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21세기에 조선시대에나 성행했을 법한 물물교환이나 품앗이가 첨단 시대를 이끌어가는 핵심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면? 좀 의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 네트워크 방식 중 중앙 집중식 관리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상호 연결된 객체(peer)들이 서로 간에 자원을 공유하는 것을 P2P 네트워크 (peer to peer network)라고 한다. 이커머스의 발전으로 우리의 상거래 방식도 이러한 P2P 네트워크처럼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소비자(또는 서비스 이용자)를 개별적으로 직접 연결시켜 개인 간 직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현대판 물물 교환방식의 상거래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고 있다.
더 나아가 과거 우리 조상들이 노동력의 여유가 있을 때 슬기롭게 서로를 도왔던 품앗이는 P2P 기반의공유 경제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공급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중간 유통 과정 없이 서로가 필요한 것을 직거래하는 물물 교환이나 여유가 있을 때 여유 자원을 서로 공유하는 품앗이만큼 효율적인 경제 활동이 없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주) 여기서 P2P 기반이란 인터넷 네트워크에서 이야기하는 peer to peer 개념보다는 개인 간의 직거래를 의미하는 person to person trading의 의미로 사용을 하고자 한다.
중앙 집중식 관리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상호 연결된 객체(peer)들이 서로 간에 자원을 공유하는 P2P 네트워크 (peer to peer network)
현대판 물물 교환 - 이커머스 장터
그 옛날 고대의 개인 간 물물교환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일부 시골 장터에서 5일마다 열리는 5일장까지...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만나 가격을 흥정하고 거래를 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커머스에 힘입어 이러한 구시대의 전통적인 상거래 방식이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다시금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제주 특산품인 한라봉을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 구매를 했다. 생활용품이나 소형 IT 제품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자주 구매를 하였으나 과일과 같은 식품을 온라인으로 구매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제주도에 있는 생산자와 서울에 있는 소비자가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가상의 장터에서 만나 마치 시골 5일장에 나가 물건을 사듯이 쇼핑을 한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다. 온라인을 통한 첫 번째 과일 쇼핑은 대만족이었다. 우선 농장에서 바로 따서 배송을 해주니 파릇한 잎이 그대로 살아 있을 정도로 신선했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이다 보니 가격 또한 할인 마트보다도 훨씬 쌌다. 지금까지 이걸 모르고 여러창고를 며칠씩 돌아다니다 매장에 나타난 한라봉을 유통의 중간 마진을 다 부담한 비싼 가격에 사 먹었다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물론 내가 지불하는 상품 가격에는 중간에서 이러한 개인 간의 거래를 중개해 주는 온라인 쇼핑몰 업체의 중개 수수료와 운송 업체의 배송료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생산자 -> 협동조합 -> 대형 유통업체 -> 소매점 -> 소비자로 이어지는 고비용의 유통 구조에 비하면 생산자 -> 온라인 중개 -> 소비자의 거래 구조가 비용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같은 마트 체인점이 매장 수를 계속 줄여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까지의 상거래 방식은 생산자(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서비스 이용자) 간의 직거래가 훨씬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매입과 분배를 컨트롤하는 중개자가 개입하는 중앙 집중식 상거래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래 가격은 중개자에 의해서 왜곡되기도 하였으며 총판, 도매상, 소매상으로 이어지는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며 발생하는 재고 비용과 물류비용 그리고 매장 운영 비용은 가격의 일부가 되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부담 지어졌고 뚜렷한 대안이 없던 소비자들은 이런 비효율적인 상거래에 익숙해져 상품 가격의 수십 %에 가까운 유통 비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개별적인 공급자와 각각의 다양한 소비자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을 필두로 한 이커머스 업체들의 등장은'값싸고 편리한'소비를 추구하는 고객들의 본질적인 욕구를 뒤늦게 일깨워 주었다.
인터넷의 발전과 스마트폰의 보급 확대는이커머스라는 이름을 빌어 과거의 시골 장터를 온라인 쇼핑몰이라는가상의 장터(virtual market)로 재현해 냈고 수십 년간 멀리 떨어져 지냈던 공급자와 소비자는 이 가상의 장터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당일 배송을 넘어 새벽 배송까지 가능해진 Door to Door 배송 인프라의 구축과 터치 한 번으로 결제가 가능한 간편 결제의 등장으로 이러한 이커머스 거래는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직거래 방식의 상거래는 상품 거래에서 서비스 거래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각 산업 분야별로 다양한 중개 플랫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유튜브도 비즈니스 모델을 잘 살펴보면 역시 개인 간 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P2P 방식의 서비스이다. 개인이 올리는 다양한 동영상을 그 영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연결해주고 그 사이에 광고를 살짝 끼워 넣어 간접적인 방식으로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다. 그 광고수익을 콘텐츠 제작자와 공유함으로써 콘텐츠 공급자의 경제적인 욕구마저 만족시켜주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온라인 중고차 매매 사이트, 배달의 민족, 배달통, 요기요와 같은 배달앱 서비스, 우버나 타다와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 부동산 114, 직방 같은 부동산 중개 서비스들도 모두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P2P 플랫폼 기반의 직거래 서비스들이다.
그리고 보니 최근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대부분의 신규 비즈니스들은 모두 개인 간 직거래 중개를 기반으로 하는 P2P 상거래 플랫폼 사업들이다.
개인 간 직거래의 특성상 이로 인해 발생하는 혜택의 상당 부분이 공급자와 고객(소비자 또는 이용자)에게 돌아갈 것이다.기존보다 더 값싸고 편리하게 상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고객들은 이러한 직거래를 더 많이이용할 것이고 중간에서 직거래를 중개하는 중개 플랫폼 업체들은 기존의 전통 유통 기업을 밀어내고 시장 내 새로운 강자로 부상을 할 것이다.
현대판 품앗이 - 공유 경제
우리나라에는 옛부터 어려울 때 여유 노동력을 서로 주고받는 품앗이라는 관습이 있었다. 모내기, 추수와 같은 농사일은 물론 집 짓기와 나무하기 같은 생활상의 업무까지 품앗이가 널리 활용되었다. 이러한 품앗이 관습은 서로의 품격 높은 신뢰를 전제로 참여자의 개별 상황에 맞추어 이루어졌다고 한다.
도시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위,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차량 공유, 숙박 공유와 같은 직거래 공유 경제 플랫폼의 등장으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여유 자원을 서로 공유하는 공유 경제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시골 마을에서나 있을 법한 품앗이 활동이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그것도 최첨단 기술인 이커머스 플랫폼을 기반으로 우리 생활 속에 속속들이 침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공유 경제 플랫폼은 다른 사람의 여유 자원을 값싸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비스 이용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으며, 여유 자원을 재활용하여 능동적으로 부가적인 소득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서비스 공급자들에게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공유 경제 중개 서비스는 서비스 공급자와 사용자 간의 직거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서비스 비용은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원리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우버만 하더라도 손님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는 수요, 공급의 원칙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요금이 올라가며, 손님이 적어 한가한 시간 대에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기사가 많을수록 요금은 내려간다.
물론 중개 플랫폼 업체가 중개 수수료를 올려 가격을 왜곡할 가능성도 있지만 워낙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중간에서 가격을 왜곡시키던검은손이 없어지고 공급자와 서비스 사용자에 의해서 서비스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 중개 플랫폼을 이용한 개인 간 직거래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우버와 숙박 공유 서비스 업체인 에어비앤비가 촉발한 공유 경제의 큰 흐름은 기존 전통 기업들을 위협하고도 남을 수준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 선두 업체인 우버는 작년 말 기준 63개국 700개 이상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390만 명의 우버 기사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우버 택시의 하루 이용건수는 1,400만 건을 넘어섰다.
우버의 2018년 12월 기준 서비스 실적 데이터
동남아 시장을 평정하고 있는 그랩(Grab)을 포함하여 우버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지역별로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으며 차량 공유 서비스의 도입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임은 분명한 것 같다.
국가별, 지역별 다양한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들
직접 운영하는 호텔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에어비앤비가 숙박 공유 플랫폼 하나만으로 전 세계에서 4,600개 이상의 호텔과 70만 개가 넘는 객실 수를 가지고 있는 힐튼 호텔 체인보다 더 큰 숙박업체가 되었다는 것도 공유 경제의 파급력을 실감하게 한다.
공유 경제 기반의 서비스는 고객 입장에서 보면 장점이 무지 많은 비즈니스 모델이지만 그 이면에 기존 전통 상거래의 먹이사슬 속에 얽혀 있는 많은 이해 관계자의 생사가 달려있다 보니 고객 입장만 생각해서 서비스를 확산시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택시 업계와 '타다'와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간의 갈등만 보더라도 택시 기사들은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의사 표현을 하고 있고,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들은 '공유 경제는 시대의 큰 흐름이며 이에 역행해서는 우리의 국가 산업 전체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라고 연일 정부의 규제 완화를 압박하고 있다. 규제 완화를 통제 혁신 경제를 주도하겠다던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업체 간에 서로가 타협점을 찾기를 기다리는 눈치이다.
그럼 왜 이렇게 갑자기 공유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걸까?
그 이면에는 보다 편리한 서비스를 좀 더 값싸게 이용하려는 소비자의 본질적인 소비욕구와 여유 자산을 활용하여 추가적인 수입을 창출하려는 개인 사업자들의 경제적인 욕구가 P2P 기반의 온라인 중개 서비스 플랫폼의 등장으로 서로 연결되면서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공유 경제의 핵심은 서비스 공급자를 서비스 이용자와 바로 연결해 불필요한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서비스의 가격을 떨어 뜨리고 사용자의 편리함을 더해 주는 것이다.우리가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던 이커머스나 공유 경제의 핵심은 그동안 소비자와 서비스 이용자들이 불합리하게 지불하던 중간 유통 비용과 알면서도 감수했던 많은불편함 들을 정상화시키는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숨어있는 권력의 횡포에 의해 왜곡되는 일없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시장의 논리로 결정될 것이며,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떨어지는 공급자는 공급자로서의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자는 중개 플랫폼 업체의 수수료 횡포에 의해 가격이 왜곡되는 경우를 우려하기도 하나 모든 거래 내용이 오픈될 수밖에 없는, 즉 투명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P2P 상거래 서비스의 구조상 검은손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개인간 직거래 중개 플랫폼 업체들은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고 안타깝지만 이러한 상황은 꽤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러한개인간 직거래 플랫폼의 확산은상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전통적인 방식의 경제 활동이 가지고 있던 비효율성과 비민주적 행태를 제거해 나가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