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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Aug 22. 2021

다양성 Diversity

첫째가 친구들과 함께 Zoom으로 모여서 하는 scratch(https://scratch.mit.edu/) coding play를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의 개입 없이 자기들끼리 시간을 정해놓고 모여서 게임을 개발하는 그룹입니다. 작년에 한번 잠깐 초대를 받아 참석했던 적은 있는데 별로 관심이 없다가 최근에 생각이 바뀌어서 얼마 전부터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동 프로젝트 기능이 없는 스크래치를 이용하는 탓에 한 명이 작업한 걸 다른 사람들이 리뷰하기가 좀 번거로운데 Zoom의 화면 공유 기능을 번갈아가며 서로 사용해서 자기 코드를 보여주고 토론하면서 어찌어찌 해 가는데, 속도는 느리지만 급할 것 없는 프로젝트라 다들 즐겁게 합니다. 실력이 뒤쳐지는 친구가 있으면 서로 알려주고, 물어보기도 하고, 함께 테스트도 해가면서 모두 함께 코딩 실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목표한 그 게임이 언제쯤 완성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어떤가요. 아이들이 저렇게 함께 성장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온라인 미팅을 지켜보면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울리는 아이들의 나이 분포와 역할입니다.


구성원들의 나이가 다양한데, 3학년부터 5학년까지 분포되어 있습니다. 한국 같으면 같이 어울리기 어려운 나이 분포지만 여기서는 나이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잘 어울리더군요. 형, 누나라는 호칭이 없고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기에 나이에 덜 민감한 것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 사람들을 모으고 그룹을 만들어서 PM 역할을 하는 아이와, 미팅 호스트를 하면서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하는 아이들은 가장 어린 3학년들입니다. 나이 어린 동생들이 그룹을 리딩 하는 것에 대해 첫째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는데, 아이는 그걸 상하 관계가 아닌 역할이 서로 다른 수평 관계로 인식하고 있더군요. 저 아이는 프로젝트 관리를 하고 나는 코딩을 주로 하고.. 하는 식으로 말이죠. 오히려 자기는 management는 귀찮아서 싫고 코딩만 하고 싶은데 그 귀찮은 걸 해주니 좋다고 합니다. 동생이 까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형이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없이 서로 같은 선상에서 잘 어울립니다. 저는 무심코 상하관계.. 지시하고 수행하는 관계로 이해해서 아이의 생각을 물어본 거였는데 입 밖에 내지 않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둘째는 장애를 가진 친구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입니다.


이 그룹에서 실질적인 수석 개발자 역할을 하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아이는 장애가 있습니다. 신체를 움직이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화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발음도 어눌하구요. 한때 한국 코미디 프로의 소재로 사용되어 많은 발달장애아 가족을 가슴 아프게 했던 맹구 같은 캐릭터가 이런 아이들을 희화한 캐릭터입니다. 몸이 불편하다 보니 마우스와 키보드를 다루는 것도 빠를 수가 없어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시간이 더 걸리고 자신의 작업 결과를 설명하는 것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울릴 때 보면 그런 부분을 다르게 대하지 않습니다. 말을 끝내는 것을 끈기 있게 기다려 주고 경청합니다. 그런 친구들의 인정과 기다림 속에 그 아이는 자기의 실력을 100% 발휘하고 코딩 쪽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 그 아이의 실력에 의해 프로젝트 전체가 도움을 받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그룹의 모두가 그 아이의 실력을 respect 하고 있는 게 보이고, 장애를 가진 그 아이가 놀림이나 따돌림의 대상이 아닌 피부색이 다른 친구처럼 자기와 조금 다른 친구일 뿐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게 부모인 제 눈에 보입니다. 자신이 그 친구를 배려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와 다른 특징을 가진 아이라고 인식합니다. 농구를 하면 키가 큰 친구는 자연스럽게 센터를 하고 작고 빠른 친구는 가드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키가 큰 친구가 작은 친구를 배려해서 센터를 맡아주는 게 아니지요. 누가 더 배려하고 양보하는 게 아니니, 서로에게 부채 의식도 없고 완전히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렇게 모인 아이들은 누군가 프로젝트를 느리게 만든다고 하여 조바심을 내지 않습니다.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거기서 가장 최선의 길을 찾아내려 머리를 맞대고 노력합니다. 다름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미국 교육서두르지 않는 미국 문화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하는 감탄을 혼자 했지요.


미국은 느리다고 많은 한국 이민자들이 불평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여기는 느려도 되는 나라고 그만큼 느리게 일이 처리되는 것뿐이라고 말이죠. 미국은 느린 게 잘못이 아닌 나라입니다. 여기서는 느려도 괜찮습니다.



결국 인상 깊었던 부분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다양성입니다.


첫째의 그룹에서 온라인 미팅을 할 때 미팅 host 역할을 하면서 누가 화면 공유하고, 누가 설명할 차례며, 누구는 어떤 부분을 지금 수정/코딩하라고 지시하고 이끄는 아이는 3학년 여학생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였을 때 그 아이가 그런 역할을 가장 잘할 거라고 모두 동의해서 그렇게 역할을 정했다더군요. 그 과정에서 나이도, 성별도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프로젝트 멤버를 새로 초대하고, 팀을 꾸리는 역할은 3학년 남학생의 몫입니다. 개발을 이끄는 건 신체장애가 있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코딩 실력만이 중요할 뿐 말과 행동이 어눌하고 느린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건 그 아이의 다름일 뿐입니다. 내성적이며 자기 생각을 강하게 표현하는걸 힘들어하는 저희 아이에게는 나서야 하는 역할을 아무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담당하겠다고 한 부분만 코드를 작성해서 공유하고 설명하면 됩니다. 내성적인 성격은 저희 아이의 다름일 뿐입니다. 이렇게 성별/인종/신체특징/성격 등 다를 수밖에 없는 그 어떤 부분도 아이들이 어울리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게 보였습니다.


저희 아이가 장애가 있는 그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앉아서 함께 코딩을 하고 좀 더 직접 배우고 싶다고 해서 아예 그 가족 전체를 초대할 기회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같은 나이 때의 저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뭔가 프로젝트를 느리게 만드는 친구가 있었다면 '넌 좀 빠져' 또는 '내가 할 테니 넌 그냥 보고 있어'라고 조바심을 내며 함께 하기를 거부했을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빨리 끝내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으니까요. 하긴 애초에 나와 신체적으로 다른 친구와 함께 어울려서 놀아본 기억도 없군요.


미국에 와서 살면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리고 시스템이 다양성 유지를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미국은 그렇게 해야 할 만큼 다양한 인종과 문화들이 한 군데 뒤섞여서 끓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갈등이 없을 수가 없고, 미국에서 벌어지는 인종 갈등에 대한 뉴스는 항상 많은 나라에서 대서특필이 됩니다. 미국과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는 거의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니기도 하지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미국의 인종간 갈등에 모든 나라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지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과 배격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많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공정해지고자, 다양성을 수용하고자 훨씬 많은 노력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기도 합니다. 미국만큼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이 정도로 사회를 안정화시키고 있는 국가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물론 어느 나라나 극단은 있습니다. 미국에도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이 있고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부는 관련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래서 보편적 대다수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하는 것이죠. 보편적인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거쳐서 사회에 진출한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다름은 다름일 뿐 죄가 아닙니다. 이민자의 나라로서 수백 년간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온 미국의 교육과 시스템은 당연한 내 권리를 찾기 위해 다수에게 무릎을 꿇고 배려해줄 것을 사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었으니까요. 당장 저부터도, 남보다 많이 느린 아이를 하나 품에서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마음이 놓이는 환경은 없습니다. 저희집 둘째가 한국 기준으로 말하면 많이 느리거든요.


미국의 문제점만 열심히 찾아서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대서특필하는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절대로 알 수 없던, 이 땅에 발을 딛고 이 땅의 문화를 공부하며 살아가는 한 명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 미국의 강점입니다.



미국에서 좋은 학교를 선별할 때 빠짐없이 언급되는 게 다양성 diversity입니다. 이 다양성이 많을수록 학습 환경이 좋다고 이야기되지요. 그리고 이제는 그런 다양성 속에서 친구를 만들고, 함께 어울리며 배우고 자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저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성에 대한 인식은 책으로 보고 배운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양성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이 아이들이 만들어가고 살아갈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정말 기대됩니다. 부디 우리 세대가 저지른 많은 잘못들을 고쳐나가는 능력 있는 세대이기를, 그런 현명한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랍니다.  




*Cover image: Image by Madhana Gopal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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