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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Aug 28. 2021

"싫어요."라고 말하기

*2021.4.10.


하루 종일 신나게 논 아이들이 내일 오후에 있는 한글학교 숙제를 아직 안 했다는 걸 뒤늦게 엄마에게 들켰습니다. 들켰다고 말하니 조금 이상한데, 안 하고 몰래 넘어가려던 건 아니고 숙제가 있다는 것 자체를 잊고 있었던 것이니 들킨 건 아니지요. 엄마 덕분에 알게 됐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 같습니다.


베이스먼트에서 내 일을 몇 가지 처리하고 올라와보니, 수영 클래스도 있었던 날이라 원래 같으면 벌써 잠자리에 들었어야 할 시간에 세 아이들 모두 각자의 숙제를 하느라 테이블에 모여 앉아 열심히 글씨를 쓰고 있더군요. 간식이라고 엄마가 깎아준 망고를 먹으면서 말이죠.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내는 아이들에게 망고를 주는 대신 숙제를 마치기 전까지 자러 침대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조건을 걸어놓았습니다. 잠시 후 아내는 일을 하느라 다시 자리를 비웠고 제가 대신 아이들 옆에 앉아서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손글씨를 써야 하는 숙제였던 만큼 글씨 쓰는 게 익숙한 순서대로 숙제가 마무리됐습니다. 첫째가 제일 먼저 일어났고, 그다음은 둘째. 혼자 남은 여섯 살 셋째는 한숨을 내쉬며 구원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절 쳐다보더군요.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아빠에게 할 이야기가 있냐고 물어보니, 절 보면서 "오늘 다 못할 것 같아요." 합니다. 잠시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나 고민을 하다 좀 더 대화를 이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어떡하지?"


사실 입에서 바로 튀어나갈 뻔했던 답은 "네 숙제인데 네가 안 한 걸 어떡해. 성당도 가야 하고 주일학교 Zoom 수업도 들어야 해서 내일은 시간 없을 텐데. 오늘 다 하고 자야 할 거야."였습니다. 그런데 꿀꺽 삼키고는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주일 학교도 아침 먹고 쉬었다가 하고, 성당 다녀와서 하는 한글학교도 점심 먹고 쉬었다가 하니까 중간중간에 숙제를 하면 될 것 같아요."


아이의 목소리가 살짝 긴장돼 있습니다. 아마 아빠가 안된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듯하더군요. 긴 생각이 짧게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처음 들었던 생각과 정 반대의 답을 했지요.


"와!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그러면 되겠네.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이는 기쁘게 협상에 응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아빠가 일찍 깨워주면 아침 먹기 전에도 숙제를 조금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적극적인 협상안도 제시하면서.


그리고 아빠의 허락 아래 아이는 자기 인형을 끌어안고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자러 들어간 후 크롬북을 열고 앉아서 조금 전 짧게 스쳐간 긴 생각을 차분히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엄마나 아빠에게 "싫어요"라는 말을 할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시켜야 할 때 대부분 그건 아이의 의향과는 무관합니다. 당연한 일들이기에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하면 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제가 아이들에게 뭔가를 요구할 땐 아이가 그게 싫어서 반대하는 입장을 낼 수도 있다는 걸 가정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게 다 아이들을 위하는 것들이니까, 싫더라도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이들도 그랬습니다. 아빠나 엄마가 시키면 싫든 좋든 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리고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도 대부분 사실입니다. 아이에게 해로운 일을 일부러 시키는 부모는 없지요.


그런데 그게 아이들로 하여금 엄마, 아빠라고 하는.. 자신이 만날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사람에게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행동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살면서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능력입니다. 특히 자기보다 서열이 위라고 느끼거나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싫다고 말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되지 않으면 하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 싫다고 말하는 게 소용없다거나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손해가(혼난다면) 될 수도 있다는 걸 체득한 사람은 커서도 거절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싫다고 말하거나 거절하는 게 용기를 내야 할 수 있는 말이 되어 버려서 머뭇거리게 되는데, 순간의 머뭇거림은 말할 기회를 놓쳤다는 느낌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거든요. 이런 습관이 직장에서, 모임에서 혹은 잘 모르는 남으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즉시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갑니다. 내가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건데도 내 앞에 있는 권위자의 눈치를 먼저 살피게 됩니다. 심지어 성폭력에 노출된 상황에서조차. 그걸 깨닫고 나서 우리 집 아이들을 관찰해 보니, 역시나 먼저 태어나서 제가 후회하는 가정교육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싫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하더군요.


미국에 온 이후 관찰한 이곳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어른이나 선생님에게 자기 생각을 쉽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도 상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싫은걸 싫다고 의사 표현하는 데 있어 저희 집 아이들보다 훨씬 거리낌이 없더군요. 그리고 단지 싫다고 표현하는데만 익숙한 게 아니라 그러면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질문을 받는데도 익숙해 보였습니다. 아이들 학교뿐만 아니라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도 비슷한 성향을 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기 생각을 권위자 앞에서 표출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면 그건 어린 시절부터 받은 교육의 영향이라고 봐야겠지요. 교육으로부터 비롯된 사회 문화인지 사회 문화에 영향을 받은 교육 방식인지.. 순서상 어느 게 먼저인지는 애매하지만요.



재작년부터는 아이들에게 일부러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고 있습니다. '이거 아빠가 좀 봐도 될까? 싫으면 싫다고 해도 괜찮아'부터 시작해서 일부러 질문을 던지고 싫다는 대답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싫다고 하면 그 의견을 인정해주고 대신 아이의 대안은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아이들은 한동안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딱 눈치가 '정말 싫다고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꽉 채운 상태. 그리고 싫다고 말했을 때 제가 바로 수긍하고 대신 대안을 요구하는 것에 당황스러워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이에게는 정말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을 겁니다. 엄마 아빠가 뭔가 시키면 하기 싫더라도 시킨 대로 하는 걸로 귀찮은 상황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의견을 존중받는 대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안을 함께 이야기해야 했으니까요.


2년이 지난 지금, 첫째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비록 싫어요 라고 말하기 전에 몇 초 멈추고 용기를 끌어 모으는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는 아직 바뀐 게 없습니다. 여전히 싫다는 말을 못 하고, 속으로 삭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엉뚱한 억울함으로 터집니다. 형에 비해 모든 게 느린 아이라 어렸을 때 그걸 도와주겠다고 아내나 제가 많은 것들을 가르치려 하고 아이에게 도움을 주려 했었는데.. 그래서 어쩌면 싫다고 말하면 안 되는 상황을 형보다 더 많이 겪은 아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만큼 더 시간이 걸리겠지요. 막내는 형들 눈치를 보며 자기 행동을 결정하려는 성향이 있어 아직 왔다 갔다 합니다. 어떨 땐 큰형처럼, 어떨 땐 작은형처럼.


그리고, 어른들도 변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지시를 하는 게 아니라 제안을 하는 어른으로 변하기 위한 노력을 말이죠. 


막내가 내일 자투리 시간들을 이용해서 한글학교 숙제를 다 할 수 있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남은 숙제 양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숙제를 다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엄마의 지시에 싫다고 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험이 시키는대로 숙제 다 하고 자는 것보다 훨씬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일 다 하지 못하면 자신이 제시한 대안이 실패하는 경험을 할 테니 그 역시 나쁜 일은 아니겠지요. 


정말 이 아이들은,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 생각과 대안을 제시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게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아닌,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행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Update: 4/11

아침 7시 30분. 엄마도, 큰형도, 작은형도 아직 꿈나라인 이 시간에 막내가 일어나서 거실로 내려왔습니다. 깜짝 놀라 품에 안아주고 아침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갑자기 "저 이제 가서 숙제할게요" 합니다. 기특해라. 놀라워라.



*Cover image: Image by Lorraine Cormi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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