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960일차 - 삶의 잔여를 날리는 태권도!

by Aner병문

뉴스에서 올해 10월~11일 사이에 커다란 파도가 온다고 표현할 정도로 대거 코로나 확산을 예고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회사에도 다시금 확산세가 퍼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정신없이 바쁘다보니, 여유가 많이 없어져서, 나는 맑은 날이면 옥상에서 혼자 도복 입고 훈련하는 사진을 가끔 회사 단톡방에 올리곤 했는데, 그러자 몇몇 상사들이나 동료들이 '옥상에서 혼자 도 닦는 거예요, 아니면 정신 수양하면서 스트레스 푸시나?' 하면서 웃어서 나도 그냥 웃고 말았다. 내가 특히 더운 여름날에는 어차피 뭐 이제 누구한테 멋 내면서 잘 보일 일도 없고, 하루 종일 천변만화하는 날씨에 땀 뻘뻘 흘리거나 비에 젖기 다반사인데 뭐 어떠냐 싶어 늘 청바지 두벌에 태권도 티셔츠만 갈아가며 입고 다니자 누군가는 '아니 맨날 등짝에 태권도 라고 커다랗게 써 있는 옷 입고 다니는데, 이거 뭐 위협이야 뭐야' 하면서 웃으신 적도 있다.



오랜만에 도장 저녁반에 갔고, 또 오랜만에 모처럼 많이 봐드려야할 흰 띠 사제사매들이 적으시었다. 적어도 자신이 오늘 무얼 익혀야 하는지는 알고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라서 나도 비교적 여유롭게 내 훈련에 매진하였고, 흰 띠 수련생들 신경쓰지 않고 네 명이서 짝을 맞춰서 돌아가며 격렬하게 한 삼십분 맞서기도 했다. 대부분 검은 띠를 따거나 승단을 앞둔 이들이고, 맞서기 실력도 엄청 늘어서 이제 정식으로 글러브와 레거스를 다 차고, 나도 최선을 다했다. 검은 띠를 딴 콜라 부사범과 햄버거 사매는 움직임과 공격의 틀이 정말 좋아졌고, 경상도 사투리를 꼭 충청도 억양처럼 느리게 쓰는 전직 WT 사범이기도 한 다크서클 제로 씨야 원래 발차기 실력이 좋았으며, 킥복싱 체육관도 따로 다닌 적이 있는 감귤 사제는 원래 팔다리가 길고 감각이 뛰어났으므로, 그 긴 팔다리를 뚫고 가기에도 벅찼다. 나 역시 그 동안 쌓아둔 경력이 있어서 예전보다는 움직임이 좋아졌지만, 짧은 팔다리로 원투 발차기 한번 차고 그 다음 연계기가 쉽게 나오지가 않아서 결국 상대의 공격을 먼저 흘려보낸 뒤에 뒤따라 공격을 해야하는, 아주 번거로운 카운터만을 노려야 했다. 나이 먹으면 잔꾀만 느는 법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다크 서클 제로 씨 역시 처음 시작 때부터 앞발을 치고 나오면서 낮은 발로 배부터 걷어차면서 시작하니, 이 기술은 나도 써먹어야겠군 할 정도였다. 특히 가드가 아무리 낮아도 턱과 얼굴이 기본적으로 높아 키가 큰 감귤 사제는 내가 도통 따라갈 방법이 없어서 나는 늘상 그의 갈빗대나 복부 측면을 노리다가 서로 헉헉대기 일쑤였다. 여하튼 서로 원없이 땀 실컷 흘리고 이제서야 돌아왔다. 모처럼 아주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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