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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Aug 19. 2021

이웃 공동체

*2021.6.3.

Image by Gustavo Rezende from Pixabay


미국 온 지 3년이 됐는데, 아직 첫째가 영어와 사교에 어려움을 겪어 오고 있습니다.


곧 6학년이 되는데, 남에게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말을 할 때도 문법적으로 완벽하게 말하고자 하는 탓에 말을 자꾸 아끼더군요. 그러다 보니 거꾸로 영어 실력도 잘 늘지 않고, 친구도 쉽게 사귀지 못합니다. 운동을 해도 수영 같은 개인 운동은 하는데 남과 함께 해야 하는 야구나 축구 같은 단체 운동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팀원들에게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거죠. 팀 운동을 하지 않으니 친구가 생기지 않고, 친구가 없으니 다시 영어가 늘지 않고, 영어가 지지부진하다 보니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것도 좀 버거워하더군요. 악순환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ESL도 벌써 작년에 졸업했겠다, 영어를 아주 못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보지 않구요. 본인의 자신감 그리고 완벽하고 싶어 하는 성격 문제인 것 같았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도와주고 싶어도 이런 문제는 정말 어렵습니다. 단순 학습의 문제가 아니라 성향의 문제니 까요. 그 자체로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다만, 아이의 삶이 좀 팍팍해진다는 점 때문에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튜터를 붙인다고 될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또래와 어울리는 사교 문제까지 함께 얽혀 있으니까요. 시간의 문제인 건 압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아이는 영어가 숨 쉬듯 편해질 테고 그 이후에는 상당 부분 해결이 될 문제였으니까요. 하지만 또래와 어울리는 부분은 때를 지나치면 안 되기도 하고 이런 부분이 단순히 영어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고민이 됐습니다.


방법이 마땅치 않아 제법 긴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이웃들에게 이런 고민을 나누고 난 뒤 갑자기 도움의 손길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부모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웃 아이들로부터 말이죠.


가장 먼저, 한 이웃의 8학년 남학생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골프도 치고, 수영 대회도 나갈 정도로 외향적인 남학생이었는데 저희 집 첫째를 자기가 함께 데리고 다니면서 골프도 치고 함께 어울리면서 멘토가 되어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매주 주말 오후면 그 집에 첫째만 보냅니다. 그러면 2~3시간 정도 끼고 골프를 가르쳐 주거나, 날씨가 안 좋으면 그 집에서 그냥 함께 뒹굴거리거나 게임을 하던가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적당히 많은 형이다 보니 아이가 뭔가 잘못 말하거나 운동에 익숙하지 않아도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잘 어울리더군요.(경쟁심을 갖게 되는 또래 거나.. 대화가 부담스러운 어른이 아니니까요. 거기다 늘 봐야 하는 친형도 아니지요.)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하필 집에서는 첫째인 탓에 항상 약간 긴장.. 또는 부담을 느끼며 동생들과 있는 게 보였는데 그 집에 가서는 막내처럼 취급받으며 신나게 몸으로 놀다 보니 아이가 즐거워하는 게 보였습니다. 주말 오후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표정이 다르더군요.


두 번째로, 다른 집의 10학년 여학생이 영어와 공부에 도움을 주겠다며 나섰습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두 번 자기가 데리고 쓰기와 말하기 등 공부를 봐주겠다더군요. 그 집 둘째가 저희 집 둘째와 같은 반이기도 해서 둘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자기 반 친구와 놀아서 좋고, 첫째는 공부 잘하는 누나에게서 공부를 배워서 좋은 상황이 된 거죠.


그 집 부모들을 압니다. 아이들끼리도 모두 아는 사이구요. 누가 어느 집에 사는지, 누구 동생인지, 누구 누나인지 모두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도움을 받고 보니 알고 지내는 이웃이라는 것을 넘어 이웃 공동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10학년이면... 한국으로 치면 이제 곧 고2가 되는 나이입니다. 대입 준비를 하기 시작해야 하는 그런 딸아이가 일주일에 두 번씩 이웃집에 사는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허락하는 부모도 놀라웠고, 그런 생각을 갖는 아이도 놀라웠습니다. 8학년이면 한국으로 치면 중2~3에 해당하지요. 그 나이의 아들이 이웃집 아이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매주 집으로 초대하는 걸 귀찮아하지 않는 부모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8학년인 그 남학생은 자기도 따르고 도움을 받은 멘토(이제는 대학생이 된) 형이 있는데 그 형에게 받은 도움을 다시 나누는 거라는 입장입니다.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동네 형, 누나, 언니들에게서 도움을 받고 어울리는 게 드문 일은 아니라고 하는데 저희 부부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튜터 비를 주려 했더니 부모들이 모두 손을 내젓더군요. 아이들이 전문적인 선생님도 아닐뿐더러 일종의 volunteer이니 이대로 놔뒀다가 정말 도움이 되는 것 같으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이죠.


저는 무엇보다, 아이가 운동과 공부 양쪽으로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보다,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고 함께 어울리고 발걸음을 맞춰서 나가려 하는 형 누나들과 어울리면서 그런 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게 너무 기쁩니다. 이런 교육에 값을 매긴다면 저는 도대체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 걸까요.


미국에서의 삶이 더 외롭습니다. 팍팍하구요. 한국에서는 정말 많은 이웃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살았는데 여기는 친척도, 친구도 없이 정착하려 애쓰는 중이니까요. 그런데 과연 한국에서 제가 이웃집의 어떤 어려움을 들었을 때 안됐다며 걱정하는 것 이외에 '우리 가족이 저 가족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라며 고민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도와야 한다는.. 그런 생각 자체를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외롭다고 느끼던 이곳에서 거꾸로 '이웃'의 의미에 대해 깊게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 집집마다 어른들을 알고 그 집 아이들을 알던... 수십 년 전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분명, 그때 저도 이런 분위기에서 살았던 것 같은데 언제 잃어버린 걸까요.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저는 이웃과 무엇을 나눠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마음은 한가득인데 괜한 오지랖 아닐까 하는 걱정과 도움을 건네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 늘 갈팡질팡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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