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 리처드슨 곡선, 히파티아
제13장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가고 노예 제도의 야만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별 세계의 비밀을 캔다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 아낙시만드로스가 피타고라스에게 던진 힐문
지구 도처에서 끔찍한 음모를 꾸미고 끝없는 바다를 정복한다고 법석을 떨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그런 짓을 하면 할수록 지구의 모습은 바깥 세상의 천체들에 비해서 더욱더 초라해 보일 뿐이다. 제왕과 왕자들은 반성할지어다. 그대들은 하나의 점에 불과한 그래서 어쩌면 불쌍해 보이기조차 하는 보잘것없는 한구석의 주인이 되고자 그렇게도 많은 인명을 희생시켜야만 하는가?
-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천상계의 발견》, 1690년경
인류가 이룩한 모든 것은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꾼 한낱 꿈에 불과합니다. 그 정신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 자신의 미미함을 인식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올 것입니다. (중략) 우리의 생각과 육체 안에 가능성으로만 숨어 있던 그 무엇이 자신의 참모습을 언젠가 드러내어, 지구를 발받침으로 삼아 훌쩍 밟고 일어서서, 큰 소리로 웃으며 저 별들에게 우리의 손을 내밀 날이 정녕 우리에게 오고야 말 것입니다.
- H. G. 웰스, 《미래의 발견》, 《네이처》 1902년
《코스모스》의 마지막 장인 이 장에서 칼 세이건은 핵전쟁의 위험과 핵을 통해 전쟁을 억지하려고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고한다. 결국 인류가 하나의 ‘종’이라는 동질 의식을 가지고 지구에 충성하며 다 같이 우주를 향해 눈을 돌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칼 세이건은 다음과 같이 이 장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 100만 년 동안 우리는 지구 이외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해 왔다. 그것에 비교한다면 아리스타르코스에서 현대까지의 기간은 0.1퍼센트에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이제야 우리는 스스로를 1조 개의 별들을 각각 거느린 1조 개의 은하들이 여기저기 점점이 떠 있는 저 광막한 우주의 바다에 부질없이 떠다니는 초라한 존재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겁도 없이 우주라는 바다의 물맛을 보았고 그것이 자신의 기호에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우주 탐험이야말로 인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위대한 장정인 것이다.
사람은 대지의 자녀인 동시에 하늘의 자녀이기도 하다. 인류는 호전성, 그릇된 관습,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이방인에 대한 이유 없는 적개심 같은 못된 진화적 습성도 가지고 있지만 남을 측은히 여길 줄 아는 좋은 천성도 갖고 있고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노력하고 지적인 것을 향한 불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
미래를 보는 우리의 눈이 지구에 고착돼 있다거나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마음이 지구의 어느 한 지역에만 묶여 있다면 결국 저 못된 습성이 사랑의 마음과 이성의 예지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문명의 미래와 하나의 종으로서 인류의 생존 문제를 우리 자신이 걱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대신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단 말인가?
핵전쟁
칼 세이건은 이제 “인류는 현재 위대한 모험을 앞두고 있다. 이 모험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위대하고 중요한 사건으로 인류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전쟁 수행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으며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핵전쟁을 두려워하지만 기술을 보유한 모든 나라가 빠짐없이 핵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블록 버스터(block buster)라고 불리는 초대형 고성능 폭탄들이 위력을 발휘했다. TNT 폭약 20톤으로 만들어진 초대형 고성능 폭탄 하나가 대도시의 구역(block) 하나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모든 도시에 투하된 폭탄의 총량이 TNT 200만톤, 즉 2메가톤이었다고 한다.
이 폭탄들은 1939년에서 1945년 사이에 영국의 코번트리, 네덜란드 로테르담, 독일의 드레스덴, 일본의 도쿄 등지의 하늘에서 비 오듯 쏟아져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몰고갔다. 그러나 2메가톤은 20세기 후반에 개발된 수소 폭탄 하나의 에너지에 지나지 않는다. 여섯 해나 지속된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TNT 200만톤이 쓰였는데 미래의 핵전쟁에서는 불과 수 시간 이내에 TNT 100억 톤 전부가 집중 파괴에 쓰일 것을 상상해 보라.
미국은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낼 수 있었다. 핵 폭탄이 폭발하면서 생기는 충격파는 투하 지점에서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한순간에 뭉개 버리고, 핵폭발에 동반되는 불기둥, 감마선 그리고 중성장에 노출되는 즉시 사람의 육체는 내부 속속들이 아주 철저하게 구워진다. 히로시마의 핵 공격에서 살아남은 한 여학생이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해 놓았다.
지옥의 밑바닥 같은 암흑 속에서 엄마를 부르는 학우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교각 옆에 파놓은 큰 물통 안에는 온몸이 빨갛게 구워진 갓난아기를 한 어머니가 자신의 머리 위로 높이 쳐들고 힘겹게 흐느끼고 있었다. 또 다른 어머니는 화상을 입은 자신의 젖을 아이 입에 물리면서 서럽게 소리 내어 울었다. 물통 안이 있는 학생들은 머리만을 물 위로 내민 채, 두 손을 애원하듯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며 부모를 찾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옆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성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짝 그슬려 곱슬곱슬 뒤말린 흰 머리카락은 온통 재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1954년 3월 1일 마셜 군도 비키니 섬에 있 었던 수소 폭탄 시험은 예상보다 휠씬 높은 파괴력을 나타냈다. 폭발 지점에서 150킬로미터나 떨어진 작은 산호섬 롱애러프(Rongalap)도 거대한 방사능 구름으로 덮였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파괴력은 겨우 13킬로톤이었다. TNT 1만 3000톤에 해당하는 위력이었다. 비키니 섬 실험에 쓰인 것은 15메가톤 급이었다.
전면 핵전쟁, 다시 말해서 수소 폭탄을 이용한 전쟁이 발작적으로 일어나면 전 세계의 모든 도시에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100만 개가 떨어지는 셈이다. 히로시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TNT 1만 3000톤이 수십만 명을 살해했으니 전면 핵전쟁에서는 1000억의 인명을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
핵폭탄의 충격파, 열폭풍, 방사능의 직접 조사와 낙진이 지구의 모든 사람을 깡그리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전면 핵전쟁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낙진의 위험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방사능 동위원소인 스트론튬 90의 90퍼센트가 소멸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96년이다. 세슘 137의 90퍼센트가 소멸하는 데에는 100년, 즉 1세기가 필요하다.
리처드슨 곡선
영국의 기상학자 리처드슨(L. F. Richardson)은 전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전쟁을 일으키는 요인을 찾으려고 했다. 그는 전쟁과 날씨 변화에 모종의 유사성이 내재함을 발견했다. 그는 전쟁과 날씨가 모두 매우 복잡한 현상이지만 모종의 규칙성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전쟁은 화해와 이해가 불가능한 증오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 아니라, 일기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이해와 통제가 가능한 하나의 자연 체계라는 것이다.
그의 연구 결과가 그가 죽은 후에 《죽음에 이르는 분쟁들의 통계학(Statistics of Deadly Quarrels)》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전쟁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서 1820년에서 1945년까지의 전쟁 자료를 모두 수집한 뒤(가엾은 우리 지구에서 그 기간 동안 수백 건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희생자 수를 기준으로 전쟁등급 M을 정의했다.
리처드슨 곡선 상으로 등급 M=3의 전쟁은 1000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소규모 분쟁, M=5은 10만 명, M=6은 100만 명, M=9는 10억 명, M=10은 100억 명이다(제1, 2차 세계대전은 M=6보다 더 높은 등급의 전쟁이었다). 희생자가 많은 전쟁일수록 그다음 전쟁이 일어나기까지는 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 150년 동안 벌어졌던 전쟁 자료를 근거로 하나의 전쟁 발발에서 다른 전쟁의 발발까지 걸리는 시간과 전쟁 등급 M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었다. 현재 인구 기준으로 M=9.7 정도면 지구상의 인류를 한꺼번에 멸망시킬 수 있는 규모이므로 리처드슨 곡선이 위 수직 막대와 교차하게 되는 날이 ‘최후 심판의 날’(Doomsday)가 될 것이다.
다행히 리처드슨 곡선의 단순 외삽에서 우리는 M10의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1820년을 기준으로 약 1,000년의 남은 시간이 있음을 알 수 있다(1820 + 1000 = 2820년). 하지만 칼 세이건은 “‘살인의 과학 기술’은 불길한 미래를 약속할 정도로 ‘성장’해 버렸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인류의 전쟁 동기와 전쟁 성향이 변했다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 모두 점점 더 가공할 수준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개량되었다. 그러므로 “리처드슨 곡선의 끝 부분은 아래로 꺾어져야 한다. 따라서 인류의 최후 심판은 겨우 수십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계산이 나온다.”라고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리처드슨은, 자신의 곡선을 M=0까지 외삽한다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살인의 빈도를 추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추정해 본 결과 전 세계에는 대략 5분에 한 건꼴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단위의 살인과 최대 규모의 전쟁이 연속적인 현상의 양끝인 셈이고 전쟁과 살인은 동일한 성격의 현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칼 세이건은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격렬한 분노는 아주 먼 옛날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져서 아직도 우리 머리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파충류의 뇌, 소위 뇌의 R-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편 감정의 중재와 기억의 관장은 진화의 가장 최근 단계에서 발달한 포유류와 인간의 뇌, 즉 변연계와 대뇌피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갈등은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가 벌이는 대립의 소산인 셈”이라고 한다.
또한 핵무기를 통한 전쟁 억지라는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우리의 비인간적 조상의 행동 양식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현대 정치가 헨리 키신저(2023년 사망)는 “핵 억지력의 실현 여부는 무엇보다 심리학적 판단 기준에 달려 있다. 핵 사용 억지의 목적에서 볼 때 협박성 공갈을 신중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편이 심각한 위협을 허풍으로 오판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라고 쓴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협박성 공갈을 위한 과장에는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중대한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한 사람이 비이성적 행태로 일단 협박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이러한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서 협박의 허세를 허세로 묶어 두지 못하고 언젠가 결국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협박을 실행으로 옮기는 우를 범하게 된다. 협박은 실행으로 옮겨질 위험을 반드시 동반한다고 경고한다.
군수 산업
강대국들에는 거대하고 강력한 결속력을 가진 군수 산업체들이 항상 엄존해 왔고 그들의 수익률은 민간 기업보다 30~50퍼센트가 높으며 그 업계에서는 비용의 과다 지출을 아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전 세계 과학자와 고급 기술 인력의 거의 반이 무기 생산과 관련된 직종에서 최상의 임금과 특권을 무리며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데다가 이 회사들의 고용 구조가 종업원들로 하여금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않도록 짜여져 있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은 그 조직의 특수한 비밀성 때문에 시민의 감시가 미치기 가장 어려운 성역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인류 생존에 반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떠밀리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외계에서 우주인들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우리는 현재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군비 경쟁의 당위성을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아인슈타인은 전쟁을 하나의 소아병이라고 불렀다. 자 이제 전쟁을 소아병이라고 생각하고 연구하자. 오늘날 핵무기의 전 세계적 확산을 주도하고 핵무기 해체에 저항하는 세력의 창궐은 이 행성에 있는 모든 이들의 생존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인류 생존의 문제에 관한 한 특정 이익 단체나 그 어떤 조직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칼 세이건은 “인류의 생존 여부는 우리의 지적 능력과 가용 자산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데 과감하게 투자하여 리처드슨 곡선이 오른쪽으로 가지 않도록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야말로 핵전쟁의 인질이다. 지구상 모든 사람이 핵전쟁의 볼모로 잡혀 있는 것이다. 인질로 잡힌 우리가 먼저 핵 및 재래식 무기와 전쟁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 다음에 우리의 정부들을 계몽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사회, 정치, 경제, 종교라는 이름의 제도가 가르쳐 온 전통적 지혜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과감한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이웃이 지구 어디에서 살든 그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제안이 비현실적이고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거절당할 때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을 무엇입니까?”라고 반문했다. 인간의 동질성에 근거한 이 방안 이외에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대안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
해리 할로(Harry Harlow)와 마거릿 할로(Magaret Harlow) 부부가 수행한 원숭이 실험에 의하면, 아래 사진처럼 젖병만 달린 차가운 철제 모형보다 따뜻한 헝겊으로 덮힌 모형 원숭이에게 매달리려 했고, 피부 접촉이 금지된 우리에 가둬 키운 원숭이들은 우울하고 자폐적이며 자기 파괴적 성향을 보였으며 여러 가지 비정상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신경심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콧(James W. Prescott)이 산업화 이전 단계에 있는 400여 개의 사회를 선정하여 그 문화들을 상호 비교하는 통계분석 연구를 한 결과에 의하면, 유아기에 피부 접촉을 통한 애정 표현이 발달된 문화일수록 폭력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유아기에 피부 접촉이 빈번하고 결혼 전에 성관계가 인정되는 사회가 폭력 성향의 사회가 될 상대 빈도는 2퍼센트이다. 이러한 빈도의 발생이 우연의 소산일 확률은 1:125,000이다. 나는 이와 같이 정확한 예측을 가능케 하는 표현 변수를 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칼 세이건은 인류의 미래에 공헌하고 싶다면 자신의 아이를 자주 껴안아 주라고 한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변혁을 겪고 있다. 수천 년간 이어지던 노예제도가 완전히 사라지고 근대에 들어오면서 여성도 남성과 거의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침략 준비가 그 나라 시민들의 반대로 중단되는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국수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가 이제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고 있다.
앞으로 수십 년 이내에 전 지구적 규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변화의 조짐들이 인류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실현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단 하나의 종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지구상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고 한다.
테오프라스토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세워질 당시에 살았던 테오프라스토스(Theoprastus)*는 그의 저서 《성격의 유형들》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30가지의 성격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여기서 그는 “미신은 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비겁함”이라고 지적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기원전 372년경 레스보스 섬의 에레소스(Eressos)에서 태어났다. 18살 무렵 아테네로 떠나 아카데미아에서 플라톤의 강의를 들었으며, 그 후 소아시아의 앗소스(Assos)에 머물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옮겨갔다. 이 두 사람은 20여 년간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동 연구 작업을 진행했으며, 테오프라스토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학파를 계승하기에 이른다.
‘학문에 미친 사람’이라고 불렸던 테오프라스토스의 이름은 원래 튀르타모스였다. 그의 재능을 높게 평가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말투에 실린 신적인 여운 혹은 ‘목소리의 선명함’ 때문에 ‘테오프라스토스’로 이름을 바꿔준 것이다. 테오프라스토스란 단어는 ‘신처럼 이야기한다’를 의미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일생 동안 학문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가 다뤘던 주제와 관심은 논리학, 형이상학, 정치학, 윤리학, 수사학, 심리학, 생물학, 식물학, 자연학, 기상학, 감각의 문제, 천체의 문제 등을 아우르는 학문 전 분야에 걸쳐 있다.
그의 저작 목록은 대략 226개에 달하는데, 불행하게도 현존하는 그의 저작은 전체 중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의 저서 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분야는 식물학에 대한 것으로 《식물에 대한 탐구》 9권과 《식물에 대한 설명》 6권이 전해진다. 인간의 행태와 성격에 관심을 보인 저작 《성격의 유형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성의 30가지 유형을 보여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논의한 윤리적 덕목과도 어느 정도 연관을 맺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아크로폴리스 근처 뤼케이온에서 학문에 정진하다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 위키백과]
그의 지적에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똑바로 둘러볼 필요가 있다. 이 우주에서는 각종 원자들이 별들의 중심에서 합성되고, 매 초마다 태양과 같은 별들이 수천 여 개씩 태어나며, 여기저기 막 태어난 행성들에서는 중심별에서 방출된 빛과 하늘을 가르는 번개가 물과 대기에 새로운 생명의 불꽃을 댕기고, 수천억 개에 이르는 은하들 하나 하나에서는 생명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원료 물질들이 별의 폭발과 함께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퀘이사가 있고 쿼크가 있으며 눈송이와 개똥벌레가 함께 살아 숨쉬는 코스모스인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우주에는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블랙홀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세상, 지구와 다른 문명 세계가 수없이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외계 문명권들에서 발사된 전파 신호가 지구를 두드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우주의 실제와 비교해 볼 때 미신과 사이비 과학이 주장하는 바는 참으로 허망하다. 자연에는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지적은 올바른 것이었다. 우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거나 있지도 않은 거짓 지식에 의존하려거나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마음속에 그리는 사람은 자신을 미신에 맡겨 헛된 위안을 얻으려는 자이다.
지구에서 과학을 아는 생물 종은 인간밖에 없다. 과학에는 두 가지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교정할 줄 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특성은 모든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하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두 가지 규칙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신성불가침의 절대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가정은 모조리 철저히 검증돼야 한다. 두 번째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무조건 버리거나 일치하도록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과업은 과학의 전통을 살려서 현존하는 어떤 제도(국가, 종교, 경제 조직, 지식 체계 등)보다 월등하고 효과적인 제도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인류 전체가 눈부신 과학 문명에 큰 희망을 걸 수 있었던 시기가 역사에 단 한 번 있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일이었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바로 그 핵심 성채였다. 당시 인쇄 기술이 발명되기 전이었으므로 알렉산드리아에 소장된 책이란 책은 모조리 손으로 한 권씩 베껴서 만들어야 했다(<구약 성서>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그리스어 번역본에서 유래한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과학 연구를 적극 장려하고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 많은 지식을 새로이 창출하기도 했고 그 결과는 괄목할 만했다. 또한 많은 지성들이 세계 곳곳에 이곳으로 몰려와서 같이 생활하고 서로 배우면서 교유했다. 세계 시민이라는 뜻을 가진 코스모폴리턴(cosmopolitan)이라는 단어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된 곳도 바로 여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 씨앗이 깊게 뿌리를 내려 큰 나무로 일찍 성장할 수 없었을까? 나는 간단히 답을 할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갈 점은, 그 시기를 통하여 과학자들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주장이나 가정에 도전했다는 기록이 단 한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은 별의 영구 불변성은 의심했지만 노예제도의 정당성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과학적 발견과 과학 지식은 계속 일부 기득권층만의 소유물로만 남아 있었다. 그 위대한 도서관 안에서 벌어지던 새로운 발견들이 일반 대중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연구 결과가 대중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했고, 이렇게 됨으로써 과학은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지 못했다. 결국 폭도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소장품과 장서를 약탈해 갔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히파티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기독교 폭도들에 의해 붕괴될 시기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던 여성 학자가 한 명 있었는데, 나중에 신플라톤학파의 비조로 불리는 철학자 히파티아(고대 그리스어: Ὑπατία, 355년 - 415년)이다.
그녀는 여자가 하나의 소유물로 간주되던 시기에 로마와 초기 기독교 세력들의 진앙에서 완강히 버티면서 자기의 주장을 가르치고 글로 발표했는데 당시 과학과 학문을 폄훼하던 알렉산드리아 대주교 키릴루스의 혐오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녀는 415년에 폭도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소장품과 장서를 약탈해 갈 때 폭도들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되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도서관에 남아 있던 마지막 책들마저 모두 파괴됐다고 한다. 그 이후 인류 문명은 잘못된 뇌수술 때문에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총체적인 망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칼 세이건은 "사람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와 조금이라도 다른 성격의 사회를 믿을 수 없는 기괴한 존재로 간주하며 심히 혐오하고는 한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방'이나 '외계'라는 표현의 부정적 뉘앙스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그렇지만 각기 다른 문명들이 보여주는 문화와 유적의 다양성은 '인간으로 되어 감'의 다른 방식을 우리에게 시사할 뿐이다.
외계 문명인에게는 인류 사회의 차이가 유사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도 더 큰 집단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 가까운 가족에게, 다음에는 사냥과 채집 활동을 자기와 같이 하는 이들에게만 충성을 바치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충성의 대상을 점점 넓혀갔고, 이제는 문화와 인종적 배경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어느 정도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라 불리는 조직으로까지 확대됐다.
현대는 충성의 대상을 인류 전체와 지구 전체로 확대해야 할 시대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하나의 생물 종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은 우리를 배반자, 충성심이 없는 비애국자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시점에서 과연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나와 좀 다른 맥락에서 한 이야기지만 H. G. 웰스의 주장대로, 인류가 우주를 얻느냐 아니면 공멸의 나락으로 빠지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칼 세이건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코스모스》 이야기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인류는 우주 한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10억의 10억 배의 또 10억 배의 그리고 또 거기에 10배나 되는 수의 원자들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원자 자체의 진화를 꿰뚫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우주의 한구석에서 의식이 탄생이 있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줄도 알게 됐다.
이제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며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