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자기 전에 문득 미국에 온 이후 아이들과 정말 많은 것들을 하고 있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 든 생각은 아니지만 새삼스러웠습니다.
1. Surfing
미국 동부 해안은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가 서핑 시즌입니다. 잔잔했던 대서양에 늦여름부터 태풍이 생기기 시작하고 바람이 거세지면서 파도가 서핑을 즐기기 좋은 높이로 밀려 오거든요. 그리고 이제 8학년, 6학년이 된 첫째와 둘째는 요즘 서핑의 재미에 흠뻑 빠졌습니다. 이 두 녀석들이 보드에 올라 대화를 나누며 함께 서핑을 즐기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가슴 한켠이 뿌듯해 집니다. 한명이 컨디션이 나빠 안탄다고 하면 '혼자서는 재미 없다'면서 나머지 한명도 안탈 만큼 형제간의 우애도 돈독하게 해주는 듯 하더군요. 아직 해변에서 모래 장난을 하고 있는 막내에게는 다음번에는 body board 라도 타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형들이 타는걸 보며 부러워 하기는 하는데 이제 겨우 3학년이 된 막내가 롱보드를 핸들링할 힘은 없을테니 body board로 만족해야겠죠.
2. Kayaking
엄마 키를 따라잡고 이제는 아빠 키를 향해 쑥쑥 크고 있는 첫째가 패들링 하는 카약은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이번 여름에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모터라도 단 듯 슥슥 미끄러져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그 사실 만으로도 저는 좋았습니다. 한두해만 더 지나면 여름 캠핑때 삼형제들은 각자 카약을 탄 채 물 위를 날아다니고 엄마와 아빠는 2인승 카누를 타고 뒤따라 가며 설렁설렁 낚시나 하게 될 것 같습니다.
3. Gravel bike Riding
지난 여름부터 첫째는 저를 따라 주말 자전거 라이드를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보통 자전거를 끌고 나가면 수십마일을 몇시간에 걸쳐 타고 오는데, 아이가 지구력을 키우고 싶다며(이 아이는 펜싱을 배웁니다. 본격적인건 아니고 취미인데, 그래도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진다더군요) 아빠 따라 장거리 라이드를 가고 싶다고 해서 이참에 어른용 자전거를 사줬습니다. 비포장 도로라 체력 소모가 많았을 텐데도 15마일 정도는 잘 따라 오더군요. 올해는 그 정도의 거리만 라이드 하며자전거에 익숙해지게 도와주고 내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장거리 라이드를 데리고 갈까 생각중입니다.
아이와 둘이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고, 물과 간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숲과 거친 dirty road를 지나는 트레일 라이드는 정말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순간입니다.
사실 체력을 키운다는 측면도 있지만, 아이와 둘이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고, 물과 간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숲과 거친 dirty road를 지나는 트레일 라이드는 정말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순간입니다. 예전에도 브런치 포스팅을 한 적 있는데, 미국의 트레일은 정말 아름답고 자전거 타기 정말 좋습니다. 이 아름다운 트레일을 하나씩 아이와 함께 즐길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시간도 좋지만 자전거를 차에 싣고 트레일 코스까지 가면서 첫째와 단둘이 나누는 온갖 잡담도 더 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요즘 한창 사춘기 삐딱선을 타고 있는 둘째가 얼마나 얄밉게 구는지, 한대 때리고 싶을때가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 하더군요. (첫째는.. 자기는 사춘기 끝났다고 믿습니다. 말 그대로 믿거나 말거나...인데 아내에게 말해주니 어처구니 없어 하더군요..ㅎㅎ)
4. Fishing
낚시는 삼형제가 함께 하는 유일한 스포츠입니다. 힘이 약하고 키가 작은 막내도 형들과 대등하게 즐길수 있으니까요. 첫째는 약간 강태공 모드로 낚시를 하지만 둘째와 셋째는 낚시 대회 모드라 캠핑을 가면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아침 낚시 가자고 해서 늦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저희집 최고 낚시꾼 타이틀은 현재 막내가 갖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캠핑에서 막내가 베스를 낚았는데 삼형제의 낚시 역사에서 가장 큰 월척이었고 이날부터 한달 정도는 집에서 둥실둥실 떠다닐 만큼 즐거워 했습니다. 가장 많은 물고기를 잡은 둘째와 가장 큰 물고기를 잡은 막내중 누가 최고 낚시꾼이냐며 좀 논쟁을 했었는데, 낚시는 월척을 낚은 사람이 이기는 스포츠죠. 잡으면 크기 잰 다음 바로 놔주고 있으니 스포츠 피싱이고, 스포츠니까 큰 물고기 잡는 사람이 이기는게 맞습니다.
5. Stargazing
동네가 공기 질이 안좋은 뉴욕 근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별을 볼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휴대폰으로 찍어도 별이 어느 정도는 찍히거든요. 집에 6인치 천체 망원경이 있어서 구름이 없는 깨끗한 밤이면 아이들과 하늘을 관측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살 때는 훨씬 큰 8인치 돕소니안 망원경을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해서 아이들에게 토성의 고리며, 목성의 반점 등을 보여줬었는데 미국에 와서는 캠핑시 짐 부피를 줄이기 위해 작은걸로 마련했습니다. 여름이 되면 Stargazing 으로 유명한 캠핑장을 찾아다니거든요. 올 여름 연습게임을 했으니 이제부터는 아이들과 제대로 별 관측을 할 예정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중학교 다니던 시절 저는 매일 밤 별자리 위치를 보며 시간을 맞추는데 열중 했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에게 그걸 알려줄 수 있습니다. 계절별 별자리 위치와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해주다 보면 가뜩이나 짧은 여름밤이 정말 훌쩍 지나갑니다.
6. 눈싸움
매해 폭설이 여러차례 내리는 미 북동부에서 온 가족이 쉽게 할 수 있는 겨울 스포츠로 눈싸움을 빼 놓을수 없죠. 눈이 수십cm 쌓여 있어서 아무리 뒹굴어도 옷에 흙이 묻지 않는 뒷마당에서의 눈싸움은 항상 마지막 한사람까지 기진맥진해 져야만 끝이 납니다. 사실 눈싸움 자체는 2년전에 끝이 났습니다만(첫째와 둘째가 힘이 세져서 이제 눈 맞으면 아픕니다), 대신 이제는 눈이 내리면 삼형제를 불러내서 눈 치우는 걸 함께 합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막내는 정말 복받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형들이 만들어준 이글루라니! 처음으로 형들이 여러 시간에 걸쳐 눈집을 만들고 '네 거야. 들어가봐.' 라고 했던 순간 막내의 표정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7. Concert
둘째는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입니다. 미국에 살고 계신 분들이야 잘 아실테지만 아직 준비중인 분들을 위해 말씀 드리자면 클럽 활동처럼 이루어지는 미국 공립 학교에서의 오케스트라는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하더라도 신청할 수 있으며 따로 사비를 들여 아이를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주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만, 최소한 제가 사는 타운의 학교들의 경우 아이들이 연주를 잘 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게 목적이기 때문에 아이가 꾸준히 연습에 참여하고 연습하기만 하면 실력에 상관 없이 매년 두차례 있는 정기 공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공연 팜플렛의 첫 페이지. 아이가 음악을 배움으로써 아름다움을 인지하게 될 것이라는 문장이 저는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매번 이 오케스트라 공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 역시 바이올린을 배운적 없고 요즘도 따로 가르치지는 않고 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걸 열심히 하고 집에서 혼자 하는 연습만으로도 매년 온 가족을 학교 오케스트라 공연에 초대하고 있습니다. 실력은... ㅎㅎㅎ 자세히 코멘트 하지 않겠습니다. 한때 스스로의 실력에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아이는 정말 음악을, 바이올린 연주를 사랑하고 있더군요. 자기가 남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정말 즐겁게 연주하면서요. 이걸 가족이 함께 즐긴다고 해야 하나 잠시 생각했는데, 아이가 온 가족을 매년 두 차례씩 공연에 초대해주고 있으니 함께 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빠는 한명의 사람으로서 네가 부럽고 존경스러워.
얼마전 둘째에게 그랬습니다. 아빠는 한명의 사람으로서 네가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고 말이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냐는 아이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서 배우고 꾸준히 이어가는 그런 모습이 부럽다고요. 아빠는 어렸을때 생각만 많았지 실천에 옮기는게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키는 것만 했었는데 너는 그렇지 않으니 아빠보다 훨씬 멋진 사람인것 같아 부럽고 그렇게 실천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는 제 말에 싱겁다는듯 피식 웃기는 했으나 그 미소에 고맙다는 표현을 담아 줬다는걸 아이들과 대화가 많아진 지금은 압니다.
8. Pool party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아이들에게 뒷마당 수영장은 오아시스였습니다. 정말로 뜨거운 날들이 며칠씩 이어지면 수영장 물도 미지근해지는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저희집 삼형제들끼리 혹은 친구들을 불러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특히나 물을 좋아하는 막내는 형들이 나오지 않더라도 혼자 pool에 들어가 한두시간씩 놀다 오기도 했는데 덕분에 보초를 서느라 아내와 저 둘 중 한명은 그 시간 수영장 옆에서 늘어져 있기도 했죠.
하지만 사실 어른들에게 수영장은 수영을 위한 장소라기 보다는 물멍을 하기 위한 장소로 더 가치가 있었습니다. 해가 넘어가면 장작을 가져다 fire pit 에 불을 피워 놓고 아이들은 소세지와 마시멜로를 구워 먹고, 어른들은 앉아서 불멍과 물멍을 하는 그 시간... 가족들이 모두 모여 조곤조곤 이야기 했던 그 여름밤은, 가을을 맞이 하고 있는 지금 돌이켜 봐도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내년 여름이 다시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고난 뒤, 아내와 둘이 앉아 불을 뒤적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시간 대신 마법이 흐르는 것 처럼 매혹적입니다.
집에 있으면 아이들과 온갖 종류의 게임을 함께 합니다. 닌텐도 스위치를 이용한 비디오 게임부터 체스와 같은 보드 게임, 그리고 포멧몬 같은 카드 게임까지 참 다양합니다. 저는 특히 아이들과 체스를 두며 차를 마시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사실 체스는 지난 몇 년 제가 봐줘 가면서 했는데 이제는 정신 똑바로 안차리면 실수 한번에 게임이 끝납니다. 작년에 첫째에게 가르쳐준 스타크래프트2는 이제 저는 도저히 상대가 안되서 함께 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구요.
그래도 아이들과 가장 많이 하는 게임이라면 닌텐도 스위치를 비롯한 비디오 게임입니다. 신혼때 아내와 없는 살림에도 닌텐도 DS 두대와 Playstation을 사서 둘이 정말 신나게 게임을 했었습니다. 그 때 나중에 아이들이 태어나면 모두 함께 게임을 하자고 했었는데 이제는 다섯 식구나 되어 게임 패드가 하나 모자랄 지경이 됐네요.
아이들이 어릴 땐 설겆이와 청소를 걸고 게임을 해도 의미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무모한 내기를 걸지 않습니다. 저와 아내가 아무리 기를 써도 아이들을 이길수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10. Annual family trip
여행 자체는 자주 다닙니다. 하지만 계속 바뀌는 여름 휴가 여행지 같은게 아니라 매년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항상 같은 도시, 같은 장소로 가족 여행을 갑니다. 펜실베니아의 Lancaster 라는 도시에 Sight & Sound 라는 유명한 극장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연극으로 만들어서 공연하는 곳인데 저희는 매년 이 극장으로 연극을 보러 갑니다.
매년 같은 곳으로 가족 여행을 가는건 그 여행을 가족만의 추억으로 아이들의 기억속에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만의 고정 이벤트로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입니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모두가 모이는 기회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정도가 될 텐데 그 때도 항상 이 여행은, 가족만의 연말 여행은 이 극장이 있는 Lancaster 로 다녀올 예정입니다. 아이들이 커서 짝꿍이 생기면 그들 역시 함께, 결혼해서 자녀가 생기면 그 아이들도 함께.. 이렇게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방문하는 그런 장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하는 연극이 정말 괜찮습니다. 무대 스케일도 크고...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수준의 연극입니다.
여기 극장 건물은 밤에 보면 정말 예쁜데,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찍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 극장의 무대는 정말 큽니다. 무대에서 새가 날아 다니고 낙타와 말 등 실제 동물들도 등장하는데 마치 성서시대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옯겨 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홈피 사진)
이 공연만 보는 건 아니고, Lancaster 라는 도시 자체가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1박2일 일정으로 가는데 첫날은 공연을 보고 둘째날은 도시 여기저기를 관광하고 돌아옵니다. 매년 같은 장소, 도시에서 찍은 가족 사진은 훗날 우리 가족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겠지요.
올해는 조금 일정을 늦춰서 12월 크리스마스 전 공연을 예약했습니다. 올해도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11. 신앙 그리고 봉사활동
카톨릭을 믿는 저희 가족은 매 주일 함께 성당에 갑니다. 하나의 신앙으로, 가족이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우니 이 부분은 넘어가더라도, 저희 가족은 매달 한차례씩 펜실베니아에 있는 수녀원을 찾아 온 가족이 봉사 활동을 함께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같은 봉사 활동을 한다는게 주는 가족의 일체감이 얼마나 서로를 끈끈하게 만드는지 전에는 미처 몰랐지요.
제가 농담으로 가장한 순도 90% 짜리 진담으로 아내에게 하는 "은퇴하면 여기 근처 집 하나 사서 이사 옵시다. 늘그막은 시골 자연속에서 기도하며 보내게." 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시골에 위치한 이 수녀원은 모든걸 멈추고 서서 귀를 기울이면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은 전혀 없이(내가 떠들지 않으면 말소리도 없는..) 바람 소리, 새 소리, 물 소리, 동물 소리, 풀벌레 소리 등 자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들로 가득찹니다.
사실 말이 봉사 활동이지 이 수녀원이 우리 가족에게 끼친 선한 영향은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가치를 매길 수도 없습니다. 매달 방문해서 몸을 써서 일하고, 물품을 기부하고, 금전적으로도 도와드리고는 합니다만 저희 가족이 받는 것들이 그런 물질적인 것들로 갚아지는 것들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동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할 기회도 생기고, 그 과정에서 얻는 뿌듯함을 공유할 수 있고, 함께 땀을 흘리고, 같은 목적으로 모인 선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또 그 속에서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건 어떻게 가치를 매겨서 '얼마다' 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요. 더구나 미국에 이민을 온 후 처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은 장소가 이곳이다 보니 저와 아내에게는 또 다른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돌이켜 보면 과거에 아이들에게 건냈던 말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밥 먹었는지, 숙제 했는지, 아니면 오늘 학교에서 뭐 했는지. 아이들도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밖에 없고, 한두번 반복되면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는 그런 대화. 제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니 아는게 없고, 아는게 없으니 대화 주제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첫째와 둘째가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요즘,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밥 먹었는지 또는 숙제 했는지 뿐이었다면 어떠했을지 쉽게 상상이 안갑니다.
지금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다. 대화 소재는 널리고 널렸고 아무거나 집어 들어도 5~10분은 충분히 필요한 대화 거리가 됩니다. 서핑 보드의 재질중 폼과 파이버 글래스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한참이고, 뉴저지 서핑 시즌과 서핑 포인트에 대해 물어보면 30분은 쉽게 흘러갑니다. 새로 나온 닌텐도 게임에 대해 말을 꺼내면 그건 반나절 짜리가 될 수도 있죠. 첫째에게는 자전거 정비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건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낚시 이야기는 잘못 꺼내면 그 주 토요일 새벽에 인근 호수로 짐 챙겨서 가야 할 수 있어 조심하는 편입니다.
사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을땐 아이들을 큰 소리로 야단치고 화를 내기 쉬웠습니다. 화를 낸다는 행동 자체는 불편한 감정이 드는 일이기에 아이들에게 화를 낸 직후에는 뭔가 함께 하는게 어렵죠. 아이들도 그 순간이 어색하구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았을땐 부담 없이 화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워낙 아이들과 하는게 많다 보니 화를 내려다가도 저도 모르게 멈칫 합니다. 잠시 후 뭐를 함께 해야 하는데 그 순간이 어색해지는게 싫거든요. 그러다 보니 좋게 이야기 하게 되고 말을 좋게 하다보니 표현이 아이를 존중해 주는 쪽으로 나오게 되더군요. 존중해주는 표현을 쓰다 보니 행동도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신들을 존중해준다고 느끼는 순간 아이들이 두고 있던 거리감이 확 줄어들었습니다. 제가 대접해 주는 만큼, 그러니까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하는게 보이구요. 저도 아이들과 주먹 하이파이브를 하고, 고맙다는 인사 많이 하고,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때 입에서 쉽게 나오려는 말 참으며 많이 인내해 줍니다. 제가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어른들에게 하듯이요.
물론 함께 몸을 쓰는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부모와 자식 사이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저희집 아이들도 여전히 숙제 안하고(본인은 깜박 했다고 주장하지만..), 유튜브 많이 보다 한소리 듣고, 해야할 일들 미루다 뒤늦게 비상이 걸리고, 학교 성적은 그저 그렇고... 등등 그 또래 아이들이 당연히(?) 보여줘야 할 덕목들을 보여주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집에서 큰소리가 나거나 감정적으로 격해지고 대립하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최소한 저희 집에서는 지난 수년간 큰소리 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저와 아이들의 관계가 혼내고 화내고 주눅드는 혹은 반발하는 사이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른 생각을 풀어갈 수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저와 아이들의 관계가 혼내고 화내고 주눅드는 혹은 반발하는 사이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른 생각을 풀어갈 수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브런치에 올렸듯,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 뒤에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았던, 형제들이 한 집에 살았던 그 시간들이 기억속에 차곡차곡 쌓여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