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찬욱, 주연 김민희, 김태리, 아가씨, 2016. 한국
감독 박찬욱, 주연 김민희, 김태리, 조진웅, 하정우, 아가씨, 2016. 한국
관촌수필의 이문구 선생을 뒤잇는 충청도의 기재로 이름났던 김성동 선생이 어렸을 때 일이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 길, 만다라, 집 등은 김성동이라는 훌륭한 작가가 이 나라에 있다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깊이 각인될만한 작품이기도 한데, 그 작품 속에서 학생이었던 김성동 선생- 즉 영복은 대쪽같은 선비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익히며 자란다. 평소 놀기만 하느니 차라리 바둑이라도 익히라는 공부자의 말씀을 인용하던 선비 그 자체인 할아버지께서, 소설 읽기 좋아하는 영복을 그냥 놔두셨을리 없다. 기왕 잡문-소설을 읽을 바에는 그 유명한 벽초 홍명희의 '림꺽정' 을 읽으라며 쌈짓돈을 손수 내어주신 어린 영복이 책방에서 빌려온 책은, 아뿔싸, 임꺽정은 임꺽정인데, 임꺽정을 표방한 성인소설- 이른바 야설이렷다. 영복의 표현대로 저 임꺽정이 용천검 뽑아들고 탐관오리 베는 장면은 아니 나오고 순 야한 장면만 많이 나오니, 순진한 시골소년 영복은 그 책을 또 고대로 할아버지께 들고간다. 할아버지, 이상헌듀,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책이 아닌거 같튜. (내 기억속 김성동 선생이 쓰시던 충청도 사투리..^^;;) 할아버지는 책장을 한 번 들추더니 엇험, 하고 헛기침을 하셨더랬다. 태우거라. 빌려온건듀. 돌려주라는 말이니라. 그 다음 문장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어린 영복의 할아버지께서 책장을 들추며, 안타깝구나, 문사文士들이여, 그 문장으로 음란함이나 희롱하는구나, 이런 내용이었지 싶다. 김성동 선생의 길, 만다라, 집은 어렸을때 우리 집에 다 있었던, 어머니의 애서이기도 했는데, 지금 내 지하 서재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길이 없다.
여기, 일본인으로 행세하고자 전처까지 제 저택의 집사로 전락시키면서 기어이 일본 여자와 결혼한 금광업 대부가 있다. 겉보기에는 으리으리한 저택에 서재까지 갖추고, 때가 되면 서양풍의 젊은 신사들을 모셔다두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친히 생생한 낭독을 하게 하는, 그야말로 엘리뜨들의 지적 유희 도락처럼 느껴지지만, 한때 독서모임을 오랫동안 주도하고, 상까지 받은적이 있는 내가 보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생생한 낭독회의 소재는, 하나같이 그냥 에로스 풍의 성인소설도 아닌, 포르노 소설에 가까운 이른바 '야설' 일 뿐이다. 어린 히데코는, 변태적 성욕을 지닌 바로 이 이모부에게, 유년시절부터 성인소설을 올바로 읽고, 음란한 상상을 최대한 자극하는 법을 배우며 자란다. 더군다나 어린 히데코에는 어마어마한 유산이 상속될 예정이라, 한참 나이가 많은 늙은 이모부는, 이 젊은 처조카와 결혼하여 재산을 독차지할 음흉한 꿈까지 꾸고 있다. 영화 아가씨에 나오는 주축의 남성들은 하나같이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데, 조진웅 배우가 가장 날씬한 모습으로...(...) 열연하신 코즈키 히데유키는 출세욕, 변태적 소유욕과 가학욕구로 뭉쳐진 성욕, 물욕 등 여러 욕망과 폭력의 집합체다. 후지와라 백작으로 행세하는 영국 창굴의 문지기였던 판돌 역시 어떻게든 출세하여 귀족의 모습을 동경하고 흉내내고자 하는 사기꾼이지만, 코즈키의 욕망에 비하면 귀엽다고 여겨질 정도다.
영화는 3부작으로 나뉘어 있으며, 서로 연결되는 반전이 있다. 분당댁 탕유가 전라로 열연하시어 이름이 높았던 색, 계는 내게 야했던 영화가 아니라 가장 안쓰러운 폭력적 영화로 기억되어 있는데, 탕유와 사랑하는 역할의 양조위 배우가 언제나 비인간적인 메마른 표정이었기 때문에 그 영화가 무척이나 안타깝고 안쓰럽게 여겨졌다. 반면, 아가씨는 누구나 알기 쉬운 에로스를 끌어내기 위해서 장면에 알맞은 음성효과를 입힐 뿐만 아니라, 매 소품에까지 달라붙도록 자극적이거나 은은한 대사를 배치하여 관객들을 서사에 깊이 끌어당긴다. 아가씨는, 단순히 여성들이 성적 자유를 손에 넣을 뿐 아니라, 자신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남성적 욕망을 주체적으로 돌파해나가는 모습을 그려내는데, 그러한 과정은, 한낱 사기꾼 도둑에 불과했던 숙희가 아가씨 히데코를 위해 코즈키의 모든 장서들을 찢고, 더럽히고, 망가뜨리는 장면, 그리고 아가씨를 위하여 손수 담 밑으로 가방을 쌓아 받치고, 아가씨의 손을 잡아 친히 지옥 같은 집을 탈출케하는 장면에 여과없이 드러나며, 마침내 결말에서 두 여성이 마음껏 자신들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장면에서 훌륭히 마무리된다.
아가씨는, 분명 섹시하고 요염하다 못해 끝없이 야한 영화지만, 야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서사가 있고, 또한 그 주제는, 단순한 성적 심상의 소비가 아닌, 주체적인 인간의 독립으로 결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그 옛날 이상하게 보려고만 하면, 낮잠이 쏟아지던 퍼시픽 림 첫번째 편을 기어이 보고난 뒤의 쾌감처럼, 이 영화도 비록 몇 년이 지났지만, 마침내 집중해서 다 볼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전직 독서모임의 주최자이자, 내 자식들이 크면 다시 한 번 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영화의 허리 역할을 하는 낭독회 장면만은, 좋은 소재로 꼭 한번 나도 시도해보고 싶다. 한 남자가 일생을 걸만한 좋은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