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마을 Aug 09. 2021

온라인 수업. 그리고 유튜브

*2020.9.18.


5학년인 첫째와 3학년인 둘째가 서재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동안 수업에 참석하지 않고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막내가 와서 소곤소곤 알려줬지요.


지난 학기에 워낙 온라인 수업 질이 좋고 아이들도 잘 따라 했던 터라 이번 학기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수업을 챙겨서 들으라고 하고는 저나 아내 모두 각자의 일에 매진을 했었더랬지요. 사실 아이들이 이른 아침 몰래 학교에서 내준 크롬북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스크래치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아 모른 척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는 것은 좀 당황스럽더군요. 유튜브 watch history를 보니, 지난 며칠은 거의 수업을 듣지 않은 거나 다름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내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한참 상의했습니다. 정말 고민되더군요. 주의만 주고 넘어가도 되는 가벼운 잘못이 아니라, 아예 수업을 참여하지 않은 것이니 가볍게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였습니다. 예전으로 따지면 무단결석을 한 셈인데, 잘못의 정도가 상당히 무겁지요.


그렇다고 해서 얼굴을 붉혀 가며 화를 내거나 크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치는 식으로 해결될 문제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소리 지르든 타이르든 아이들이 행동을 고칠 때까지 필요한 훈육의 횟수는 비슷할게 뻔했고, 아이들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꼭 아이들만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재미있는 유튜브를 볼 수 있는 크롬북을 놓고... 거기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서재에서 공부하는 데다 선생님은 절대로 자기가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환경. 어른이라고 다를까요? 아닐 겁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정말로 견디기 힘든 유혹이었겠지요. 그런 환경에 노출시켜 놓고는 유혹에 넘어갔다고 아이만 탓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무슨 함정수사도 아니고...


무작정 야단칠 수도, 그렇다고 아이들이 잘못한 걸 들킨 그 순간을 그냥 넘기면서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할 수도 없어서 시간을 벌 겸 우선 한글로 엄마 아빠에게 반성문을 적어 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리고 창작의 고통과 자기 잘못을 손수 적어야 하는 창피함의 이중주를 통해 아이들이 나름 벌을 받고 있는 동안 저도 방법을 고민하고 정리했습니다.


1. 어떤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스스로 정리하게 하자

2. 잘못된 행동을 함으로 인해 자신이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게 됐다는 것을 알게 하자

3. 자기가 잘못한 것을 주위의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자


이 세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한글로 반성문을 적고 있으니 충분했습니다. 두 번째는 오히려 합법적으로 유튜브를 볼 수 있었던 시간에 유튜브를 보지 못하게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일주일이면 충분하지 싶었습니다) 마지막은 사실 상당히 강한 체벌인데, 아이들이 그 행동을 한 배경에는 자신이 일탈을 해도 그 사실을 남이 알지 못한다는, 온라인 교육 환경이 주는 안도감이 컸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선생님까지도 모두 그걸 알게 된다면 그것 만큼 당황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선생님을 하고 있는 후배에게 부탁해서 아래와 같은 Think Sheet을 받았습니다. 형식을 보면 금방 감이 오 실 텐데, 길지 않지만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고, 왜 했고, 그로 인해 어떤 손해를 봤는지 분명하게 정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가 적어온 걸 보니, 수업을 안 들어서 결국 나중에 숙제를 할 때 모르는 것들이 많아서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적었더군요. 둘째는 앞으로 유튜브를 못 보게 됐다는 내용을 적어서 제 예상과 생각을 충족시켜 줬습니다 ㅎㅎㅎㅎ) 마침 한글로 반성문을 다 적어 온 아이들에게 이 form을 내밀고 여기에 영어로 같은 내용을 정리해오라고 했습니다. 다 작성하면 엄마 아빠가 확인하고 내용이 맞으면 sign 해서 선생님에게 제출할 거라고 하니 거의 울려고 하더군요. (속으로 그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아이들 나이 때는 학교에서 잘못한 걸 부모님께 알린다는 게 엄청 큰 체벌이었는데, 요즘은 그 반대구나 하는. 결국 본질은, 자기가 잘못한 걸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걸 꺼리는 본성이지요.)



Think sheet은 원래 학교에서 잘못한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서 부모님께 보여주고 sign을 받는 양식이지만, 수업이 집에서 이루어지는 요즘은 거꾸로가 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정 없이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적어 온 form에 제가 서명하고 사진을 찍어서 사연을 적은 이메일에 첨부해서 보냈습니다. 그 와중에 첫째는 뭘 잘못했는지 모호하게 적어 왔길래 '수업 안 듣고 유튜브 봤다' 고 정확히 다시 적어 오라고 했습니다. 정말 선생님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스러웠던 저녁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은 모두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야 스트레스 가득한 잠자리겠지만, 또 이렇게 한 단계 경험이 늘어나는 것이겠지요. 저는 나름 놀란 부분도 있었습니다. 첫째의 한글 반성문이 생각지도 못한 명문이었거든요. 근엄한 표정으로 읽어야 하는데 표정관리하느라 혼났습니다. 언제 이렇게 생각이 컸지? 하는. 정말 아이들은 빨리 자라네요. 이 반성문 코팅해서 보관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펄쩍 뛰겠지요? 흠... 그래도 모르니 좀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











이전 15화 다양성 Diversit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