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결혼 - 예식을 거치지 않더라도, 인연을 만난다면 마땅히 함께 하는.

by Aner병문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엔 튀긴 닭Chicken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그렇다면 Cross, 즉 교차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곳이 교회의 공간이라면 나는 십자가라고도 말했을 터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누군들 독수리처럼 혼자 고고하게 살 수는 없다. 평생을 혼자 외롭게 틀어박혀 사는 이라고 해도, 먹고 살려면 하다못해 풀잎 하나, 짐승 하나라도 손에 쥐지 않으면 안된다. 산다는 건 원래 그렇다.



나와 아주 오랫동안 교분을 맺었던, 나와 가장 친하다고 말해도 될(그래도 되죠..?^^;; 보고 계십니까? ㅋㅋ) 너가 마침내 시집을 갔다. 너는 여전히 예쁘고 발랄했으며, 너의 신랑은 오늘에서야 누굴 닮았는지 알게 되었는데, 영화 공작, 에서의 주지훈 배우를 닮았다. (동무, 나가서 딴스 좀 추고 오라우.) 나는 최근에 연달아 일이 많아, 너와 약속했던 축사를 일단 고사했고, 다행히도 혼자서라도 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너는 이미 두번이나 술에 취해서 너의 청첩을 가지고 가지 못한 나를 탓했고, 정말 생각해서 나와 안식구를 불렀는데, 집안 사정 생각하여 안식구가 못 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못 오면 정말 서운할 거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도 정말 미안하여 어떻게든 갔다. 다행히도 갈 수 있었다. 키가 크고, 얼굴이 금방이라도 닳아 없어질 듯한, 목이 긴 미인 친구가 너의 축사를 울먹이며 시작했을 때, 나는 아이고, 차라리 내가 어떻게든 축사를 할걸,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너는, 선연하게 이뻤고, 우아했다. 너와 옛날에 함께 일했던 까페 사장님을 오랜만에 같이 뵈었는데, 느닷없이 우셔서 깜짝 놀랐다.



일이 일인지라, 나는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던 너의 결혼식에서 술을 양껏 마시지 못했다. 그래도 하마터면 잃어버리고 잊어버릴 뻔한 또다른 인연을 만나서 묵혔던 이야기도 듣고 좋았다. 이야기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나는 많은 음식을 먹지 못했다. 남은 술을 가지고 오려다가 그만두었다. 집안일이 이미 번잡스러워서 소주 두어병 어디에 둘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먼저 결혼한 티를 낸답시고, 너와 너의 신랑에게 결혼이란 이런것입네, 저런것입네 술 취하여 떠들었던 기억이 있으나, 아무리 내가 새삼스럽게 떠든다 해도 너의 삶이 나의 삶 같지 않을 것이고, 우린 단지 몇 겹의 결이 같을 듯하여 오랫동안 친구였을 터이다. 너는 이제 한 아저씨의 아주머니가 되었다. 황석영 선생은 그래서 개밥바라기 별에서 '우리는 모두 어디서 본듯한 아저씨가 되어 늙을 터이다.' 라는 문장을 쓰셨나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너가 하늘의 별처럼 반짝여보인다. 너는 오늘 가장 누구보다 곱고 이뻤다. 내 아내가 늘 내게 그렇듯이. 너의 행복을 언제나 빈다. 그래야 너의 냉장고 속 술을 내가 야금야금 마시지.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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