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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학대식 May 11. 2020

아이언 피스트에 유감

코로나 격리가 아니었음 절대 안 봤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던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 본인의 머리카락은 회색빛이었다. 회색빛이라는 단어가 중의적인 의미를 가져 [우울한 심리상태를 나타낸다]고 오해하지 마시라. 정말로 회색 머리카락이었다. The Gray. 태어나 처음 도전해본 염색과 탈색의 결과물로 본인은 회색의 머리카락을 선택했고 두 번 탈색한 흰색 머리 위로 회색과 갈색을 혼합해 색깔을 입혀 두 세달의 지나며 최종적으로 밝은 브라운 계열의 머리색을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0년 여름 회색머리의 한국인은 태어나 처음 혼자 해외여행을 갔다. 비행기를 경유했기에 도합 20시간 정도의 비행을 감래하며 머나먼(?) 유럽으로 향했다. 


사실 아무런 연고 없이 무작정 계획한 유럽여행은 아니었다. 본인의 외삼촌이 파리에 거주 중이었기에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주변 나라들을 둘러볼 요량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외숙모 삼촌을 서울이 아닌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에서 만났을 때의 느낌은 정말이지 생소했다. 가끔씩 외삼촌 내외가 한국에 나왔을 때 만났던 것보다 훨씬 더 친숙했고, 예전에는 없었던 무엇인지 모를 진한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흐르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단지 본인만의 착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찡한 무언가를 느꼈다 기억한다. 

본인이 회색 머리색을 하고 샤를 드골 공항에 나타나자 삼촌, 숙모가 흠칫 놀라셨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조카에게 반가움을 표시하기에 앞서 대뜸 "머리가 어째 그렇냐" 물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분명 섭섭할수도 있었는데 그 때 본인은 첫 해외여행의 기쁨에 이런 반응에 섭섭함을 느낄 정신머리도 없었던 것 같다. 어쨋든 그 다음날 본인보다 7살 정도 어린 사촌 동생과 시내를 걸으며 이야기를 하는데, 이 친구도 본인의 머리색을 신기해한다. 그 당시 한국에서 염색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었는지라 아무도 본인에게 회색머리를 가지게 된 이유를 묻지 않았는데 이곳에 오니 다들 본인의 근황보다는 머리에 관심을 보인다. 뭔가 큰 결심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상당 수의 유색인종과 함께 사는 다민족 국가에서 머리색이 뭐가 그리 신기해 묻는 거냐"라며 사촌동생에게 되물었더니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나온다. [회색빛 머리 색깔과 동양인의 결합은 서양인들에게 무림고수의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뭔가 공력이 다 해 까만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무림의 고수 말이다. 공력을 이용해 날아다니고 손에서 장풍이 나가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들이 동양인들에게 막연히 가지고 있던 환상은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권도조차 배워본 적이 없는 본인을 무술인으로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비록 20년 전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본인은 마블이나 디씨 코믹스의 광팬이 아니다. 남들이 하는 얘기에 한마디 거들 정도의 얄팍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집 밖으로의 외출을 삼가니 자연스레 티비에 손이 많이 갔다. 특히나 넷플릭스는 요즘 본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서비스가 되었는데 이곳에서 놓쳤던 한국 드라마는 물론이고 오래간만에 미국 드라마들을 연속으로 시청하니 프렌즈, 화이트칼라, 슈츠를 보며 열광했던 예전의 드라마 폐인모드(?)가 나와 본의 아니게 밤을 지샌 적도 많았다. 우연히 접하게 된 [아이언 피스트]는 마블 출신(?)이 아니었다면 본인이 절대 시청하지 않았을 콘텐츠였는데 그 유명한 마블의 이름에 속아 시청을 시작하게 되어 결국은 주말 밤을 새워 끝을 보아 이번 주의 시작부터 피곤함이 그득하다.


아이언 피스트의 내용은 정말이지 단순하다. [엄청난 능력의 슈퍼 히어로의 주인공이 갑자기 찾아온 현자 타임에 힘들어하며 매일 열심히 쿵푸를 하고 기를 모아 강철 주먹을 시전하며 악의 무리를 무찌르며 자신의 진정한 목적과 자아를 찾아간다] 정도면 매우 후한 줄거리 요약이지 싶다. 기실 본인은 이 정도의 포장(?)도 아깝다고 느낀다. 과거 이소룡, 이연걸의 액션에 눈이 높아진 한국 시청자들에게 노란 머리의 주인공이 일본과 중국의 애매한 정서를 혼합해 만들어내는 액션신과 세계관은 분명 박수받지 못할 수준이었다.아니 솔직히 조잡하다 느겼다. 물론 그간의 마블의 작품들을 보며 그들을 맹신하게된 본인이기에 그나마 마블이기에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서양인들에게 여전히 예전 본인의 경험처럼 동양인은 모두가 무술 유단자로, 특히나 20년 전 회색머리의 본인과 같은 사람들은 심지어 고수로 생각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치밀한 기획의 마블에서조차 (동양인들이 보기에) 허접해 보이는 정도로 밖에는 표현해낼 수 없는 것이 동양 무술과 동양의 정신세계라면, 그리고 그것이 서양인들의 관심과 흥미를 자아낼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다면 왜 이것을 어색한 서양인들을 주인공으로 봐야 하는지에 의문이 생긴다. 동양인의 손을 빌어 조금 더 자연스러운 액션 씬들과 왜곡되지 않은 깊이있고 진지한 동양의 철학을 전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 아닐까.


본인이 일하는 코워킹 스페이스에 한 대표님은 캐릭터 관련 사업을 하신다며 자신의 꿈이 동양인이 주인공인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 제작이라고 말씀하셨다. '전 세계 인류 분포를 살펴보면 분명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훨씬 많은데 왜 우리는 노랑머리의 서양인들이 주인공인 슈퍼 히어로들을 보며 즐거워해야 하나'라는 그분의 질문에 이제야 비로소 동감한다. 동양인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하는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하는 생각일 뿐이다. 서양인들의 가슴 한구석에 자리하는 동양인들에 대한 신비를 동양인들이 주인공으로 직접 표현할 때 한층 성숙하고 자연스러운 결과물들을 맞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외신을 살펴보니 시즌 2를 끝으로 아이언 피스트는 제작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출연배우들에게는 슬픈 소식일지 모르지만 본인은 오히려 다행이라 느낀다. 시즌 1,2로도 이미 충분히 허접했으니 말이다. 마블의 세계관에 [샹치]라는 아시아인 히어로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은 몇 년전부터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말로만 듣던 그 아시아 히어로를 과감히 꺼내 들어야 한다. 마블이 진심으로 동양인들을 존중한다면 말이다. 20년 전 회색머리의 동양인에게 느꼈던 그 감정들을 좀 더 세련되게 보여줘야 한다. 설사 그것이 관객의 숫자를 감소하는 결정이라도 더 이상 주저할 수 없다. 그리고 솔직히 아시안이 쪽 수가 더 많다. Don't worry!


P.S:조금이라도 아이언 피스트를 쉽게 이해하고 시리즈를 완주하고 싶은 동기를 부여받고 싶다면 마블의 디펜더스를 같이 시청하는 것을 권한다. 물론 디펜더스를 제대로 보려면 각각의 주인공들의 단일 시리즈를 봐야겠지만, 그건 선택하기 나름이지 싶다. 디펜더스만 보아도 대략의 캐릭터들의 능력치와 그들의 어두운 과거를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본인은 제시카 존스를 중도 포기한 이력이 있기에 그쯤에서 타협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왜 이들이 싸움꾼(?)이 되었는지 정도는 이해를 하며 시청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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