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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Aug 04. 2021

당당해지기

첫째가 요즘 엄마 아빠 몰래 '하지 않기로 되어 있는 일'들을 하려고 애쓰는 게 보입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 몰래 하고 싶어 하는 건 크게 두 가지인데, 유튜브 보는 것과 게임하는 것. 저희 집의 규칙은 두 가지 모두 주말에만 할 수 있다 인데,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아이가 받아온 크롬북으로 방에서 유튜브를 몰래 보는 걸 얼마 전부터 눈치챘습니다. 그동안 모른 척해줬는데 정도가 조금씩 심해져서 한번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오늘 아침,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첫째가 먼저 일어나 눈을 비비며 나오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커피 마시려고 물 끓였는데 너도 차 한잔 하겠냐고 하니 냉큼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다른 식구들은 모두 꿈나라에 있는 이른 아침, 첫째와 따뜻한 머그컵을 서로 손에 쥐고 식탁에 마주 앉았습니다. 요즘 재미있는 게임 이야기에, 평소보다 많은 숙제에 힘들어하는 이야기 등등.. 여러 가지 대화를 했죠. 이번 주에 심기로 하고 사온 방울토마토 모종에 아이가 관심을 보여서 모종을 심을 때 어떤 일을 아이가 도와줄 건지도 아이와 상의해서 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 말미에 슬쩍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끼워 넣었습니다. 요즘 네가 이런저런 것들을 몰래 하고 있고 엄마 아빠가 방에 다가오면 숨기려고 노트북을 황급히 덮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고 직설적으로 찔러 들어갔습니다. 당황&민망해하며 배시시 웃는 아이에게 그게 무엇이든 앞으로는 차라리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했죠. 


못하게 한 사람이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상관없이 네가 정말 하고 싶으면 왜 하면 안 되는지 스스로에게 따질 것 없이 스스로 시간과 정도를 정해서 그 안에서 하게 해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스스로 정한 시간과 이유가 너무 터무니없지만 않으면 아빠는 허락해 주겠다고. 정말 하고 싶은데 허락을 안 해주면 어떡하냐는 아이에게 그러면 허락해줄 수 있게 이유를 잘 설명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설득이 어렵다고 몰래하는 방법은 자꾸 숨기려는 습관을 갖게 해서 어차피 의심의 눈길을 끌게 되어 못 숨긴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그럼에도 설득이 안되면 몰래 하기보다 "치사해서 안 한다 안 해" 하고 차라리 안 해버리는 게 더 쿨한 것 같다고 했더니 아이가 동의하더군요.

  

해주고 싶었던 말의 (그 이면에 감춰져 있고 어린아이에게 설명할 도리가 없는 의미) 반도 이해 못한 것 같지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규칙에 얽매여 스스로 안될 거라고 포기하지 말고 일단 원하는 걸 당당하게 요구하고 설득하려 애써 보라는 것에 아이의 눈이 반응을 해서 더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티타임을 끝냈습니다.


이 아이는, 이 아이들은 저와 달리 하고 싶은걸 떳떳하게 요구하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습관으로 갖기를 바랍니다. 권위와 규율에 압도되어 제대로 말해 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생각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되바라진다는 표현에 위축되지 않고 원하는 걸 정당하게 요구하고 규칙의 절대성에 의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랍니다.


정말 그렇게, 당당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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