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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by 봄마을

어제 저녁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 한곳과 인터뷰를 했다.


지난주에 Recurting company 한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자기들이 현재 어떤 회사의 경영진을 리빌딩 하는 일을 의뢰받아 하고 있는데 내 커리어와 업무 역량이 잘 맞는것 같은데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했다. 마침 여러가지로 현재 직장에 대해 생각이 많던 터라 기회가 참 공교로왔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기로 하고 어제 그 회사의 HR VP와 전화 통화를 했다.




사실 몇주전 지금 다니는 회사와 장기 보너스 계약을 갱신했다. 2년전에 맺은 계약에서 모호했던 내용을 조금 보완하고 내가 받을 보상에 대한 내용도 조금 수정했다. 회사는 내가 5년을 더 경영진으로 있어주기를 바라고 있고 그래서 계약 기간도 5년으로 갱신했다. 표면적으로는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 처럼 보이지만 기존 4년 계약에서 이미 2년을 충족했음에도 그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 5년 계약을 하는 셈이고, 실질적인 베네핏도 plan이 발동되는 상황 및 조건에 따라 달라질 부분이라 큰 의미는 없다고 봐서(차이가 오십보 백보 수준도 안된다) 사인을 하며 밀고 당기고 하진 않았다.


2년전 처음 LTIP 계약을 할 땐 도대체 이게 뭔가 해서 한참 찾아봐야 했었는데 이제는 여러가지 지식이 늘어서 현재 계약이 내게 어느정도 이득을 줄 것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예상이 가능하다. 그래서 처음에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 만큼 흥분되지는 않았다. 이게 내 가족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정도의 계약은 아니라는걸 안다.


욕심의 저울은 항상 각자의 입장으로 기운다. 회사는 날 5년 더 잡아두는 대가로 지불하는 베네핏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할테고 나는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에 와서 어찌 보면 첫 직장인 지금 회사에서 6년을 일했다. 5년을 꽉 채워서 더 일하면 10년 넘게 일해야 된다는 뜻이 된다. 물론 지금 회사에 입사후 커리어 래더도 몇단계 올라 Vice President 가 됐고 랜딩후 불안정했던(심지어 팬데믹을 거쳤다) 미국 생활도 안정됐으니 지난 6년은 내게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의 5년도 그럴 것인가는 의문. 승진할 수 있는 래더가 있기는 하지만 그 자리까지는(특히 지금 회사에서) 원하지 않기에 이직하지 않는한 큰 폭의 연봉 인상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러던 와중에 연락이 온 것이다. 그것도 내가 지금 하는 일과 거의 같은, 하지만 좀 더 글로벌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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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VP와의 전화 인터뷰는 당초 예상했던 30분을 훌쩍 넘겨 한시간동안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서로 원하는게 달라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이 한시간의 인터뷰는 그동안 미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 승진해서 경영진이 되었기에 경영진 채용을 위한 인터뷰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이 내게는 경영진 채용을 하는 회사와 갖는 첫번째 인터뷰였다.


지금까지 내가 인터뷰라 함은 항상 내가 무언가를 답해야 하는 자리였다. 나도 뭔가 물어보기는 했으나 내 연봉이나 회사에서 주는 베네핏 같은 패키지에 대한 질문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많은걸 물어봤다. 회사의 매출과 이익율, 주요 고객과 supplier들이 누군지, 중장기 전략적 방향, 제품전략, 왜 이번에 조직 개편을 하고 왜 특정 포지션이 만들어졌는지 등을 물었으며 설명을 듣다가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설명을 듣다 보니 이 회사의 개발 리소스가 프로젝트 수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인력 확충 없이 생산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개선시킬수 있는지 내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 회사의 상황에 맞춘 아이디어를 이야기 했고 그럴 경우의 문제점에 대해 질문도 받고 토론도 했다.


마치 인터뷰를 보는게 아니라 컨설팅을 하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것 뿐만 아니라 나도 회사를 평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인터뷰마다 당신들이 왜 나와 일해야 하는지를 어필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회사에게 내가 왜 당신들과 일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는 느낌이었달까.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게, 난 회사를 옮겨야 할 이유를 알아야 했고 그걸 설명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으니까.


한시간의 인터뷰 후 서로가 내린 결론은, '현재 오픈되어 있는 포지션은 내 현재 업무와 경험에 비해 한단계 낮은 포지션이며 따라서 생각하는 연봉과 보너스, LTIP 등이 서로 달라 진행되기 어렵겠다'였다. 내 요구 TC가 채용 budget 보다 한참 높았으며 업무 스코프도 지금보다 줄어드는 포지션이었다. 헤드헌터의 설명이 조금 부족해서 벌어진 일. 하지만 나는 입사를 위해 내 요구 조건을 조정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회사는 굳이 나를 잡기 위해 원래 채용하기로 했던 포지션보다 더 높은 레벨의 채용 계획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서로 입장이 분명했기에 좋게 이야기 하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한시간 가까이 진행된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그대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 랜딩해서 400군데가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으며 한번의 인터뷰 기회만 생겨도 흥분과 긴장에 미리 넉다운이 되어 버리곤 했던 때를 생각했다. 영어도 지금보다 훨씬 부족해서 전화로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어 수없이 미안한데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하느라 10분 인터뷰에도 셔츠가 젖을 정도로 긴장해서 땀을 흘렸었다.


그때와 비교해보니 내가 미국에 그래도 제법 여러해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커리어도 많이 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가라고 하면 오히려 조금 애매해지지 않을까. 생활적인면 뿐만 아니라 내 커리어 측면에서도.


뭔가 이민자로써 way point 하나를 찍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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