 장비들을 제어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비행 데이터 시스템(FDS), 탐사선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자세 제어 시스템(AACS) 총 세 종류의 컴퓨터가 2대씩 실려 있다. [출처 나무위키]
칼 세이건은 우주항해의 시대를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와 비교한다. 당시 인간의 야망과 탐욕, 국가 간의 경쟁, 종교의 맹목적 광신, 죄수의 대량 사면, 과학적 호기심, 모험과 탐험에 대한 욕구로 인해 유럽의 몇 국가들은 앞을 다투어 새로운 지역을 찾아 나섰다.
특히 네덜란드인들은 기술과 과학을 존중했으며 발명가와 과학자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예우해 주었고, 수천 년 동안 의심 없이, 고집스럽게 받아들여졌던 주장들을 지적하고 과감하게 수정하는 사상적 개혁도 함께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열린 사고는 역동적으로 지구 탐험을 시도할 수 있게 했다.
네덜란드 전성기
17세기 네덜란드는 아인슈타인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와 수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데카르트’(Decartes)'의 안식처였다고 한다. 또한 페인(Paine), 해밀턴(Hamilton), 애덤스(Adams), 프랭클린(Franklin), 제퍼슨(Jefferson)과 같이 철학적 성향의 혁명가들에 깊은 영향을 미친 정치학자 ’존 로크‘(John Locke)에게도 네덜란드는 안식처였다.
위대한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그리고 수학자들이 홀란드라는 땅에 그때처럼 넘쳐났던 시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당시의 네덜란드는 렘브란트, 베르메르(Vermeer), 프란스 할스(Frans Hals)와 같은 걸출한 화가들과 현미경을 발명한 레벤후크(Leeuwenhoek), 국제법의 창시자 그로티우스(Grotius), 빛의 굴절 법칙을 발견한 스넬(Snellius) 같은 사람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사상의 자유를 존중한 네덜란드의 전통에서 라이덴 대학교는 지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고문의 위협을 받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라고 강요받던 갈릴레오에게 교수직을 제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참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16세기 최대 이익을 내는 무역 항로는 인도, 중국, 동남아 항로였다. 후추 등 향신료는 유럽에서 어마어마한 고가에 팔렸고 동방에서 가져온 다른 상품들도 값비싸게 팔렸다. 1595년 네덜란드의 한 무역 회사가 포르투갈의 독점 상품이었던 동남아시아 향료 무역에 진출했는데 이 해의 첫 항해는 투자자들에게 무려 4배의 수익을 안겨 줄 정도의 대성공이었다.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설립에 자극받은 네덜란드 상인들이 2년 후인 1602년에 설립하였는데,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 그리고 17세기 세계 최대의 회사였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향신료 무역으로 얻은 자산의 대부분을 투자하여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 말라카, 스리랑카, 일본 나가사키(데지마), 타이완 섬, 중국 광저우는 물론 페르시아에까지 상관을 설립했다. 이 무렵 동인도 회사가 보급항으로 건설한 아프리카 남단의 상관이 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된다.
투자자들 중 갑자기 금전이 필요해져 투자한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익을 받고 주식 권리를 포기하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동인도 회사의 미래를 유망하게 보고 주식 권리를 신규로 혹은 증액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이 둘 간의 주식 거래가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1609년에 생긴 것이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다.
또한 매년 엄청난 수익을 얻어 너무 빨리 돈이 돌자 과부하를 막기 위해 1609년에 은행을 만들어 다른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 당시에 신용 대출도 있었고 은행의 신용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은행에 간섭할 수 없도록 법을 제정했는데, 네덜란드 공화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적대국에게도 합법적으로 돈을 빌려줬다.
이렇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은행, 증권거래소, 유한회사를 하나의 금융 체계로 통합시켜 폭발적으로 돈을 끌어모았다. 전성기인 1670년대 회사는 150척의 상선, 40척의 군함, 50,000명의 직원과 10,000명 규모의 군대를 거느린 거대 조직이 되었고, 회사의 주식은 배당금으로만 액면가의 40%를 배당하는 큰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수익은 크지 않았고 1660년대 남명이 청나라에 멸망하면서 중국무역이 대폭 감소하고, 같은 시기 일본 에도 막부의 쇄국정책으로 은 수입이 감소하자 회사의 성장은 정체되기 시작하였다.
동인도 회사는 기존의 향료 무역으로부터 커피, 차, 도자기, 면직물 등으로 상품의 종류를 늘리고 상관의 숫자를 늘려 대응했지만, 경쟁사인 영국 동인도 회사가 규모를 키우고, 1700년대 이후로는 신대륙에서도 향료, 설탕 등 상품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에서의 수익이 줄어들게 되었다.
18세기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사실상 파산 상태에 이르러, 나폴레옹에 의해 네덜란드에 세워진 괴뢰국인 바타비아 공화국 정부에 의해 국유화되었다. 1799년 동인도 회사는 해산되었고 회사가 소유한 식민지(네덜란드령 동인도 등) 역시 네덜란드의 직할령이 되었다.
갈릴레이 위성
갈릴레이는 이전에 비해 천체를 잘 관찰할 수 있게 한 망원경을 이용해 1609년부터 1610년에 목성에서 4개의 위성을 발견했다. 이들은 목성의 위성 중 크기가 큰 천체이며, 이들 위성의 이름은 이오, 에우로페, 가니메데스, 칼리스토 등 제우스(즉 목성의 이름)의 연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갈릴레이 위성(Galilean moons) 또는 갈릴레오 위성이라 부른다).
이 위성들은 태양계에서 태양과 8개 행성을 제외하고 가장 큰 위성이며 현재까지 확인된 어떤 왜행성보다도 지름이 크다. 가니메데, 유로파, 이오 3개 위성은 각각 1:2:4의 비율로 궤도 공명을 하며 공전한다.
갈릴레이의 발견은 육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공간에서 망원경으로 천체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망원경을 중요한 천문학 도구임을 입증한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를 도는 천체의 발견은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지구중심설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갈릴레이는 자신이 발견한 위성을 처음에는 우주의 별("코시모의 별")이라고 불렀지만, 결국 통용되는 이름은 시몬 마리우스에 의해 채택되었다. 그는 갈릴레이와 거의 동시에 독자적으로 갈릴레이 위성들을 발견했고, 위성들에게 각각의 이름을 주었다. 위성의 이름은 1614년에 출판된 "Mundus Jovialis"에서 발표되었다. 위성들의 이름은 요하네스 케플러에 의해 제안된 이름들이었다.
1610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이용하여 토성의 고리를 처음으로 관측하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고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내지는 못하였고, 갈릴레이는 토성에 귀가 있다고 표현하였다.
하위헌스
그로부터 50년 뒤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하위헌스가 토성의 '양쪽의 귀'의 실체를 정확히 밝혀냈다. 그것은, 귀가 아니라 고리라는 것인데 그는 이 엄청난 정보를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어 3년 뒤에 발표하고야 말았다. "토성의 양쪽 귀는 엷은 고리이다. 이 고리는 토성에 붙어 있지 않고 떨어져 있다." 이러한 내용을 설명한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네덜란드어: Christiaan Huygens '호이겐스')는 1629년 4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콘스탄테인 하위헌스와 수잔나 반 바를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조부, 즉 콘스탄테인의 아버지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강력한 명성과 부를 지니고 있었던 하위헌스 가문은 크리스티안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해 주었다. 그와 그의 형제들은 수학, 음악, 라틴어, 그리스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그리고 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데, 그는 이것들 모두에 대해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또한 콘스탄테인과 친교가 있었던 르네 데카르트는 가끔씩 그의 집에 초대되었는데, 하위헌스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과학에 대한 흥미를 키우고, 언젠가는 모든 자연 현상이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을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외교관이 되기 위하여 20세가 될 때까지 법학 공부에 전념하다가 결국 법학을 포기하고 1649년 과학으로 전향한 이후 십수 년 동안 하위헌스는 헤이그의 집에 머물면서 연구를 했다. 그러나 그 특유의 철저함 때문에 하위헌스는 자신의 탐구를 잘 발표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거의 10년이 걸렸다.
하위헌스는 천문학 연구를 위한 정확한 시각 측정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진자시계를 발명하여 1657년 특허를 얻었다. 1658년 이후 그의 설계에 바탕을 둔 시계가 널리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대중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한편, 그는 1655년부터 형인 콘스탄테인과 함께 망원경을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색지움 렌즈(en:achromatic lens)를 이용하여 망원경의 색수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렇게 새로이 제작한 망원경을 이용해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발견하는 업적을 세웠다. 1650년대 말에는 그보다 더 큰 망원경을 만들어 토성의 고리와 그 성질을 분석하였다. 이로써 과학자로서 그의 명성은 확고하게 굳어지게 되었다.
하위헌스는 1659년 출판된 《토성의 체계》(원제는 《Systema Saturnium》)에서 토성의 고리 모양에 대한 변화를 다루었다.
하위헌스의 토성에 대한 이런 발견 업적들을 기려, 1997년 10월 15일에 토성 탐사를 목적으로 발사된 탐사선에 그의 이름을 붙여 '카시니-하위헌스 호'라고 하였다. 이 탐사선은 토성에 착륙하기까지 그 위성인 타이탄의 자료를 보내왔으며, 현재 토성을 공전하고 있다.
하위헌스는 여러 차례 외국으로 여행을 다녔는데, 1655년 파리에서 5개월간 체류하면서 피에르 가상디를 포함한 선구적 과학자들을 만났다. 그는 또한 1661년 런던을 방문하였는데, 2년 후인 1663년에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역시 그를 인정하여 1666년에 프랑스 왕립과학 아카데미, 즉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창립회원 7명 중 한 명으로 선정하였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빛에 관한 파동 이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빛의 반사, 굴절 그리고 회절과 같은 현상들을 '하위헌스의 원리'라고 불리게 되는 생각에 기반하여 설명하였고,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한 《빛에 관한 논술》(원제는《Traité de la lumière》)을 1690년에 출간하였다.
그의 이론은 아이작 뉴턴이 자신의 저서 《광학(Opticks)》에서 다룬 빛의 입자설과 대립되었지만, 1801년 토마스 영의 이중슬릿 회절 실험을 통해 파동 이론이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후 광자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다시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프랑스 간의 정치적 상황과 개인적 건강의 악화로 하위헌스는 불가피하게 1681년 네덜란드로 귀국하게 되며, 1694년 병에 걸려 앓아눕게 된 하위헌스는 고통을 겪다가 결국 1695년 7월 8일 헤이그에서 사망하였다.
하위헌스의 과학 기구들은 그의 가문이 보관하다가 1754년 경매에 내놓았고 이 때문에 많은 양이 손상되거나 소실되었지만 그가 만든 시계와 렌즈들의 일부, 기계식 플라네타륨 등은 레이던의 보어하브 박물관(en:Museum Boerhaave)에 남아 있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믿었던 하위헌스는 1698년 그가 사망한 뒤에 출판된 《우주 이론》(원제는 《Cosmotheoros》)에서 "우리는 이 세계가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그 위대함이란 사실 현재와 같은 칭송을 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만큼 아름답고 생명으로 가득 찬 다른 '지구'들이 훨씬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 우주는 수많은 태양과 수많은 지구로 붐빈다. 이렇듯 엄청난 거리에 걸쳐 존재하는 많은 별들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감탄과 놀라움은 얼마나 더 커져야 할 것인가"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칼 세이건은 “오늘날의 보이저 우주선은 17세기 탐험선의 직계 후손으로서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의 과학적 전통과 상상력에 그 기원이 있다. 보이저는 별들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선이며, 또한 하위헌스가 알고 사랑해 마지않았던 천체들을 탐사하기 위한 탐험선이기도 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수세기 전에는 탐험 여행에서 가져오는 ‘주요 상품’들 중의 하나로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행자들이 들려주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낯선 땅과 그곳에 있는 특이한 동식물들에 대한 여행자들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다음 탐험으로 이어지게 하는 매우 중요한 ‘상품’이었다.
어떻게 태양계 먼 곳에서 관측된 영상이 지구로 전송될 수 있을까?
태양 광선이 목성과 목성 주위를 궤도 운동하는 유로파에 떨어지고 행성은 입사된 빛의 일부를 반사하여 우주 공간으로 다시 내보낸다. 이렇게 반사된 빛의 일부가 보이저호에 실려 있는 텔레비전 카메라의 형광 물질을 자극함으로써 목성과 유로파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보이저호에 장착된 컴퓨터가 읽어서 숫자 신호로 변환한 다음, 10억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지구상의 전파 망원경으로 송출하고, 그 신호를 스페인과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있는 전파 망원경이 받아서 서로 연결해서 한 장의 인화지 사진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칼 세이건은 "만약 보이저가 유인 우주선이었다면, 보이저의 함장은 다음과 같은 항해일지를 기록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1일
식량과 기타 비축물, 그리고 기기에 관한 걱정을 뒤로하고, 성공적으로 케이프 커네버럴 우주 기지를 이륙. 행성과 별을 향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
2일
과학 장비들을 탑재한 주사 플랫폼의 지지 사다리를 펴는 데 문제가 발생함.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촬영한 이미지와 측정한 과학 자료들이 모두 유실되기에 큰 걱정이다.
13일
우리 뒤로 보이는 지구와 달을 촬영하다. 둘이 우주에 나란히 떠 있는 모습을 찍은 최초의 사진이다. 참으로 어여쁜 한 쌍이다.
150일
궤도 중간 수정을 위한 엔진 점화 실시.
185일
밝기 눈금 조정의 기준으로 쓰기 위하여 목성의 이미지를 촬영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207일
지지 사다리의 문제가 드디어 해결됐다. 하지만 주전파 송신기는 여전히 작동 불능이다. 여분의 송신기로 교체했는데, 이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관측 자료를 지구로 보낼 수 없게 된다.
215일
화성의 궤도를 지났다. 화성은 이제 태양의 반대쪽에 있다.
295일
소행성대 진입. 큰 바위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굴러다니니 영락없는 우주의 모래톱과 암초이다. 대부분은 궤도 추정이 불가능하다. 경계 요원을 배치했다. 충돌을 모면하길 바란다.
475일
소행성대를 무사히 벗어났다. 살아 나와 다행이다.
570일
드디어 목성이 그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제 우리는 지구상의 어떤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었던 목성의 모습들을 자세히 관측할 수 있을 것이다.
615일
목성의 엄청난 기후 변화에 우리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했다. 그리고 이 행성은 정말 엄청나게 크다. 아마 태양계의 다른 모든 행성들의 질량을 다 합쳐도 목성 질량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다…….
630일
목성 기후의 지속적인 변화는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장관이었다. 이 육중한 행성은 불과 10시간도 채 안 돼서 한 바퀴를 완전히 돈다……
640일
인상적이고 멋진 구름무늬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블레이크나 뭉크의 작품들이 연상된다. 어떤 예술가도 이런 장관을 그리지 못했다. 그것은 아무도 우리 행성을 벗어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구에 발이 묶인 화가가 어떻게 이토록 신비록고 아름다운 세계를 상상이나 하겠는가.
650일
드디어 목성 최근접. 정말 굉장한 하루였다. 목성의 위험천만한 복사 벨트 지역을 성공적으로 헤쳐 나오는 데 성공했다. 피해는 사진 편광기 하나가 망가진 것뿐이다. 새로 발견된 목성의 고리를 고리 내부의 작은 입자나 돌멩이들과 충돌하지 않고 무사히 통과했다…….
662일
입자 검출기와 자기장 측정기의 측정 결과를 보면 우리가 복사 벨트 지역을 완전히 벗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가속을 하고 마침내 목성권을 벗어나서 우주 공간을 항해하기 시작했다.
874일
바다에서 밤하늘의 별자리가 항해하는 배들의 길잡이가 되듯이, 우주에서도 별이 길잡이를 한다. 우리는 노인성(Canopus)을 길잡이로 삼고 있는데 조타 장치에 문제가 생겨서 방향 좌표의 설정을 다시 해야 했다……. 다음에 정박할 항구는 토성권이다. 아, 2년쯤 후면 거기에 닿을 것이다.
목성은 적외선 대역에서 보면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이지만 가시광선 대역에서는 항성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만약 목성이 태양과 같은 항성이 되는 데 성공했다면 태양과 짝을 이루는 쌍성계가 되어 지구의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목성의 내부 압력은 지구 표면 대기압의 300만 배로 추정되며 이 조건에서는 수소가 금속성 액체로 존재할 가능성이 커서 목성의 내부는 액체수소 바다가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보이저 2호’는 1979년 첫 번째 탐사 대상인 목성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 이미지 전송은 그 해 4월 24일부터 시작됐고, 7월 9일에는 목성의 64만 5000㎞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보이저 2호’는 변화무쌍한 목성 대적반(목성 특유의 거대한 적갈색 소용돌이)과 목성 고리, 유로파 등 다양한 위성 표면 등을 상세하게 관측했다. 이 과정에서 약 1만 8000장의 이미지를 포함한 새로운 관측 데이터도 얻었다.
[참고] 목성 탐사선들
첫 번째의 목성 탐사선은 파이오니어 10호와 11호로 이들은 1972년 3월 2일과 1973년 4월 5일에 각각 발사되어 1973년 12월과 다음 해 12월에 각각 목성에 도착해 탐사를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파이오니어 10호가 목성의 북극 상공 13만 6000km를 지나가는 순간에 인류는 처음으로 목성의 북극을 보게 되었고 이오에 엷은 대기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또한 1979년 3월과 7월에 잇따라 보이저 1,2호가 목성에 도착했는데 보이저 1호의 카메라들은 지구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목성의 얇은 두 개의 고리를 발견하였으며, 이오가 활화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태양계 탐사선 율리시즈 호가 1992년 2월 목성의 대기 끝 부분인 3만 7,500km 지점까지 접근을 시도했다. 이 우주선의 목적은 태양풍과 자기장 등을 관측해 태양계의 전체 모습을 얻는 것이며, 목성을 탐사한 후 다시 태양으로 되돌아갔다.
1989년 10월 18일 목성탐사선 갈릴레오 호는 케네디 우주센터(Kennedy Space Center)에서 발사된 우주선으로 궤도선과 탐사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갈릴레오 호는 1990년 2월 금성을 거쳐 1995년 12월 드디어 목성을 도착, 궤도에 진입해 1997년 10월까지 목성을 관측했다.
이오 위성
칼 세이건은 특히 갈릴레오의 4대 위성 중 하나인 이오에 반했다고 한다. 이오라는 이름은 시몬 마리우스가 제안해 불리게 되었다. 보이저호가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이오는 다양한 색깔로 치장되어 있으며 표면에는 충돌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화산이 발견되었는데 우주로 뿜어내는 화산의 모습은 정말 가슴 설레는 장관이었고 완전히 새로운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칼 세이건은 강력한 화산활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오에 언젠가 과학 기술이 발전하여 인류가 직접 가게 될 것을 상상하며 설렘을 감추지 않는다.
[참고]
이오(Io, 그리스어: Ἰώ)는 목성의 위성 중 하나로 갈릴레이 위성에 속하는 위성이다. 지름은 3,642km으로 태양계에서 네 번째로 큰 위성이며 목성의 위성 중 세 번째로 크다. 이 위성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연인 중 한 명이자 헤라의 여사제인 이오를 따서 지어졌다.
이오는 용융 상태의 철과 철 핵을 둘러싼 규산염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표면은 황과 이산화 황의 서리로 덮여 있다.
400개 이상의 활화산을 가진 이오는 태양계에서 지질학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위성 중 하나다. 여러 화산들은 표면 위 500km까지 황과 이산화 황의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화산 폭발로 파편을 날리고 용암을 흐르게 하여 표면을 노란색, 빨간색, 흰색, 검은색, 초록색 황 화합물로 덮는다. 이오의 표면은 규산염 지각에서 벌어지는 압축에 의해 생긴 100개 이상의 산이 덮고 있다. 그중 일부는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크다.
이오의 발견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채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요하네스 케플러의 운동 법칙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최초의 빛 속도 측정 대상이 되었다. 지구에서 이오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극은 붉고 적도 쪽은 밝다는 것까지 알려졌으며, 그 후 표면의 대규모 용암 형상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1979년, 두 대의 보이저 탐사선은 이오가 지질학적으로 활발한 위성임을 밝혀 냈고, 거대한 화산들과 충돌구들이 비정상적으로 젊다는 것도 관측하였다. 갈릴레오 호은 1990년도와 2000년도에 이오를 지나치며 관측했고, 이오의 내부 구성과 표면 조성에 대한 정보를 얻어냈다.
또한 탐사선들은 이오와 목성 자기권의 연관관계와 이오 궤도 주변의 방사선 띠의 유무도 밝혀 내었다. 이오에는 하루에 3600 Rem의 방사선이 들이친다. 또한 2000년에 카시니-하위헌스호와 2007년 뉴 허라이즌스 호가 목성을 지나치며 이오를 관측했고, 지구의 허블 우주 망원경도 계속해서 이오를 관측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이오는 목성의 중심부로부터 42만 1700 킬로미터, 목성 대기 상층부로부터 35만 킬로미터를 떨어져 공전하고 있다. 이오는 갈릴레이 위성 중 가장 안쪽을 돌고 있으며 그 궤도는 테베와 유로파 사이에 있다. 목성에 근접한 위성까지 포함하면 이오는 목성으로부터 다섯 번째로 가깝다. 이오는 목성을 한 번 공전하는 데 42.5시간이 걸리는데, 이는 하룻밤 사이에 그 움직임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이다.
달이나 다른 갈릴레이 위성들처럼 이오는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가 일치하며, 목성을 향해 한쪽 면만을 계속 향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유로파(영어: Europa)는 목성의 위성 중 하나로, 갈릴레이 위성에 속하는 위성이며, 에우로파(그리스어: Ευρώπη) 또는 목성 II(영어: Jupiter II)라고도 불린다. 유로파는 목성의 위성 중 여섯 번째로 목성에 가까우며, 갈릴레이 위성 중 가장 작지만 태양계의 모든 위성 중에서는 여섯 번째로 크다.
이 사진은 갈릴레오호가 1995년부터 2003년 사이에 목성궤도를 공전하는 중에 찍은 사진을 모자이크한 것이다. 얼음으로 이뤄진 평원과, 지평선 쪽으로 쭉 뻗어있는 균열, 얼음과 먼지로 인해 군데군데 어두운 부분들이 잘 보이고 있다. 융기지형은 그늘이 드리워지는 융기부의 말단부와 대비되어 특별히 도드라져 보인다.
갈릴레오 탐사선의 자기장 데이터에서는 유로파가 목성과의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유도된 자기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고, 이는 밑에 전기가 통하는 전도층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 전도층의 정체에 대한 가설 중 하나가 바로 유로파의 지하에 염류가 있는 바다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로파는 금속 상태의 철 중심부를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유로파는 지구의 달과 거의 동일한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 훨씬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고 있어서 고원이나 크레이터 자국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갈릴레오로부터 수집된 증거와 사진들을 볼 때, 얼음 표면 밑에는 액체로 된 바다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생명체가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을 실험하기 위해 NASA와 ESA는 그 예비단계로서 유로파목성계임무(the Europa Jupiter System Mission) 개발에 착수하였으며 유로파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목적이 있다. 만약 표면의 얼음이 충분히 얇다면 미래에 투하될 로봇탐사선이 얼음을 뚫고 내려가 그 밑의 바다로 들어가서 생명체를 탐색하게 될 것이다.
가니메데는 반지름 2,634 km에 지구 질량의 약 2.5%의 질량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태양계 위성 중 가장 크다. 심지어 수성보다도 크다. 만약 목성이 아닌 태양을 돌았다면 행성으로 분류됐음직한 행성급 위성인 셈이다.
얇은 대기층이 100% 산소로 이루어진 까닭에 상당히 밝아서 일반 망원경으로 충분히 관측 가능하다. 지표는 모래먼지와 얼음으로 덮여 있고 얼음층 한참 밑으로 암석핵과 금속핵이 존재하는데, 태양계 위성으로는 유일하게 미약하나마 자기장을 갖고 있다. 따라서 금속핵 부분이 용융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내부 활동이 정지되지 않아 얼음층 아랫부분이 녹아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태양계 위성 중 유일하게 자기장이 관측되며 지구처럼 오로라도 생긴다. 수년 전 NASA가 그 오로라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소금물이 존재할 때 나타나는 보조자기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유는 얼음층으로 된 가니메데 표면 160㎞ 아래에는 지구보다 더 거대한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가니메데 얼음 아래에 지구보다 더 많은 물을 가진 소금 바다가 있다는 게 밝혀졌다. 2020년 주노 탐사선에 의해 가니메데의 북극에 비결정성(amorphous) 얼음의 존재를 확인했다. 수심이 약 97㎞로서 지구보다 10배가량 깊은 이 바다에는 1ℓ당 5g의 소금이 녹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6월 7일. 주노 탐사선이 20년 만에 가니메데를 근접하였으며, 가니메데의 소리도 밝혀냈다. 정확히는 가니메데 근처의 자기장 신호를 가청주파수의 소리로 변환한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칼리스토(영어: Callisto) 또는 목성 IV는 목성의 위성으로, 1610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발견했다. 또한 칼리스토는 태양계에서 3번째로 큰 위성이고, 목성의 위성 중에서는 가니메데 다음으로 크며, 행성 분화율은 태양계에서 제일 낮다.
그리고 칼리스토의 지름은 4,821km이며, 수성의 99%에 달하는 크기를 가졌지만, 질량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궤도 반경은 1,880,000km이고, 갈릴레이 위성 중에서는 목성으로부터 제일 멀리 있다. 칼리스토는 내부 갈릴레이 위성들(이오, 유로파, 가니메데)과 궤도 공명을 일으키지 않고, 따라서 조석 가열의 정도가 약하다. 칼리스토는 목성에 조석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같은 면만 목성을 바라보게 된다.
칼리스토는 거의 같은 비율의 암석과 얼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밀도는 1.83 g/cm3으로 목성의 주요 위성들 중 밀도가 가장 낮고 표면 중력 또한 가장 약하다. 분광기를 사용해 표면을 분석했을 때 발견된 물질들로는 얼음, 이산화 탄소, 규산염, 유기 화합물들이 있었다. 갈릴레오 탐사선은 칼리스토에 작은 규산염 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칼리스토에 깊이 100 km가 넘는 지하수가 존재할 가능성을 밝혀냈다.
1970년대 초반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가 목성을 근접 통과하면서 칼리스토의 정보를 보내왔으나, 대부분 지구에서의 관측을 통해 알려져 있던 정보들이었다. 새로운 정보들은 1979년 보이저 1호와 2호가 목성을 지나가면서 보내왔는데, 보이저 탐사선들은 칼리스토의 표면을 1~2 km의 해상도로 반 넘게 찍었고, 칼리스토의 온도, 질량, 모양을 정확히 측정했다. [출처: 위키백과]
토성(土星, 라틴어: Saturnus)은 태양으로부터 여섯 번째에 있는 태양계의 행성이다. 토성은 태양계 내의 행성 중 목성에 이어 두 번째로 크며, 지름은 약 12만 km로, 지구의 9.1배이며 부피는 760배에 달한다.
이에 비해 질량은 지구의 95배밖에 안되기 때문에, 토성의 평균 밀도는 0.7g/cm3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토성의 표면 중력은 지구와 비슷하다. 또한 토성은 목성, 천왕성, 해왕성과 함께 목성형 행성으로 분류된다.
Saturn은 로마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에 기원한 것이다. 영어로 토요일을 나타내는 Saturday도 여기서 나왔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의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 바빌로니아에서는 니누르타(Ninurta)에 해당된다. 또한 토성은 Jewel of the Solar System(태양계의 보석)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1675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카시니(Jean Dominique Cassini)는 더욱 좋은 망원경을 이용해 토성의 고리를 자세히 관찰하여 토성의 고리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그는 고리 사이의 검은 선으로 보이는 거대한 간격을 찾아냈으며, 이 간격이 바로 '카시니 간극(카시니 틈, Cassini division)'이다.
우주선으로 관측한 결과 토성의 고리는 수많은 얇은 고리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 고리들은 레코드판처럼 곱게 나열되어 있다. 토성의 고리는 적도 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토성 표면에서 약 7만~14만km까지 분포하고 있다. 토성의 고리는 아주 작은 알갱이크기에서부터 기차만한 크기의 얼음들로 이루어져 있다.
칼 세이건은 이 장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다.
태양에서 명왕성까지의 거리의 2~3배 정도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이르면, 성간을 떠도는 양성자와 전자들의 압력이 오히려 태양풍의 압력을 능가하기 시작한다. 거기가 바로 태양계와 그 바깥세상의 경계 지대인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태양 제국’의 국경이라는 뜻에서 이 지역에 ‘태양권계(heliopause)’라는 이름을 붙였다.
보이저호는 다시는 다른 항성계에 들어서는 일이 없이 별들 사이에 펼쳐진 무한의 공간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갈 것이다. 영원히 방랑할 운명의 우주선이 ‘별의 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엄청난 질량이 묶여 있는 은하수 은하의 중심을 한 바퀴 다 돌 때쯤이면 지구에서는 이미 수억 년의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인류의 대항해(epic voyage)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참고] 현재 보이저호의 위치
2024년 기준 보이저 1호는 태양에서 약 242억 8천만 km (대략 162.3AU) 떨어져 있고, 보이저 2호는 약 202억 6천만 km 떨어진 상태다. 보이저 1호는 하루에 약 147만 km(시속 6만 1천㎞)씩, 보이저 2호는 약 133만 km(시속 5만 5천㎞)씩 태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AU는 Astronomical Unit의 약칭. 지구에서 태양까지 이르는 거리이다. 빛의 속도로는 8분 19초 만에 도달할 수 있으며 약 1억 5천만km다.
<7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