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5.
작년 봄, 어느 주말 아침. 테이블에 앉아 첫째 아이와 차를 마시며 잘못한 행동으로 혼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확히는 협상을 했지요.
아이의 요구는 간단했습니다. 자신이 잘못을 하더라도 야단치지 말라는 것이었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듯했습니다. 자기가 잘못을 하는 경우를 따져 봤는데 잘못인 줄 모르고 했거나, 잘못인 줄 알면서 일부러 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더랍니다. 그런데 모르고 한 잘못은 몰라서 한 것이니 혼 날일이 아니라 뭘 잘못했는지 알려주면 되는 거고, 잘못인 줄 알면서 하는 행동은 혼날 각오를 이미 했기 때문에 혼난다고 해서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니, 어느 쪽이든 야단을 쳤을 때 효과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몰랐던 것은 그냥 어떤 게 올바른 건지 알려주면 끝날 일이고, 혼날 각오를 하고 하는 잘못은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행동하고 싶어 졌는지를 물어보면 될 일이라는 거죠.
아이의, 아이다운 논리에 반박을 하려다 멈칫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잠시만 생각을 해보자" 라고 시간을 벌고는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른지 고민을 했지요.
보편적인 한국 가정인 저희 집은 아이들이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단단히 일러서 그렇게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편입니다. 조금 더 나가자면, '내 아이의 자존감은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굴어도 제지하지 않아야만 형성된다' 는 식으로는 믿지 않는 쪽입니다. 그래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이가 잘못 행동하거나 주위에 피해를 주거나 하면 즉시 바로잡아 줍니다. 써놓고 보니 좋게 포장했는데 쉽게 말해 그냥 '화'를 냅니다.
초3으로 미국 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사이 어른들이 내는 그 '화'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엄마 아빠든, 할머니 할아버지든, 선생님이든 잘못한 건 다들 무섭게 혹은 큰 목소리로 그러면 안된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미국에서 몇 달 학교를 다니고, 성당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하면서 여기는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달은 모양입니다. 제지하고, 안된다고 알려주는 어른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소위 '화'를 내는 어른이 많지 않거든요. 영어로는 yelling 한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리고 자기 또래 친구들이 어른들에게 원하는 걸 자연스럽게(조심스럽게 가 아니라) 요구하는 것들을 보면서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나 봅니다. 물론 아이이기에, 그 차분함이.. 이 사화가 보여주는 친절해 보이는 행동과 말의 이면에 있는 '무관용'의 원칙까지 이해하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게 좋아 보이는 건 당연했을 겁니다.
다시 아이 이야기로 돌아가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봐도 아이의 요구가 타당하다고 생각됐습니다. 사실 '화'를 낸다는 것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아이가 반복할 때 그러면 안된다는 걸 단시간에 강하게 인지하게 도와주는 역할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는 게 과연 아직 자기 운동화 끈도 정확하게 매는걸 어려워하는 아이와 할만한 일이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아, 운동화 끈은 어른인 저도 자꾸 풀어지는 걸 보면 적절한 예는 아닌 것 같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논리가, 그리고 제게 그걸 정리해서 설명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잠시의 고민 끝에 아이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한 뒤에 아이에게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엄마 아빠에게 무엇을 제시할 거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엔 아이가 깊게 고민에 빠지더군요.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기도 했을 거고 솔직히 자기가 뭘 제시할만한 게 별로 없었을 겁니다.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제가 원하는 걸 제시했습니다. 너도 뭔가 화가 났을 때 엄마 아빠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하지 말고 정중하게 말하는 게 어떠냐고 말이죠. 슬슬 사춘기를 향해 달려가는 나이답게, 엄마 아빠에게 말할 때 짜증 섞인 목소리가 자주 나오고 있던 차였습니다. 아이가 그건 쉽다고 생각했는지 대번에 ok를 하더군요. 그래서 둘이 deal을 선언하고 악수를 했습니다.(부연하자면 이후 한동안 아이가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꿀꺽 삼키고 가슴으로 식식거리며 눈동자만 데룩데룩 굴리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결코 쉬운 게 아님을 깨달았겠지요)
두 번의 계절이 지나고 다시 겨울의 한 복판을 지나 봄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문득 그 협상으로 인해 바뀐 부분이 있는지를 출근길 운전을 하며 생각을 해 봤습니다. 확실히 제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줄었습니다. 화가 날 때마다 아이와의 그 악수가 생각나서 멈칫하게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아이가 '혼나는' 일이 크게 줄었습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뭘 요구했을 때 싫으면 싫다고 자기 생각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어졌습니다. 자기가 뭐라고 하더라도 혼날 거라는 걱정을 덜 하니까요.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잘못 행동하는 경우가 크게 줄었습니다. 이건 예상치 못했던 변화인데, 아이도 아빠와의 약속을 기억해서인지 아니면 한 살 더 먹어서 어른스러워진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모의 마음으로는 아이가 아빠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으며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는 쪽으로 변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서로 다른 문화권을 가로지르는 이민 가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요. 한국에서는 당연한 부모의 행동, 아이를 위한 좋은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여기서는 아이를 망치는 나쁜 행동이라고 취급받는 것들도 있으니까요. 안타깝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미국 아이로 배우고 자라는 사이 부모는 집 안에서 아직도 한국 부모로 남아 있기 쉽습니다. 미국에 정착했음에도 여전히 한국 뉴스를 통해 여러 가지를 접하고, 한국어로 정보가 오가는 이민자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는, 저를 포함한, 모든 부모들은 아직도 한국 부모로 남아 있는 경우겠지요. 결과적으로 아이는 미국인이 되고, 부모는 한국인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차이로 부모 자식 간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어느 한쪽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누구도 잘못한 사람 없습니다. 이민 가정에서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비가 오면 땅이 젖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생각과 행동을 적절한 설명 없이 강요한다면 그에 따른 반작용은 주로 부작용으로 바뀔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는 습관을 들이고, 그 차이를 '해소' 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다름'으로 안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수 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세대 차이만을 극복하면 되는 일반 가정과 달리, 문화 차이도 극복해야 하는 이민 가정에게 다름을 안고 살아간다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니까요.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똑같이 아이를 키우는 이민 가정의 부모 입장에서, 저를 응원하는 만큼 이 글을 읽는 다른 이민 가정 부모님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