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응우옌김빈, 이민희, 베트남 한 접시, 산디, 2018

by Aner병문

처자식과 함께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을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장마가 이토록 시작될 줄 모르고 정말이지 입술이 마르도록 푹푹 찌던 날이었다. 하루 두번, 200명씩의 예약자들만 받는다는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시설도 기획도 몹시 좋았지만, 평일이니 한산하리라는 우리 부부의 예상과 다르게, 주변 어린이집들이 때마침 방학을 하는 바람에, 미리 몰린 가족들로 역시나 북새통이었다. 그래도 어린이박물관의 온갖 장난감들을 재밌게 가지고 노는 딸을 보니 아내나 나나 귀여워서 몹시 즐거웠다. 그렇게 반나절을 잘 보내고 밥이나 한 끼 먹자고 나가는 찰나에, 골목길의 허름한 서점 하나를 보았다. 누가 봐도 퇴락해가는 작고 낡은 동네 서점은, 아닌게 아니라 이미 정리작업이 거의 끝나 있어 서가에 책들이 거의 없었다. 이제 학생들이 교과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영상으로 보여줘야만 이해하는 세상과 세대가 왔다는 교사들의 말처럼, 나는 활자의 패배를 상징하는 듯한 낡은 서점과 또한 지치고 피곤해보이는 어르신 사장님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 몹시 슬펐다. 그래서 굳이 사지 않아도 될 책들이었지만, 책들이 싸기도 하여, 그 유명한 박준 시인의 수필과, 그리고 이 책을 골랐다. 사실 늘 술 좋아하는 나 때문에 여기저기 기름진 중식만 먹고 다니는 아내에게, 이 더운 날 좀 상큼하고 새콤한 동남아 음식을 먹여보면 어떨까, 아닌게 아니라 한번 찾아간 베트남 음식점에서 뭐든 신기하다며 맛있게 먹은 아내 생각이 나기도 해서 산 책이었다.



한 접시 시리즈라고는 했지만, 안의 내용은 제법 많았다. 사실 일관적으로 음식 얘기만 나오는 책인지라 다소 단조롭기도 하지만, 본디 식문화가 역사, 지리 등과 관계가 깊다보니 그에 관련된 내용들이 빠지지 않아 생각보다 밀도가 높아 가볍게 읽지 못했다. 그래서 음식들을 정해놓으며, 며칠에 나누어서 읽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음식 하나에, 베트남의 역사, 자신의 결혼생활, 여성 인권, 친구 이야기, 정치적 논의 등을 자세히 얘기하려는 작가의 세밀한 고집을 당해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여성 인권을 몹시 강조하고 싶은듯한 작가의 마음은 알겠으나, 왜 굳이 자신의 배우자를 그렇게 성까지 다 붙여서 남처럼 불러야 하는지, 여성 인권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당연히 필요하지만, 모든 베트남 음식의 역사를 이야기할때 그렇게까지 적대적으로 이야기해야하는지, 또한 어떤 음식은 반드시 이렇게 먹어야 한다고 스스로 올바른 먹는 법에 대해 규제할 필요가 있는지, 이런 점에 있어서는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이미 오래 전에, 채식주의자, 여권주의자, 환경주의자, 동물권리보호주의자 등의 이른바 몇몇 '주의자' 들이 스스로 강경히 내세우는 도덕적 우월성이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적이 있다. 그때 아내는 술잔을 기울이는 내게 덧붙이기도 했었다. 그거 아능교? 책 좋아하는 사람들도 가마이(가만히) 보모(보면) 똑같디~ 책 안 읽은 사람들은 은근히 책 안 본다 눈치 주고 뭐라카고, 여보야도 안 그라능교? 웜메, 이 사람이, 생사람을 잡어야, 내가 언제 그랬시야, 하고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펄쩍 뛰긴 했으나, 내심 마음 한구석이 찔렸던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도 '올바른 무엇' 에 늘상 천착하는 사람이라, 나의 얕은 공부, 나의 모자란 태권도 조차 무너질까 늘 두려워 집착하고, 내 딸이 항상 올바른 믿음, 배움, 그리고 미각을 유지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므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 음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스스로의 의식을 자극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심을 아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막상 내가 그런 문체와 화법으로 글을 전개하는 방식을 만나보니 솔직히 연이어 읽기가 아주 쉽지는 않앗다. 그래도 근처 구로에서 베트남 여성들의 정착과 또한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작가 선생들은 꼭 한 번 뵙고 싶다 느끼긴 했었다. 비슷한 맥과 결로 세상을 보는 사람으로서, 나눌만한 이야기가 적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나 얼마 전, 너와도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듯이, 나는 이제 지켜야할 것이 많고, 겁이 늘어난 남편이자 아비이자 아저씨가 되어서, 누가 보고 싶다고 섣불리 함부로 찾아가는 뻔뻔한 용기를 다 잃어버렸다. 나는 이제 내 곁의 사람들조차 잃어버리지 않을까 겁을 내며 시간이 날때마다 몇 안되느 벗들을 만나느라 그게 단지 전부다. 그래도 좋은 가족과 벗이 있어 항시 함께 나눌 음식을 찾아 헤매는 행복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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