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보 맞서기의 반복

by Aner병문

산본 장 사범님이 자신의 도장을 차려 떠나기 전까지 솔직히 나는 보 맞서기를 그닥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보 맞서기란, 3보, 2보, 1보로 나뉘어 걸음 내에서 상대와의 공방을 상정하여 거리를 조절하며 연습하는 방식인데, 흰 띠 때를 제외하면 둘씩 짝을 맞추어 정해진 공방을 해야 하므로 거리부터 호흡까지 신경써야할 내용이 많다. 혼자서 하는 틀도 못하고, 그냥 맞서기는 늘상 쥐어터지고 오는 나로서는, 틀도 아니고 맞서기도 아닌 것이 마치 호신술 연무하듯 서로 손발을 맞추는 일이 번잡스럽고 어려운데다, 산본 장 사범님이 중앙도장 부사범으로 항시 있는 동안에는, 늘 본인이 보 맞서기를 다 외워서 사제사매들의 승급승단 심사를 도왔으므로 사실 그 때까지 별 생각이 없었다. 하여 산본 장 사범님이 독립하고, 나이나 입문 순으로 최선임 수련자로서 내가 임시 부사범이 되고 나서야 엇 뜨거라, 이거 뭐부터 해야 하나 하고 나 혼자 연습하던 방식에서 비로소 벗어나 태권도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거나 보 맞서기 연습을 하기 시작했던 터이다.



사실 그 전에도 사제사매들이 뭘 물어보시면 당연히 낱기술들을 정성스레 알려드리긴 했었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내가 '애 키우다 도장에 가끔 나와서 연습하고 농담하고 잘 웃는 대머리 삼촌' 이었다면, 지금은 어찌 되었건 부사범으로 뭘 알려드린다고 생각하니 내 스스로 연습도 더하고 정확한 수치를 알려드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게다. 때마침 사범님 역시 보 맞서기를 새롭게 3보, 2보, 1보 각 10개씩 정리하여 다시 만드셔서 유튜브에 올리시기도 해서, 나는 정말이지 죽을 힘을 다해 외웠다. 사주찌르기/막기부터 유급자 틀 9개, 초단 틀 3개, 2단 틀 3개 총 17개를 이미 다 외운 사람이 그깟 다 해봐야 3~4분 될 30개의 보 맞서기를 못 외우느냐 물어보신다면, 나름대로 할 말은 있다. 바둑을 둘 줄은 모르지만, 내 듣기로 바둑의 고수들이 손쉽게 복기를 하는 이유는, 착수를 하나하나 외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설이나 영화의 서사를 기억하듯 나와 상대의 행마가 나아갔던 순서를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틀도 그러한 서사가 있어서 반드시 좌우 반복되는 동작도 있거니와 전체적으로 예상되는 그림이 있는데 반해, 보 맞서기는 3보 맞서기가 그나마 좌우 반복이 있을 뿐, 2보와 1보 맞서기는 즉각적으로 공방이 이루어지니 이걸 무턱대고 외우는 것이 어려웠던 게다. 하기사 보 맞서기도 맞서기의 일종인데, 누가 예상대로 움직여줄까. 어쨌든 새롭게 부사범이 된 콜라 사매, 그리고 밥 잘하는 유진이와 이래저래 맞춰보고 나니 보 맞서기는 내가 그 동안 몰랐을 뿐, 아주 효과적인 수련 방법이었다. 손쉽게 거리를 잴 수 있는데다 실질적으로 혼자서 틀로만 연무하던 태권도의 동작이 실제 손발 거리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실제 맞서기는 글러브를 끼긴 하지만, 타격계는 글러브의 유무를 떠나 정확한 위력이 터지는 거리를 재는 것이 일순위이므로, 다양한 기술을 쓰는 보 맞서기는 그 동안 2단 틀을 4년째 반복해온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날씨가 천변만화하는 이번 주는 방에서 혼자 보 맞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오늘도 슬쩍 나가볼까 했는데 이미 밖에 비가 흩뿌리고 있고, 아내와 아이는 늦잠을 자므로, 아침 일찍 3보, 2보, 1보 맞서기를 순차적으로 계속해서 반복하고, 페르시안 클럽으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하고, 케틀벨을 30번씩 2세트 휘두르고, L 바로 플란체 연습을 했다. 아직 힘이 부족해서 L자 버티기가 완전히 되지는 않고, 다리를 뒤로 쭉 뻗어 평형 버티기도 아직 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각도가 확실히 나왔다. 다만 비가 오는 날이면 늘 무릎과 어깨가 아픈데, 어제부터 오른쪽 어깨가 염증이 오듯 아파서 조금 걱정이다. 소은이를 처음 돌볼때 나는 내 왼쪽 어깨가 내려앉아 이백만원 가까이 들었다. 단련하지 않으면 늘 아프지만, 단련해도 아픔을 점점 막을 수 없어서 겁이 난다. 나이를 먹는다는 뜻인가보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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