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거짓말을 시작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악의가 담긴 거짓말이 아니라, 그냥 그 순간의 귀찮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아이가 할 법한 거짓말들 말이죠.
어제 저녁, 첫째가 엄마에게 거짓말을 들켜서 한소리 들었습니다. 아내도 아이가 이제 그런 나이가 됐다는 걸 알아서 길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으나 대신 이번 주말동안 책을 못 보는 벌을 내렸지요. 오늘 아침에 보니 책이 없어서 할일이 없어진 첫째가 온 집안을 돌아 다니며 방황을 하고 있길래 잠시 불러서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에 대한 제 생각을 짧게 나눴습니다.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와, 왜 그 나이가 되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지. 거짓말은 정말 나쁜 것인지.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에게 세상 모든 사람이 지금 네 나이가 되면 거짓말을 시작하며 엄마 아빠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했지요. 모든 거짓말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귀찮거나 민망한 상황을 매번 쉽게 피해서 돌아가기 위해 '거짓말하는 습관'은 나쁘다는 말을 덧붙여서요. 사실입니다. 거짓말 자체는 좋은 거짓도, 나쁜 거짓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닌 아무 의미 없는 것도 있지만 거짓말 하는 습관 자체는 절대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와 길게 나눈 대화를 다 옮길 수는 없고, 엄마나 아빠, 혹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는 걸 겁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보통 그런 잔소리나 질책이 듣기 싫어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시작하는데 그런 잔소리나 질책을 겁내거나 피할 이유가 없다고, 그런걸 정면으로 마주 볼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이제 어른의 잔소리를 두려워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고, 너도 네 생각을 분명하게 밝힐만큼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반대할 건 반대하라고. 엄마나 아빠의 요구나 생각에 네가 반대 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거나 해도 화를 내거나 야단치지 않고 최대한 이유를 설명하려 노력할테니 서로 그런 귀찮음을 피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화 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이에게 잘 전달이 되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받아도 부모의 조언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게 이치니까. 이런 대화를 앞으로 몇년간 수천번 똑같이 반복하겠지요.
그래도, 언젠가 아이가 더 컸을 때 제가 해 준 이 말을 떠올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짓말이 하고 싶어질때마다 멈칫하게 만드는, 거짓말이 입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표지판 역할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Cover image: Photo by Lorenzo González from Free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