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나들이로 뉴욕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LA, 샌디에고, DC 등 자연사 박물관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빠짐없이 들리는데 뉴욕이라고 건너뛸 이유는 없지요. 더구나 집 옆이니까요.
관람을 하던 중 공룡 전신 화석 하나 앞에 한참 있던 첫째가 왜 공룡 화석은 모두 목이 뒤로 꺽여서 죽어 있는 모양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내가 대충 둘러서 대답해 줬는데 아이가 이해가 안 간다고 그 화석 설명문을 가리키며 계속 따지더군요. 별 것 아닌 것에 지나치게 고집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끼어들어서 항상 뒤로 꺽이는 건 아니고 아닌 것도 있는데 네가 못 본 거라고 질문을 둘러서 쳐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해서 아이를 진정시키고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그동안 수없이 다닌 공룡 화석 박물관마다 전부 그랬다는 것과(아이의 말투에는 아이는 자신이 그동안 꾸준히 관찰한 것에 대한 확신이 묻어났습니다), 지금 아이가 가리키고 있는 공룡 화석이 대한 설명 중에 이런 내용에 대한 언급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분명 그동안 자기가 궁금해하고 있던 것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했지만 영어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해석을 못해 안타까워하던 중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엄마 아빠는 자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고 이동하려고만 하는 상황에 자리를 뜰 수도, 엄마 아빠를 어떻게 강제로 잡아 놓을 수도 없는 곤란함에 눈물이 터진 상황이었습니다.
아차 싶어서 저도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니, 조반류 공룡의 경우 사후 경직으로 목을 지탱하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목이 뒤로 꺽이는 형태로 자세가 바뀌는데 이는 현생 조류의 특징이기도 해서 공룡이 조류였다는 증거의 하나로 취급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이의 관찰이 맞았던 거죠.
https://answersingenesis.org/fossils/
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다시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이 그대로 환하게 바뀌면서 궁금한 게 풀렸다고 기뻐하더군요.
아빠가 잘못했어. 사과할게.
이후 관람을 이어가면서 아이들 뒤를 따라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첫째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다음 조금 전에 아빠가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아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분명 오랜 기간 관찰하고 궁금해했던 것일 텐데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은 건 아빠가 크게 잘못한 일이 맞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도 했구요.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그 속내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빠의 사과를 듣는 동안 아이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고였습니다. 서러웠던 감정이 다시 올라왔겠지요. 사과를 마치고 아이를 품에 안아서 토닥여 주면서 마음이 정말 불편했습니다.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이에게도 미안했구요.
사실 이번 주 내내 스트레스가 심했고 오늘은 복잡한 전시관을 세 아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신경이 곤두서고... 피곤하고........ 는 어른의 사정이지 아이의 사정은 아닙니다. 그저 제 속마음에서 아이가 그걸 눈치껏 알아주기를 바랬을 뿐이죠. 더구나 아이가 궁금해하는 걸 그렇게 가볍게 넘기려 한 건 아무리 곱씹어 봐도 잘못한 게 맞지요. 변명의 여지가 없는. 하마터면 아이가 오랜 시간 끈기 있게 이어온 관찰에 대한 해답을 얻을 기회를 날릴 뻔했으니까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른을 뛰어넘는 관찰력에 종종 깜짝 놀랍니다. 어른에게는 너무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여서 기억을 하는 건지, 아니면 어린아이의 영혼에는 세상 모든 것들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능력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질문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일상에 지친 어른의 마음은 그런 다짐을 자주 잊습니다.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사는 게 마음을 참 쉽게 지치게 하니까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면 금방 환하게 웃으며 안아주니 말이죠. 버릇되면 안 되는데, 마음이 넉넉한 아이들 때문에 제 버릇만 자꾸 나빠집니다.
어쨌든 그렇게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아이가 조반류는 그렇다는 걸 알았는데 용각류도 마찬가지냐고 질문을 하네요. 차마 모르겠다곤 말을 못 하겠어서 찾아보고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이걸 도대체 어디서 찾지요;;; 용각류는 현생 조류와 관계가 없으니 아닐 것 같긴 한데... 조금 전 일도 있고 해서 함부로 말을 못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