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운, 맹꽁이서당, 웅진주니어, 한국, 2020년 개정판 46쇄
누구나 부끄러워 숨기고 싶지만, 때가 되면 자꾸만 읊조리게 되는 청춘의 한 자락이 있다.
돈이 없던 시절이 길었다. 돈이 많던 시절에 나는 하늘을 돈짝만하게 우습게 여겼고, 성경과 고전을 등한시했고, 자랑하려고 책을 들고 다녔고, 술을 마셔대며 허랑한 술친구들을 모았고, 사람을 효과적으로 때리고 꺾는 기술만 돈을 주고 배워 체계가 없었다. 열심히 산만큼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 것이 무너지며 돈 한 푼 없이 사니 집 안팎으로 괄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몇 벗이 없다면 끝내 살 수 없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나는 눈을 피해 늘 하릴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격증 공부는 끝내 하고 싶지 않았고, 나는 내가 비벼볼 수 있는 사회의 그늘을 찾아 헤매었다.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에서 나는 오랫동안 산길을 걷거나, 남들이 보지 않는 공원 뒤켠에서 혼자 나무에 주먹과 발질을 하거나, 방향제용 커피가루로 커피를 내고, 남들이 마시다 남긴 술을 모아 새벽에 홀짝이면서 책을 읽었다. 누군가 나를 봐준다면, 밥과 술을 사준다면, 천릿길도 마다않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휴대전화 없이 어찌 그리 사람들을 만났는가 싶다.
낮에는 도서관에 많이 갔다. 나와 달리 청춘을 불태우면서 시험 공부를 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온갖 책을 읽었다. 실컷 활자들을 보다가 눈이 마음처럼 지치면, 비로소 만화를 보았다. 윤승운 화백의 역작인 맹꽁이서당도 그때 정말 닳도록 봤다. 맹꽁이서당 은 양질의 내용에 비해 출판 운이 좋지 않아 연재처와 출판사를 여러 번 바꿔가며, 마침내 지금의 15권 한 질 구조를 이루었다. 조선사 10권, 인기에 힘입어 뒤이어 나온 고려사 5권으로 완간되었다. 특히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 만화에 비하면, 정사보다는 야사의 내용이 많고, 통사를 전한다기보다는 옛 위인들의 이야기들을 흐름에 맞게 나열했다는 점이 강해, 사실 고려-조선의 전체적인 역사 흐름을 파악하는데는 당연히 무리가 있다. 어디까지나 역사 입문자들에게 역사란 사람 사는 이야기의 총합이며, 그 중 기벽한 위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흥미있게 전달하는 점에 있어 최적의 도서인 셈이다.
너가 가끔 내게 '아니, 대체 애 키우고 일 다니면서 언제 책 읽고 언제 운동하는거야, 술은 언제 마시고? 잠은 자?'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내가 늘 집안에서 애쓰며, 나는 늘 잠을 줄인다. 남는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를 볼 새가 없다. 가끔 영화는 본다. 대신 시간을 나누어 늘 책을 읽고, 연달아 할 수 있는 시간에는 훈련을 한다. 맹꽁이서당 같은 만화는, 언제 펼쳐도 손쉽게 읽을 수 있으므로 나처럼 시간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 아비에게는 최적의 도서다. 아직 나는 봐야될 책이 너무 많고, 사야될 책도 더욱 많다. 그러나 시간을 내어 맹꽁이 서당을 다시 읽는 서른여덟, 내가 사실 책 속에서 들여다본 것은 불과 십여년 전, 그 흔한 스마트폰 하나 없이 낡은 넷북을 가방에 짊어지고 다니며 허름한 등산복 차림 거지 꼴로 도서관과 산을 전전하며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곳마다 혹시 누가 나를 찾지 않나, 메일함을 뒤지고, 책을 읽고, 하루의 신세를 타령하던 서른살, 몸도 마음도 덜 여물었던 얕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 때 나는 조선왕조 600년과 고려 왕조 500년,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뒤져가며 누가 나처럼 살았는가, 나와 같은 이는 없는가 찾고 헤매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누구나 부끄러워 숨기고 싶지만, 때가 되면 자꾸만 읊조리게 되는 청춘의 한 자락이 있다. 그를 필요 이상으로 자랑하고 타인에게 알아주길 강요할때 우리는 그를 '꼰대' 라고 일컫는다. 나라고 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