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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Aug 02. 2021

단정하기 그리고 묘사하기

*2020.10.28.


삶을 단정하기는 쉬우나, 묘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민을 오고 난 후,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지만 제 삶을 단정하려는 지인들이 참 많습니다. 좋게 생각해 보자면 단정 지어서 말하기 쉽기 때문이겠지요. 한국에서 어떠했다든가, 미국에 갔으니 어떨 것이라든가 하는. 저는 그들에게 제 삶을 자세히 묘사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건만 모두들 제게 듣지 않은 이야기로 제 삶을 단정합니다. 그렇게 단정한 제 삶을 놓고 마음대로 평가하는 것은 덤이랄까요.

 

하지만 이민자의 삶은 그 유별남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글로 묘사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단어를 늘어놓고 보면 그저 부족한 어휘력의 한계를 깨닫게 될 뿐이죠. 이 삶은, 과거를 상할 수 있을지언정 현재를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장님 코끼리 만진다는 말이 있지만 그 말과도 다르더군요. 그 경우는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일부라도 직접 만져보고 설명하는 상황이지만 이민자의 삶은 그렇게 만져보기는 커녕, 코끼리라는 동물이 있다더라 는 수준의 이야기만 대충 전해 듣고는 바로 코끼리와 함께 공연해야 하는 서커스에 던져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다 보니 랜딩하고 나면 어떻게 주위를 둘러볼 시간도 없이 알지도 못하는 것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바쁩니다. 랜딩의 충격은 누구에게나 거칠고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묘사할 수 없으니 저들에게 마음대로 넘겨짚지 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알려줄 방법이 없으니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도, 즐거움을 나누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묘사하기 어려우니 단정 짓는 이를 나무랄 수도 없고 단정 짓는 이들의 이야기에 동조하기도 어렵지요. 그렇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서로를 어색하게 만듭니다. 공감하지 못해 어색하고 공감받지 못해 어색합니다. 시간 속에 순간을 강제한, 정물 사진처럼 그렇습니다. 분명 내 삶인데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받기 어렵습니다.


맥주 캔 @2008 / TMAX400 / Film scan.
분명 맥주 한잔 하다 찍은 이 사진은 분명하게 남아 있는데, 저 맥주캔을 만졌을 때 느꼈던 손 끝의 차가움이 어땠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묘사할 수도 없습니다. 분명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져 있는데 말이죠.


그렇게 단정하기 쉬우나 묘사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오늘. 언제나 그렇듯 카카오톡의 지인들 리스트를 넘기다 보면 가볍게 한숨이 나옵니다. 묘사할 수 없는 이 삶. 그래서 이 삶을 단정 짓는 이들에게 선뜻 연락하기 어려운 망설임. 1초 망설일 때마다 10리쯤 멀어지는 감정의 거리감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첫해에 그토록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이들과 점차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그래서 점차 연락이 뜸 해 지는 것이 모두 그것 때문이라고..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삶이 그런 삶이라고.. 그렇게 단정 지어 봅니다.




*Cover image: Photo by Ersin İleri from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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